이드 – 169화
하지만 그런 경고성보다 강시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퍼퍽…
“아아악…!!!”
강시의 주먹에 어깨를 강타당한 절영금은 방어도 하지 못하고 석실 바닥을 뒹굴었다.
이드는 한 발 늦었다는 생각에 급히 보법을 밟아 다시 절영금에게 달려들려는 강시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강시는 그런 이드를 아예 눈에 뵈지도 않는지 이드 옆으로 비켜가며 다시 절영금을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순간 이드는 황당함을 가득 담아 자신 옆을 지나치려는 강시를 금령단천장으로 날려버렸다.
“이게 누굴 졸로 보나… 네 눈엔 내가 보이지도 않냐. 금령참… 난화!!”
퍼퍼퍼펑퍼펑…
난화십이식의 일식을 응용해 펼쳐낸 금령참의 초식에 비틀거리던 강시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그 사이 한쪽으로 물러서 있던 마법사들이 절영금을 자신들에게로 이동시켜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드는 다시금 몸을 일으키면서도 자신이 아닌 절영금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는 강시를 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저놈 저거, 저 형하고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거 아냐? 왜 죽자살자 저 형만 공격하려는 거야? 게다가 방금 전의 보법은 하북팽가의 것이었는데… 쳇, 또!”
하지만 강시는 이드가 궁금해할 여유를 주지도 않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다시금 강시의 앞을 가로막으며 강한 풍령장으로 강시를 허공에 뛰어올리며 쌍수로 금령참을 펼쳐 강시의 양팔을 후려쳤다.
“키에에… 키에엑!!!”
이드의 공격에 양팔의 뼈가 조각조각 부서진 덕분에 괴성을 지르던 강시는 그 충격을 그대로 껴안고 뒤로 튕겨 나갔다.
이드는 그런 강시의 모습과 자신이 이미 쓰러뜨렸던 강시를 동시에 시야에 담으며 쌍수에 금령참을 극성으로 펼쳐내며 거의 동시에 두 강시의 후두부를 뭉개버렸다.
뇌에 직접적으로 행해진 공격은 강시도 별수가 없었는지, 잠시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던 두 강시는 이내 축 늘어져 그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두 강시가 확실히 처리되자 곧바로 절영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이드는 중앙에 앉아 어깨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절영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깨뼈가 완전히 박살 났어. 우선은 마법으로 통증을 억제시켜뒀다. 저런 부상은 마법보다 신성력으로 치료받는 게 효과적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저 강시는 어떻게 된 거야? 네가 공격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저 아이만 노리던데…”
“그거야 나도 모르죠. 나도 강시에 대해서 듣긴 했지만 상대를 정해놓고 싸운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도 없어요.”
이드는 남손영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어깨너머를 가리키며 이어지는 그의 말에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 강시만 그런 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저 강시들도 그런 것 같거든… 만약을 생각해서 왜 그런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젠장. 이놈의 강시들이 단체로 미쳤나…”
그사이 석실의 여기저기서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콰직거리며 들려왔다.
덕분에 일행 중 몇몇 여성은 그 소리를 피해 귀를 꽉 막고 있기도 했다.
그중에는 막 강시를 완전히 처리하고 다른 일행들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이드 때와 마찬가지로 강시들에겐 찬밥 신세밖에 되지 못했다.
아마 그때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 라미아가 아니었다면, 이드들은 한참 동안 강시에 대한 문제로 머리를 굴려야 했을 것이다.
“응? 라미아, 왜 그래?”
“혹시 말이에요. 저 강시라는 것들이 저러는 거… 아까 오면서 이드님이 말했던 추종향이란 것 때문 아닐까요?”
“추… 종향이라… 그럴 수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
두 사람의 대화에 옆에 있던 남손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드는 그런 그에게 라미아의 생각을 정리해서 전해 주었고, 설명을 모두 들은 남손영 역시 가능성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린 세 사람은 잠시 후 마지막 강시가 쓰러질 때까지 강시들을 유심히 살펴 나갔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쓰러진 강시를 살핀 이드와 남손영 두 사람은 자신들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추종향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에 그치기로 했다.
절영금의 상처를 돌본 일행들은 곧바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두 가디언 프리스트의 말에 그를 돌려보내고 석실 뒤쪽을 향해 조심스레 나가기 시작했다.
강시들이 튀어나온 석벽 뒤쪽이 휭하니 뚫려 있었기 때문에 따로 문을 찾는 수고는 없었다.
석실의 뒤쪽으로는 다시 일행들이 지나온 것과 같은 모습의 통로가 일행들이 들어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옥련은 다시금 시작되는 통로에 처음 석부에 들어올 때와 같이 제갈수현은 앞에 세우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이 통로에 기관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만전을 기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후로 이십 여분을 걸었음에도 어떠한 기관이나 진법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앞의 석실까지 지나온 사람들을 인정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긴장이 풀릴 때를 기다려 허를 찌르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서서히 긴장이 풀려가는 느낌의 일행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행들 앞에 나타난 것이 이 묘하게 부셔져 있는 석벽이었다. 아직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통로의 양측 벽이 부셔져 있고, 그 안으로 새로운 통로가 떡 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맞지 않는 배관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과 같았다.
“하하… 이건 또 뭐야? 함정인가?”
“설마…. 어떤 정신나간 놈이 이런 함정을 만들겠어요? 게다가…. 우리가 지나온 통로와 여기 벽을 뚫고 뚫려 있는 통로의 재질과 모양이 전혀 다른 걸요.”
“뭐야. 그럼, 서로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야기 아냐…. 그리고 이쪽 통로는 또 다른 던젼이고….”
“서, 설마요. 어떤 미친놈이 남의 던젼 통로를 뚫고 자기 던젼을 만든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요.”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통로를 살피던 일행들은 각자 투덜거리는 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며 한순간 왁자지껄했다. 던젼 안에 또 다른 던젼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그들로서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행들을 이끌던 문옥련과 각국의 가디언 대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라고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통로를 살피던 한 사람의 말에 모든 일행들이 한순간 하던 일을 버려두고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 선자, 이 쪽 통로로 무언가 지나간 것 같은 흔적이 있소이다.”
“….”
“확실한 건가요? 아, 아니… 묘영귀수께서 하신 말씀이니 확실하겠지요. 그럼 언제적 흔적인가요?”
문옥련의 믿음이 담긴 말에 묘영귀수란 외호에 반백 머리를 한 노년의 고수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타인이 자신의 능력을 완전하게 신뢰해 준다는 것은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그 자신으로 하여금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서로 간의 믿음과 단결력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물론이요. 선자. 이 흔적으로 보아….. 아마 최근의 것 같소.”
“최근이라면…..”
“못돼도 하루 안이요. 수는 네 다섯 정도… 하지만 저쪽으로 들어간 수는 세 명 정도요.”
이어지는 묘영귀수의 말에 일행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중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정의 라마승이 확인하듯이 물어왔다.
“허면, 시주의 말은 이곳에 들어선 그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서로 갈라졌다는 말이겠구려. 원래 가던 이 쪽 통로와…. 지금 우리가 들어서려는 경운석부 안으로 말이요.”
“그렇습니다. 방금 살펴봤는데… 석부 안쪽으로 두 명이 들어선 흔적이 있더군요.”
라마승의 말에 묘영귀수가 확실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일본의 가디언팀인 무라사메의 대원 중 한 사람, 마에하라 쿠라야미가 확인 도장을 찍어내듯 지금까지의 멍한 표정을 지우고 날카로운 눈매를 드러내며 덧붙였다. 그런 그의 손가락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요상한 모양의 수인(手印)을 맺고 있었다.
“맞습니다. 이곳에 희미하게 남은 정(精)의 기운에 확인해 본 결과…. 그 숫자는 확실하진 않지만 누군가 지나간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희들이 들어선 이 석부와 이곳에 생겨나 있는 새로운 던젼의 통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럼 지금 여기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거란 말이요? 눈앞에 이런 상황이 벌어져 있는데….”
그의 말을 들은 이태영이 바로 되물어 왔다. 방금 전부터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급한 성격으로 다그치던 그였기 때문에 무언가 확인된 듯한 쿠라야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던 것이다. 이런 이태영의 사정을 알았는지 쿠라야미는 날카롭게 다듬었던 눈매를 처음과 같이 멍하게 풀어내며 웃음을 담아 말을 이었다.
“하하하…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설명이 되지요. 여러분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일년 반 전 봉인이 깨지던 날을 말입니다.”
“아!!”
순간 여기저기서 눈치 빠른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간의 차이를 두고 조금 둔한 이태영 등의 인물들 역시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렸다. 그들이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날과 지금의 상황을 한곳에 두고 생각하자 눈앞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작스레 도시 한가운데 산이 나타났듯이 버젓이 존재하던 호수가 사라져 버리듯이, 이 새로운 던젼 역시 경운석부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중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무너져 버린 것일 테고….
현재 상황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한 문옥련 등은 앞으로의 행동방향 때문에 다시 한번 고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길 잠시, 빠르게 결정을 내린 문옥련은 일행을 둘로 나누었다. 조금 위험한 일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곳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또 새로운 던젼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내린 결정으로, 영국의 트레니얼과 중국의 백련총, 그리고 일본의 무라사메가 새로운 던젼쪽으로 투입되었다. 단 여기에 더하고 빠지는 인원은 있었다. 이드와 라미아, 그리고 비상시를 생각해 가디언 프리스트인 세이아가 더해졌고, 원래 임무를 무시할 수 없다는 문옥련과 혹시 모를 기관을 생각해 눈썰미가 좋은 묘영귀수가 빠지게 되었다.
“그럼, 여러분 모두 조심하세요. 그리고 에플렉씨, 나머지 분들을 잘 이끌어 주세요. 혹시라도 위험할 것 같으면 어떤 상황이던 즉시 퇴각하셔야 합니다. 아셨죠?”
문옥련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당부의 말을 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임시지만 일행의 책임을 맡은 빈 에플렉이 서 있었다. 어두워 보이는 회갈색 옷에 전형적인 마법사의 나무 로드를 손에 든 그는 딱딱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에 맞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고염천과 남손영 등 염명대의 대원들이 이드와 라미아에게 제삼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자,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문옥련의 말에 양팀은 각자 주어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드가 막 새로운 통로 안으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무언가 잊은 물건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뒤돌아선 남손영이 이드의 이름을 부르며 무언가를 던진 것이었다. 순간 그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던 이드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허공에서 반짝이는 세 개의 물체에 자신들 특유의 경악성을 맘껏 토해냈다.
“으아아아…. 이, 이런걸 던지면 어쩌자는 이야기야!!!!!”
간이 철렁하고 떨어지는 느낌에 떨리는 손으로 만류귀종(萬流歸宗)의 수법까지 써가며 이드가 받아낸 물건. 그것은 손톱 만한 크기에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보석폭탄. 쥬웰 익스플로시브, 황당하게도 남손영은 그 폭탄을 마치 돌맹이 던지듯 던진 것이었다.
“미, 미쳤어요? 형!! 이런걸 던지면 어쩌자는 거예요?”
이드는 쥬웰 익스플로시브를 손에 들고서는 바락바락 악을 쓰듯이 남손영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이드의 반응에도 남손영은 태평하게 말을 꺼낼 뿐이었다.
“하하하…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 나도 네가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 각하고… 던진 건데… 험.험…”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남손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싸늘한 눈초리에 스르르 꼬리를 말고는 슬쩍 뒤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다 같이 고개를 내 저은 사람들은 서로를 슬쩍 바라봐 주고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