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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70화


라미아와 함께 걸음을 옮기던 이드는 손에 든 쥬웰 익스플로시브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일행들의 중앙에서 걷고 있는 제갈수현 곁으로 다가갔다. 지금 이드와 라미아가 속한 일행들 중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은 제갈수현과 메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곁으로는 같은 백련대의 대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 미터 장신에 풍성하달 만큼의 커다란 백색 바지를 입은 듬직해 보이는 남자와 아래위로 온통 홍옥빛깔의 옷을 걸친 날씬하고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그들이었다. 특히 한줌이나 되어 보이는 여인의 허리엔 손가락 길이쯤 되어 보이는 홍색 마디가 진 절편(節鞭)이 휘감겨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간 이드는 제갈수현으로부터 그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백영각(百影脚) 음사랑은 조금 무뚝뚝한 편이었고, 홍사절편(紅蛇節鞭) 호연소 보는 그대로 활달한 인상을 주어 금세 라미아와 친해져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제갈수현은 주위로 시선을 돌리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였다. 이드는 그의 그런 모습에 조용한 어조로 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뭐가… 신경 쓰여요?”

“아, 좀…. 낯설어서 말이야. 저기 쿠라야미란 분의 말대로라면 누가 이 곳을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잖아. 그렇다는 것은 이곳에 어떤 함정이 있고 어떤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일 테고, 그러니 자연이 걱정될 수밖에. 그런데 넌 그런 걱정도 안 되냐?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가?”

“쳇, 생각이 없다니… 무슨 그런 심한 말을. 다만 걱정한다 해서 풀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뿐이죠. 제갈 형도 괜히 쓸데없는 잡생각하지 말아요. 편하게 살자구요.”

“에효,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냐? 게다가 이렇게 눈앞에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투덜대는 제갈수현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킥킥거리며 작은 웃음을 지은 이드는 자신들이 걷고 있는 통로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 지나왔던 통로와 비슷한 넓이와 높이의 통로에 아치형의 천장. 그리고 벽면 사이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조각되어 있는 돌 독수리와 그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에 끼워져 있는 원추 모양의 광원.

“상당히…. 신경써서 만들었군…..”

“응? 뭐? 방금 뭐라고 했냐?”

“뭐, 그냥 잘 만들었다구요…… 드워프가 만들었으면 훨씬 아름답겠지만 말이야….”

뒷말을 슬쩍 흐린 채 대답하는 이드였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잔뜩 긴장하며 전진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일행들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산산이 조각난 몬스터의 조각이었다. 헌데 특이한 것은 다린 한쪽을 제외한 다른 부위가 별달리 깨진 부분이 없고 다만 그 깨어진 단면이 유리처럼 매끄럽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스톤골렘 같은데…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실력인데요. 검기를 사용해서 한 초식으로 산산조각 내버렸어요.”

이드는 부셔진 조각 중 하나를 손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말했다. 그 말에 일행의 책임자인 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조각으로 부셔진 다리 쪽을 발로 뒤적였다.

“확실히 그렇군. 단순반응형의 간단한 하급 골렘이긴 하지만, 정말 간단히 처리한 것 같군. 자, 좀 더 빨리 가지. 아무래도 앞서 가는 사람들 덕분에 이런 함정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까.”

“예.”

빈의 말에 대답한 이드는 좀 더 빠른 속도로 걸어 나갔다. 그러는 동안 처음 본 것과 같은 함정들이 여기저기 보였지만 그것은 모두가 이미 파괴된 것들로 아무런 해도 되지 않았다. 또 한 그 함정들은 들어갈수록 그 위험수위가 높아지는 것이 이드들이 직접 상대하며 전진해야 했다면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어 먼저 들어간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행들은 그런 걸림돌이 없었다. 덕분에 이드는 어느 순간 저 앞에서부터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날카로운 쇳소리와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폭음이 들렸어요. 아무래도 저 앞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 같은데요.”

이드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이드에게 모여들었다. 그들로선 아직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드의 말에 의심을 하진 않았다. 이미 석실에서 충분한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 좋아. 그럼 모두 경계하고 내 뒤를 따르도록…”

빈은 그 말과 함께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옆으로 스티브와 베어낸이 따라붙었다. 혹시 모를 갑작스런 상황에 대비해서였다. 얼마 달리지 않아 일행들 역시 은은히 들려오는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완만하게 휘어져 있던 통로 앞으로 번쩍이는 섬광이 일행들의 눈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섬광 사이로 보이는 것은 두 개의 인형이 전방의 허공을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붓고 있는 모습이었다. 빈은 그 모습에 바쁘던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서둘렀던 이유는 혹시라도 전투가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헌데,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어졌으니 저들에 대한 경계로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흠…. 검사 한 명에 마법사 한 명. 그리고 신관….. 인가? 라미아, 저기 한 쪽으로 물러서 있는 사람. 여 신관 맞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모습을 살피던 이드는 조용한 음성으로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라미아를 향해 물었다. 자신으로선 아직 신관의 기운을 구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드의 물음에 라미아는 이드의 마나를 빌려 가만히 마나를 퍼트려 나갔다.

“네, 맞아요. 특히 저 신관의 기운은 그레센에 있는 이리안님의 신관인 하엘 양과 비슷해요.”

“호~ 하엘과 비슷하단 말이지….”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밝은 베이지 색 옷을 걸친 여 신관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저쪽에서도 다오는 일행들을 알아차렸는지 무형의 벽을 공격하던 것을 멈춘 채 경계하는 모습으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에 걸음을 멈춘 빈이 약간 앞으로 나서며 그들 한 명 한 명을 살피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영국에서 파견된 가디언 빈 에플렉이라고 한다. 귀하들은 누구인가.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거지?”

같은 팀원들을 대하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고압적이고, 직설적인 말투였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무기를 겨누고 있는 시점에선 당연한 모습인 듯도 보였다. 그런 빈의 말에 세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검을 거두며 슬쩍 몸을 내세웠다. 이십대 중 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그는 꽤나 반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반해 그 덩치는 일행들 중 제일이라는 저스틴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머리카락은 은은한 푸른색을 뛴다는 것으로, 이드와 라미아가 이 세계로 넘어와 처음으로 보는 색깔이었다. 하지만 일년 반전의 그 날을 기준으로 여러 가지 생각도 못한 머리색으로 태어나거나 바뀌는 경우가 있었기에 희귀한 색은 아니었다. 단지 이드와 라미아가 운이 없어 그런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이었다.

“아, 가디언분들이시군요. 괜히 긴장했습니다. 저는 브렌 트레커프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료인 밀레니아. 그리고 의뢰인이신 타카하라씨입니다.”

그의 말에 빈은 물론 그 뒤로 서 있던 일행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처음 이 통로로 들어설 때 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들어선 일행들이었다. 헌데, 의뢰라니….

“의뢰라면…..”

“능력자. 그러니까… 돈을 받고 의뢰 받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죠. 한 마디로 용병이죠.”

빈은 브렌의 말에 시선을 돌려 의뢰인이라는 타카하라를 바라보았다. 그가 용병이라면 그에겐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는 것이다. 용병은 어디까지나 의뢰 받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흠, 그럼 타카… 하라씨라고 하셨지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처음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그의 말은 영어였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고용한 용병 두 사람이 외국인이었기에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면 분명히 영어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역시나 타카하라가 능숙한 영어로 대답했다. 그런 그의 코에는 좁으면서도 날렵하게 생긴 은빛 안경이 걸려 있었다.

“아니요. 별로 문제 될 건 없소. 간단히 설명하면 내가 이 몇 개월 전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동안 함정 때문에 못 들어서지 못하다 이렇게 뛰어난 용병들을 사서 이곳에 들어선 것이오. 에플릭 대장도 같은 마법사이니 이해하리라 생각되오만, 마법사가 얼마나 탐구욕이 강한지 또 자기 욕심이 강한지 말이요.”

“음….”

빈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이 던전이 어느 단체나 국가에 속한 개인 재산이 아니기에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빈 등의 일행에게 추궁당할 일이나 방해받을 일이 없는 것이다.

“헌데, 중간에 일행이 갈라진 것 같더군요.”

“맞소, 그 두 사람도 여기 브렌을 대장으로 한 용병들이요. 들어서는 도중 새로운 통로가 보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들을 그곳으로 보냈는데…. 그곳이 가디언들이 조사하는 곳인 줄은 몰랐소.”

“아니, 괜찮습니다.”

“그럼 우리는 계속 작업을 했으면 하오만….”

“아? 아, 물론입니다. 헌데, 뭔가 어려운 문제가 있는 듯 하군요.”

타카하라의 말에 급히 대답한 빈은 슬쩍 한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그렇소. 사중에 이르는 마법적 트랩이 깔려서 힘으로 뚫기 전엔 힘들 것 같소이다. 라이트닝 볼트!!”

콰콰콰쾅….. 쿵쾅…..

“좋아, 그럼 나도 또 시작해 봐야지.”

이드는 마법사에 이어 자신의 머리카락과 같이 푸르게 빛나는 검을 휘두르는 브렌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스톤골렘 조각을 뒤로 던져 버렸다. 그런 다음 순간 이드는 전방의 공기가 굳어지는 느낌과 함께 시끄럽게 들려오던 폭발음이 한순간 멎어버린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빈이 들어 올렸던 로드를 내리고 있었다. 사일런스 마법을 걸어 놓은 듯했다.

“나머지 일행들이 간 곳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어느새 나서서 서툰 영어로 빈에게 말을 걸고 있는 무라사메의 대장 가리키 히카루였다. 그녀 역시 영어를 할 줄 알기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던 것이다.

“아니오. 우리들은 이곳에서 저들의 뒤를 따를 것이오. 내 느낌이긴 하지만 저자의 말에 신뢰감이 가지 않소. 게다가…. 이 안쪽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지 모르기도 하고 말이오.”

“하지만 따라오도록 허락할까요?”

“반대할 이유도 없지 않겠소. 게다가 우리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준다면, 특별한 거절의 이유가 없지 않소. 스티브와 저스틴, 그리고 쿠라야미라고 했던가?”

“쿠라야미입니다.”

그의 말에 스티브와 저스틴을 따라 앞으로 나서던 쿠라야미가 그의 발음을 고쳤다.

“자네 세 사람은 지금 곧바로 저기 저 사람들을 돕도록 하게. 그리고 메른, 자네는 이리와서 저기 타카하라란 사람의 마음을 한번 읽어보게. 되겠나?”

이어 메른을 부른 그는 메른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다행히 내력이 뛰어난 몇몇은 그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놀란 눈으로 그와 타카하리를 번갈아 보는 등의 우를 범하진 않았다. 하지만 메른은 빈의 말에 생각할 필요도 없는지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아니요. 어렵습니다. 대장님도 아시겠지만, 상대가 가디언이나 능력자일 경우엔 독심술 같은 건 전혀 들어먹히질 않습니다.”

“그래도 기회를 봐서 몇 번씩 시도해봐 주게. 용병들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에 대한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아.”

빈의 이런 행동에 히카루가 좀 심하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짐작만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수하들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자기 생각만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빈보다 먼저 대답하는 메른의 말에 은근히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히카루님, 대장님이 이러시는 건 지금까지의 경험 때문이니까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작전에 나갔을 때 대장님이 불길한 느낌을 받으면 백이면 백 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한 마디로 점쟁이의 소질이 있달까요? 그러니 히카루님도 이번엔 빈님의 말을 따라 주십시요.”

“호오. 그렇다면 저도 그 말에 따라야지요.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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