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82화
이미 잠이 완전히 깨버린 이드는 나온 김에 이들과 잠시 이야기라도 나눠볼 생각에서였다.
그들에게 다가간 이드는 왜 그들이 이렇게 늦었는지 그 사정과 함께 하거스를 통해 나머지 팀원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을을 나선 지 세 시간 만에 트랙터가 그대로 서버렸다는 것이다.
뭔가 고장 날 듯한 기미도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우뚝 제자리에 서버렸다고 한다.
갑작스런 상황에 상인들과 기계에 대해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단다.
해서 상인들은 용병 중 몇을 다시 마을로 보내 트랙터를 대신할 만한 것을 가져오게 했다.
하지만 고장 나 버린 것도 겨우 구한 것.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는 그들에게 용병들이 가져온 것은 여섯 필의 말이었다.
결국 시간에 쫓기는 상인들은 트랙터 대신 말을 화물칸에 묶어 다시 출발한 것이었다.
덕분에 이동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그들은 자정이 훨씬 지나 새벽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에서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뭐,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중간에 쉬고 다음 날 움직이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모르는 말.
마을과 이곳 사이엔 정말 노숙을 할 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곳만큼 야영에 적합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 늦은 시간임에도 이들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하거스의 설명을 모두 들은 이드는 고개를 돌려 하거스를 통해 인사를 주고받은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용병으로서 상당한 실력들인 그들을 하거스 오른쪽으로부터 한 명씩 소개하자면, 검은머리에 묵직한 장창을 사용하는 비토, 손바닥만큼이나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소검 십여 자루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피렌셔, 뾰족한 가시가 박힌 버클을 옆에 벗어두고 은빛 번쩍이는 유난히 긴 총구의 리볼버를 손질하는 쿠르거, 그리고 디처의 유일한 홍일점으로 일대 용병들 사이에서 얼음공주로 통하는 오엘.
이 네 명이 하거스와 함께 움직이는 용병팀 디처의 팀원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드의 시선이 다아 있는 이는 그 네 명 중 유일한 여성인 얼음공주 오엘이었다.
두 자루의 중국식 검 – 실제로 보이는 것은 한 자루뿐.
하지만 그 검과 함께 천에 싸여 있는 길다란 물체는 누가 봐도 검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금발이 아름다운 여인.
이드가 그녀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녀에게서 은은하게 내공의 기운 때문이었다.
나머지 디처의 팀원들과는 달리 체계가 잡힌 상승의 내공심법을 익혔을 때 일어나는 정순한 기운이 그녀의 몸에 흐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지 못하면 알아차리지 못할 기운.
때문에 이드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익숙한 기운의 느낌은 이드로 하여금 저절로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호오~ 어린왕자가 우리 얼음공주에게 관심이 있는 모양이지?
그렇게 노골적으로 바라보다니 말이야.”
리더 겸 분위기 메이커로 보이는 하거스의 말이었다.
이드는 그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너무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것도 여성을 말이다.
“어린왕자가 관심을 보이면 뭘 합니까?
얼음공주는 끄떡도 않는데…. 저 얼음을 녹이려면 불꽃왕자가 아니면 안 될걸요.”
하거스의 농담을 쿠르거가 유쾌하게 받았다.
이 사람 역시 디처의 분위기 메이커로 보였다.
그의 말에 변명거리를 찾던 이드가 오엘을 바라보았다.
조금 기분 나쁜 표정이라도 지을 줄 알았던 그녀였지만 그런 이드의 생각과는 달리 오엘은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얼음공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드는 그런 얼음공주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녀가 익힌 내공심법.
강호의 도리상 상대의 내력에 대해 함부로 묻는 것이 실례되는 일이긴 하지만….
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저기 오엘씨, 실례….. 음?”
“…. 갑자기 왜 그러나?”
뭔가 말을 꺼내려던 이드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자 네 남자를 비롯해 얼음공주 오엘까지 의아한 듯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그런 반응에 잠시 기다려 보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 이드가 라미아와 제이나노가 아직 잠들어 있을 곳을 바라보았다.
방금 이드가 오엘에게 막 말을 건네려 할 때 마음속으로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던 것이다.
‘이드님, 이드님 지금 어디 계신거예요? 게다가 이 소란스런 소리는 뭐예요? 갑자기.’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주위가 제법 시끄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이들이 이곳에 도착하고서부터 붙어있던 이드였기에 점점 시끄러워지는 소리에 둔감해져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그 소음을 들은 라미아가 잠에서 깨버린 모양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닌 라미아이다 보니 이 소란이 신경에 거슬렸을 것이다.
이드는 자신이 달래서 재워놓은 라미아가 깨버리자 웬지 기분이 이상했지만 곧 그런 기분을 지워버리고 라미아의 말에 답했다.
‘오늘, 아, 아니다. 어제 아침에 봤던 하거스씨와 그 상단이 지금 도착했거든. 우릴 생각해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고 잡았는데… 시끄러웠던 모양이야. 네가 깨버린 걸 보면. 제이나노도 깼어?’
‘아니요. 그 사람은 아직 세상 모르고 꿈나라를 헤매고 있어요.’
‘음… 그래. 알았어. 그럼 그냥 그 자리에 누워 있어. 나도 지금 갈 테니까.’
‘네.’
라미아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한 이드는 영문모를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디처들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하… 제 일행에게서 연락이 와서요. 아무래도 여기서 나는 소리에 잠에서 깬 모양이네요. 간단한 의사 전달 마법이죠.”
“….. 자네와 같이 있던 그 아름다운 은발 숙녀분이 마법사인 모양이구만.”
그들은 이드의 말에 이해가 간다는 듯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 세 명이서 여행을 하고 있는 만큼 그만한 실력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또한 사제와 마법사, 그리고 검사로 보이는 잘 짜여진 일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예, 상당한 실력이죠. 마침 오엘씨한테 물어볼 게 있었는데, 내일로 미뤄야겠네요. 다른 분들도 장시간 걸어서 피곤하실 테고… 그럼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 쉬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드의 말에 오엘이 잠시 이드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답을 해주겠다는 표시 같았다.
이드는 그녀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다시 한 번 편히 쉬라는 말을 남기고 노숙하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 라미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드의 생각대로 장작 불 옆에 앉아 있던 라미아가 그를 맞아주었다.
이드는 라미아에게서 어느새 만들었는지 만들어 놓은 냉차를 건네받으며 상단의 이야기와 하거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어딘가 익숙한 기운을 내비치는 오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그 오엘이란 여자가 내비치는 기운이 익숙한 기운이라고요?”
“응, 후루룩…. 그런데 문제는 어디서 느껴본 기운인지 생각이 나지 않거든.
분명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이드는 냉차를 호로록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가 생각날 듯 말 듯하면서 생각나지 않는 것이 이드로 하여금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생각나지도 않는 거 가지고 고민하지 마세요.
좀 있다 날이 밝으면 그 오엘이란 여자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요.”
“음….”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주 기억을 못할 것 같으면 몰라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기억이 날 듯하니….
쉽게 생각을 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드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라미아가 이드를 불렀다.
“그만하라니까는….. 그보다 더 자지 않을 거예요?”
이드는 그런 라미아의 말에 별빛 화려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훗, 지금 자서 뭐하게. 대충 시간을 보니까 한 시간 정도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은데…. 이렇게 라미아랑 앉아 있다가 제이나노를 깨워 아침을 먹고 어느 정도 해가 달아오르면 그때 움직여야지.”
아침이 지난 시간에서야 오엘을 찾을 생각인 이드였다. 오엘 일행이 너무 늦게 도착한 덕분에 수면시간이 충분치 못 할 것을 생각한 것이었다.
아마 그때쯤이면 상단도 서서히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일 것이다.
사실 그런 이드의 생각은 정확했다. 마음이 바쁜 상인들의 성화도 성화지만, 점점 밝아오는 햇빛이 얇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 여기저기서 뒹굴고 있던 용병들을 깨운 것이었다.
개중엔 처음부터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아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상인들이 달려들어 깨웠다.
이드들이 찾아 온 것은 그들 모두에게 아침 식사가 주어질 때쯤이었다.
하거스는 이드와 라미아의 미모로 용병들의 시선을 한데 모으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맞아 주며 식사를 권했다.
원체 식욕이 좋은 용병들인 덕분에 한 번에 만들어지는 요리양이 많아 몇 사람이 더 먹는다고 해도 별 상관없을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거스의 그런 성의는 제이나노만 고맙게 받아 들였고, 이드와 라미아는 사양했다.
이미 세 사람은 아침 식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멀뚱히 남이 먹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뭐 했기 때문에 마침 준비해 놓은 커피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처음 마시는 커피가 두 사람의 식성에 맞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찔끔찔끔 마실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이 잔을 비울 때쯤 용병들 대부분이 식사를 끝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식사를 빨리 끝낸 덕에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친 디처의 팀원들이 이드에게 다가왔다.
그 중 오엘이 앞으로 이드 앞으로 다가섰다.
그들 모두 이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오엘 때문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게 묻고 싶다는 게 뭐죠?”
마치 당장이라도 따지고 들 것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원래 말투가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확실히 얼음공주에 어울리게 맑고 투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