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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83화


“내게 묻고 싶다는 게 뭐지?”

마치 당장이라도 따지고 들 것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원래 말투가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확실히 얼음공주에 어울리게 맑고 투명했다.

‘아마, 저런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말을 돌려하는 걸 싫어했었지?’

이드는 오엘의 성격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자신도 말을 돌려하는 걸 싫어하니 그게 솔직히 더 편했다.

“조금 실례되는 질문인데…. 오엘씨가 익히고 있는 내공이요….”

“음…..?”

이드의 말을 들은 오엘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내공의 내력에 대해 묻는 것이라면 자신의 내력에 대해 묻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디처의 팀원들도 이드에게 시선을 모았다.

“아, 자세히 알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 내공의 명칭을 알 수 있을까 해서요. 제가 감각이 예민한 편이라 상대의 기운을 잘 느끼고 감지할 수 있어요. 특히 각각의 내공심법에 따라 형성되는 내공의 기운은 더 잘 느낄 수 있죠. 게다가 어떤 한 가지 내공심법을 익힌 사람과 오랫동안 접촉했을 경우 그 사람의 내공의 기운이 제 몸에 느낌으로 남아있게 되죠. 그런데….”

“…. 그런데…. 내게서 익숙한 내공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드의 설명에 대충 그가 말하려는 것이 뭔지 대략 짐작한 오엘이 이드가 말을 잠시 끊는 사이 대신 말을 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나머지 디처의 팀원들과 제이나노도 그러냐는 듯 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설명이 좋았나 보지? 모두 다 한 번에 알아들었네.’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확실히 오엘씨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착각한 것도 아닐 뿐더러, 삼일 전에야 처음 얼굴을 본 사이이니… 생각할 수 있는 건 제 머릿속에 있는 누군가와 같은 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되겠죠.”

이드는 자신의 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하거스의 질문에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확실하게 내공의 기운을 읽을 수 있다면서 왜 이렇게 오엘에게 물으러 온 거지? 아는 사람과 같은 기운이라면 내공심법의 이름도 알 텐데…”

“흠… 그게… 말이죠.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나지가 않더라구요.”

조금 전과 다른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이드였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쿠르거가 조금은 황당하고 우습다는 표정으로 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뭐야. 결국 오엘과 같은 내공을 익힌 사람이 생각나지 않아서 오엘을 통해 알아보려고 한 거란 말이잖아. 하하하…. 어떻게 느낌은 기억하면서 사람은 기억하질 못하냐?”

이드는 그의 말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느낌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쿠르거가 하고 있는 말은 사실이지 않은가.

웃고 있는 쿠르거를 따라 제이나노와 다른 팀원들이 입가에 웃음을 띄우는 사이 오엘의 단아한 입매가 일그러지며 그사이로 투명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명칭을 가르쳐 주는 건 별일 아니지만, 지금 세상에서 이 내공심법을 익힌 사람은 나뿐. 아무래도 그쪽에서 뭔가 착각한 것 같군. 청령신한심법(淸玲晨瀚心法)! 내가 익힌 내공심법의 명칭이야.”

“청령… 신한심법. 청령… 청……!!!!”

오엘의 말에 가만히 심법의 이름을 되뇌던 이드는 순간 막아두었던 둑이 터지듯 떠오르는 영상에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순간 이드의 그런 모습에 웃음을 짓던 디처의 팀원들이 일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뭔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한 이드의 모습에 계속 웃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오엘의 목소리가 다시 디처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그녀 역시 이드와는 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어떻게…. 오랫동안 우리 집에 내려오던 걸 내가 익힌 거라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로 복잡한 이드에게 전혀 전달되지 못했다.

‘청령신한심법. 그래, 확실히 청령신한심법의 기운이다. 어째서 생각해 내지 못했지…. 옥빙누나…. 으, 바보. 저 기운을 느끼고도 옥빙누나를 생각해 내지 못하다니…’

순간 자신이 한심해지는 이드였다.

어떻게 자신의 친인들을 잊을 수가 있는지.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드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시간대와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대의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생각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랄까?

이드 스스로는 자신이 있던 강호와 몇 백 년의 시간 차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아직 그 사실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청령신한심법은 강호에서 남옥빙(南玉氷)만이 익히고 있는 그녀만의 독문무공으로 그녀를 누님으로 둔 덕분에 초식 몇 가지를 배운 이드를 제외하면 그녀의 무공을 사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드가 오엘의 내공을 느끼고도 옥빙을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생각과 달리 몸은 청령신한심법은 옥빙만의 것이다, 라고 알고 있기에 내공의 기운을 느끼고도 옥빙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중원 땅도 아닌 이 먼 영국 땅에서 그녀의 심법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어쨌든 남옥빙의 무공을 오엘이 익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오엘을 바라보는 이드의 시선이 달라졌다.

조금 전과는 다른 친근하고 부드러운 눈길.

그리고 궁금한 점 또한 생겼다.

어떻게 중원에 있어야 할 청령신한심법이 이곳에 있는가 하는 것.

그 생각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겼던 이드의 눈동자가 빛을 발하며 오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청령신한공이 이곳에 있죠. 어떻게 오엘이 그 심법을 익히고 있는 거예요!”

“아니, 내가 먼저야. 어떻게 네가 청령신한심법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이건 오래전부터 우리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거였고, 집안에서도 아는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었어.”

“… 오엘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왔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그럼, 그 오래전엔 그 무공이 어떻게 오엘씨 집안에 이어진 거죠?”

오엘의 질문은 듣지도 않고 그 뒤의 말만 가려들은 이드였다.

그런 이드의 말에 발끈한 오엘이 얼굴까지 발그레 붉혀가며 이드에게 소리쳤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얼음공주란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내 질문이 먼저야! 네가 먼저 대답해!”

“자, 자… 두 분 다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요. 아직 시간도 많은데…”

두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느낌에 라미아가 나서 두 사람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느새 두 사람의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용병들의 시선이 디처들과 이드들에게 모여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하자 라미아가 나서 오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이드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그 생각을 전해 받은 라미아였던 것이다.

“오엘씨도 아실 거예요. 청령신한공이 원래 중원의 것이란 거.

이드님이 그 무공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당연해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진 않지만 이드님의 친인 중 한 분이 그 무공을 익히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라미아의 말에 오엘이 뭔가 말하려는 듯 하자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왜 그러는지.

오엘씨도 아시겠지만 청령신한공은 일인단맥(一人單脈)의 무공이죠.

사실 이드님이 흥분해서 물으시는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

“그럼 이젠 오엘씨가 말씀해 주시겠어요? 중원의 청령신한공이 어떻게 영국의 오엘씨 가문에 남아 있는 건지 말이에요.”

라미아의 침착한 설명과 질문에 뭔가 더 물으려던 오엘이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이드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청령신한淸玲晨瀚……… 새벽하늘에 가득한 맑은 옥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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