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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93화


드윈의 명령에 따라 일 백에 이르는 가디언들과 용병이 록슨시의 입구를 향해 우르르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용병들 사이로는 디처들도 보였고 이드와 라미아도 보였다. 그리고 제이나노는 이번에도 이드의 옆구리에 달랑 들려 가고 있었다. 그의 걸음으로서는 도저히 용병들과 속도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련 정도의 차이인지 아니면, 질의 차이인지.

달리는 사람들의 선두는 거의가 가디언들이었다. 몇몇 실력이 뛰어나 보이는 용병들이 그들 사이로 보이긴 했지만 정말 몇몇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서 그대로 입구 부분을 나서던 가디언들과 용병들은 지축을 흔들어 대며 열을 지어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흠칫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몬스터라고는 거의가 오크와 크롤이고, 간간이 오우거까지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더구나 그 숫자만도 이 백이 넘어가는 몬스터들의 모습은 드윈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그 느껴지는 느낌 자체가 틀린 듯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넋 놓고 바라볼 수는 없는 일. 용병들과 가디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드윈이 말한 대로 열을 맞추어 서서 대열을 정비했다.

개중엔 벌써부터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고 흥분된 숨을 몰아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약간 뒤늦게 입구에 도착한 드윈이나 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몬스터를 끌고 온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대형 몬스터 중엔 거의 적수가 없다는 오우거까지 끌고 올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다.

아니, 혹 나쁜 예감 쪽으론 도가 튼 빈이라면 어쩌면 예감을 했을지도 몰랐다.

좌우간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드윈은 곧 정신을 차리고 가디언과 용병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더 이상 록슨시 가까이로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미사일과 총 등의 최신 전투장비를 갖춘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구식의 전투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슴 뛰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용병들과 가디언의 귓가를 맴도는 몬스터들의 괴성이 점점 더 실감나게 커져가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

“크아아아앙!!”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의 괴성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용병들과 가디언 측에서는 각자의 무기를 뽑아드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람의 가슴을 찔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가디언들과 용병들의 가슴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오크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만만한 몬스터가 없었고, 또한 숫자도 생각 이상으로 많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다가서던 양측은 약 백여 미터를 남겨두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순간 긴장감으로 두근거리는 용병들과 가디언들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한 기세로 펄떡이다가 스르륵 원래대로의 움직임으로 돌아왔다.

긴장감이 절정을 넘어 다시 평상시의 감각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긴장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

이드와 라미아는 주위의 상황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몬스터들을 살피고 있었다. 얼마 전 머릿속에 떠올랐던 종속의 인장 때문이었다.

다행히 몬스터들의 이마엔 종속의 인장의 문양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상황이 더 나쁠지도 모를 일이다. 몬스터가 강제로 제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였다.

당당한 걸음을 앞으로 나선 드윈이 몬스터… 군단을 향해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언제 든 것인지 모를 커다란 랜스가 들려 있었다.

헌데 그것은 특이하게도 한쪽만 뾰족한 것이 아니라 반대쪽 역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오십 센티 정도의 공간을 비워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만들어 놓은 그런 형식이었다.

“나는 이번 일의 총 지휘를 맡고 있는 드윈 페르가우 백작이다. 스스로 제로라 밝힌 이 일의 장본인은 앞으로 나서라.”

일순 그의 큰 목소리에 자극받았는지 몬스터들이 소란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놈들의 모습에 바라보던 사람들은 속이 답답해짐을 느껴야 했다.

저렇게 잘 훈련된 몬스터라면, 보통의 몬스터 이상의 힘을 낼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몬스터를 진정시키며 그 사이로 걸어나오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잘 손질된 두 개의 일본도를 허리에 차고 있는 동양인 남자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회색의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었다.

“그대들이 제로인가? 그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똑바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인가?”

그 말에 두 마법사 중 좀 더 젊어 보이는 남자가 드윈의 말에 대답했다.

상당히 떨어져 있는 대도 그 목소리가 전혀 줄지 않는 것이 아마도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제로는 아니요. 다만 제로의 일부분일 뿐.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오.”

“최선이라니. 그대들, 아니 그대들에게 일을 시킨 사람은 그 일이 우리 대영제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어리석은 행위란 것을 알기는 하는 것인가.”

드윈은 상대의 말에 호기롭게 소리치다 스스로 흥분했는지 대영제국이란 말까지 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드윈의 말에 콧방귀만 낄 뿐이었다.

“흥, 우습군. 고작 영국이란 작은 나라의 이름으로 제로를 위협하려 하다니…. 도대체 누가 어리석은지 모르겠소.”

“뭐, 뭣이? 작은…. 나라? 이익…. 그러는 네놈들은 무엇이 그리 당당하더냐. 너희 말대로 작은 나라의 땅에 와서 이 무슨 행패를 부리며 그리 당당한가 말이다!!”

상대의 냉담한 태도에 반해 드윈이 상당히 흥분하는 듯하자 그 뒤에 서 있던 빈이 그를 진정시키고 나섰다.

그러는 동안 회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행패라…. 상당히 듣기 거북한 소리군. 페르가우 백작이라 하셨소? 백작, 우리는 당신네 나라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 아니오. 단지 우리는 한 나라에 매어 있는 작은 도시와 그 도시 속의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할 뿐이오. 원래 주인 없는 땅에 선을 긋고 자기 것이라 우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잔인한 짓을 서슴치 않는 그 나라라는 자물쇠를 풀고 자유를 주고자 할 뿐이란 말이오. 백작!”

“이익… 네놈이 말이면 단 줄 아느냐. 그러는 네 놈들이야말로 네놈들 생각을 위해 몬스터를 끌고 오지 않았느냐. 이 더러운 놈들아!”

“…. 말이 과하오. 백작. 그리고 우리가 이들을 몰고 온 것은 이곳의 무고한 사람들을 해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우리가 상대하려는 것은, 바로 그대들. 나라라는 이름의 줄에 묶여 열심히 짖어대는 개를 잡기 위해서일 뿐이오.”

“이노옴!!!”

순간 너무나 모욕적인 마법사의 말에 드윈은 큰소리로 소리치며 달려나가려 했다.

그런 드윈의 손에 들린 기형의 랜스에는 이미 은은한 금빛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던 빈이 급히 그를 잡아 세웠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듯한 드윈을 한마디 말로 진정시켜 버렸다.

“드윈 경. 경은 이곳의 총 지휘를 맡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우선 뒤로 물러나셔서 진정하시죠.”

“하지만…. 으음……”

그렇게 드윈이 빈의 말에 뒤로 물러서자 빈이 마법사와 마주 서게 되었다.

“나는 이번 일의 부지휘관 역을 맡은 빈 에플렉이라고 하오. 귀하와 뒤의 두 분의 성함을 알 수 있겠소?”

“… 드미렐 코르티넨이오. 그리고 뒤에 있는 분은 미리암 코르티넨. 내 형님이시오. 그리고 저기 있는 검사는 제로의 동료이자 우리의 보호를 위해 같이 온 사람으로 미카라고 하지요.”

드미렐의 말에 빈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그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알려주시겠소?”

“…. 이미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억력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군요.”

“하지만 제로란 이름은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오. 또한 이번 일로 당신들에게 득이 되는 일도 없을 텐데 왜 이러는 거요.”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오. 단지 자유를 바랄 뿐이지. 그리고 우리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은 당연하오. 우리 이름은 지금 이곳에서부터 처음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럼 말싸움은 이만하도록 하지요. 뒤쪽에 있는 녀석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면, 우리들도 다루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오.”

더 이상 말하기 싫은 듯 등을 돌리는 그의 행동에 빈은 물론 그 뒤에 버티고 선 가디언들과 용병들이 일순 긴장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귓가로 드미렐의 마지막 말이 흘러들어 왔다.

“아, 그리고 도저히 이 녀석들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은 저 뒤쪽의 록슨시로 도망가시오.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 그대들을 쫓지 않겠소. 단, 그렇게 도망간 사람들은 다시는 무기를 들어서는 아니 되오. 그것은 하나의 약속이오.

그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리다.”

그 다음 슬쩍 들려진 그의 손이 용병들과 가디언들을 가리키는 순간 몬스터들은 참고 참았던 본능을 폭발시키듯 융폭한 기세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몬스터들의 모습 어디에도 방금 전까지 열을 맞추어 서 있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용케 지금까지 열을 지어 버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번에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가디언들과 용병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처음 생각하기엔 정면으로 부딪힐 거라 생각했었지만, 지금 달려들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완전히 가시는 것이었다.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용병 사이에선 일거리를 잘 못 잡았다는 듯한 후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때 드윈의 커다란 목소리가 다시금 용병들과 가디언 사이에 울려 퍼졌다. 정말 저 시끄러운 몬스터들의 괴성을 뚫고 들릴 정도니, 정말 엄청나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는 성량이었다.

“모두 원형으로 모여라. 차륜진(車輪陣)을 펼친다. 원은 두 개로 하고, 중앙엔 마법사와 정령사들의 직접적인 전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둔다. 빨리 움직여라.”

드윈의 말에 따라 순식간에 그와 빈을 중심으로 용병들과 가디언들이 모여들어 드윈의 말에 따라 두 개의 원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몇 명이 남았지만 그들은 자연적으로 뒤로 빠져 혹시 모를 결원을 보충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금 빈을 중심으로 마법사와 정령사만으로 원 안의 원을 만들어 마법으로 밖에 있는 몬스터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마치 서로 맞춰보기라도 한 듯 한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디언이나 용병들이나 몬스터를 상대로 험한 전투를 치르며 자연적으로 습득한 움직임이기 때문이었다.

이드도 디처들과 함께 있다가 그들과 함께 두 번째 원을 형성하고 섰다. 그런 이드의 옆으로는 오엘이 소호검을 든 채 은은히 긴장하고 서 있었다. 그녀로서는 이런 대형 전투는 처음일 테니 긴장하는 것도 어쩌면 단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드는 그런 그녀가 걱정되어 뒤따라 온 것이었다. 어차피 라미아와 제이나노는 뒤쪽 원 안에 있어 자신은 같이 있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다.

“너무 긴장하지마. 우선 앞쪽의 원을 넘어오는 적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야.”

“네, 네! 사숙.”

“크워어어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트롤 한 마리가 이드와 오엘의 앞에 서 있는 가디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내 휘둘러지는 가디언이 철제 봉에 트롤은 달려오던 모습 그대로 봉에 찍혀버리고 말았다. 그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괴성과 기합성이 섞여 들려왔다. 차륜진을 짠 군데군데에선 벌써 약한 용병들이 쓰러져 그 자리를 뒤에 있던 사람들이 메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확실히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대형의 몬스터들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이쪽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군데군데 가디언들과 실력 좋은 용병들이 다가오는 족족 몬스터를 베어내고 있었고 등 뒤에서 날아오는 마법들은 아직 다가오지도 못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밀려. 놈들 수가 너무 많아.”

“하압!! 하거스 씨?”

이드는 앞쪽 가디언이 트롤을 상대하는 틈을 타 뛰쳐 들어오려는 오크의 머리를 검기로 베어버리고는 바로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원래 한 사람 건너 옆에 있었던 하거스가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옆에 있던 사람은 바깥 원에 나가 있었다. 바깥 원을 맞고 있던 사람이 쓰러진 모양이었다.

이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하거스는 다시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오크를 그 큰 검으로 일격에 반으로 나눠 버리며 좋지 못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같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본 이드는 과연 이 차륜진이 오래가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디언들과 그에 맞먹는 실력을 가진 용병들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트롤이나 오우거를 상대하며 한 명씩 부상으로 뒤쪽으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비록 그들이 뒤에서 마법이나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고 다시 나서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의 수가 많은 때문이었다.

뒤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바쁘게 대책을 생각하는 듯했으나 그들이라고 무슨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차륜진이란 것은 많은 수의 사람이 싸우기 편한 전법임과 동시에 스스로 퇴로를 버리는 전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윈으로서는 이 전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통 때처럼 일직선으로 상대해 나갔다면 상대 몬스터들의 기세와 힘에 많은 수의 용병들이 바로 뒤로 돌아 도망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돈을 받고 움직이는 용병들이긴 하지만 그들도 목숨이 소중한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희생자만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 이드 앞에서 훌륭히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던 가디언이 반대측에서 날아드는 오우거의 전투망치에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버렸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창을 들어 막은 듯 하긴 했지만 오우거의 힘이 보통이 아닌 때문에 그대로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그 자리를 향해 방금 한 마리의 오크를 제어 넘긴 오엘이 뛰쳐나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이드는 급히 그녀의 앞으로 막아서며 그 비어버린 자리를 자신이 대신 했다.

“네 실력으론 이 자리에서 얼마 못 버텨. 다른데 갈 생각하지 말고 내 뒤에 바싹 붙어 있어.”

이드의 말과 함께 방금 가디언을 날려버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우거의 목을 분뢰의 검식으로 순식간에 베어 버렸다. 원래 보통의 검으론 오우거의 뼈, 특히 목뼈를 자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일라이져에 흐르고 있는 은은한 붉은 빛. 섬뜩한 기운을 지닌 검강은 그 일을 너무도 쉽게 만들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오엘은 감히 자신이 흉내낼 수 없는 그 실력에 가만히 이드의 뒤를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부터 그녀의 소호검은 그녀와 함께 쉬어야 했다. 이드의 검을 피해 오엘에게까지 다가오는 몬스터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 옆에 서 있는 한 명의 가디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앞에는 앞서 쓰러진 사람을 대신해 하거스가 나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크를 일검에 두 쪽 내는 그의 검 실력과 검에 실린 황토 빛 검기를 생각한다면, 오엘과 가디언 앞은 앞으로도 뚫리는 일은 없을 듯 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곳이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인 듯했다. 이드도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라미아에게 마법을 쓰게 하던가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검을 휘두르던 한 순간이었다. 등 뒤로부터 커다란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거대하고 복잡하며 누군가의 의지가 끼어 있는 기운. 그것은….

“마법?”

“인센디어리 클라우드!!!”

이드의 짐작이 맞았는지 그에 답해주듯 이드의 등 뒤로부터 빈의 커다란 시동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마치 바람이 밀려오 듯 뒤에서 흘러나온 검은 구름과 같은 기체가 몬스터들 사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퍼져나가던 검은 구름은 당장 가디언들과 용병들이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가 아닌 그보다 삼 사 미터 뒤에 있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멈추었다. 검은 구름이 멈춘 순간, 등 뒤의 드윈과 저 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마법사에게서 동시에 명령이 떨어졌다.

“폭발한다. 모두 뒤로 물러나서 엎드려!!”

“젠장. 이렇게 되면…. 모두 앞으로 나가라!”

두 사람의 명령을 신호로 또 하나의 마법이 시전 되었다. 그것 역시 익숙한 목소리였다. 맑고 고운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 라미아였다.

“파이어 볼 쎄퍼레이션!”

라미아의 시동어와 함께 무언가 화끈한 기운이 일어났다. 그녀의 마법에 따라 그녀의 손끝에서 형성된 커다란 불덩이가 한 순간 터지듯이 분열되어 검은 구름 사이사이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드들은 그 모습을 보며 그대로 몸을 던졌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어떤 마법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드윈의 말에서 폭발한다. 라는 단어는 확실히 들었던 때문이었다. 그렇게 몸을 던진 사람들이 하나둘 땅에 떨어져 내리는 것과 함께 엄청난 폭음과 진동, 그리고 폭발로 인해 형성된 공기의 압력에 사람들은 귀가 멍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쿠콰콰콰쾅…. 콰과과광… 쿠우우우………..

이드는 등 뒤로 전해지는 열기에 옆에 있는 오엘의 팔을 잡고서 빠르게 중앙으로 다가갔다.

“후아… 이거 정말 인센디어리 클라우드의 위력이 맞나? 거의 보통 때의 두 세 배는 될 것 같은데….”

“콜록… 사숙이 아시는 마법인가요?”

이드에게 오른팔이 잡혀있던 오엘은 가슴이 답답한 듯 기침을 해대며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엔 여기저기 무어가 따고 있는 흔적과 함께 심하게 헤쳐져 있는 땅과 여기저기 널린 몬스터의 사체 조각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몸을 날리던 자신들에게 덤벼들던 몬스터들이 땅에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엔 정말 엄청난 마법이란 생각과, 이 마법을 자신이 겪게 된다면 절대 대항하지 않고 피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응, 인센디어리 클라우드란 마법인데… 인화성 높은 마법구름을 일으켜 의도한 지점에서 불꽃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이야. 간단하게 아까 우리 다리 사이로 스치고 지나간 그 검은색 구름들이 전부 폭발력 강한 폭탄이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이번의 마법은 평소 위력의 배 이상이야. 마법이 사용된 장소도 넓은데… 어떻게 한 거지?”

이드의 그런 의문은 그가 고개를 돌림과 함께 저절로 풀렸다. 이드의 시선이 간 곳에는 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원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법진의 중앙엔 빈이 그 외곽의 둥근 마법진 들엔 라미아와 두 명의 마법사를 제외한 모든 마법사들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그 마법진을 이용해 모두의 마나를 모은 듯 했다. 확실히 사용되어지는 마나양이 크면 클수록 위력은 커지니까. 마침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듯 주위를 둘러보던 빈이 이드를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아는 채를 해 보였다. 아마 그 주위에 모여든 마법사 중에서 라미아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폭발은 끝났다. 모두 정신차리고 일어나. 아직 멀쩡한 몬스터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서. 조금만 더 하면 우리들이 충분히 승리 할 수 있다.”

폭발의 위력이 가장 적게 미치는 곳에 서있었던 만큼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드윈이 주위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그의 큰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 사람들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군데군데 그을려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부상자를 뒤로 돌리는 사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몬스터들이 하나하나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몬스터가 방금 전의 폭발로 날아간 덕분에 이제 남아 싸울 수 있는 몬스터는 팔 십 마리 정도. 마법 한방에 백 마리에 이르는 몬스터들이 몰살을 당한 것이다. 몬스터들도 그런 마법의 위력을 실감하는지 아니면 뒤에서 눈썹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는 드미렐의 명령 때문인지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런 그의 뒤로 그의 형이라 소개한 미리암이란 중년의 마법사가 미카란 검사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방금 전 폭발의 영향인 듯도 했지만 특별히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양측 간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과연 대단한 마법실력이요. 잛은 시간에 마법진을 형성해서 마법의 위력을 높이다니…. 하지만 아직 몬스터는 팔십 마리나 남아 있소. 과연 다시 한번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두고 보지. 공격해라!”

처음과는 달리 상당히 목소리가 날카로워진 드미렐의 명령에 가만히 서 있던 몬스터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들었다. 거기다 처음 공격해 들어올 때 이상으로 몬스터들이 흉폭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 이번엔 뒤로 빠져 있던 드윈이 직접 랜스를 들고 나섰다. 이미 진형이 무너져 몬스터들이 한쪽으로만 몰려 있었기 때문에 전방의 몬스터들만 상대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가디언들과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용병들만 나서라. 나머지 용병들은 부상자들을 지키며 혹시 모를 몬스터들을 막아라. 가자!!”

그 뒤를 따라 여기저기서 일어나 있던 가디언들과 용병들이 검을 들고 뒤따랐다. 하지만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관계로 드윈의 뒤를 따르는 인원은 삼십 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드 역시 디처를 따라 그 삼십 여명 중에 섞여 뛰어나가며 옆에 있는 오엘을 바라보며 당부를 잊지 않았다. 모두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실력자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몬스터는 아직 팔십 마리나 남아 있었다. 특히 트롤과 오우거의 숫자는 그 중에서 눈에 뛰게 많아 보였다.

“이번에도 내 옆에서 멀리 떨어지지마. 아직은 녀석들의 숫자가 많아 따로 떨어지면 위험해.”

자신에 대한 염려가 담긴 이드의 말에 오엘은 두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는 그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짓고는 일라이져에 검붉은 검강을 드리웠다. 그리고 눈앞에 빠르게 다가오는 두 마리의 트롤을 향해 검을 내리 그었다. 그와 동시에 일라이져에 맺힌 검강으로부터 붉은 강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간다. 수라섬광단(壽羅閃光斷)!!”

서거거걱… 퍼터터턱…

오랜만의 실력 발휘였다. 수라섬광단의 검식에 따라 일라이져에서 뿜어진 검기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가르듯 쉽게 눈앞에 있는 두 마리의 트롤은 물론 그 뒤에 서 있는 세 마리의 오크까지 한꺼번에 베어버렸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연이어 펼쳐지는 수라삼검(壽羅三劍)의 무위 앞에 이드와 오엘을 목표로 다가서던 몬스터들은 손 한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해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뒤를 따르느라 검 한 번 아직 뽑아보지 못한 오엘은 그저 눈만 크게 뜬 채 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신한검령의 한 초식을 보여줄 때 사용한 검강으로 이드의 실력이 보통 이상이란 걸 알긴 했지만 정말 이 정도의 위력적인 검법을 펼쳐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광경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라 주위의 두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비록 그 중 이드의 공격이 제일 눈에 뛰고 화려하지만 드윈의 위력적인 랜스솜씨와 하거스의 독창적인 검술은 그들 주위의 몬스터를 어렵지 않게 베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 곳의 선전에 의해 몬스터의 수는 빠르게 줄어갔고 다행히 두 세 명씩 모여 몬스터를 상대하던 용병들과 가디언들은 특별한 부상 없이 여유 있게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간간이 엄청난 공격을 해대는 세 사람의 무공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는 달리 저쪽에서 그렇게 당당히 자기 할 말을 해대던 드미렐은 세 사람에 의해 몬스터가 뭉턱이로 쓰러져 나갈 때마다 눈에 뛰게 몸을 휘청이고 있었다. 덕분에 뒤쪽에서 미리암을 부축하던 미카가 급히 달려와 부축하려 할 정도였다.

그런 미카의 도움을 거절한 드미렐은 곧 슬며시 눈을 감으며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문이 완성되자 그의 몸을 회색 빛의 마나가 순간적으로 휘감고 돌았다. 그 후 한층 편해진 얼굴로 눈을 뜬 그는 가만히 서서 뒤에 있는 미카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씁슬한 표정으로 힘없이 쓰러지고 있는 몬스터들과 그들을 쓰러트리고 있는 세 명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제법 순서를 갖추어 사람들을 상대하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다시금 본능에 모든 것을 맞긴 채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무언가 드미렐과 그들 사이에 마법적인 교감이 있는 듯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후아!! 죽어랏!!!”

“흐압. 빅 소드 13번 검세.”

“마지막…. 수라참마인(壽羅斬魔刃)!”

세 개의 기합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검은 휘둘러지지 않았다. 또한 두 다리로 서 있는 몬스터도 하나도 없었다.

어느새 서로 가까운 위치까지 다가온 세 사람은 세로를 한 번씩 돌아보고는 드미렐과 그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드미렐의 표정은 어느새 처음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담담하게 변해 있었다.

그 모습에 드윈이 금방이라도 랜스를 집어던질 듯한 기세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전투 전에 있었던 드미렐과의 대화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 상당히 분했었던 모양이었다.

“이 놈 어떠냐. 이것이 네가 우습게 본 한 나라의 힘이다. 어디 얼마든지 몬스터를 끌고 와봐라. 우리들이 네 놈들에게 항복을 하는가.”

드윈의 큰 소리에도 드미렐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드윈의 말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예상치 못한 실력자가 두 명이나 있었소.”

그 말과 함께 드미렐은 신나게 몬스터를 도륙한 세 인물 중 이드와 하거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감정이 실린 시선은 아니었다. 그냥 얼굴을 익혀 두겠다는 식의 그런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우리 제로를 판단하면 상당히 곤란하오. 아까도 말했듯 이번 것은 그저 저희의 이름을 알리는 수준. 그래서 몬스터 만을 이용해 공격했지, 실제로 우리 제로의 전력은 아니오. 그리고… 저기 예상 외의 실력자들만 아니었고, 여기 미카 씨가 조금만 거들었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번 일에 성공하고 록슨시를 우리 영역에 두었을 것이오. 아마… 이 부분에 한해서는 드윈백작도 부인하시진 못 하리라 생각하오.”

“으음….”

과연 그랬는지 드윈은 드미렐의 말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심은 이드와 하거스가 없었더라도 모든 저력을 다하면 패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로써 비록 우리의 첫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이름을 알리는데는 충분했다고 생각되오. 그럼, 백작께서는 돌아가 세계 각국에 우리의 이름을 알려주시오. 오늘부터 우리 제로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말이오. 그리고…. 또 뵙겠소. 백작, 그리고 빈 씨. 아마 영국에 일이 있다면 우리들이 올 것이오. 그럼 그때 다시 그 솜씨를 보여주기 바라오.”

“누가 보내준다고 하던가?”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듯한 드미렐의 말에 드윈이 발끈하여 몬스터의 피로 얼룩진 랜스를 치켜들었다. 그의 모습에 드미렐은 처음으로 입가에 작은 미소를 드리우며 회색의 로브 속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종이 조각을 꺼내 찢었다. 찢어진 종이로부터 새어나온 빛은 곧 드미렐과 미리암, 그리고 미카 주위로 순식간에 빛의 마법진을 형성했다.

“훗, 다음에도 백작의 그 혈기가 왕성하길 바라오. 약속된 길의 문을 열어라. 텔레포트!”

마법진의 완성과 함께 외쳐진 드미렐의 시동어에 세 사람은 순식간에 빛에 휩싸였다. 그가 찢은 종이는 스크롤이었던 것이다. 드윈은 세 사람이 빛에 휩싸이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랜스를 힘껏 내던졌다.

하지만….

콰앙…. 부르르….

이미 세 사람이 사라진 허공만 찌른 랜스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그 길고 굵은 몸체를 땅에 반 이상 들이박음으로써 목표를 놓친 분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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