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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60화


1495화

“들으셨지요?” 

스폴이 마차 옆에 다가섰다.

오크의 등장과 함께 마차는 이미 이동을 멈춘 상태.

이드가 문을 열고 막 마차에서 내렸다.

“여름 기사단이라고요?”

물음으로 답하는 그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중이었다. 처음 듣는 특이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기사단이라니. 그럼 봄, 가을, 겨울도 있나?

물론, 있었다.

“네, 사계 중 여름입니다. 라올론에선 상당히 유명한 기사단입니다.”

“잘 아나 봐요?”

뒤이어 마차에서 내리는 라미아에게 스폴이 별것 아니라며 답했다.

“한때 관심이 좀 있었거든요. 라일론이 오색 기사단을 본떠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죠.”

“그럼 라이벌인거네요?”

“에이, 어림도 없죠. 사계 기사단 따위가 감히 어딜 비벼요.”

스폴은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콧방귀를 날렸다.

그러나 그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높아만 가는 오색 기사단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분명했던 것. 뭐, 문제라면 의도만큼 능숙하게 잘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 한다고 다 될 것 같으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지 않나.

만약 저게 될 것 같았으면, 세상의 모든 기사단이 오색 기사단 급이 되었을 것이다. 일단 배경이 다르고, 익힌 무공이 달랐으며, 무엇보다 가르치는 스승의 존재가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스승인 검후의 존재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목표가 높아서 그런지 제법 이름은 날리는 것 같더라고요.”

대놓고 여름 기사단을 격하로 취급하는 스폴. 하지만 그녀의 이런 평가에는 분명 근거가 있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색 기사단을 본뜬 기사단이 어째서 사계 기사단인 줄 아세요?”

“그러네. 왜 다섯이 아니라, 넷인 거죠?”

“바로 저희들 은색 기사단 때문입니다. 다른 기사단은 어떻게 흉내라도 냈지만, 저희 오색 기사단의 핵! 최강의 은색 기사단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거죠.”

“한마디로 검후 님 때문이란 말이죠?”

은색 기사단이 오색 기사단 안에서 가장 차별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검후가 아니던가.

그에 미소로 답하는 스폴에 이드는 편안하게 말했다.

“그럼, 저 오크들도 금방 처리가 되겠군요.”

“아무리 오색 기사단에 미치지는 못해도, 그 정도 실력은 충분하고도 넘치죠.”

그야말로 여름 기사단의 실력을 인정하는 건지, 깎아내리는 건지 애매모호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열두 명의 기사들이 오크의 선두와 충돌했다.

투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녹슨 글레이브가 부러져 날아가고, 몇몇 오크는 터진 머리에서 뇌수를 흘리며 나자빠졌다.

그에 반해 기사들은 한 걸음도 뒤로 밀리지 않고 당당히 제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일차 충돌은 기사들의 승리.

하지만 아직 상대해야 할 오크가 이백 마리가 넘는다. 쓰러진 오크들이 순식간에 짓밟히고, 그 자리를 새로운 오크들이 채우며 다시 달려들었다. 비록 마나를 두르진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인간의 근력을 넘어선 강력한 공격이었다.

콰장창!

그야말로 당랑거철이란 말이 잘 어울릴 것 같은 현장.

길 소영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적들을 무사히 막고 있다지만, 과연 저 상태로 여름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당장 한 손이라도 보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호위단에 있어 가장 강력한 전력이랄 수 있는 스폴은·

“・・・해서, 기사단에 속한 기사의 숫자에서 여름 기사단이 가장 많죠.”

실로 한가롭게 자신이 알고 있는 여름 기사단에 대해 이야기 중이다. 저게 사신단의 호위 단장으로서 올바른 태도란 말인가. 더구나 거기에 더해 기가 막힌 것이 그녀가 말하는 여름 기사단은 뭔가 사실과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 허위 정보투성이었다. 아무래도 가짜 소문에 속은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이대로 기사들이 지치면 저지선이 무너진다.’

길 소영주의 고개가 전장과 스폴을 빠르게 오갔다.

“췩! 죽여라!”

“목을 자르고, 무기를 빼앗아라! 취익!”

“밀린다! 도와줘!”

“곧 지원이 온다, 무조건 버텨!”

그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벌써 기사들의 목소리가 오크에 묻히며, 주춤주춤 밀리는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후열 병사들이 잔뜩 긴장해서는 전방을 향해 창을 바짝 세웠다. 저러다 오크보다 아군 기사들의 등을 먼저 찌르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속이 탄 길 소영주가 더 참지 못하고, 한걸음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드 부부와 스폴 앞으로 다가갔다.

“적이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는 기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괜찮을 겁니다.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위험합니다. 지금 바로 손을 보태야 합니다. 특히 오크 무리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 대형 오크가 움직이면 기사들 중에 사상자가 발생할 겁니다.”

길 소영주는 오크 무리의 후방을 보며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야성이 폭발한 다른 오크들과 다르게 후방에 서서 전장을 지켜보고 있는 세 마리의 오크. 이 세 놈은 다른 오크들보다 그 덩치가 월등했는데. 그 중 한 마리의 덩치는 특히 거대해서 다른 오크들이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단순히 덩치만 큰 것도 아니었다. 몸의 비율이며, 멀리서 봐도 선명한 근육의 형태는 마치 한 마리 야수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몸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힘이 뿜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저 근력이 뿜어내는 힘이라면 내공을 다루는 어지간한 기사라도 힘에서 밀릴 것만 같았다. 분명히 말해 지금 오크와 싸우고 있는 기사들이 상대할 수 없는 그런 강자가 분명했다.

그런 놈이 전장에 뛰어들 순간을 노리고 있다.

이건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

“길 소영주의 걱정은 이해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곧 지원이 올 겁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없습니다. 저와 호위 단장님이 나서야 합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그럼 저 만이라도 기사들을 지원하겠습니다.”

“길 소영주가 나서는 거야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허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 소영주는 스폴의 말을 더 듣지 않고 검을 뽑아 손발이 어지러워진 기사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는 눈치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으로 단숨에 오크 두 마리의 가슴을 쪼갰다.

그래 봐야 아직도 이백 마리가 넘게 남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말을 탄 일단의 무리가 반대쪽 길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전장을 확인하고는 오크를 목표로 잡았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오크를 찾았다. 여름 기사단은 아군을 공격 중인 오크를 향해 돌진하라!”

“돌격!”

“우와아아악!”

처음엔 수명이었던 기사들의 수는 금방 수십에서, 이백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스폴은 이런 여름 기사단의 등장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원이 곧 도착한다니까. 그걸 못 참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이드는 자신을 향한 스폴의 질문을 웃어넘겼다. 누가 누구보고 성격이 급하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원이 언제 도착할지 몰라 애를 태우던 건 스폴이 먼저였다.

이드는 이런 그녀를 위해 기감에 걸리는 여름 기사단과의 거리를 말해줬고, 그걸 들은 스폴은 그제야 조급함을 버리고 느긋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젠 병력이 비슷해졌네요.”

“아니죠. 아군 측의 압승이죠. 아무리 그레이트 오크라지만 일대일로 붙어서 밀릴 기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에 지금처럼 말을 타고 그대로 밀어붙이면, 아무리 힘 좋은 그레이트 오크라도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이 오크 놈들도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기사들에 당황한 모습도 잠깐.

그대로 당할 수 없다는 듯 후방에 서 있던 가장 덩치가 큰 오크, 족장 오크가 나섰다.

“커허허헝!!”

놈은 팔을 모아 온몸의 힘을 폭발시키며, 거칠고 난폭한 워크라이를 질렀다. 마나가 담긴 워크라이는 마치 폭풍 같았다.

빠르게 접근하는 여름 기사단을 향해 뿜어진 워크라이에 흙먼지가 치솟아 올랐고, 화들짝 놀란 말들이 달리던 걸 멈추거나 급히 방향을 트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기사들 중 말에서 떨어지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나, 일차 돌격이 그대로 주춤해 버린 상황.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족장의 워크라이를 들은 오크들은 더욱 흥분해서 날뛰며 단숨에 기사들의 저지선을 밀어붙였으며, 그중 절반이 방향을 틀어 새롭게 나타난 여름 기사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하늘을 날고 있던 와이번이 사나운 울음소리를 토하며 여름 기사단을 위협했다.

히히힝!

그에 놀란 말들이 난동을 부리며, 여름 기사단의 마상 돌격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한 번의 워크라이가 실로 엄청난 효과를 낸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장의 흐름을 다시 바꿀 정도의 효과를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여름 기사단은 말을 버리고 전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 그러자 족장 옆에 있던 두 마리 대형 오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의 목표는 숫자가 많은 여름 기사단이었다.

놈들은 늦게 움직였지만, 다른 오크를 순식간에 앞지르며 선두에 선 여름 기사단을 향해 거목을 통째로 뽑아온 것 같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투콰쾅!!

“크아악!”

몽둥이를 막아낸 기사가 검과 함께 수십 미터를 튕겨 날아갔다. 이런 모습에 기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조심해! 놈은 족장급의 그레이트 오크다!”

일부 기사들은 재빨리 몬스터 토벌 진형을 짜며 대형 오크를 둘러쌌다. 언뜻 봐도 이런 경험이 자주 있는 것 같은 움직임.

하지만 여름 기사단도 족장급 오크가 세 마리나 있는 오크 부족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와이번 라이더를 보유한 오크 부족을 상대하는 것은 말이다.

“커허허헝!”

또다시 터진 워크라이가 기사들의 고막을 때렸고, 동시에 와이번의 난폭한 발톱이 기사들의 머리를 노려 애써 만든 진형을 금방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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