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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62화


1497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이었다.

눈앞이 아찔하고,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충격이 모두의 머리를 짓눌렀다. 순간.

모든 전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폭음이 멀어지고, 청력이 회복되고 있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 얼음땡을 외쳐주길 바라며 모두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하늘만 올려다보는 상황.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하늘은 온통 핏빛이었다.

그 정체는 바로 와이번과 그 라이더의 피와 살.

하늘로 솟구쳤던 그것이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저걸 뒤집어쓰면 끔찍한 몰골이 될 걸 알지만, 움직이질 못하겠다.

‘젠장.’

그렇게 내심 질끈 눈을 감으려는 차였다.

씨이잉-

어디서 오는지 알 길 없는 한줄기 재빠른 바람이 불어와 떨어지던 피와 살점을 휘리릭 거둬가 버렸다. 그렇게 밝고 따뜻한 하늘을 되찾아준 고마운 바람.

그런데 어째서일까. 피부를 스치는 바람에 모골이 송연하다. 마치 공동묘지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래도 방금 본 충격적인 장면 때문이겠지?

그렇게 모두가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뭘 멍청히 멈춰 있나! 빨리빨리 눈앞의 더러운 오크 놈들을 죽여버리란 말이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여름 기사단장이 쩌렁쩌렁 고함을 질러 기사들을 질타했다. 그에 화들짝 놀란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고,

덩달아 놀란 오크들도 같이 싸움을 시작했다.

“취, 취이익! 인간들 목을 자르자!”

“죽여!”

“이젠 와이번 걱정할 필요 없어! 하늘이 비었다고!”

“초인 기사들도 지상 전투를 지원하라!”

전장에 다시 소란해졌다. 싸늘하게 식었던 땀과 피가 다시 난무하기 시작했다.

와이번을 격추시키기 위해 빠졌던 병력이 다시 칼끝을 지상으로 돌렸다. 와이번이 사라진 이상 그들을 놀려둘 이유가 없다. 화살보다 빠르고 강력한 원거리 초인기는 매우 귀중한 전력이었다.

그렇게 다시 전투가 시작된 전장을 확인한 여름 기사단장은 안도했다.

“후우~ 다행히 잘 움직이는군. 몸이 굳진 않았어.”

“저희 기사들은 그 정도로 못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못나서 그러는 게 아냐. 아직 떨리는 내 손을 봐. 그리고 자네 얼굴.”

“……이상합니까?”

“파랗게 질렸어. 입술도 그렇고.”

“몰랐습니다.”

부단장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술을 만졌다.

자신도 모르게 힘껏 깨물었는지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거울이 없으니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 정도로 좀 전에 본 장면은 굉장한 것이었다.

저 와이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맞고 마치 식탁 위 푸딩처럼 터져나갔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와이번의 가죽이 얼마나 질기고 단단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와이번이 산산조각이 날 줄이야.

“어떤 수법인지 단장님은 아시겠습니까?”

“자네는 못 봤나?”

“못 봤습니다. 타격 직전까지 기감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야. 나도 아무것도 못 봤어. 그래서 더 무서워.”

꽈아악!

여름 기사단장이 힘껏 주먹을 쥐어 떨림을 멈췄다.

놀라운 일이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단장의 입에서 무섭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부단장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이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만약 지금 공격이 와이번이 아니라, 우리 기사단을 향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

“……”

부단장은 답하지 못했다.

끔찍한 결과를 굳이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장도 굳이 답을 들을 생각은 아닌 듯 푸석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대신 그는 전장 반대쪽.

마차 앞에 서 있는 이드 일행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들이 검후의 사신인 모양인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와 그 아내들입니다.”

“방금 공격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인 명예 후작의 짓이겠지? 아무래도 마법의 화려한 맛은 없었으니까.”

“확신할 순 없지만, 저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섭군. 무공으로 이렇게나 은밀하고, 강력한 공격이 가능한 줄은 몰랐어. 과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란 것인가.”

무공의 가능성이라면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여름 기사단장이었다. 일단 스스로가 고강한 기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수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자신보다 강력한 무력을 가진 대공의 무공을 직접 견식한 적은 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와이번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산산조각을 내는 게 가능할까라고 물으면 답을 하기 어려웠다.

특히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공격의 은밀함이었다. 그런 은밀한 수법으로 기습을 걸어온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여름 기사단장의 철저한 착각이었다.

혈뇌천강지.

좀 전 이드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을 뿐, 결코 은밀한 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인물이니, 아나크렌에서 명예 후작의 작위를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흥, 진짜라면 명예 후작의 작위도 약소하지. 그나저나 이걸 보고 나니, 새삼 이런 생각이 들어. 지금 누가 누굴 지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확실히, 저런 실력이라면 저희의 지원이 필요 없기는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지원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힘이 있다고 해서 사신이 직접 나서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말이야.”

여름 기사단장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무언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은 명령을 받고 달려온 입장.

아무렴 황궁에서 사신인 명예 후작의 전력을 몰라서, 서둘러 지원을 보낸 것일까.

“쯧, 그래, 우린 명령만 완수하면 될 일이니까. 그럼 전투나 빠르게 끝내볼까?”

“직접 검을 드실 생각이십니까?”

“저기 족장은 내가 아니면 상대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렇다고 또 명예 후작이 나서게 할 수는 없잖아.”

“그럼 저도,

말과 함께 말의 고삐를 팽팽하게 당기는 여름 기사단장. 그 모습에 부단장도 검을 뽑아 들려는 모습이다.

“아니, 저놈은 내가 혼자 상대하지. 자네는 여기서 지휘를 맡고 있어. 혹시 또 놀라서 멍청한 짓을 하는 놈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서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란 말이야.”

“음,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족장과 기사단장의 전력을 눈대중으로 비교한 부단장이 검을 손에서 놓았다. 분명 그레이트 오크 족장은 강력해 보였다. 이만큼 멀리서 살펴봄에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오우거보다 강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름 기사단장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여름 기사단장은 이런 부단장의 모습에 으흐흐 하는 정체불명의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는 검을 높이 뽑아 들며 외쳤다.

“나, 여름 기사단의 폴레론 반탈이 적의 족장을 잡으러 간다! 여름 기사단은 깃발을 높이 들어라!”

“와아! 폴레론! 폴레론!”

커다란 외침과 함께 전장의 중심으로 말을 내달리는 여름 기사단장.

그러자 그의 뒤에서는 남아 있던 기사들이 여름 기사단의 상징인 푸른 나무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기사단장의 이름을 소리높여 외쳤다.

이런 외침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폴레론 단장이 전장의 중심을 가르며 십여 마리 오크의 목을 날리고, 전장을 관통한 후 족장을 향해 돌격하는 그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네놈은 내 몫이다!”

“취익! 인간 따위가!”

촤아앙!

***

“일인 돌격이라니. 여름 기사단의 단장이란 사람, 낭만이 넘치네.”

이드는 족장과 기사단장의 격돌이 작게 환호했다. 혼자 전장을 달려 적의 대장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제법 멋있었기 때문.

하지만 스폴의 의견은 달랐다.

“낭만은 넘칠지 몰라도, 지원 임무를 명령받은 기사로서는 빵점이네요.”

“왜? 지원은 충분하잖아.”

사신단의 기사단은 이미 여름 기사단에 완전히 합류한 상태였다. 현재는 V자 형태로 적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

사신단에 대한 보호라면 이미 완벽히 완료된 것. 하지만 스폴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신단의 보호가 임무라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전투가 아니라, 사신단의 핵심이 되는 이드 님부터 보호했어야 해요. 일단 상황이 급박해 바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빠르게 이드 님의 안전을 확보하고 이를 중심으로 방진을 짜야 하는데, 저 사람은 저기서 저러고 있잖아요.” 

“뭐, 어때. 내가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적 족장이 강력한 것도 사실이잖아.’

적 족장의 강력함은 이드도 감지한 상태였다.

지금 현장에서 족장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여름 기사단장뿐이었다. 자신들과 스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여름 기사단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여기서 기사들을 내밀어 봐야 괜한 사상자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말도 옳지만, 제가 말하는 건 그 이전의 문제예요. 기사단장이 직접 나서는 건 임무를 완료한 후여야 했다는 거죠. 이드 님의 안전을 확보한 뒤, 혹은 먼저 나서더라도 부단장급을 이드 님께 보냈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잖아요.”

“깜빡했나 보지.”

이드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무려 황궁에서 내려온 임무가 아닌가.

스폴은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말아 올렸다. 동병상련이랄까. 오랫동안 은색 기사단으로 검후를 모시며 이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 그녀는 단숨에 여름 기사단장의 속내를 꿰뚫어버린 것이다.

“저들은 두려운 거예요. 좀 전 이드 님의 실력 발휘를 보고, 두려움이 생긴 거죠.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있는 게 분명해요. 후후후, 이거 모르긴 몰라도 황궁까지 아주 편안하게 갈 수 있겠어요.”

꽤나 의미심장한 말을 할 줄 아는 스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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