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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63화


1498화

와이번의 위협이 사라진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움직이지 않던 그레이트 오크 족장이 유일한 변수였지만, 놈도 여름 기사단장의 검에 목이 잘려 죽어버렸다. 족장을 잃은 오크들은 지리멸렬했지만, 끝까지 용맹했다.

돌아갈 곳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까. 놈들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비록 몬스터이긴 하나, 이런 오크들의 모습은 이들과 싸운 기사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일반적인 오크였다면 족장이 죽은 시점에서 분명 동족을 버리고 허둥지둥 도망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끝난 전투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부상자는 꽤 있었지만, 이들도 포션과 초인기, 그리고 라미아의 마법의 도움을 받아 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후, 여름 기사단은 사신단에 합류를 요청했다.

협곡에서 일단의 몬스터가 기어 나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길 소영주도 함께인 이 요청을 이드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저 가일라가 멀지 않았고, 무엇보다 스폴이 나름 기대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 기사단이 합류하며 사신단의 규모는 순식간에 열 배로 늘어났다. 양측 규모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주도권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질 만도 했지만, 그런 기미는 없었다. 여름 기사단이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 때문이다.

이에 스폴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능숙하게 귀찮은 일을 여름 기사단에 넘겨 버리기까지 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름 기사단의 합류로 이동이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모든 것이 좋았다. 특히 이동 간에 편의 사항이 매우 늘었다. 길 소영주의

합류로 편해진 것 이상이었다.

경유할 모든 영지는 검사 없이 출입 가능했고, 매일 최고의 숙소가 준비되었다. 특히 귀찮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유명한 기사단이 방문했다면 영주가 초대라도 할 만한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어 보였다. 스폴은 그것이 여름 기사단장의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그날 점심나절 어느 길목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흐릿하게 거대한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신단의 목적지인 가일라였다.

그 모습에 사신단에 속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눈에 힘을 줬다. 그런다고 선명하게 보일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게 라일론의 수도인가.”

“안티로스보다 좀 작은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가? 내가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데.”

특히 외국에 처음 나온 병사들이 신나 보였다.

뭐, 그럴 만도 했다. 이들 중에는 아직 자국의 수도인 안티로스에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그런 중에 외국의 수도를 먼저 들르게 생겼으니,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일행의 절대다수는 덤덤한 중에 편한 모습이었다. 당연했다. 여름 기사단에게 가일라는 집과도 같은 곳일 테니까.

그런 중에 일행의 이동이 잠시 멈췄다.

여름 기사단장의 손짓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말을 몰아 이드가 타고 있는 마차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스폴도 그 사이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마차 옆으로 다가서자, 기다렸다는 듯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이드가 얼굴을 내비쳤다.

두 사람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먼저 문을 연 것이다.

“갑자기 멈춘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만, 폴레론 단장께서 용무가 있는 듯합니다.”

스폴이 냉큼 끼어들어 답했다.

그에 이드의 시선에 폴레론 단장을 향하자, 그가 슬쩍 고개를 숙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드는 이런 그의 반응이 퍽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폴레론은 처음 인사할 때를 제외하고 어지간해서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혼나지 않으려 엄마의 눈을 피하는 순진한 아이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재밌는 일이지 않은가?

천하의 여름 기사단장이 무엇이 무서워 어린아이처럼 눈도 마주치지 못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모습에서 이드는 그가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던 스폴의 말을 인정했다. 굳이 특별한 위협을 가하는 것도 아닌, 아군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사람은 각자 다른 것이니까.

이드는 굳이 이런 점을 지적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여름 기사단장에 있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상대가 이드가 아닌, 스폴이었다면 하루 종일 그를 쫓아다니며, 눈을 마주치려 했을 테니까. 

“무슨 용무입니까? 폴레론 단장.”

“다름이 아니라, 가일라가 목전입니다. 느긋하게 이동해도 세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여름 기사단은 이만 임무를 마치고, 물러갈까 합니다.”

호위 임무를 끝낸다는 말이다.

보기에 따라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보통 호위라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이어지기 마련인데, 목적지를 저만치 앞에 두고 갑자기 임무 완료라니?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사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사신단의 방문은 조용히 처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사신단이 저희 여름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입성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입니다. 그러면 금방 사신단의 방문이 밝혀질 것입니다.”

사신단의 방문이 일급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닐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다면 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 사신단의 방문은 일반 사람들에겐 그리 큰 관심거리는 되지 못한다.

어차피 높으신 분들 간에 오가는 이야기. 당장 일반 평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은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다. 하지만 그 사신이 검후가 보낸 것이라면?

그럼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 현재 검후에 관련한 사건은 최고의 흥밋거리가 아니던가.

분명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여름 기사단의 위명이 대단한 모양이군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호위 임무를 여기서 마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라면 당연히 저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

고개를 끄덕인 이드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폴레론 단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에 폴레론 단장은 황급히 말에서 내려 이드의 손을 잡았다. 

“닷새간 사신단을 호위해 준 여름 기사단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희 여름 기사단이야말로 이름 높으신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이신 명예 후작님을 호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지요.”

“부디 라일론에서 기쁨만 얻어 돌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손을 놓고 재차 깊이 고개를 숙인 폴레론 단장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짧게 마주친 시선.

마지막이라서일까. 이번엔 시선을 피하지 않는 폴레론 단장이다.

이드는 그에 빙긋 미소를 보이고는 다른 기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후 다시 마차에 올랐다.

직후 스폴이 여름 기사단과 짧게 인사를 나눈 이후, 사신단은 여름 기사단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가일라를 향해 출발했다.

***

빠르게 멀어진 사신단은 벌써 수백 미터를 나가고 있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폴레론 단장이 시원함인지, 안도인지 알 수 없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 드디어 끝이군.”

“고생하셨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부단장이 와인 한 병을 꺼내 들었다.

크든 작든 하나의 임무가 끝나면 와인을 돌려 마신다. 그게 여름 기사단의 전통이었다.

폴레론 단장은 건네받은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재차 긴 숨을 내쉬었다. 부단장으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힘들었지. 자넨 모르겠지만,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고. 질식할 것 같았어.”

대답과 함께 다시는 떠올리기 싫다는 듯 와인을 입에 무는 폴레론 단장.

“솔직히 저와 다른 기사들은 큰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저희들이 많이 부족한 것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나도 피부로 느껴지는 건 거의 없었으니까. 날 숨 막히게 만든 건 기감 이전에 본능의 문제다.”

“……단장님은 그렇게 야성적인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핫!”

폴레론은 부단장의 대답에 크게 웃어 보이고는,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부단장에게 병을 건넸다.

“당연하지. 나도 몰랐으니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건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과장 하나 없이 양의 탈을 쓴 괴수를 마주한 기분이었어.”

이드에 대한 폴레론 단장의 첫인상은 무시무시한 강자였다.

알 수 없는 수법으로 와이번을 터트려 버렸으니, 그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 힘은 직접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두려움이란 감정이 들 정도였다. 여름 기사단장에 두려움을 줄 정도의 힘.

그 의미는 컸다.

최소한 폴레론 본인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 처음 마주한 이드는 어떠했나. 두려울 정도의 힘? 그런 건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했다. 그저 조금 건장한 청년? 그런 인상이었다. 검을 가지지 않았다면 검사인지도 알 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폴레론은 여름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제국의 강자들을 직접 마주한 경험이 많았다. 그중에는 제국 최강의 대공들과 나람 공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폴레론 단장은 그들을 마주할 때도 놀랐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힘에 전율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잠재력의 덩어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상대의 힘.

아찔할 정도로 강맹한 투기.

그런데 이드는 아니었다. 마치 허공을 보는 기분이었다. 폴레론은 그 속에서 지독한 괴리감을 느꼈다. 눈이 마주칠 때면 지극히 평범한 그 눈길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도저히 그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저것과…… 저 알 수 없는 것과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입니까?”

“임무를 서둘러 완료한 것? 맞아. 그래서야.”

사실 성문 도착 전에 임무를 완료하라는 사전 명령은 없었다. 이 자리에서 임무를 완료한 것은 순전히 폴레론 단장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이제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야. 가능하다면 다시는 저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군. 자, 가자.”

폴레론 단장은 그 말과 함께 말에 올랐다.

그 뒤를 푸른 나무 문장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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