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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67화


1502화

달이 뜬 황궁의 경비는 삼엄하다.

일단 경비가 두 배로 늘어나는데, 이들이 업무를 시작하면 하인들의 행동이 변한다.

은근한 긴장감에 몸가짐을 자기도 모르게 조심히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유는 야간 경비에 있다.

낯과 달리 황궁의 밤을 책임지는 이들은 경계심이 매우 높아서, 사소한 절차 하나까지 깐깐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낯에는 그냥 지나던 길도 이유를 밝힌 후에야 지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이니,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특히 오늘처럼 황제가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는 날이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본다.

하지만 이런 야간 경비도 무적은 아니었다. 황궁에는 이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감히 야간 경비가 어찌할 수 없는 대단한 인물들.

그리고 지금.

그 인물 중 하나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복도를 호다닥 뛰어가고 있었으니.

나이는 대략 여섯에서 일곱 정도에 발갛게 달아오른 통통한 볼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작은 아가씨였다. 그녀는 복도의 모퉁이마다 지키고 선 기사와 병사들이 마치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오직 앞만 보고 뛰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런 소녀의 뒤를 세 명의 여성이 급히 쫓고 있었다.

“전하! 제발 뛰지 마세요! 황궁에선 뛰어선 안 됩니다!”

우선 뛰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풍성한 몸매의 중년 여성이 하나였고.

“황녀 전하. 거기 조심! 조심하세요!”

아직 젊은 시녀가 둘이었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자칫 소녀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감히 소녀를 강제할 수 없어 간청만 하고 있으니. 아마 낯이었다면 황궁이 한바탕 떠들썩해질 소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오히려 밤이니 더더욱 삼가야 할 일.

그러나 야간 경비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못 본 척 슬그머니 눈길을 피한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소녀에 대한 애정이 그득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무인지경으로 뛰던 소녀.

올리비아 육 황녀는 별궁으로 향하는 모퉁이 앞에서 급작스럽게 멈춰 섰다. 그리고는 할딱이는 숨을 고르지도 않고 모퉁이 너머로 빼꼼히 머리만 내밀어 별궁을 살폈다.

그리고 한발 늦게 황녀를 따라잡은 중년의 유모가 반쯤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황녀를 불렀다.

“전하, 하악하악. 뛰면 안 된다고…… 하악…… 제가 몇 번이나 말씀을…………… 후우…… 드렸지 않습니까.”

“쉬잇! 조용히 해. 유모, 들킨단 말이야!”

“・・・・・・ 이미 다 들켰어요.”

황녀의 경고에 유모는 한숨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대놓고 복도를 달렸는데, 누가 모르겠는가.

더욱이 어린 아이가 숨어 봤자 얼마나 잘 숨을 수 있을까.

별궁을 지키고 있는 능숙한 병사와 기사들은 황녀가 도착하기 전부터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황궁에 있으면서 그 바쁘고 귀여운 발걸음 소리를 어떻게 모를까.

“전하, 그렇게 몰래 엿보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 아바마마가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고, 별궁에 가지 말라고 했는 걸?”

“가지 말라고 했는데, 오셨어요?”

“그래서 몰래 숨어 있는 건데?”

당연한 것 아니냐며 답하는 작은 황녀님.

유모는 아찔한 절망감에 눈가를 꾹꾹 눌렀다. 황녀에 대한 자신의 교육은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자신은 절대 저런 약삭빠른 행동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게 다 황제 폐하 때문이야.’

유모는 무엄하게도 그 잘못을 황제의 탓으로 돌렸다. 실제 황제는 막내딸인 올리비아 황녀를 매우 아꼈다.

그녀의 부탁은 대부분 들어주었고, 혹시 잘못을 저질러도 크게 탓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올리비아 황녀는 황궁에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황궁의 숨은 실력자 되시겠다.

하지만 유모와 하녀들은 달랐다.

감히 누구의 명이라고 어기겠는가.

곧 그녀들은 작은 황녀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전하,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여기 있으시면 안 됩니다. 어서 궁으로 돌아가셔요.”

“맞아요. 황녀 전하. 여기 있으시면 크게 꾸중을 들으실 겁니다.”

“싫어!”

이런 간청에도 고개를 팩 돌려 단박에 거절해 버리는 황녀다. 황궁의 숨은 실력자답게 고집도 보통이 아니었다.

유모도 그걸 알지만, 그렇다고 이 밤에 계속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이대로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잠잘 시간이 된 황녀가 졸려서라도 돌아가자 하겠지만, 그걸 언제 기다린단 말인가. 거기에 한번 목표를 정하면 쉽게 지치지 않는 황녀가 아니던가.

“전하, 자꾸 이러시면 귀한 손님들께 실례가 됩니다. 미움을 받는다고요.”

“걱정 마. 날 미워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요? 미워할 수도 있지.”

“아바마마가 그러셨는걸? 이 세상에 날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

황제가 그랬다는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유모였다. 그에 젊은 시녀들이 급히 말을 바꾸었다.

“귀한 손님들은 외국 분이셔서, 황제 폐하의 말씀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의 없는 사람은 누구라도 싫어하세요.”

“그런가……”

외국인이라는 말에 그제야 고개를 갸웃하는 황녀다.

아직 어린 만큼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적어 외국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리기보단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인 황녀다.

제국의 황녀로서는 좋은 자세라고 할까.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태도 보다는 아직 욕심이 더 앞서는 아이였다. 황녀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별궁을 훔쳐봤다.

“그래도 보고 싶은데.”

“황제 폐하께 허락을 받아, 내일 편하게 보셔요.”

“황녀 전하께선 누굴 그렇게 보고 싶으신 건가요?”

“나? 공주 마법사님. 공주 마법사님이 보고 싶어.”

“공주 마법사님이요?”

황녀의 힘찬 대답에 유모와 시녀들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녀들이 알기로 지금 별궁에 있는 손님은 검후의 사신이었다. 검후의 사신이라면 당연히 기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마법사를 찾는단 말인가?

“현재 별궁에 머무르는 분들은 기사님들일 텐데요?”

“아니야, 오라버니가 굉장히 예쁜 공주 마법사님이 있다고 했어.”

그제야 이번 고집의 이유를 알게 된 유모였다.

동시에 정보의 출처도 알았다.

아무래도 낯에 놀러 왔던 황자들 중 하나가 흘린 모양이다. 유모는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그럼 더욱더 오늘 만날 수 없으세요.”

“왜? 어째서?”

“공주 마법사님이라고 하셨잖아요.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마법사라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죠. 제가 늘 말씀드렸죠? 미인은 잠꾸러기라고.”

“하지만 오늘 꼭 보고 싶은데.”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은 유모가 자신을 침대에 눕히며 항상 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황녀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과연 공주 마법사님의 잠 시간을 보장할 것인지.

자신의 호기심 해결을 우선할 것인지. 물론 욕심이 향한 쪽은 절대적으로 후자였지만, 그래도 황녀로서 받은 교육이 유모의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황녀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별궁을 훔쳐보고 있을 때,

황제와의 독대를 마치고 별궁으로 향하던 이드가 황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경비들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몰래 별궁을 훔쳐보는 아이와 그 일행으로 보이는 여인들이라니.

별궁으로 향하던 이드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췄다.

그와 함께 이드를 안내하던 시종의 발걸음도 함께 멈췄다.

시종은 이드가 발걸음을 멈춘 이유를 찾아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황녀를 발견하고는 작게 소리를 질렀다.

“황녀 전하께서 왜…… 헙!”

“황녀 전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올리비아 육 황녀 되십니다. 황가의 막내시고, 황제 폐하께서 가장 아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행여 오해도 말고, 실례하는 일도 하지 말라. 그런 뜻을 정하는 시종의 말에 이드는 잠시 황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에 살금살금 황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목적이 너무도 뻔해 보였지만, 시종과 경비들은 감히 그런 이드를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미 얼마나 귀한 사신들인지에 대해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심 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 이드의 행동이 만들어낼 황녀의 반응이.

그렇게 황녀만 모르는 가운데, 점점 그녀에게 가까워지는 이드.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셋 둘 하나. 지금!’

“잡았다 요놈!”

“꺄울~~~!!”

갑자기 작은 어깨를 잡아채는 손길.

그에 깜짝 놀란 황녀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다행히 이드가 잡고 있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지는 않았다. 황녀 다음으로 놀란 것은 유모였다. 아무리 귀한 사신이라지만, 저렇게 과감하게 황녀의 어깨에 손을 댈 줄이야.

“누, 누구십니까.”

“맞아! 너, 누구얏! 엄청 놀랐잖아!”

유모의 목소리에 겨우 진정한 황녀가 대번에 씩씩 콧김을 뿜으며 이드를 노려보았다. 감히 자신을 놀라게 하다니! 자신이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오라버니들 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황녀는 단단히 뿔이 났다. 하마터면 너무 놀라서 찔끔할 뻔했다. 그랬으면 두고두고 오라버니들에게 놀림을 당했겠지. 자신을 그런 위기에 몰아넣은 사람.

누군지 몰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바마마께 말해서 단단히 혼을 내줄 거야!’

그렇게 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는 황녀.

그러나 이드의 눈엔 그 모습이 퍽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황제가 호남이긴 했지만, 그에게서 이런 귀여운 황녀님이 태어났다니.

이드는 순간 검후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와 함께 이드는 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들었다.

“먹을래?”

하얀고 작은 막대에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쌓여 있는 막대 사탕.

그것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냄새에 본능적으로 이끌린 황녀는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이거・・・・・・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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