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11화


548화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워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페시딘이 저녁을 권했지만 오랜만에 서류를 오래 잡고 있었더니 피곤하다며 다음으로 미뤘다.

사실 워스가 들고 왔던 서류는 반도 처리하지 못했다. 마르텔은 처음부터 나가떨어졌고, 워스 역시 몰래 빼돌린 서류에 적혀 있던 내용에 마음이 흔들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마음으로는 도저히 뭔가를 먹을 정신이 되지 못했다.

워스는 방문을 잠그고는 품속에 숨겨 둔 서류를 다시 빼 들어 읽어 내렸다.

몇 번을 읽어도 믿기지 않는 내용이 이어졌다. 멍하니 한 장의 서류를 내려다보던 워스가 조용히 서류를 덮었다. 그러자 서류의 첫 장에 적힌 보고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에단 웍………… 한번 볼 필요가 있겠어. 만약 거짓이라면 목을 따 주마.”


샤샥!

번개처럼 몸을 돌린 에단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짧은 순간 얼마나 긴장했는지 오소소 소름이 돋아 있고, 일전 이드의 손에 연무장으로 던져진 이후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칼까지 반쯤 뽑아 들고 있었다.

・미쳤냐? 뭐하는 짓이야?”

록은 난데없는 에단의 행동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미친놈 보듯 에단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이야기 잘 하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는 짓은 딱 암살자나 기습에 대비하는 모습이지만 이곳이 어딘가. 바로 소드 팰러스다. 더구나 자신의 집이다. 이곳에 들이닥칠 암살자는 자살 희망자밖에 없다.

“쉿!”

그러나 에단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조용히 방금 등골이 얼어붙는 위험을 느꼈다. 적이다.”

너무 진지한 모습에 록은 반사적으로 방 안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매일 보던 자신의 집이다. 록은 한쪽 눈썹을 씰룩이더니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에단이 급하게 소리치며 말리려 했지만 록이 먼저였다. 하지만 에단의 걱정과 달리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록은 집 밖을 두루 살피고는 다시 돌아와서 에단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두드려 주었다.

“으악! 아프잖아, 이 자식아!”

“아프냐? 내 마음도 아프다. 친구 놈이 미친 게 아닌가 싶어 내 마음이 참 아파.”

“에이, 썅. 진짜라니까. 팔뚝에 소름 돋은 거 안 보이냐?”

에단이 불끈불끈 근육덩어리 팔뚝 위에 오른 소름을 내보였다. 록은 보기 싫다는 듯 에단의 팔을 툭 쳐서 치워 버리고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네가 삽질한 거겠지. 생각을 해 봐라. 트와이스에 붙어 있었으면 알 거 아냐? 어떤 미친놈의 암살자가 소드 팰러스에 들어오는데? 편안하게 자살하는 방법도 많은데.”

소드 팰러스가 생겨난 후 소드 팰러스에 침입하다가 말단과 함께 암살단 자체가 날아간 경우는 있어도, 소드 팰러스 안에서 암살이 일어난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암살자라고는 안 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에단의 눈이 바닥을 향했다. 그 모양을 보고 록은 한심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나 그거나! 도대체가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너네 6팀장에 대한 정보까지 내놓으라고 떼를 쓰질 않나, 네가 미친 것이 분명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그럼 인력 운용과에서 일하고 있는 놈이 소드 팰러스의 정보통인 건 정상이냐? 도대체 사무실 구조는 또 어떻게 이렇게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냐? 솔직히 불어 봐.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네가 스파이인 것 같은데.”

에단이 탁자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종이들을 탁탁 두드렸다. 하얀 종이 위에는 방금 그려 낸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도면이 가득했다.

록이 음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미친 게 맞아.”

“흐흐흐. 그러냐?”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상사 방을 털겠다는 게 정상이냐?”

“그 정보를 제공해 주는 넌 어떻고? 스파이 같은 새끼.”

“취미다. 이 새꺄.”

“취미 한번 엽기적이다. 미친놈.”

“크큭. 그래, 미친놈 하자. 아무래도 스파이보다는 살짝 미친 게 낫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냐? 정말 팀장 방을 털겠다는 거야?”

“그럴 일이 있다. 여기서 더 주의할 건 없는 거지?”

“모르지. 내가 신도 아닌데 타인의 개인 공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어떻게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겠냐?”

“하긴 그렇지. 뭐,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면 되지. 일단 정보 고맙다.”

“오늘 밤에 움직이냐?”

“오래 끌 일이 아니라서.”

에단이 슬쩍 도면을 확인하고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얼마 전에 가 봤던 곳이라 자세히 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되냐?”

록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네가 왜?”

“시치미냐?”

록이 턱도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뭐냐, 무슨 생각이냐. 이놈.’

에단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록의 웃음에 심장이 덜컹하는 것 같았다. 희한할 정도로 소드 팰러스의 정보가 흘러들어 고이는 정보의 호수 같은 놈이지만, 설마 지금 상황을 알까 싶었다.

이놈이 아는 것은 어떻게든 구하려면 구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였다.

“내가 눈이 없는 봉사도 아니고. 지금 소드 팰러스에서 가장 핫한 인간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정확한 건 몰라도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록의 감이 예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보통 때라면 구경하고 즐기고 말텐데 쓰읍. 아무리 가볍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소드 팰러스가 한번 뒤집어질 것 같단 말이지. 아니냐?”

“쯧, 쓸데없이 예리한 놈. 그냥 평소대로 구경하고 즐겨. 뭘 갑자기.”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엔 그렇게 넘기기 힘들지 않겠냐? 검후께서도 계시지 않는데 소드 팰러스가 뒤집어져 버리면 내가 실업자가 되지 않겠냐? 아, 아. 이 나이에 실업자라니!”

록이 큰일이라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에단은 그런 록의 바보짓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단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놈이 있으면 마스터께 도움이 되고도 남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놈보다 소드 팰러스에 빠삭한 인간이 없으니까.”

에단은 소드 팰러스를 손 위에 놓고 직접 운영하는 클라인 백작도 록보다 소드 팰러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분명 검공자인가, 검고자인가 하는 놈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는데.’

그런 에단의 생각은 바로 입으로 흘러나왔다.

“너, 게일이란 녀석 편 아니었냐?”

“애냐? 이 나이 먹고 누구 편이 어디 있냐? 되는 대로 줄 서는 거지.”

록이 유치하다는 듯 말했지만 에단은 우묵한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자 록도 팔랑거리던 손을 거두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게일이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소드 팰러스의 편이지. 너도 알지? 검후님 실종.”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록이라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난 말이야, 지금 소드 팰러스가 좋아.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또 사람을 사귀는 데 벽도 없는 이곳이 좋아.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영 이상하게 흐른단 말이지.”

에단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동안 록에게 그렇게 들어 보려고 해도 나오지 않던 정보였다. 처음 이드와 함께 소드 팰러스에 도착하고 느낀 이질감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

“어떤?”

“오가는 사람 막고, 편을 가르는 소드 팰러스로 변하려는 조짐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곳과는 정반대로 변하는 거지.”

“그런 모습은 못 봤는데?”

에단의 말에 록이 피식 웃었다.

“소드 팰러스의 역사와 이름이 있는데 갑자기 대놓고 그런 병신 짓을 하겠냐? 몰래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냄새 나는 꼰대들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빠돌이 여우 백작이 검후의 소드 팰러스를 갈아엎을 이유는 없으니까.”

꼰대와 빠돌이 여우는 그들끼리 삼검왕과 클라인 백작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게일이 꼰대들이 미는 놈이라던데?”

“그러니까 밀지. 난 멈추지 못하는 말에 채찍을 두드리라는 주의야. 괜히 어정뜨다가 꼰대들이 소드 팰러스를 손에 쥐게 하느니, 차라리 게일에게 소드 팰러스를 넘기고 그 힘으로 지금의 소드 팰러스를 유지하자는 거지.”

“게일도 꼰대들과 같은 생각이면?”

“흐. 게일이 검후님이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게일은 검후님이 아니란 말이지. 명분도 없이 갑자기 소드 팰러스를 뒤집었다간 지지자들이 순식간에 떨어질 테니까. 저도 생각이 있으면 그런 짓거리는 못 해. 그리고 소드 팰러스에서 수련할 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소드 팰러스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있지. 소드 팰러스는 지금 체제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이야.”

“싹수가 노란 놈이잖아.”

에단은 게일의 존재에 반감을 강하게 내비쳤다.

농담으로 마스터의 라이벌이라고 했지만, 록의 말은 또 달랐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드 팰러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후계 행보를 위한 정치 행위다. 자신이 앞으로 소드 팰러스를 운영할 비전을 내보인 것이다. 아무리 검후의 유일한 제자라고 불리며 소드 팰러스의 후계자 소리를 듣는다지만, 감히 검후님이 정정하실 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에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왕이면 야망이 크다고 해줘라. 공공연하게 소드 팰러스의 후계자 소리를 듣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거기다 후계자라는 타이틀로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한둘이겠냐? 뭣보다 그런 정치를 아니까 내가 밀고 있던 거고.”

과연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지지자들의 눈이다.

“네 생각은 알았다. 그런데 줄은 왜 옮기는 건데?”

“난………… 이드라는 남자를 믿는 게 아니라 내 친구 에단이 믿고 있는 마스터를 믿고 싶은 거다.”

빡!

헛소리를 하던 록이 이마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지금 장난칠 때냐?”

에단이 싸늘하게 말했다.

막 한 소리 하려던 록이 조용히 손을 내리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실 장난 같은 그의 말이 크게 틀린 건 아니었다. 처음 록이 이드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에단이기 때문이었다. 에단이 그렇게 극진히 모시는 이드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때문이었다.

록은 시간을 들여 상황을 살피고 우연히 얼굴을 마주친 이드를 살폈다. 또 에단을 보고 그를 통해서 이드에 대해 듣고, 케마란과 네리베르도 살폈다.

이런 말을 꺼내게 된 게기도 사실은 케마란과 네리베르였다. 두 사람의 행동에서 이제 자신도 결정해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낀 때문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드의 성향은 검후와 비슷했다. 그라면 큰 변화 없이 소드 팰러스를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진행되는 상황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거지. 내 생각과 다르게 삐딱선을 타면 판을 엎어 버리면 되니까. 게일은 그럴 수가 없거든?”

“……좋다. 일단 마스터에게 네 이야기를 해 보자.”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록이 걱정하는 일은 없다.

록이 판을 엎을 일도 없고, 엎을 판도 없다.

“좋았어. 그럼 이제 우리의 로망을 위해서 움직여 보자. 부하 직원의 상사에 대한 공격.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이냐.”

음흉하게 웃으며 말하는 록의 모습에 에단은 얼굴을 붉혔다.

자신 역시 저런 생각으로 움직였는데, 그걸 마스터와 이쁜 두 후배가 봤다 생각하니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검은 밤을 헤치고 허탈한 얼굴로 팀장의 방을 빠져나온 에단과 록이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내 보고서가 어딜 간 거야?”

“왜, 거기에 뭐가 적혔는데?”

에단은 록의 물음에 입을 닫았다. 자신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때 에단을 대신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주 엄청난 사실이 적혀 있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