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16화


553화

“검후님은 이드 님과 비밀리에 서로 연락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수많은 인원이 수색을 하고서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이곳 화원에서 이드 님께서 검후님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쩌면 마인드 마스터께서 사라진 이후에도 검후님은 연락망을 가지고 있으셨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인 백작이 ‘이제 진실을 말해라!’ 하는 표정으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와 반대로 이드를 비롯한 그 뒤에 있는 일행들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이드에게 진실을 듣고 이 자리에 나온 일행들에게는 클라인 백작의 말은 한 푼의 설득력도 가지지 못하는 헛소리였다.

다만 입장을 정하지 못해서 그때 진실을 듣는 자리에 끼지 못한 데일리는 클라인 백작을 만족시키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래서 검후님이 숨겨 두신 흔적을 그렇게 쉽게 찾으신 건가요?”

“아니야!”

감춰진 진실을 알았다는 데일리의 표정에 모두 한마음으로 소리쳤다.

“아, 아니라는데요?”

차라리 강요에 가까울 정도로 확실한 오답 판정에 데일리가 목을 움츠리며 클라인 백작을 바라본다.

“아닙니까?”

“아닙니다. 검후님에 대한 소식은 여기에 있는 에단이 절 찾아왔을 때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마인드 마스터의 이름으로도 단 한 번도 검후님과 연락한 사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데일리 경에게 듣기로 검후님이 숨겨 두신 흔적들을 너무도 쉽게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확실히 남겨 두었으니까요.”

“그 아는 사람이 이드님이란 말이군요.”

“꼭 제가 아니라도 검후님의 무공을 정확하고 깊게 익히고 있다면 가능할 테지요.”

이드의 대답에 클라인 백작의 어깨에 힘이 빠졌다.

“검후님의 진정한 무공은 모두 황궁에 있지요. 결국 검후님의 마음은 황궁에 있다는 뜻이군요.”

소드 팰러스가 곧 검후라고 생각하고 소드 팰러스를 관리했는데 사실 검후의 마음은 황궁에 있었다니.

그러나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글쎄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후님이 숨겨 둔 것들은 영광된 권좌가 아니라 무거운 짐이거든요.”

“짐・・・・・・입니까?”

“아직 책은 보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책을………… 남기셨습니까?”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며 데일리를 바라보았다.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단장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은색 기사단장이 복귀한 후 결정할 일이란 말이었다. 당연했다.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은 ‘예, 예’ 하면서 아무에게나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사실들이 적혀 있었다.

사실 데일리는 어째서 이드가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 놓은 건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자신도 클라인에게 휘둘려 화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검후님이 직접 남기신 책이군요. 그런데 이렇게 쉽게 말씀해 주셔도 되는 겁니까?”

보라. 클라인 백작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살짝 볼을 부풀리고 이드를 보는 데일리의 눈에 불만이 넘쳤다.

“저희들이 화원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그걸 알고 싶었던 게 아닙니까? 좀 전엔 제 힘이 되어 주겠다 하셨고. 설마 그게 거짓은 아닐 테구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선뜻 말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했던 것이 모두 지켜진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거나 지옥이 될 것이다. 물론 클라인 백작 자신이 했던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믿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위한 계산된 행동일까.

이드는 복잡해 보이는 클라인 백작의 얼굴을 보고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저는 굳이 비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은 짐입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실이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서울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 클라인 백작님께는 크게 새로울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내용들이거든요. 앞서 내부의 문제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까? 책에는 거기에 대한 검후님의 생각이 실려 있을 뿐입니다.”

클라인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이드의 말에 책에 적혀 있을 일부 내용이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삼검왕과 소드 팰러스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으시겠군요.”

클라인 백작이 삼검왕을 언급했다. 결국 그가 언급하고 이드가 다시 지적한 내부의 문제가 삼검왕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검후님은 꿈을 꾸고 있다고 하더군요.”

“꿈이라.”

클라인 백작은 어쩌면 그 단어가 삼검왕의 생각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꼭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목적은 꿈과도 같으니까요.”

“하지만 검후님의 실종과 밀접한 관련성이 의심된다는 측면에서 악몽이지요.”

“하하하하.”

차가운 이드의 말에 클라인 백작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몽이지요. 하지만 그 악몽은 반드시 삼검왕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모두 이야기하겠습니다. 책에 적혀 있다 하시니 제가 얼마나 더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해 드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백작님의 말을 기다리는 귀는 많습니다. 읽는 것과 듣는 것의 차이는 크지요.”

“그럼 말이 길어질 테니 제가 실수하지 않도록 데일리 경, 물을 좀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드 님께서 함께 데려오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후배들이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클라인 백작은 아까부터 눈에 드는 두 아가씨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은 이드보다 케마란이 빨랐다.

“제 실력은 이름 높은 기사에 뒤지지만, 제 충성심은 그들보다 높고, 검후님에 대한 사랑은 세상 누구보다 깊다고 자신합니다.”

“……그렇다는군요.”

접객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어떠냐는 듯 이드가 말했다.

물을 준비하던 데일리의 표정에 후배에 대한 대견함이 떠올랐다.

‘둘 다 은색 기사단 지망이겠지? 잔뜩 귀여워해 줘야겠다.’

데일리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은색 기사단의 내리사랑은 유명하다. 독하기로. 임무 중 후배가 어이없이 죽지 않도록 실력을 쌓아 주는 것이 은색 기사단의 후배 사랑 방법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소하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물로 입을 적신 클라인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검후님께서 저에 대해서는 책에 뭐라고 언급하신 것이 없는지…”

‘과연 록의 말대로 검후 빠돌이라더니.”

이드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표정을 바로 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책에 클라인 백작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 

‘뭐라더라. 곤란한・・・・・・ 사람이라던가?”

검후가 어떤 점에서 곤란한 점을 느꼈는지는 적지 않았지만 뭔가 대략 짐작이 되기도 하는 묘한 글귀랄까?

하지만 이드는 검후와 클라인 백작 두 사람을 위해서 책의 글귀를 순화시키기로 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아…………… 검후님.”

검후를 부르는 클라인 백작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묵묵히 일하는 충성을 인정받은 신하의 모습이 딱 저렇지 않을까.

‘이드, 그런 거짓말은 나빠요. 백작이 책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살짝 어벙한 모습의 데일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책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일리나가 이드를 책망했다.

[크큭, 그냥 둬요, 일리나, 저렇게나 좋아하잖아요.]

라미아가 낄낄거리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사실을 알면 그만큼 실망할 텐데………………’

‘하하하. 걱정 말아요. 그가 책을 직접 읽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리고 설마 사실을 알아도 이런 일로 원한이라도 생기겠어요?’

생겼다. 머리를 쓰는 자리에 있는 사람답게 그저 전해 듣는 걸로 끝나지 않고 직접 책을 읽은 클라인 백작은 이후 이 일을 가지고 두고 두고 이드를 씹었다.


클라인 백작은 소드 팰러스에 대해서 객관적인 입장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은 소드 팰러스에 애정을 가진 에단과 록이나 아직 세상에 서투른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시야와도 다른 것이었다.

그의 말속에 있는 소드 팰러스는 엉성해 보이나 정말 중요한 일은 흘리지 않고, 낱알 같으나 끈끈하고, 넓게 드러나 있지만 정작 가장 깊은 곳은 보여 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 소드 팰러스가 지금은 네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다.

이는 검후의 실종 상태를 모르는, 말 그대로 검후가 지배하는 소드 팰러스를 사랑하는 순수한 기사들을 뺀 파벌로 그 첫째가 오로지 검후를 외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전통파, 둘째가 검후의 생사가 불명하니 이후의 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삼검왕파, 세 번째가 검후를 찾아야 하지만 혹시 모를 불측한 사태를 가정하여 그녀의 후예로 게일을 세우자며 젊은 층이 중심이 된 게일파, 그리고 이도 저도 확실히 하지 않고 무게를 잡고 있는 중립파의 넷이다.

이 중 가장 힘과 세가 큰 곳이 삼검왕이 중심이 된 세력이다.

그 다음이 젊은 게일을 지지하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여기에는 전통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게일의 이야기가 나오자 에단의 눈이 반사적으로 록을 향했지만 록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세력입니다.”

전통파는 두말할 것도 없고, 중립파도 검후가 복귀하면 검후를 따를 자들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남은 두 세력은 달랐다. 그 두 곳은 검후의 실종이 확실시된 후부터 꾸준히 세력을 넓히며 힘과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다름 아닌 소드 팰러스의 지배권을 목표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중 삼검왕의 세력이 가장 강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게일파도 조심해야 할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일파까지요?”

이드는 생각지 못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록이었다. 이드를 따르기 전까지 게일파로서 게일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에단이 눈을 흘기며 위험한 놈, 조심해야 할 놈이라고 뻐끔거리는 모습에 록은 그의 허벅지를 찔러 닥치게 만들고 이어지는 말에 집중했다.

“그렇습니다. 게일파는 삼검왕파를 이어 가장 덩치가 크지만 가장 반발이 작고 소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파벌이 커져 가고 있습니다. 검후님의 실종을 알지 못하는 일반 소드 팰러스의 수련자들에게까지요. 마치 미리 계획된 일을 풀어 가듯이 말입니다.”

“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확증은 있습니까?”

“제 힘이 미약해서 아직 심증뿐입니다.”

하지만 소드 팰러스 전체를 관리하는 사내의 생각이 그렇다면 의심해 볼 만한 문제이긴 했다.

“대신 삼검왕에 대해서는 몇 가지 수상한 점이 있습니다.”

“음. 그와 관련해서 말입니다만, 존 워스라던가요? 그 양반이 절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한답니다.”

의외의 이름이 등장하자 클라인 백작의 턱이 힘없이 벌어지며 어벙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예?”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비밀이 있습니다.”

“예?”

“존 워스가 그 비밀을 알고 제게 접근했으니까요.”

“예에?!”

연이어지는 전개에 당황하던 클라인 백작은 잠시 후 이어진 이드의 고백에 더 이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허당기에 담까지 약한 양반일세.”

이드가 클라인 백작의 얼굴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데일리를 보며 살짝 걱정된다는 듯 혀를 찼다. 과연 이 사람이 힘이 되겠다고 해서 힘이 될까? 어쩐지 케마란과 네리베르보다 믿음이 가지 않는 이드였다.


짝짝짝.

에단이 한쪽에 서서 만족스런 표정으로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록과 케마란, 네리베르를 보며 말했다.

“봤지! 저 정도는 놀라 줘야 지켜보는 사람도 보람이 있는 거야. 인생은 리액션이라고. 너희들도 좀 배워라, 배워!”

“끙!”

분명 헛소리가 확실한데 반박하지 못하는 세 사람이었다. 그들도 이드의 말에 놀랄 클라인 백작의 모습을 기대하며 두근거렸고, 백작이 그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준 때문이었다.

“인색은 리액션…….”

특히 그중 한 명은 에단의 헛소리에 묘한 감명을 받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