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18화
555화
삼검왕은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귀엽게 보았다.
그들과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손녀나 증손녀뻘이니 당연하다.
그리고 소드 팰러스라는 공통된 유대감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호감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건 삼검왕의 생각일 뿐이었다.
‘욕심 많은 돼지들!’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은 것으로 보이는 케마란은 겉모습과 달리 최선을 다해서 삼검왕을 노려보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네리베르에게 지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이 자리가 그녀에게 무거웠던 탓이다.
그래서 그녀는 앞에 있는 삼검왕을 멋진 옷을 걸친 돼지라고, 자신의 칼에 도축될 돼지라고 억지로 머릿속에 박아 넣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아무리 대단한 삼검왕이라고 해도 타인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애기같이 귀엽게만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어린 뉴 페이스의 출현에 항상 우중충했던 삼검왕과 클라인 백작의 자리가 드물게 밝아졌다.
“이런, 이런. 너무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 없다. 이쁜 아가씨들이 괜히 어려운 자리에 불려 나와 고생이구만. 하하하!”
마르텔이 가볍게 말하며 웃자, 페시딘이 온화하게 말을 이었다.
“이 친구의 말이 맞다. 알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란다. 집안의 어른을 대한다 생각하고 크게 어려워 말거라.”
‘더러운 인간들이 어디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할아버지와 자기네를 비교해!’
케마란이 눈에 힘을 빡 주고 페시딘을 노려봤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삼검왕의 말에 더욱 긴장한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런 경우를 수없이 겪어 온 삼검왕은 오히려 당연한 표정으로 웃어 넘겼다.
“그래, 보고에 있던 아이들이 이 아이들인가?”
“그렇습니다. 이 아이가 그에게 직접 수련에 도움을 받은 아이고, 이 아이는 그 자리에 함께한 아이입니다.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미 설명을 해 두었습니다.”
클라인이 대답했다. 그는 일부러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이드의 사람인 두 명의 이름을 삼검왕에게 깊게 남기지 않으려는 뜻이었다.
삼검왕은 딱히 그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이드가 케마란을 통해 내보인 무공과 이 후 클라인과 이어갈 이야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미숙한 손녀뻘의 두 사람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잘했네.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자네가 편할 테지. 그럼 바로 보도록 하지. 오늘 논의해야 할 일이 적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클라인이 눈짓을 했다.
그의 신호에 따라 케마란이 삼검왕의 앞에 서서 링스피어를 손에 들었고, 네리베르가 클라인의 옆에 다가와 섰다. 쿵!
케마란이 링스피어로 바닥을 찍으며 무공 시연을 시작했다.
무공 시연은 두 번에 이어서 이어졌다.
휘휘휙!
처음은 원래 케마란이 익히고 있는 링스피어를 이용한 무공이었고, 두 번째는 이틀 동안 이드의 손을 거친 무공이었다. 큰 차이는 없었다. 발과 허리, 손의 위치, 링스피어를 휘두르는 각도 등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번에 알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그 작은 변화가 품고 있는 잠재력의 크기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삼검왕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감탄과 헛웃음을 터트리며 케마란의 링스피어를 관찰했다.
그리고 한참만에 케마란이 링스피어를 다시 등으로 돌렸을 때 페시딘과 마르텔 두 검왕이 작게 박수를 쳤다.
“좋구나, 좋아. 우리 소드 팰러스에 너와 같은 천재가 있는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처럼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다루는 무공을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링스피어라고 한다고?”
•예.”
케마란은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동안 이상한 무기라고 동기들에게는 놀림을, 선배들에게는 못마땅한 시선만 받다가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당연히 기쁘고 지금까지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지금 누구한테 칭찬을 받고 기뻐하는 거람? 저놈들은 존경받는 검왕이 아니라 검후님을 배신한 욕심쟁이 돼지들이라고!’ 케마란은 붕 뜨려는 마음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그러는 중에 삼검왕이 이드에 대해서 물었지만, 다행히 실수 없이 무난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페시딘이 질문을 마친 듯하자 워스가 손을 내밀었다.
“링스피어라고 했던가?”
무기를 보자는 뜻이다.
‘아이씨. 부정 타는 건 아니겠지?”
내키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일. 케마란은 링스피어를 워스에게 건네주고는 이후 이드의 손에 링스피어를 넘겨 링스피어를 정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워스는 링스피어를 찬찬히 살피더니 끝을 잡고 창을 세웠다.
“젊은 시절 한때 창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지.”
말을 마친 워스가 정면을 향해 링스피어를 뻗었다. 빠르지 않고 유연하며 촘촘했다.
슈르르륵-
링스피어가 뱀처럼 꾸물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고, 번뜩이는 칼끝이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자 공기가 쩌억 갈라졌다.
곧기보다는 요사스러워 보이는 링스피어의 모습에 케마란이 부르르 떨었다.
워스가 링스피어를 다시 케마란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하지만 이 무기는 확실히 창과는 다르다. 창보다 은밀하고 날카롭다. 방금 그 한 수가 네가 가야 할 이정표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름이 케마란이라고, 내 기억해 두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생각지 못한 가르침에 케마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뒤돌아섰다.
그러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내 이름을 알아?’
물론 삼검왕이 이름을 알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한 번도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는데 굳이 지금 이름을 확인하고 기억해 두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쩔 줄 몰라 풀렸던 표정을 단단히 한 케마란이 네리베르의 곁으로 가서 섰다.
이어서 네리베르에게도 케마란과 같이 이드와 그 일행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오히려 무공에 관심을 보였던 케마란보다 더 질문이 길었다.
네리베르는 어느 정도 긴장을 푼 듯 조리 있게 말을 했으며, 어릴 때부터 귀족으로 교육을 받아 케마란보다는 좀 더 사람을 보는 눈이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축객령이 떨어졌다.
“너희들의 귀한 생각은 잘 들었다. 이만 나가 봐도 되겠다.”
그 말에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삼검왕과 클라인 백작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그런 두 사람의 뒤로 워스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소드 팰러스가 검을 중시 여겨 주목받지 못했지만 저 아이는 분명 보물과 같은 재능을 가졌소. 어쩌면 소드 팰러스를 더욱 풍성하게 살찌울 아이가 될지 모르지. 허나 그 보물도 잘 가꾸어야 빛을 발할 수 있는 법. 지금과 같은 때에는 저런 보물을 위해서도 소드 팰러스의 단속을 철저히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소, 백작?”
쿠웅.
무겁게 문이 닫혔다.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건물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떨어진 후에야 두 사람의 입술을 비집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멍하니 하늘을 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독한 것!”
“좋겠어요. 보물이라는 칭찬도 듣고.”
“좋기는! 차라리 동기들이라면 몰라도 저 인간들에게 칭찬을 들었는데 어떻게 좋아해?”
케마란은 마치 썩은 맥주라도 뒤집어쓴 듯 얼굴을 구기고 몸을 떨었다. 마음 한편으로 기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네리베르는 그 속을 빤히 안다는 듯 냉정히 말했다.
“유치한 말 말아요. 그들의 행동은 어떠하든 그들의 실력은 최고예요. 그럼 사람들의 눈이 케마란 양의 재능을 인정했어요. 부정하지 말아요.
상대를 싫어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에요.”
・인정! 네 말이 맞다. 그럼 나도 순수하게 기뻐해 볼까? 꺄아악~ 내가 천재래. 보물이래!”
케마란이 양 볼을 감싸고 폴짝폴짝 뛰었다.
네리베르는 그런 바보를 보다 고개를 돌리고 한 발 떨어졌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이.
맘껏 기쁨을 표시한 케마란이 고개를 돌린 네리베르를 보며 물었다.
“근데 네 말대로라면 이제 너도 내 링스피어를 인정한다는 뜻이겠네?”
“그만 돌아가죠. 저희가 오길 기다리고 있으실 거예요.”
네리베르가 말을 듣지 못한 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케마란이 그 옆으로 바짝 붙으며 말했다.
“야야, 대답은 해 줘야지. 너도 인정하는 거지?”
“그전에 당신이 절 독하다고 말한 이유부터 들어 볼까요?”
질문을 질문으로 받은 네리베르였다.
하지만 네리베르의 대답이 없어도 그녀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은 케마란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해. 너 잘났다고!”
•뭐요?”
“네 똥 굵다고!”
케마란의 큰 목소리에 네리베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게 어디 길 한가운데서 꽃 같은 아가씨에게 할 수 있는 소린가.
부웅!
즉각적인 철퇴를 가하기 위해서 네리베르가 케마란의 발목을 노리고 다리를 휘둘렀다.
얼마나 감정이 실렸는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하지만 그 소리 덕분에 적절히 몸을 피한 케마란은 발목을 지킬 수 있었다.
“이씨, 야! 네 똥 굵다는데 왜 지랄이야!”
“……당장 닥치지 못해욧!”
파파팍!
네리베르의 치마가 펄럭이며 반짝이는 구두가 번개처럼 케마란의 복부와 가슴과 인중을 노렸다.
케마란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앞으로 날리며 깔깔거렸다.
“아항. 설마 굵다는 소리에 화난 거야! 그런 거야? 절말 굵은가 보네. 요즘 변비?”
“영원히 닥치세요!”
이후 네리베르의 손발에 진심의 살기가 담겼다.
그 모습을 본 케마란은 선을 넘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놀리지 못하고 죽어라 이드의 방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네리베르에겐 안타깝고 케마란에겐 다행히도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 이드의 방문을 열고 두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설마,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거야?”
옷과 머리가 헝클어진 두 사람의 모습에 이드는 문득 묻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의 기세엔 전투의 살기가 묻어 있지 않았지만, 하고 있는 꼴이 흙과 피만 묻히면 둘도 없는 패잔병의 모습 같아 보여서다.
“…………나중에 두고 봐요!”
“아………하…………하…………하.”
마치 지옥의 악령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에 케마란이 얼어붙은 웃음을 흘렸다.
이래서 적당히가 언제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늦었다. 케마란이 이 위기를 넘길 방법을 궁리하는 사이 네리베르가 순식간에 옷과 머리를 다듬고 치마를 살짝 잡아 올렸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걱정하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세상의 시름을 짊어진 듯 시퍼런 케마란의 얼굴을 봐서는 아닌 것 같지만 이드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별일 아니라면 다행이네.”
이드는 한쪽에 자리를 권했다.
“고생했다. 일은 잘 끝났지?”
“네. 클라인 백작 각하께서 도움을 주셔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한다.
이런 네리베르와 클라인 백작이 있으니 큰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워스라는 작자도 있고 말이야.”
“물론입니다.”
이드의 말을 받아 네리베르가 뱀의 미소를 지었다.
케마란이 그 얼굴에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에단 선배님은 어디 가셨나요?”
“화원에 보냈어. 중요한 일을 좀 시켰지.”
화원이란 말에 네리베르가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