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19화


556화

이드의 말에 네리베르와 케마란의 눈이 반짝였다.

중요한 일이란다. 방금 전 큰일을 치르고 나왔지만 나온 후의 벌렁거리는 심장이 주는 긴장감은 짜릿했다. 딱히 임무도 뭣도 아니었지만 중요한 비밀과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고 뭔가를 한다는 사실에 짜릿한 쾌감이 있었다.

거리를 달리면서 유치한 장난으로 ‘나 잡아 봐’를 시전한 것도 그 흥분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중요한 일이란다.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위험한 임무인가요?”

“오래 걸리는 일인가요?”

두 사람이 말만으로 에단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뭔가 환상이 가득하네.’

모험과 사랑과 위험과 탐험이 가득한 영웅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 같다.

이드는 반짝이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화원에 갔다니까. 저녁에 돌아올 거야.”

“에이…………… 화원에 들렀다가 다른 곳으로 가시는 건가 했더니.”

대놓고 김샜다는 얼굴이다.

정말 에단이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 빠지길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이야기하지 화원에 갔다고 말할 이유가 없지.”

“근데 화원에는 무슨 일로 가셨나요?”

화원이란 단어에 네리베르가 두 배 정도 관심이 커진 상태로 물었다.

“시르피가 실종된 곳을 다시 살펴보러 갔어. 숲 속 집터 기억하지?”

흥미로 반짝이던 네리베르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처참한 그곳의 모습이 기억난 것이다.

“아무것도 없지 않았나요?”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인 백작이 이야기를 듣더니 직접 살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혹시 모르고 지나친 흔적이 있을지 모르니 샅샅이 살펴보겠다면서 에단이 다시 살피게 해 달라고 했거든. 아무래도 그때는 밤이었고, 또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천천히 살피는 것과는 다를 거라면서.” 

“하지만 그날 에단 선배님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케마란이 회의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네리베르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그날은 밤이었어. 작은 돌 한 조각까지 살펴본 건 아니잖아. 백작님 말씀처럼 다시 살펴보면 보지 못했던 단서를 찾을 수도 있어.” 

“나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당장 할 일도 없이 노는 것보다야 작은 단서라도 찾는 쪽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지.”

이드가 에단을 잉여 인력으로 폄하했다.

에단이 들었으면 억울하다고 땅을 칠 일이다.

그에게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꼭 제목과 목적이 정해진 임무만이 일인가?

스스로를 정비하는 것도 일이다. 당장 이드에게 배우고 있는 무공을 좀 더 숙련시키고 하나라도 더 체화시키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이리저리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노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나는 틈틈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이나 잠자는 시간을 줄인 방 안에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에단이었다.

도대체 무인에게 무공을 수련하는 일보다 주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이드의 발언은 무림을 백수의 천국으로 호도하는 위험한 발언이다. 전 무림인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케마란은 두 사람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 문득 아까부터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했던 라미아의 행방에 생각이 미쳤다.

“라미아가 보이지 않는데, 선배님과 함께 있는 건가요?”

“그렇지. 에단 혼자서는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으니까. 혹시 마법이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지금쯤 라미아에게 쪼이고 있을 에단을 생각하며 이드가 피식 웃었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 볼까? 삼검왕을 직접 보니 어때?”

네리베르가 먼저 말했다.

“검후님을 배신했으면서 저희들 앞에서는 친절하고 인자한 모습을 연기하는 모습이 징그러웠어요. 제겐 기사가 아니라 노회한 정치가처럼 보였어요.”

“음………… 전 그분들을 직접 보니까 더 잘 모르겠어요.”

네리베르의 칼 같은 평가에 반해 케마란은 애매한 표정으로 판단을 미뤘다.

“케마란 양은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삼검왕이 보물이라고 칭찬을 몰아주었거든요. 일종의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네리베르가 조롱기 가득한 눈으로 말꼬리를 잡았다.

이드가 보물이란 말에 관심을 보였다.

“보물은 무슨 말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잖아요. 그 삼검왕이 천재라고 말했는데.”

네리베르는 그녀를 제지하려는 케마란을 싹 무시하고는 삼검왕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케마란은 조마조마했다. 네리베르의 충고에 당당한 마음인 한편 그녀의 농담에 눈치가 보였다. 누가 뭐래도 삼검왕은 그들의 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찬찬히 이야기를 듣고는 살살 눈치를 보는 케마란의 모습에 슬쩍 일리나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런, 일리나. 어쩌죠? 아무래도 여기 케마란 양이 그 칭찬에 홀딱 넘어가서 삼검왕의 편에 설 것 같은데.”

“마, 마스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농담인 걸 알면서도 케마란은 당황했다.

“아, 마스터 말고 원래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어기고. 어쩌면 나에 대한 일도 모두 말해 버린………… 아악! 일리나, 아파요!”

능청스럽게 충격받은 듯 고개를 돌리던 이드의 옆구리를 일리나가 단단히 잡고 비틀었다.

팽팽하고 단단해서 남은 살을 잡기도 쉽지 않은 이드의 복근이지만 여인의 꼬집기 스킬은 특별했다.

일리나는 호들갑을 떠는 이드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런 악질적인 장난은 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케마란 양도 조심하세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최근은 너무 풀어진 것 같아요. 계속 그와 같은 모습이라면 이드의 농담처럼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네에~”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따끔한 일리나의 말에 케마란과 이드가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보니 말썽쟁이 꼬맹이들 같다.

하지만 이드는 몰라도 케마란은 정말 느끼는 바가 컸다.

‘확실히 요즘 너무 풀어져 있었어. 마인드 마스터를 직접 만나고 앙숙과도 사이가 좋아지고, 엄청난 사건에 껴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뜬 감이 있어’

그전에는 험한 생활의 기억도 한몫을 했지만 링스피어를 고집하면서 주변에 적이 많아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조심히 마음을 단속하겠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너무 여유가 없어도 좋지 않아요. 균형이 중요한 거니까. 케마란 양이 스스로 본인의 상태를 알았다면 아마 실수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어요.”

일리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케마란 앞으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밀어 주었다.

‘음. 어쩐지 라미아가 없으면 일리나가 깐깐해진단 말이야.’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이드다.

이드는 꼬집힌 옆구리를 살살 문지르면서 물었다.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어? 가령 워스라는 사람 관련으로.”

없을 수가 없다.

두 사람에게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 바로 워스였다.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서로 앞으로 나서며 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연륜에서 밀려 그 속을 읽기 힘든 두 검왕과 달리 행동으로 보여 준 워스에 대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이정표라……………..”

“그런데요, 마스터.”

“누구?”

케마란의 말에 이드가 누굴 부른 거냐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런데요, 이드 님!”

“말해.”

“그분이 말했던 이정표가 정확한 건가요?”

아무래도 숨겨진 비사를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드는 케마란의 마음을 헤아렸다.

‘철벽의 검왕이 보여 준 한 수가 마음을 두드린 모양이네. 그렇지 않다면 묻지도 않았겠지.’

이드는 간단히 답했다.

“네 목표가 그 이정표 뒤에 있다면 정확한 이정표가 되겠지?”

“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이 세상에 이정표는 많아. 특히 도시의 복잡한 거리에 가면 특히 더 많지. 창을 배우는 사람은 복잡한 도시 번화가에 서 있는 것과 같아. 그보다 먼저 가는 사람의 단순한 찌르기, 치기, 튕기기 등의 창법이 모두 이정표가 될 테니까. 그렇게 번화가를 정신없이 돌다가 외곽으로 빠지면 이정표는 줄어들어 길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여기서부터는 목적지가 중요해. 목적을 정하고 나면 그곳으로 가는 수많은 길이 보이지. 그 앞에도 이정표가 있어. 워스가 보여 준 이정표도 그중 하나야. 그런데 살다 보면 사람이 꼭 이 이정표만 보고 움직일 수는 없단 말이지. 옆길로 새기도 하고, 가다가 목적지가 바뀌기도 해. 특히나 너의 링스피어처럼 목표가 성 밖에 있는 경우에는 성 안의 이정표는 정확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

눈썹을 찡그리고 듣고 있던 케마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틀렸단 말씀이세요?”

“아니, 목표를 확실히 하란 말이야. 워스가 네게 보여 준 건 그가 보는 링스피어의 목표야. 그 이정표를 따라가면 딱 그가 보는 목표점까지 도착하게 되겠지.”

도착이란 말이 한계라는 말과 같아지는 순간이다.

“무시하란 말씀이네요.”

“정확히는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부분만 흡수하란 말이지.”

케마란은 이드의 말에 끙끙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워스의 한 수가 그림처럼 박혀 있었다. 그저 그 한 수를 목표로 따라 하기도 벅찼다. 그 속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낸 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한 수에는 자신에게 모자란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네리베르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당신은 무공은 모르겠지만 머리는 확실히 천재가 아니에요.”

“……………마스터 앞에서 시비야?”

“봐요, 마스터가 아니라 이드 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셨는데 또 마스터라고 하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고민도 그래요. 모르겠으면 이드 님께 물으세요. 왜 혼자 고민하죠? 해결할 수도 없으면서.”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이드는 먹이를 바라는 강아지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케마란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이드 님! 그럼 바로!”

“아, 오늘은 안 돼!”

이드는 당장 연무장으로 달려가자는 표정의 케마란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가.”

케마란이 주저앉았다. 여러 의미로 불타던 의욕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다른 일정이 있으신가요?”

네리베르가 호기심에 물었다. 이드의 일정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드 팰러스의 생활에 제약이 있는 이드의 활동 반경은 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희가 삼검왕과 만나는 일도 끝났으니 지금부터 집을 구하러 나가 볼 생각이야.”

“……집이요?”

“응.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 수는 없잖아. 자고로 집은 내 맘에 드는 마음 편한 곳이어야지. 이런 노골적인 감시가 이루어지는 곳 말고.” 

말은 맞는 말이다.

“허가는 받으셨어요? 아무래도 아직 이드 님에 대한 확답이 발표되지 않았는데요.”

“클라인 백작과 이야기했지. 당장 백작과 편하게 보기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동의하던데?”

“제가 한 곳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네리베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음? 추천할 만한 곳이 있어?”

“네. 조금…….”

한숨을 쉬며 망설이던 네리베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싸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