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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6화


453화

대장은 ‘이놈이 지금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에단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늘이 부서진다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다. 오죽하면 세상이 멸망할 때를 빗대어 ‘하늘이 부서진다.’라고 말할까.

그런데 다른 때도 아닌 임무 수행 중에 에단이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장이 에단과 함께 작전을 진행하고, 임무를 수행한 것이 칠 년이다. 수년 전 처음 그가 능력을 각성할 때도 함께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의 눈에는 세상이 오만 가지 색깔로 나뉘어져 보인다는, 뜬구름 잡는 헛소리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에단 스스로도 그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도 하늘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못했다. 하늘은 그냥 하늘이었다.

무엇보다 임무를 수행 중일 때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에단은 그의 능력과 관련해서는 절대 농담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말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정말 하늘에 이상이 있다는 말일까.

대장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평소와 같이 푸르기만 하다. 그 속에 세상이 멸망할 징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야, 이 새끼야. 헛소리하지 말고 다시 잘 봐. 말짱하잖아. 정신 차리고 다시 잘 보라고.”

하지만 에단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쌓은 실적이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가 처음 능력을 가지고 헤매던 때처럼 처음으로 겪는 현상이라는 말이 아닐까. 대장은 그쪽으로 무게를 두고 소리쳤다.

“전 말짱해요. 내 눈깔은 맛이 갔을지도 모르겠는데, 제 정신은 말짱하다고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하늘은 부서져서 떨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빌어먹을. 나도 내 눈을 못 믿겠다고요!”

에단의 목소리는 차라리 절박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렇게 성능 좋던 눈깔이 갑자기 고장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단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에 가장 부합되는 상황은 무엇일까. 대장은 빠르게 여러 가능성들을 계산하고는 입을 열었다.

“범위 마법일 가능성이 있다. 대(對)마법 방어 태세. 에단은 마법 착탄 타이밍을 계산해라!”

“옛!”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은 어느새 없어졌다.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짧은 대답과 함께 수없이 연습했던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장과 에단을 중심에 둔 원형진이었다. 그 속에서 에단이 날카롭게 외쳤다. 그도 대장의 말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옵니다. 셋! 둘! 하나! 충돌!”

“으아압!!”

찌지지직!

기합 소리와 함께 마법이 담긴 스크롤들이 찢어졌다. 각자의 무기에서 솟은 기운과 십여 종의 마법들이 대원들의 모습을 가리며 그들을 보호했다. 어떤 공격에서도 그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대원들과 대장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당했다!’

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그는 세상과 자신이 분리되어 혼자가 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는 인식하지 못한 마법의 영향일 것이다. 대장의 머릿속으로 각종 마법에 따른 효과들이 바람과 같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잠시 동안 기다려도 그가 알고 있는 어떤 마법적 효과도 발생하지 않았다.

“1열부터 보고.”

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열 검벽. 이상 없습니다.”

“2열 4층 중첩 실드 강제 해제되었습니다.”

“3열 3층 중첩 실드 이상 없습니다.”

“4열 안티 매직 준비 중입니다.”

‘확실히 뭔가 있었다.’

그 순간의 감각 외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이상하긴 했지만 확실히 무언가 있었다. 그 증거로 2열의 실드 마법이 지워졌다. 3열의 실드는 2열의 마법이 버티지 못할 경우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은 실드의 덕분일까. 일단 상황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스크롤이 아깝기는 하지만 대장은 실드를 해지시키고 에단을 불렀다. 실드가 해지되는 순간 단절되었던 외부와 다시 이어지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세상에서 떨어져나간 듯한 묘한 감각의 반동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자세히 살펴라.”

끄덕.

대장의 말을 들은 에단은 옆에 있는 나무를 기어 올라갔다. 보통 때라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상에 있겠지만 지금은 분명 공격을 받고 있으면서 정보가 너무 없었다.

“하늘, 땅, 동, 서, 남 이상 무. 대신 북쪽에서 회색 안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회색 안개는 시온에서만 생기는 대표적인 기현상 중 하나다. 시온에 진입한 첫날 이미 겪어 본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상태는?”

“미약한 마나가 안개에 섞여 있습니다. 위험도 레드입니다.”

에단의 간파의 눈이 전하는 위험도는 안전을 의미하는 그린, 주의할 것을 나타내는 옐로우, 그리고 위험을 뜻하는 레드의 세 단계로 나눠진다. 앞서 첫날 겪었던 회색 안개의 위험도는 그린이었다.

대장이 에단을 나무에서 내리고 대원들에게 주의시켰다. 에단의 위험도는 대부분 직접적인 위험을 뜻한다. 다른 말로는 피를 볼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는 대원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동적으로 각자 방어구와 검을 다시 살피고 급히 사용할 수 있도록 포션을 준비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저 앞까지 다가온 진한 회색 안개에 하늘이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회색으로 변해 버린 숲 속에서 극도로 흥분한 몬스터의 괴성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상부에서는 단순한 소문이라고 결론 내렸던 ‘회색 안개가 생겼을 때 몬스터들이 더욱 흉폭하게 날뛴다’는 말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이번 임무에 이런 내용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그러게 제가 시온은 들어가지 말자고 했잖습니까.”

에단과 대장이 이제 막 자신들을 덮치는 회색 안개를 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곧 그들의 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일리나가 안내한 곳에서 거창하게 도시락을 까먹으려던 이드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크게 놀랐다. 마법적인 현상에 라미아가 가장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차원 진동이에요!]

라미아가 소리쳤다. 동시에 이어진 고속 스펠을 따라 다중 실드 마법이 펼쳐져 일행들을 보호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일리나, 다친 아이들은 없죠?”

라미아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이드도 긴장하고서 만약의 사태를 경계했다.

“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괜찮아요.”

[원인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단 차원 진동 자체는 지나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대답에 이드는 일단 안심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당장에 큰 피해가 생기지는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놀란 아이들이 일리나와 채이나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고, 라미아가 꺼내 놓은 요리와 접시들이 사방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짧은 피크닉은 이걸로 끝내야 할 것 같다.

“외부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아. 일단 마법은 해지하고, 마을로 돌아가자.”

이드는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말에 일리나와 채이나가 아이들을 다독였다. 라미아가 마법을 해지하고 나뒹굴고 있는 접시와 음식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라미아, 이번 차원 진동이 혹시 인공적인 걸까?”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문제긴 하지만, 인공적인 차원 진동이 푸른 나무 마을에 일어났다면 그것 역시 문제였다. 그건 어떤 목적을 가진 공격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확답할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생각해요. 차원 진동은 세상을 구성하는 시공간의 기본 골자가 가지는 조성이 무너졌을 때 일어나는데, 이걸 일부러 유도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무엇보다 인공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요.]

차원 진동은 라미아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발생했다. 그 광대한 범위를 마법으로, 그것도 어렵고 돈 많이 들기로 유명한 공간 마법으로 커버하려면 얼마나 준비를 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만한 준비는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이라도 힘들지 않을까.

그래도 일단 누군가의 공격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 이드였다. 그때 일리나와 채이나가 아이들을 챙겨 손을 잡고 다가왔다.

“준비 끝났다. 빨리 가자. 마을에도 큰일이 벌어졌을 거야. 순간이지만, 결계가 사라졌었으니까.”

채이나의 얼굴은 평소의 능글맞은 여유는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건 옆에 있는 일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드는 일리나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안심시켰다.

“걱정 말아요, 일리나. 정말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마을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고마워요.”

하지만 이드의 말은 너무 이른 낙관이었던 모양이다.

푸하악!

일리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바람이 가득 든 가죽 포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파도가 덮치듯이 광폭하고 음산한 마나가 모두를 휘감고 지나갔다. 그것은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소름 끼치는 묘한 느낌이었다.

특히 마나에 민감한 엘프의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런, 봉인이 라미아!”

이드는 저 앞에 보이는 봉인지의 두 거목이 거대한 공장의 굴뚝이라도 된 것처럼 회색의 안개를 뿜어내는 모습에 기겁을 했다. 왜 봉인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봉인과 이어진 마을의 결계가 순간이지만 사라졌는데, 왜 봉인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을까. 이드는 바보 같은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치고 말았다.

[봉인이 완전히 깨어진 건 아니에요. 여기, 일라이져요!]

이드는 공간을 열고 빼꼼히 모습을 보이는 일라이져를 낚아채고는 일리나와 채이나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먼저 돌아가요. 저와 라미아는 봉인을 확인할게요. 일단 장로님께도 전해 줘요.”

“조심해요. 이드, 라미아.”

“걱정 말아요.”

이드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일리나에게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봉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뒤를 라미아가 마법을 뿌리며 이드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일단 아이들은 진정시켜 둘게요. 대지의 자비(mercy of earth)!]

순식간에 멀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시동어가 작게 들려왔다. 그러자 대지로부터 포근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땅의 기운이 솟아올라 놀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 주었고, 아이들은 금방 울음을 그쳤다.

“빨리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알지? 장난치지 말고 이리 모여. 일리나는 이드에게 가 봐요.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채이나는 아이들을 모으고는 일리나에게 말했다. 마을은 바로 앞이다. 일리나가 없어도 마을로 돌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일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갔다가 다시 올 생각이었다. 비상 상황인 만큼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일리나의 말에 채이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들을 이끌고 앞서 달렸다. 그 뒤를 아이들과 일리나가 뒤따랐다. 일리나는 한 번 더 이드가 달려간 곳을 바라보았다.

‘금방 돌아올게요. 이번엔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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