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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18화


655화

쿠르르릉.

도끼가 대기를 부수며 떨어져 내렸다.

‘이 멍청한 인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 찰나의 순간 이드는 장비처럼 무서운 얼굴을 한 빌런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생각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자신에게 도끼를 휘두르는 것일까?

블러디 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마르텔이 자신에게 졌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나 싶었다. 아니면, 자신이 마르텔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무엇보다 두꺼운 도끼날에 숨은 살기가 거슬렸다.

이드는 이 행동이 단순히 힘을 숭상하는 무사의 시험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이드로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짓이었다. 이드는 이와 같은 짓을 약자가 강자에게 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빌런에게 알려 주고 싶었지만, 쉴라의 얼굴을 보아 딱 한 번만 참아 주기로 했다.

‘일단 이 무식한 도끼질부터 처리하고…………….’

생각과 동시에 이드의 어깨와 양 발끝이 움직였다. 두 발에서 시작된 장경의 파동으로 빌런의 중심을 흔들고 타격점에서 비켜난 도끼날을 어깨 중심으로 풀어 낸 화경으로 비켜 흘렸다. 무지막지한 폭력을 오롯이 비껴 낸 이드가 머리카락 한 올 날리지 않으며 태평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이 엉성한 도끼질을 닮은 대가리에 예의를 박아 넣는 게 어때?”

“죽어! 이 새끼야.”

경고를 가장한 이드의 도발에 빌런이 즉각 반응했다.

이드가 비껴 낸 도끼가 바닥에 박히기 직전 멈추고, 응축한 힘으로 몸을 떨어 그림자로 이드를 옥죄어 압박했다. 동시에 또 하나의 도끼가 귀신처럼 이드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피할 길을 차단하고 적의 목을 치는 빌런이 자랑하는 기술, 처형인의 도끼!

그러나………………

“격하의 상대에게나 통하는 어중간한 수법.”

불쑥.

이드의 말과 함께 그의 주먹이 도끼의 벽을 뚫고 유령의 손처럼 튀어나왔다.

이드가 도끼의 벽을 부수고 나갈 때만을 대비하고 있던 빌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어떻게!”

“멍청하기는. 도끼보다 손이 빠른 거야 당연한 거지.”

물론,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차이가 더 크긴 하지만 말이야. 싸늘한 이드의 비웃음과 함께 빼곡히 막아선 도끼의 그림자를 타고 넘은 이드의 주먹이 느긋하게 빌런의 가슴에 닿았다.

“이익!”

빌런이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빤히 보이는 이드의 팔을 도끼로 자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떠엉!

결국 이드의 주먹이 빌런의 가슴에 닿으며 거대한 종소리가 울렸다.

“컥!”

빌런은 머리에서 발끝을 관통하는 거대한 울림에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공기마저 토해 내며, 종을 치는 당목에 치인 것처럼 튕겨나 바닥을 굴렀다. 

‘……강하다.’

카일란은꼴사나운 모습으로 컥컥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빌런을 확인하고 혀를 내둘렀다.

블러디 혼을 꺾은 이드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빌런이 땅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동시에 지금까지 들려온 이드의 소문과 실력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드에 대한 인식이 순식간에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무의식중에 허공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빌런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검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곧 자신이 빈손으로 화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뿔싸 하는 느낌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설마 화원에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예상치 못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순간에 빌런이 이때를 노리고 무기를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 버렸다.

자신이나 라발과 마찬가지로 빌런과 모이엔도 쉴라의 말을 듣고서야 이드의 등장을 알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만큼 자신이 정신이 없었다는 증거였다.

부하들로부터 엉덩이가 너무 무겁다고 평가를 받는 자신답지 않게 방정맞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리도 아니지. 과연 이드가 오색 기사단장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부르르.

처음 이드가 소드 팰러스에 왔을 때와는 달랐다. 수련생을 받고 블러디 혼을 쓰러트리며 명성이 높아진 지금의 이드가 죽게 된다면 소드 팰러스가 반으로 나뉘는 것 이상의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드가 빌런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시에 이드를 공격했던 빌런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불끈 솟아올랐다. 마침 이드를 노려보며 다시 도끼를 드는 빌런의 모습이 보였다.

‘멍청한 이자는 바닥을 구르고도 상대가 얼마큼 강자인지도 모른단 말인가!’

카일란이 탓하는 투로 빌런의 행동을 막으려 했다.

“멈추게. 빌런 단……………”

빠악!

하지만 그의 말보다 빠르게 빌런을 막아선 주먹이 있었다. 바로 라발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한발 빠르게 나선 그가 빌런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다. 평소 기사도를 중시하는 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카일란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크윽! 이게 지금 무슨 미친 짓이오, 라발 단장!”

“그건 내가 할 말이오. 빌런 단장.”

라발이 빌런 못지않게 화난 얼굴로 말했다.

“방금 당신의 행동은 오색 기사단의 이름을 더럽히는 무도한 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 삼류 용병이나 하는 기습을 하다니!”

“고작 그따위 일로 날 쳤단 말이오?”

빌런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라발과 딱 붙어 서서 으르렁거렸다.

“기사도를 수호하는 오색 기사단의 단장으로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소?”

으드득.

과연 빌런도 정론에는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감히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놈.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한참 라발을 노려보던 빌런이 주변을 살피더니 획 돌아섰다.

“나는 도저히 더 이상 이곳에 있지 못하겠으니 돌아가겠소. 뒤는 모이엔 단장에게 부탁드리오.”

모이엔과 의미 있는 눈짓을 주고받은 빌런이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다 다시 이드를 돌아보았다.

‘오호. 역시나.’

이드는 방금 전까지 성난 멧돼지처럼 날뛰던 인물의 눈이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에 역시 그의 공격이 목적이 있는 행동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마, 저자와 미리 계획한 거겠지.’

의미심장하게 모이엔을 바라보던 빌런을 떠올린 이드는 그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의외였을까.

번뜩이던 눈을 차갑게 가라앉힌 빌런이 라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 기사도에 대한 가르침은 조만간 보답하도록 하겠소.”

“언제든.”

명예 회복의 일전을 뜻하는 빌런의 말에 라발이 가볍게 답했다. 그 가벼움이 지하실을 떠나는 빌런의 자존심을 다시 긁었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빌런을 대신해 모이엔이 라발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휴. 다행히 잘 넘어갔구나.”

쉴라는 빌런이 사라지며 상황이 일단락되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설마 빌런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날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앞에 있던 것이 이드였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과연 이것이 마인드 마스터의 실력이란 것인가?”

이전에도 블러디 혼을 꺾을 정도인 이드의 실력이 심상치 않단 것은 알았지만, 마인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듣고 난 이후라 그런지 단순한 동작 하나하나가 더 뛰어나 보였다.

그리고 이런 이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고 있는 수련생들이 부러워졌다. 과연 수련생들이 자신들의 선생이 마인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마인드 마스터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고 싶은데 당분간 스폴 경 대신 내가 수업에 나가 볼까?’

평소 신중히 움직이는 그녀답지 않게 강한 충동에 흔들리는 쉴라였다.

이드가 알았다면 질겁해서 말릴 일이었다. 그녀가 이드의 수업에 나온다면 또 한 번 저택 앞이 수업 신청자로 인해 홍역을 치러야 할 테니까. “이제 귀한 포로에게 위해를 줄 것 같은 분도 사라졌으니 가까이 오셔서 포로를 확인하시죠.”

이런 쉴라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이드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 황색 기사단장을 ‘포로에게 위해를 줄 것 같은 분’ 정도로 정리해 버리는 이드의 말에 카일란이 혀를 내둘렀다.

“자네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참으로 대단한 실력이지 않은가.”

이드는 옆으로 다가온 라발의 말에 미소로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보다 저 때문에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자네 때문이 아니네. 그런 기습은 기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나섰을 뿐이야.”

과연 그렇다고 해서 주먹을 날리는 게 당연한 반응일까?

“그래도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만큼 이후에 이번 일과 관련해서 제가 도울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하하하, 고마운 말이지만 그럴 일은 없네. 이건 기사도에 따른 기사의 일이니까.”

이드는 단호히 선을 긋는 라발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사이 빌런을 제외한 네 명의 단장들이 침상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스폴이 기다렸다는 듯 하얀 천을 걷으며 뒤로 물러났다.

“음・・・・・・ 과연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한순간 강해진 피비린내에 라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신관을 불러 치료하지 않은 것이요?”

“이자의 자살을 막은 마법사의 말에 따르면 자살 시도가 완전히 제어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신관의 치료는 이후로 미루기를 요청했습니다.” 

“단순한 독은 아닌 모양이군요.”

“그의 말로는 독이 아닌 제3의 형태라고 합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다른 초인의 초인기가 관여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과연 예사롭지 않구려.”

그때, 가까이서 거한을 살피던 모이엔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정말 이자가 기사 단장급의 강자라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쇳가루를 조종하는 초인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였습니다.”

“흠, 확실히 특이한 형태군요.”

모이엔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한의 몸에 손을 댔다.

“과연 이자에게 그런 힘이 있을지…….”

“살짝 내공을 주입해 보시면 반응이 있을 겁니다.”

“음?”

갑자기 들려온 이드의 말에 모이엔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먼저 들어와 확인해 보니, 자살 시도 때문인지 이자의 초인력이 제어를 잃고 신체에 떠 있더군요. 살짝 자극하면 반응이 있을 겁니다.” 

“……”

이드는 자신의 말에 대답이 없는 모이엔을 보며 재촉하듯 손을 들어 보였다.

모이엔은 빌런과의 일 때문인지 묘한 눈으로 이드를 바라보다 기습적으로 거한의 몸에 내공을 뿜었다.

쿠루루룩.

다음 순간, 외부에서 침입한 기운에 반응하듯 거한의 전신으로 바람과 같은 형태의 기운이 뿜어지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옷과 머리카락을 날렸다.

아무런 의지도 닿지 않은 순수한 기운이 강하게 뿜어진 것이다.

“과연.”

모이엔은 자신을 스치고 가는 기운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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