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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31화


668화

늦은 오후, 비올라를 통해 에단이 연락을 해 왔다. 이드는 라미아를 통해 그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럼 계획했던 대로 놈들이 제대로 미끼를 물었단 말이네?”

[어느 선까지 끌어 줄지 모르지만 일단은 성공한 것 같아요.]

라미아가 조심스레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풀리면 좋은데 말이야. 추적에 조심하라고는 했어?”

[에단이라면 스스로 잘 챙길 테지만, 일단 말은 해 뒀어요.]

이드도 그 말에 동감이기는 하지만, 이전 기혈이 상하면서도 마르텔을 막아섰던 일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했어. 그런데 그 두 사람, 잘 지내는 것 같아? 같이 보내기는 했지만 불안했는데.”

[그럼 같이 보내지 말지. 왜 보내셨어요?]

“아무래도 불안 요소가 있으니까?”

이드는 스스로 말해 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인력을 흡수하는 에단이 걱정되어 비올라의 동행을 허락했지만, 그가 있다고 에단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올라가 옆에 있으면서 방해하거나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이건 불안 요소의 해소라기보다는 오히려 추가된 상황에 가깝다.

“음….. 괜히 보낸 걸까?”

같이 보낼 때는 잘한 일 같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이드가 줏대 없이 흔들리자 라미아가 가볍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고민할 필요 없어요. 에단의 보고로는 문제없이 잘 지내는 것 같으니까요. 지금도 에단의 몸에서 일어난 일을 밝히겠다고 연구하느라 정신없대요. 무엇보다 비올라가 사리 분별 못 하는 애송이도 아닌데, 어련히 잘하겠죠.]

“역시 그렇지? 아, 혹시 코어 이야기는 했어?”

이드는 연구라는 말에 비올라가 저택을 떠나기 직전까지 바이트 타블렛을 붙들고 있던 사실이 떠올라 질문했지만, 라미아는 그 말에 질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바보예요? 그 이야기를 하게? 비올라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무슨 일을 하고 있건 모두 때려치우고 당장 달려오겠다고 난리를 칠 거라고요.]

오히려 난리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이드도 끝없는 비올라의 연구 욕심을 생각하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은밀하게 적을 추적하고 있는 중에 저택으로 복귀하겠다고 뛰쳐나오며 초인들의 이목을 단숨에 끄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멍청한 상황이지만, 코어의 추출과 에고 각성이라는 소식에 흥분한 비올라라면 충분히 일으킬 수 있는 사고이기도 했다.

본래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던가.

스스로 천재라고 자신하는 비올라도 연구 욕심 앞에서는 철저한 바보가 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생명의 관에서 처음 만난 그 급박한 순간에서도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보이지 않았던가!

“잘했어. 난 혹시나 이야기했을까 봐 걱정돼서.”

[비올라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리지 않을 거예요.]

라미아가 입에 지퍼를 채우듯 꼬깃꼬깃 접은 날개로 입 앞을 그어 보이며 이야기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절대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비올라를 확실히 잡아 둘 좋은 미끼이기도 했다. 단순히 바이트 타블렛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서 분리되어 에고를 각성한 코어라니!

그런 연구 과제를 두고 비올라가 다시 미완의 마탑으로 복귀하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링스피어에 박힌 에고는 아직이야?”

[다시 깨어나려면 며칠 시간이 걸릴 거예요.]

“음, 확실히 그만큼 두드려 맞았으니 충격이 작지는 않겠지?”

이드는 라미아가 연결해 둔 장치를 통해 케마란이 에고를 하룻밤 꼬박 불로 달구고, 망치로 두드렸던 장면을 떠올렸다. 에고는 그녀의 망치 아래서 현실에 있던 링스피어와 똑같은 형상으로 변하며 완성되었다.

케마란의 바람대로 에고 링스피어가 완성된 것이다. 에고가 링스피어와 하나가 되며 현실로 튕겨 나온 케마란은 몽롱한 중에도 에고가 완성되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쓰러졌다. 그녀는 꼬박 하루를 깨지 않고 잠들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링스피어의 에고 역시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온전히 하나로 녹아 일체화하는 안정화에 시간이 좀 걸리는 거죠. 다른 문제는 없어요.]

“그거야 나도 알지. 문제는 늦게 깨어나면 그놈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거잖아.”

이드는 링스피어에 박힌 코어의 에고로 인해 일에서 멀리 떼어 놓으려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옆에 두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미 링스피어를 통해 코어와 연결된 케마란을 홀로 두었다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위험한 일을 당하느니 일찌감치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이번 황궁에 그녀들과 함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모자란 점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황궁행에서 이어질 토벌이 문제였다. 아직 사람과의 실전을 겪지 않은 그녀들에게 토벌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 분명했다.

이드는 그때를 대비해서 그녀들에게 짧은 시간이라도 준비할 시간을 줄 생각이었다. 자연 링스피어 역시 그녀의 옆에 머무르게 되고, 이드와는 떨어지게 될 것이다.

즉, 에고가 늦게 깨어나면 황궁으로 떠나는 이드는 에고가 가진 정보를 직접 접할 수 없게 된다.

[떠날 날짜 정했어요?]

“응. 자자수 영지의 초인들이 움직였다고 하니까 우리도 자리를 비워 줘야지. 그래야 물고기들도 맘 편하게 미끼를 향해 달려들지 않겠어?” 라미아는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원의 지하실에 준비된 미끼를 노리는 자들에게 이드는 여러모로 껄끄러운 존재인 것이 확실하니까. 더구나 이드가 삼검왕의 제의를 거절하고 황궁으로 가겠다는 뜻을 슬쩍 비쳤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드가 빨리 떠나기만을 눈을 번뜩이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뭐, 에고가 가진 정보를 취합하는 일은 클라인 백작과 쉴라 경에게 맡겨야지. 참, 이럴 게 아니라 에단이 전한 소식도 알려 줘야지.”

에단의 보고는 자자수 영지에 있는 초인파의 지부에 대한 습격을 계획하고 있는 쉴라에게 꼭 필요한 정보였다.

“제가 쉴라 경께 전하고 오겠습니다.”

한쪽에서 조용히 빵을 씹고 있던 록이 자신이 나설 때라는 듯 말했다.

“아니. 쉴라 경에게는 라미아가 가 보고, 록은 황궁에서 나온 자작을 찾아가 봐.”

“벤 벨튼 자작님 말씀입니까?”

“그래. 내가 황궁에 가기로 정했으니 내일 잠깐 보자고 전해 줘.”

“그 말을 들으면 자작이 매우 기뻐할 겁니다. 수련생들에게도 내일 알리실 겁니까?”

“그래야지. 어차피 자작을 만나고 나면 소문이 날 텐데, 자신들과도 관련된 일을 소문으로 듣게 할 순 없지.”

록은 수련생들을 생각한 이드의 말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자작을 만나기 위해 록은 서둘러 저택을 나섰다.

그 뒤를 이어 라미아도 화원으로 날아갔다.

이드가 잡을 사이도 없이 후다닥 사라진 두 사람의 빈자리를 보다 스푼을 입에 물었다.

“남은 식사나 마저 하고 가지. 뭐 급한 일이라고. 일리나, 우린 식사나 마저 할까요? 이 빵 좀 먹어 봐요. 오늘은 유독 맛있는 것 같으니까.” 

“고마워요.”

순식간에 단둘이 되어 버린 상황을 떠올린 이드가 일리나의 입에 직접 빵 한 조각을 넣어 주었다. 에단이 보고를 한 때가 마침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고소한 빵보다 더 달콤한 분위기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정리했을 즈음 화원을 향해 날아갔던 라미아가 돌아왔다.

홀로 나섰던 그녀는 쉴라를 데리고 돌아왔다. 에단의 보고를 전했지만 쉴라가 개인적으로 이드를 만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내일 찾아오셔도 될 텐데요.”

이드는 정말 급하게 라미아를 따라온 듯 파츠 아머도 하나 없이 간소한 복장으로 나타난 쉴라를 보며 말했다. 긴 머리를 말아 올리고 바지를 걸친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게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은색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단장이 아닌 쉴라 이마큘리라는 개인의 신분이라는 느낌이었다.

“내일부터는 따로 만날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서요.”

라미아를 통해 벤 자작과의 만남도 전해진 듯 쉴라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스폴 경에게 대신 부탁해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제가 직접 전하고 싶어서 허락도 구하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허락이라니. 그런 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쉴라 경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혹시 용건이란 게 팔에 들고 있는 그것 때문인가요?”

이드는 쉴라가 들어올 때부터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던 물건을 힐끔 보며 말했다. 하얀 천에 돌돌 말린 그것은 쉴라의 봉긋한 가슴 사이에 안겨 있어서 손으로 가리켜 보이기에는 여간 애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신경 쓴 것은 이드뿐인 듯, 쉴라는 오히려 기쁘다는 듯 물건을 한 번 꼭 끌어안고는 이드에게 내밀었다.

그런 쉴라의 얼굴에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이 한가득 떠올라 있었다.

“네. 이드 님이 꼭 받아 주셨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져왔습니다.”

“검?”

두 손에 올려진 길쭉한 물건을 가늠한 이드가 묻자 쉴라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이드는 그녀의 반응에 슬쩍 턱을 문질렀다.

이미 일라이져라는 훌륭한 검이 있는 이드에게 다른 무기가 필요할 턱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굳이 다른 검을 가져온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이라면 일라이져가 있는데…….”

쓸모와 상관없이 풀어 보지도 않고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검을 받아 든 이드가 돌돌 말린 천을 풀었다.

천안에서 나온 것은 검은색 망치와 검이 교차한 모양이 새겨져 있는 담백한 형태의 롱소드였다. 

“호오.”

검을 본 이드가 작게 감탄했다.

평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검이라는 무기로서 완벽히 균형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천생 무인인 이드는 좀 전 일라이져가 있어 다른 검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멀리 던져 버리고 생일 선물을 풀어 보는 아이의 심정으로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우후후.”

솜털이 곤두서는 섬뜩한 소리에 이드의 입에서 웃음 섞인 감탄성이 샜다. 검집에서 뽑힌 검신은 한 점 흐트러지지 않고 고르게 은빛으로 번뜩였다. 

“과연 쉴라 경이 가져올 만큼 좋은 검입니다.”

비록 마법 검은 물론 보검으로 치기에도 모자란 검이지만, ‘무기로서의 검’이 가져야 할 기본기에 철저할 정도로 충실했다. 분명 무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좋은 검임이 확실했다.

검에 대한 칭찬이 기쁜 건지, 이드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해서 기쁜 건지 쉴라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흑색 대장간의 카일란 단장님의 최근 작품입니다. 반대편 검 면에 보시면 사인이 새겨져 있지요.”

과연 검면 한쪽에 유려한 필기체로 ‘흑색 대장간 카일란’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흑색 대장간의 검이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좋다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 검집에 새겨진 문장이 흑색 대장간의 것인 모양이죠?”

“네. 특히 카일란 단장님의 검은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지요. 황궁에 가게 되면 검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즉, 날파리 퇴치용이라는 말?”

“그런 뜻도 없잖아 있으나, 그보다는 온전히 검으로써 이드 님께서 써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일라이져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엥?”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흥분해서 치고 들어온 쉴라의 모습에 이드는 살짝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비록 신검이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 사용된 일라이져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보물을 이 이상 전투에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 그래서 일라이져가 쉴 수 있도록 카일론 단장님의 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탁드리기를, 일라이져 대신 이 검을 써 주세요. 오랜 시간 혹사당하고 있는 그녀가 너무 불쌍합니다.”

그녀라니……………

‘일라이져의 성별이 여자였나?

지금까지 몰랐던 진실을 접한 이드는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에 이마를 눌렀다. 일전 일라이져를 직접 만져 보고는 그렇게 돌려주기 싫어하더니. 설마 일라이져가 상할까 봐 다른 검까지 들고 올 줄이야!

이런 무기 오타쿠 같으니.

무슨 일인가 귀를 기울이던 라미아와 일리나가 쿡쿡거리며 멀어졌다.

이 곤란한 상황에 끼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아니면 뒤에서 느긋하게 구경하겠다는 뜻일까?

그때 쉴라가 평소 그녀라면 생각할 수 없는 발언을 던져 왔다.

“그럴 게 아니라 일라이져의 안전을 위해서 차라리 화원에 맡기시는 것은 어떠신지?”

“전~혀 그럴 생각 없어요! 차라리 이 검 도로 가져가요! 나는 절대 일라이져를 놓을 생각이 없으니까!”

“아니, 일라이져를 위해서………….”

“필요 없다고요!”

바락 소리친 이드의 뒤에서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두 사람도 웃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 봐요!”

그러나 이드의 재촉에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힘을 얻은 쉴라는 록이 돌아올 때까지 이드를 물고 늘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쉴라 경이 이러는 것 알아요?”

록이 나타나는 순간 언제 떼를 썼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복귀한 쉴라를 보며 물은 이드는 여우처럼 웃는 그녀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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