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42화
679화
인생은 실전이다. 아마 이후 그의 연애사는 상당한 고난과 가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데이노스를 마음속 음침한 붉은색 목록에 올려두고 스폴이 물었다.
“그래서, 어떤 복수의 레이디들이 문제라는 건데?”
“여기 세 사람입니다. 이들은 분명히 외부인이지만 저희들은 이들에 대해서 전혀 전달받은 정보가 없습니다.”
데이노스는 겨우 한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일리나들을 가리켜 보였다.
그에 일리나와 살짝 눈인사를 나눈 스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왜 문제가 되지? 자네가 말한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우리 기사단의 귀염둥이 수련 기사들이고, 남은 한 분은 단장님과 기사단의 손님이야. 설마 지금 은색 기사단이 수련 기사를 들이고 손님을 초대하는 일까지 너희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렇지?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아까 전보다 더 곤란하게 될 거야.”
상큼한 미소가 살벌하다. 미녀의 미소는 상큼하면서도 살벌할 수 있구나.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데이노스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들으면 그렇게 해석이 되는 걸까? 억울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황색 기사단의 수석 기사와 동격에 있는 은색 기사단의 수석 기사다. 어린아이에게 설명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혓바닥을 놀려야 했다.
“당연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미쳤어도 그런 뜻으로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전 오히려 은색 기사단의 명예가 어지럽혀질 것을 염려해서 했던 말입니다. 스폴 경께서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소드 팰러스에서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와 쉴라 경, 은색 기사단과 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 저 아이들이 은색 기사단의 수련 기사로 갑자기 등장한다면 무슨 소문이 돌겠습니까? 그리고 외부인도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화원을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만약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녀가 혹 방해라도 된다면 그것이 온전히 은색 기사단과 쉴라 경에 대한 책임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분명 미리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 말 잘하네.”
그러게요. 데이노스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자신이 이렇게 말이 빠르고 말발이 좋은지 처음 알았다. 위기는 생각지 못한 재능을 발견하는 또 다른 기회의 장인 것일까.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생각을 하는 거야! 거기다 검에 대한 거라면 몰라도 이딴 재능은 필요 없어!’
“그런데 말이야……… 단장님과 우리들이 바보처럼 허술하고 어설프게 판단하고 결정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결국 네 말은 단장님이 잘못 판단했다는 거잖아.”
“아니…….”
왜 말이 그렇게 되나? 아무래도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재능은 화를 불러오는 옵션이 붙은 모양이다.
‘나 혼자서 변명해 봤자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내 말에 동조해 줄 사람들이 필요해!’
은색 기사단에 속한 기사가 아니라면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 분명했다.
스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대로 말을 이해할 것이다.
동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방해물을 처리하자는 의미. 기사들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는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뒤 숙소에 모여서 낄낄거리고 있을 믿음직한 동료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은색 기사단이 사용하는 대연무장이 순식간에 기사들로 가득 찼다.
느긋하게 인사를 나누고 꽃밭에 초대받은 자신들의 행운을 자랑하던 기사들은 이유도 모른 채 데이노스에게 끌려 나왔다가 수많은 여기사를 눈앞에 둔 상황에 심히 당황하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봐. 호감 어린 눈으로 우릴 보던 기사들의 눈빛이 변태를 보는 것 같이 변했어!”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적의 살기보다 더 빠르게 여기사들의 분위기를 파악한 기사들이 데이노스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만약 그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당장 묶어서 여기사들 앞에 내어놓을 표정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에게 따지는 모습에, 과연 동료애란 무엇인가를 새삼 떠올린 데이노스는 작은 한숨에 이어 스폴과의 일에 자신의 의견을 더해 말해 주었다.
그들과 마주 선 은색 기사들은 쉴라와 함께 서 있는 신입 수련 기사와 일리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빛의 속도로 정보 공유가 끝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은색 기사단 광속 연결망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쉴라를 위해 스폴이 그녀의 곁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과연 스폴도 이런 일에 쉴라를 불러야 할지 고민했지만, 일리나가 끼어 있는 문제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알리고 말았다.
일리나가 이드의 아내라는 점뿐만 아니라 오늘 아침 끙끙대는 쉴라를 통해 일리나의 무공 실력에 대해서 전해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단장님을 패배시킬 수 있는 실력자일 줄이야.’
그런 생각에 스폴이 쉴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쉴라가 살짝 경계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요즘 단장님의 실력이 퇴보한 건가 싶어서요.”
“흐응, 알고 싶다면 좀 이따 수련장에서 확인시켜 줄 수 있는데. 어때?”
“정중히 거절할게요. 그보다 제가 일을 키운 것 같긴 하지만 어쩌실 거예요?”
“뭐 어때? 오히려 좋은 기회잖아? 저 발정 난 놈들에게 스위트 경과 데일리 경 외에도 자신들에게 명령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 줄 수 있으니까. 더불어 우리 기사들에게도 본격적인 전투 전의 좋은 구경거리가 될 거야.”
“그럼 제가 일을 키운 게 잘못한 건 아니죠?”
“전혀. 저런 생각을 가진 놈이라면 언제든 일을 벌여도 좋아.”
“히히.”
이와 비슷한 몇 번의 전적을 가지고 있는 스폴의 물음에 쉴라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들리지 않아 아름답게만 보이는 모습에 데이노스를 중심으로 모인 기사들은 조용히 감탄했다.
“좋구나. 우리 기사단에는 절대 없는 장면이야.”
“어떤 의미로 있으면 곤란하지.”
“이봐, 데이노스 경의 말에 집중 좀 해 주지 않겠나?”
“뭘 더 들을 필요 있나? 앞부분만 들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대단치 않게 답한 기사의 말에 또 다른 기사가 재촉하듯 말했다.
“그래? 그럼 자넨 어떤가?”
“어떻고말고, 우리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잖나. 결국 쉴라 단장님과 은색 기사단의 결정이네. 나는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봐.”
그의 말에 몇몇 기사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반대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외부인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것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고 보네. 우리 기사단이 타 기사단과 함께 임무를 할 때 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에게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
“그건 함께하는 것이 유명하지 않고 작은 외부의 기사단일 때의 이야기겠지. 이 일은 같은 오색 기사단의 결정이야. 같은 오색 기사단에서
이러쿵저러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오색 기사단은 서로 동등해.”
“자네 말도 당연하네. 그러나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외부인의 존재는 우리가 지시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보네.”
지원 기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중년 기사의 묵직한 말에 데이노스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모든 기사들이 자신의 말에 동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의견이 갈릴 줄이야. 그의 목소리에 살짝 다급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전력은 적의 활보다 위험합니다. 그들이 임무를 진행하는 중 화원에 남는다면 위험하다는 제 말에 스폴 경이 부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들이 화원에 남는 것은 확정된 사실로 보입니다. 당연히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임무에도 참여하게 될 텐데 무엇을 근거로 저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으음…….”
임무와 위험을 언급하는 데이노스의 주장에 관여할 수 없는 문제라고 부정하던 기사들도 침묵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는 동료는 오히려 방심과 빈틈을 부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데이노스의 말이 먹히자 황색 기사들이 나섰다. 그들은 데이노스가 꺼내 놓은 문제가 그냥 흐지부지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데이노스와 그가 속한 황색 기사단이 실없는 사람들이 될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기사들은 은색 기사단 관할로 자신들이 관여할 큰 문제는 아니지만, 분명 확인할 부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쉴라 단장님께 존경을!”
쉴라 앞으로 다가온 기사들이 절도 있게 예를 표했다.
“나도 경들을 만나 반갑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만나려 했는데 시간이 당겨져 버렸군.”
“죄송합니다.”
“자네들이 죄송할 일은 없다. 문제가 있다면 즉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으니까. 이제 경들 간의 의견 조율은 끝난 듯한데. 데이노스 경이라고 했던가? 자네가 대표로 말해 볼 텐가?”
“영광입니다.”
쉴라의 지목을 받은 데이노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는 미묘한 얼굴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일이 커져 쉴라 앞에 서기는 했지만 기사단장을 앞에 두고 잘못을 따지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데이노스가 말했다.
“우선 제가 은색 기사단에서 소란을 만든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일단, 자네의 사과는 받아 두지.”
깊은 뜻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정당한 문제 제기를 환영하면서 사과를 받는 건 뭐지? 데이노스는 사소한 말투의 차이를 마음에 걸려 하며 스폴과 있었던 문제를 이야기했다.
물론 스폴에게 하듯이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수석 기사인 스폴도 함부로 할 수 없기는 하지만, 상급 기사에 근접한 실력을 가졌다는 자신감에 당당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신의 실력을 믿더라도 은색 기사단장인 쉴라를 앞에 두고도 당당할 수는 없으니까.
그것이 아니라도 기사들과 나눈 의견에 따라 수련 기사들의 입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정말 은색 기사단의 지극히 독립된 권한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입단이 정식 절차를 밟았든 아니든 그것은 온전히 쉴라와 은색 기사단의 권리였다. 그걸 문제 삼는 순간 문제는 자신들의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사단 간의 문제로 비화할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 중 나온 어느 기사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기사단장이 자기 기사단에 기사 한둘 입단시킬 권한도 없어? 시골 기사단의 단장도 가진 권한이 오색 기사단장에게 없을 것 같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그 반대로 당연한 일이란 투였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의 말이 틀리지 않게도 들렸다.
특히 오색 기사단을 책임지고 있는 단장의 힘을 생각하면,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지만 데이노스도 결국 그 문제는 묻어 두기로 했다. 대신, 자신들의 임무에 알지도 못하고 믿을 수도 없는 전력이 더해진다는 것에 대해 항의한 것이다.
“경의 말은 잘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 수련 기사와 일리나 님이 자네들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어 믿을 수 없다는 말이지?”
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핵심을 간추렸다.
“그렇습니다. 특히 일리나라는 이름의 부인은 수련 기사도 아닌 완전한 외부인이기 때문에 이번과 같이 중요한 작전에 함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라고 봅니다.”
“과연. 이는 자네들의 생각이기도 하겠지?”
“그렇습니다.”
전방 시선을 사십오 도 정도 하늘로 향한 기사들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좋다.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휴우~’
쉴라의 인정에 데이노스를 비롯한 기사들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들은 각 기사단에서 화원을 지원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나? 각 기사단에서 신경 쓸 만큼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일리나 님을 손님으로 청한 이유는 바로 그 임무 때문이다. 화원을 습격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다. 얼마만큼의 실력자가 있을지 모른다. 물론 경들은 어떤 강력한 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겠지. 하지만 난 경들을 그렇게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또 화원을 지키는 것에 실패해서도 안 된다. 그러자면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실력자가 필요하다. 나는 그 일을 일리나 님께 부탁했다. 경들 중에는 그 일을 다른 오색 기사단에 요청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음을 짐작해 주길 바란다.”
“……”
모종의 사정이라니. 소드 팰러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삼검왕이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과 같은 사정인 것일까.
기사들은 침묵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경들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을 안다. 그래서 경들에게 직접 우리 수련 기사와 일리나 님의 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쉴라는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화원에 남는다는 말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말했다.
“어떻게 기회를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경들 중 확인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대련을 통해서 실력을 확인시켜 믿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더불어 그를 통해 자네들의 실력도 우리 기사들이 확인할 수 있겠지.”
이른바 쌍방 검증의 시간이다.
“어…….”
검증을 요청하는 입장에서 갑자기 검증을 주고받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기사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게………… 아닌데. 왜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