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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57화


694화

그렇다고 검후의 요구에 따라 정말 삼검왕의 목을 베어 가져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협력 관계에 있음은 물론이고,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제압당한 검후와 달리 삼검왕의 경계는 심상치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욕망을 좇아 검후를 배신한 자들이라도 검후가 자신들에게 제압당하는 모습을 본 이상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것이 아니라도 검후에 이어 삼검왕까지 사라지면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제국의 권력을 휘어잡지 못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제국의 초인파도 결코 무사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기사들의 정점에 있는 검후와 삼검왕이 사라진다면, 가장 의심받을 것이 초인일 것이 뻔했다. 아무리 조심했다고 해도, 수천만 제국민의 눈과 귀를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삼검왕의 목을 가져와도 진지하게 생각만 해 준다는 것이지. 만약 온전히 협력하겠다고 했으면…………’

했으면? 그랬다면 라울은 당장 삼검왕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검후에 비교하면 삼검왕 따위!

그저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잠시 꿈같은 순간을 상상하던 라울은 곧 아쉬움을 삼키고 검후를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앞서 언급되었던 조건은 분명 지켜질 겁니다. 음………… 그리고 이건 어지간하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던 일입니다만, 검후님께서 협조하는 일은 대륙의 평화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눈을 감은 채 라울의 말을 들던 검후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평화? 뭔가 착각한 것 아닌가? 평화는 너희 범죄자들이 사라지는 것이 평화겠지.”

“뭐,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검후님을 모신 것도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평화를 위한 납치를 꼭 범죄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마 검후님도 아실 겁니다. 가끔 폭주한 초인이 나타난다는 것을요.”

그 말에 검후가 한쪽 눈을 떴다.

“폭주 초인? 버서커?”

아직 밝혀지지 않아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간혹 초인이 폭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이를 버서커라 이름 붙였다. 원래 버서커는 광분한 몬스터나, 광분한 몬스터처럼 과한 공격성을 보이는 용병이나 병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매우 드물게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날뛰는 초인이 등장하였고, 이후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평민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초인은 그저 하늘의 선택을 받은 행운아이며, 신의 아들이니까.

당장 초인들도 그런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초인이 언제 갑자기 미쳐 날뛸지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며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대륙의 힘의 한 축으로 녹아드는 초인들에게 그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소문이 번지거나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았고, 결국 폭주 초인을 가리키는 버서커라는 용어는 아는 사람만 아는 단어가 되었다.

무엇보다 크게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초인이 폭주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익히다가 사고로 죽는 무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초인들과 대립하고 있는 기사 측에서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죽어 나가기는 기사의 수가 더 많으니까. 폭주로 인한 2차 피해는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검후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며,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당시 버서커는 그녀를 호위하던 은색 기사단에 의해 처리되었다.

“버서커…………… 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 초인은 몬스터가 아니니까.”

라울이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검후는 그의 기분을 살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훗,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있다고. 그래서 버서커가 어쨌는데?”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초인이 폭주하는 경우가 최근 대폭 늘어났습니다.”

번뜩-

검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순간 숨을 삼킨 그녀의 가슴이 크게 부푼 채 멈추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기억을 떠올리던 검후가 고개를 저었다. 

“들은 바 없구나.”

“일 년 전부터 꾸준히 늘었습니다.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지.”

“마인드 마스터에 관련한 소식이니 좋아할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라울이 이드에 대한 일을 간단히 간추려 이야기했다.

당연히 그들과 관련된 일은 모조리 제외하고, 검후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삼검왕과의 대립과 신경전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친 라울은 검후를 살폈다.

그녀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은 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라울은 잠시 그 모습을 보다 말했다.

“황궁의 검증에서 목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곧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를 환영하는 무도회가 열릴 겁니다. 그때는 제가 직접 가서 이드라는 자를 만나 볼 생각입니다.”

“버서커에 대한 부탁이라도 해 볼 생각인가?”

“하하하, 설마요. 제 곁엔 검후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어디 그런 애송이와 비교를 하겠습니까.”

“마르텔을 이겼다면 애송이는 아닐 테지. 아니면・・・・・・ 그만한 실력자를 조용히 납치하기는 힘든가?”

“아, 그거 말입니다만, 그가 마르텔을 이길 수 있었던 것………… 사실은 그가 초인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 어쩐지 그랬으면 좋겠더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조만간 그와 함께 검후님을 만나러 올 수 있을 테니까요.”

라울이 검후를 자극하는 말을 했다.

“그 전에 그가 진짜라면 네놈의 목부터 걱정하는 게 어떠냐? 마인드 마스터의 전설은 알 테지? 단숨에 네가 악당이라는 걸 알아볼지 모르겠구나.”

“하하하, 그렇다면 목이 떨어질 일은 없겠군요. 전 악당이 아니니까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검후님.”

허리를 숙여 인사를 마친 라울이 돌아서려 하자 붉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검후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잠깐 기다려.”

“달리 하실 말씀이라도?”

“이드라는 자와 만나게 되면 대신 말을 전해 줄 수 있을까?”

“물론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울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검후의 말을 전해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검후가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할지 모르지만, 발신인을 알리지 않아도 내용에 따라 검후를 자신들이 잡아두고 있다는 것을 들킬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일의 실천과는 상관없이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그러나 검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서야 입가를 가린 채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에 라울은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이 검후의 말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라울이 슬슬 지루함을 느낄 때가 되어서 검후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물어다오. 강기를 옷처럼 둘러 입고 몸을 가릴 수도 있느냐고.”

“흐음, 강기 옷이라. 그런 무공도 있던가요? 굉장한 방어력을 자랑하겠군요.”

“글쎄, 어떨까. 그리고…………….”

“또 있습니까?”

질문의 내용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기에 라울은 이어질 또 다른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검후는 그 모습을 보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말이야. 바로 네놈에게 전하는 말이지. 그 목이 떨어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오래 기다렸지?”

말이 끝나는 순간 검후의 손가락 끝이 라울을 가리켰다.

피리리릭-

그와 동시에 어느새 한 뼘의 무한 차원 회랑을 건넌 한 장의 나비가 화려하게 날갯짓하며 라울의 얼굴로 쏘아져 나갔다.

“이익!”

그리고 그 뜻밖의 공격에 라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지며 온힘을 다해 몸을 기울였다.

피식!

동시에 핏방울이 튀었다. 라울의 볼이 손가락 길이 정도로 길게 갈라진 것이다.

그리고 흰 그림자가 지나간 자리에서 귀에 익은 유리판 긁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검후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아쉽구나, 아쉬워. 목이 떨어진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설마 무한 차원 회랑을 그런 곳에도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구나. 좋은 걸 알았어.”

“어………… 어떻게!”

배부르게 젖을 빤 아기처럼 나른한 검후의 목소리에 라울이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회랑을 건넜단 말인가? 

“궁금하다면 질문을 전달하는 심부름 값으로 가르쳐 주지. 실로 간단한 방법이야. 네놈이 아는 것보다 조금 더 빨리 네놈의 봉인을 풀어 버리면 되지. 물론 실낱같은 내력이 종이와 이어져 있어야겠지만, 종이는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어려울 것 없잖아. 안 그래? 호호호.”

말과 함께 검후가 요염한 웃음을 터트렸다. 살짝 가린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비록 라울의 멱을 따지는 못했지만 검후에게는 이것만 해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번 일을 통해 회랑의 성질에 대해 새롭게 알아낸 것도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소리가 높아질수록 라울의 기분은 바닥을 쳤다.

“설마 회랑을 건널 줄이야. 내가 방심을………… 아니, 아니. 검후님이 대단한 것이겠지요. 그럼 좀 더 단단히 봉인하도록 하지요. 골든아이!” 

쿠르릉!

버럭 목소리를 높인 라울의 말에 따라 수레바퀴가 나타났다.

“과연 이번엔 얼마나 빨리 풀어낼 수 있을지 기대하지요. 검후님의 노력에 대한 상을 더해서 말이지요. 회유는 회유고, 벌… 아니, 상은 상이니까요.”

“상이라. 그래, 참으로 즐거운 상이로구나, 호호호.”

라울은 사나운 눈으로 수레바퀴를 한참 동안 돌린 후 천국의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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