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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6화


463화

헨리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초인이, 자신을 로브스로 밀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자신보다 한참이나 뒤의 서열이던 자가 초인으로 각성하면서 서열이 밀렸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로브스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헨리는 자신의 인생이 삐딱선을 탄다 싶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그 순간 절실하게 느꼈다. 자신은 죽기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알지도 못하는 그 누구는 한순간의 인생 역전으로 왕국의 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의욕을 잃고 허탈한 마음에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실제 임무에 투입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자 절실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마인드 마스터의 수련법에 매달렸다. 로브스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치열하게 익혔다.

그렇게 로브스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러다 이번 임무를 받았다. 임지가 시온이라는 걸 알고 나선 정말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손이라는 말에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다.

지금은 모든 기사들이 필수적으로 익히고 있는 마인드 로드의 주인. 그의 후예라면, 그와 어떤 인연이라도 만들어진다면 좀 더 좋은 상위의 마인드 로드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왕국으로 오게 된다면 자신들은 감히 쉽게 만날 수도 없는 귀한 자리에 오르겠지만, 왕국의 임무를 받아 가는 자리에서는 자신들이 가장 처음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찰에 자원했다. 다른 나라의 어떤 단체보다, 또 로브스의 다른 누구보다 먼저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마인드 마스터의 작은 가르침이라도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그렇게 나선 정찰에서 헨리는 각성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 기운은 생명을 이어 주는 어머니의 젖과 같은 것이었다. 한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한 다음 순간, 헨리는 저 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각성했고, 초인으로 불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복귀한 후 바로 수도로 돌아간다.”

초인이란 귀한 자원을 이런 위험한 사지에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임무에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손에 대한 흥미도 가셨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마인드 로드 같은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 나는 초인이니까!”

초인들은 나라의 귀중한 전력으로 자리하면서 기사들과 마법사 전력을 견제했다. 권력을 쥐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와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나타난 초인들의 갑작스러운 반역이었다. 같이 검을 수련했던 헨리도 분개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제 자신은 로브스의 검사 헨리가 아니라 초인 헨리이기 때문이다.

“크흐흐. 기다리십시오, 남작님!”

짜릿한 흥분에 취한 헨리의 입에서 깊이 감추고 있던 내심이 흘러나왔다. 그가 애써 숨기고 있던 아버지, 남작에 대한 원망과 분노였다.

“그리도 원하시는 전쟁을 원 없이 하게 만들어 드립………… 큽!”

자신이 당한 대로 돌려주겠다고 다짐하던 헨리는 순간 아랫배를 관통하는 섬뜩한 느낌에 한 번 더 발에 힘을 주어 몸을 뽑아 올렸다. 터엉!

한발 늦은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잘 피한 것일까. 힘을 주고 있던 발에 부딪치는 강력한 힘에 헨리의 몸이 빙글빙글 몇 바퀴를 돌았다. 하지만 로브스로 위험천만한 활동을 하며 단련한 반사 신경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퉁. 투둥.

헨리는 초인의 능력을 실은 손발을 휘둘러 몸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허공을 차서 몸을 날리며 뒤를 돌아봤다.

“도대체 어떤 놈이 날 공격한 것이냐?”

고개를 돌린 헨리의 눈에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두 인형이 보였다.


“내가 먼저 가서 제압할게요.”

“부탁해요.”

남자를 발견한 이드는 함께 달리고 있던 델프리드에게 말을 하고는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아직 상대는 자신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 사정거리에 들었다.’

이드는 적당한 거리가 되었다 싶은 순간 손에 머금고 있던 공력을 뿌렸다. 무음, 무성의 지공이 새벽 푸르스름한 하늘에 녹아 모습도 보이지 않고 쏘아져 나갔다.

터엉!

하지만 거리가 제법 멀었기 때문인지 헨리가 몸을 날려 피하는 바람에 그의 발을 맞추는 데에서 그치고 말았다. 헨리의 몸이 빙글빙글 회전하다가 금방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약했구나.”

이드는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은 듯 보이는 상대의 모습에 혀를 찼다. 애초에 상대를 죽일 생각보다는 멈춰 세우기 위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런 듯했다. 정말 살기를 띈 공격이었다면 최소한 그의 발 하나는 날아갔을 것이다. 대신 다른 사실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드, 테이가 없어요!]

그때까지 이드의 머리에 바싹 엎드려 붙어 있던 라미아가 날아오르며 말했다. 헨리가 회전하면서 펄럭이는 그의 옷자락 속이 보였는데, 영상과는 달리 로브 속에 테이를 감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하지만 저놈 얼굴은 맞아!”

이드는 뒤를 돌아보는 헨리의 얼굴을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영상을 보던 자리에서 확실히 눈에 새긴 얼굴이었다. 며칠이 지난 것도 아닌데 잊을 리가 없다. 그런데 테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으로 이드의 얼굴이 다급하게 변했다.

“라미아, 지금 상황을 엘프들에게 전해. 테이를 찾으라고! 난 저놈을 멈출 테니까.”

“알았어요.”

퓨퓨퓻!

라미아의 대답과 함께 내뻗은 이드의 손에서 여섯 개의 지력이 헨리를 노리고 날았다. 더 이상 상대를 멀쩡히 데리고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사지가 부러져도 말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

이드는 최대한 빠르게 상대에게서 테이의 정보에 대해 캐낼 생각이었다. 최악의 경우 이미 상대의 손에 목숨을 잃었겠지만, 천만다행으로 테이가 도중에 도망쳤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결계를 나오는 시점에서 용도를 다한 테이를 버렸을 수도 있다. 셋 다 문제지만 첫째를 제외한 두 가정에서는 테이가 생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온은 지옥과 같은 상황이다. 그 희망이 이어질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이드는 그 가능성을 최대한 빠르게 확인하고, 현실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헨리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전투 능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수없이 많은 위험한 전장을 겪고, 음모와 속임수가 난무하는 로스브에서 적지 않게 굴러먹은 남자였다. 그에게는 전투 능력에 뒤지지 않는 빠른 눈치가 있었다.

헨리는 이드의 손이 자신을 가리키는 순간 무언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방금 전과 같이 다시 허공을 발로 차서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이 있던 자리로 뭔가 섬뜩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능의 속삭임으로 알 수 있었다.

“젠장, 벌써 따라왔다고?”

헨리는 이 상황이 퍽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렸을 때 두 사람을 봤다. 로브스 이외에 몇 개 단체가 시온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저 두 사람에게는 이쪽 일을 하는 자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었다. 무엇보다 각자의 임무를 우선시할 그들이 뜬금없이 자신을 쫓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들 이외에 이 시온에서 자신을 쫓을 이유가 충분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은 잘 알고 있다.

엘프 놈들!”

헨리는 자신의 팔을 깨물고 반항해서 숲 속으로 던져 버린 엘프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칫, 귀찮게 됐군. 하지만 난 초인이다. 너희들 숲지기 놈들에게 당하지는 않아!”

헨리는 빠르게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는 이드의 그림자를 보며 아직은 어두운 숲 속으로 몸을 던졌다.


“칫, 거리가 멀었나? 그런데 저건 무슨 수법이지?”

이드는 천허천강지를 피한 헨리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거리가 멀어 그저 최단 거리로 쏘아낸 탓에 경로가 너무 빤히 보였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상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허공중에서 그렇게 재빠르게 피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허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절정의 경공이 있지만 그걸로도 저렇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저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벽을 딛고 차는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말이야. 과연 숲 속에서도 그렇게 빠를지 두고 보자!”

이드는 헨리를 따라 초록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스슥.

나뭇가지 위로 내려서는 이드를 따라 나뭇잎이 떨어졌다.

‘저쪽이다.’

떨어지는 나뭇잎 사이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이드가 아련히 들리는 인기척을 따라 움직였다. 빽빽이 서 있는 나무 사이를 지진계처럼 어지럽게 움직이며 전진하던 이드의 눈에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 역시 투박하지만 이드와 비슷한 빠르기로, 바위에 던져진 고무공처럼 어지럽게 나무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여간 빠르고 복잡한 것이 아니어서 이대로 쫓아간다면 따라잡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였다.

“이대로 쫓아간다면 말이지, 나한테는 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단 말이야. 무엇보다 네놈을 따라 놀아 주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이드는 그 말과 동시에 지금까지 디디고 있던 나무 위로 몸을 날려 헨리가 향하고 있던 방향을 가늠해 철황십사격으로 폭격하고는 그대로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이드의 공격은 정확했다. 흩날리는 나뭇잎과 가루가 되듯이 부서진 나뭇조각 사이로 당황해서 멈춰 선 헨리가 이드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잡았다. 이놈!”

“헉!”

헨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자신의 주변이 부서지는 것만 같은 상황에 반사적으로 멈춰 섰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며 검은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기겁해서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타탕!

분명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는데 막혔다. 이드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저쪽도 제법 능숙한 솜씨였지만 속도에서 자신이 앞서고 있었다. 헨리가 단검을 뽑았을 때 이드의 주먹은 이미 그의 가슴에 닿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검을 뽑은 헨리의 손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이드의 주먹을 막아 낸 것이다.

‘앞서의 움직임도 그렇고, 도대체 뭐지? 무슨 수법을 쓰는 거야!’

이드는 뒤로 물러서는 인물을 따라 한 걸음 다가서며 수도를 날렸다.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직선적인 공격이지만 어중간한 자들은 감히 막을 수 없는 빠른 공격이었는데, 이 공격 역시 상대가 조금 늦게 반응했으면서도 막아 냈다.

‘분명 검기를 운용할 수 있는 마스터 나이트 수준이다. 그런데 순간적인 빠르기는 그레이트급이야.’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막힌 팔을 접어 상대의 관자놀이에 팔꿈치를 날렸고, 이번 공격도 역시 앞서와 같은 모습으로 막혔다. 거기에 교차하며 날아오는 검을 손으로 쳐 내며 이드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다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보다 충돌 때 느껴지는 반탄력이 강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지?”

충돌 순간 기운을 증폭하는 수법도 있다고 들었지만, 상대가 그렇게 고급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또 의문이었다. 이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바짝 독이 오른 듯 양손으로 단검을 들어 보이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말했다.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이드가 처음으로 초인이라는 존재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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