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7화
464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네놈은 도대체 뭐냐!’
헨리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는 엄청난 고수였다. 스스로 가속이라고 이름 지은 자신의 초인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헨리가 얻은 가속 능력은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속도로 사지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예로 들자면, 강력한 도약력과 함께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또 허공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서 마음먹은 대로 몸의 위치나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이드를 만나기 전까지 땅을 디디지 않고 허공을 날듯이 뛰어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능력 덕분이었다.
다리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팔의 움직임은 더 엄청났다. 사실 다리와 팔은 각기 쓰임새가 다른 만큼 서로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손과 팔을 더 자주, 다양하게 사용하니 그 변화한 모습이 더욱 대단하고 극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헨리도 그랬다. 물론, 순식간에 목표 지점으로 빠르게 접근하거나 높이 뛸 수 있는 것도 대단하기는 했다. 그러나 헨리도 검을 사용하는 검사인 만큼, 팔의 속도 변화에 매우 민감했다. 처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인지하고 팔을 움직였을 때 헨리는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팔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팔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것은 헨리가 처음 접하는 속도의 경지였다. 그레이트 소드의 경지에 이른 대기사도 이렇게 빠르게 검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이런 빠르기라면 상대는 자신의 목을 베였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검을 사용하는 검사들에게 속도란 것은 영원한 숙제이고, 절대적인 힘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잡히지 않고, 그 어떤 사람의 목도 쉽게 베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내 움직임보다 빠르지 않은 것 같은데도 내 칼을 막았다.’
상대의 움직임이 늦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 본 사람 중에서 가장 빨랐다. 하지만 자신의 가속보다는 느렸다. 자신이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은 당연했지만,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가속 능력에 의한 공격이었다. 상대는 공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상대는 그 공격을 너무도 당연하게 막아낸 것이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분명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했는데, 결과는 자신이 스스로 상대가 방어하고 있는 손을 공격한 것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낯설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헨리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서 상대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멈추기 위해서 숲을 통째로 부숴 버린 것을 보면 절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엘프도 아니잖아!
지금까지는 당연히 상대를 엘프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엘프의 귀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인간의 귀다.
‘아까 봤을 때는 두 명이었어. 다른 한 명도 인간인가? 인간이라면 왜 날 쫓는 거지? 가만, 지금 엘프 마을에 누가 있더라?”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을 쫓던 생각이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로 이어졌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손?”
우웅!
헨리는 그 말과 동시에 검은 벌 떼가 자신을 덮치는 듯한 공격이 들어오자 기겁하고 물러섰다.
‘빌어먹을. 왜 이자를 못 알아봤지. 분명 그때 멀리서 봤던 인물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헨리는 자신의 눈을 찔러 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그때와 옷이 바뀌었다지만 어떻게 이 인물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엘프 마을에서 마족으로 보이는 존재를 기괴한 방법으로 해치우던 모습을 보고서도 말이다.
‘위험하다!’
헨리의 본능이 붉게 반짝였다.
이드는 마인드 마스터라는 말에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전 정령수의 가지가 마을을 나갔다가 사람들이 숲에 들어와 있다는 말을 했을 때 혹시나 싶었지만 설마 했다.
일리나를 찾아오면서 마인드 마스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자신을 몇 번이나 귀찮게 하기는 했지만 잘 따돌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없을 때 텔레포트로 이동을 했으니 그들은 아니겠거니 했다.
그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시온을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테니 이튿날 정령수의 가지와 함께 나가서 그들을 살펴보려고만 했다. 무언가 득 되는 일이 없다면 사람들이 이 위험한 숲에 찾아올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무언가가 푸른 나무 마을과는 상관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데 푸른 나무 마을이 아니라 자신이 목표였던 것이다. 자신을 쫓아 이 시온까지 추적해 온 것이다. 지독한 끈기가 징그러웠고, 화가 났다. 자신이 이 조용한 숲에 문제를 끌고 들어왔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그 문제가 실질적으로 마을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 마음은 바로 이드의 주먹으로 나타났다. 그의 주먹이 철황권의 투로를 따라 사정없이 헨리를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의 어떻게 자신을 따라온 것인지, 상대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자가 사용하는 힘이 무엇인지, 가장 중요한 테이의 행방은 어떤지.
‘일단 잡아 놓고 묻자!’
앞서 공격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기량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의 힘에 반발하는 특별한 점이 있어서 원래의 기운보다 강하고,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레이트급의 기사도 막지 못한 이드를 그저 속도만 그레이트급인 헨리가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치고, 두드리고, 비틀고, 찢는 공격이 헨리의 전신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어찌어찌 막아냈다. 하지만 발길질이 섞여 들기 시작하자 결국 어깨를 내주고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헨리가 가진 것은 그레이트급의 속도지 실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끄억!”
헨리는 어깨가 뭉개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통증으로 어깨가 순간적으로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팔이 가속 능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강도나 맷집이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두 팔로도 겨우겨우 막아내던 이드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팔이 하나 빠지면 어떻게 될까. 인간 샌드백 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드는 마지막 수단으로 몸을 빼려는 헨리의 모습에 그의 다리를 차올려 허공에 띄우고는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헨리는 전신을 두드리는 이드의 주먹에 더 이상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몸을 웅크리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제기랄! 그레이트급………… 커헉………… 이상이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불과 이십 분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져 버렸다. 차라리 초인의 능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로브스의 훈련에 따라 조심, 또 조심하면서 상대하고 지금보다는 더 견디지 않았을까. 물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커헉. 사…… 살려…………… 악! 주……”
헨리가 퉁퉁 부은 입을 열어 사정했다.
“죽이진 않아! 죽이지는.”
이드는 헨리의 애원을 가볍게 씹고는 그의 전신을 두드리는 일을 계속했다. 이후에 물어야 할 일이 많았다. 미리 두드려 두는 것이 나중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는 데 좋다고 생각했다. 고기가 두드려야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젠장, 나도…………… 이제 초인인데.’
헨리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 인생이 좀 펴지나 싶었는데 역시나, 자신은 꼬인 인생이었다. 지지리 운도 없지, 하필이면 그레이트급 이상의 실력자에게 걸리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초인들도 상급의 소드마스터 이상의 실력자를 대할 때는 항상 조심했다. 나라에서 애지중지하는 초인들이 아직도 권력의 핵심이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상위의 기사들과 고위 마법사 때문이 아닌가. 초인들이 그들보다 뛰어났다면, 아무리 기득권이라고 하지만 초인들의 세력에 밀려 오래전에 힘의 축에서 떨어져 나갔을 테다.
결국 초인의 힘이든 검을 휘둘러 손에 넣은 힘이든 더 큰 힘 앞에서 약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헨리는 철저한 약자였다. 그의 힘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손에 넣은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힘을 다루면 얼마나 잘 다루겠으며, 힘이 커봤자 얼마나 크겠는가 말이다.
‘이 정도면 되겠구나.”
이드는 헨리의 눈물을 확인하고는 강력한 일격으로 그가 정신을 잃도록 만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이드는 누워 있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그의 양 허벅지를 차올려 뼈를 부러트렸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통증이 있는지 헨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순간 가속 능력을 확인한 이드는 굳이 위험 요소를 멀쩡하게 놔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가까운 나무 위에서 이드를 지켜보고 있던 라미아와 델프리드가 일이 끝난 듯하자 다가왔다.
[수고했어요. 이드.]
“역시 대단한 실력이네요. 이자가 우리가 찾던 사람인가요?”
“네, 지금은 얼굴이 좀 부었지만, 제가 확인했어요.”
헨리의 얼굴은 이드의 주먹에 알록달록 물들어 부풀어 있었다.
“테이의 행방은 들었나요?”
“지금부터 들어야죠. 그런데 이자를 포함해서 지금 숲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무래도 절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요. 테이의 일도 어쩌면 저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드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게 왜 미안하죠? 이드가 이들을 부른 건 아니잖아요. 그런 일보다 테이의 일부터 알아보죠.”
이드의 사과를 들은 델프리드의 반응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이성적인 엘프와 인간의 차이라고 할 부분이었다. 이드도 더 이상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고 기절해 있는 헨리의 통점을 두드려 깨웠다.
“크흐윽! 무슨………”
비명과 함께 눈을 뜬 헨리는 곧 눈앞에 서 있는 이드와 델프리드의 모습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물었다. 비밀 준수를 우선하는 로브스의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 반응이었다.
이드가 그 모양을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의 발끝이 다시 한 번 헨리의 통점을 골고루 찔러 주었다.
“뭐든…………… 컥………… 머든 합니다!”
헨리의 입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드가 그의 얼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드의 시선이 바위처럼 헨리를 내리눌렀다.
“좋아. 그럼 너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질문이다. 네가 엘프 마을에서 납치한 아이는 어떻게 했지?”
파르르.
이드의 질문에 헨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빌어먹을. 역시, 그것 때문이냐.’
헨리는 자신의 경솔함을 탓했다. 역시 엘프의 아이를 납치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자신은 너무 흥분한 상태였다. 그저 빨리 돌아가 자신에 대해서 보고할 생각에 너무 서두른 것이다. 아이를 납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엘프들이 아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면서도 저지른 실수였다. 초인인 자신에게 더 이상 마인드 마스터의 기술은 필요 없다는 생각에 너무 서투르게 행동했던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초인 입장에서 마인드 마스터의 기술로 기사들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약삭빠른 행동일 수도 있었다.
“버, 버렸습니다.”
대답하는 중에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헨리는 순순히 대답했다. 이제는 그저 더 이상 맞지 않기를, 제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초인이라고 해서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네가 결계를 넘어서 나온 곳과 이곳을 기준으로, 버린 위치는?”
“중간 정도였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오 분의 삼 정도 위치. 다시 잡으려다가 유난히 나무가 빽빽이 모여 있어서 아이가 보이지 않아 찾기를 포기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재인식한 헨리의 입술이 친절해졌다. 이어지는 이드의 질문에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