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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9화


466화

“야, 이 병신아. 그런 건 미리 확인했어야지. 젠장!”

나름대로 매달릴 구멍을 찾았다 싶었더니 이 모양이다. 긴급 상황에 대원들이 우왕좌왕하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대장이 눈을 뜨고 말했다. 

“뭐해, 이대로 죽을 거야? 원형진!”

“옙!”

차라리 혼자라면 몸을 빼거나 대처하기가 쉽지만 단체로 움직일 때는 갑자기 바보가 되는 순간이 온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때는 빠르게 명령을 내려주는 사람이 고맙다. 대원들은 대장의 명령에 빠르게 자리를 잡으며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내가 없으니, 벌써 이 모양이냐?”

베일의 등에서 내린 대장이 떨리는 손으로 검을 빼 들었다. 그도 절대 얌전히 죽어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별수 없었다고요.”

확실히 힘이 떨어진 현 상황에서 딱히 방법이 없기는 했다. 구멍 난 전력을 대체할 수 있는 마법 공격도 없으니 말이다.

“별수 없으면 그대로 죽을래? 최대한 살려고 발악은 해 봐야지! 그렇지?”

“당연하죠!”

“좋아. 그럼 신호할 때마다 한쪽으로 들이친다. 어떻게든 뚫고 나간다. 에단, 방향을 정해!”

“저쪽입니다.”

에단이 대답하면서 검을 빼 들었다. 급박한 상황. 지금은 아이 손이라도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대장이 말렸다.

“넌 뒤에서 견제만 해. 아까 말한 대로 아이가 먼저야.”

하지만 죽으면 말짱 꽝이다. 그래도 에단은 대장의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살기 위해 트와이스가 처절히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원형진으로 체력을 모았다가 대장의 신호에 따라 돌격진으로 한쪽을 집중 공격하며 전진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들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트와이스를 중앙에 둔 몬스터가 모두 같이 움직였다. 더구나 시끄러운 소리에 모여든 몬스터로 인해서 몬스터의 숫자는 늘어만 갈 뿐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서 몇 번이나 온몸으로 부딪혀 봤지만 소용이 없자 대원들의 체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두 사람이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지경이 되자 에단도 더 이상 뒤에서 견제만 할 수 없어 앞으로 나와 검을 휘둘렀다. 대장도 에단을 말리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런 빌어먹을 시온. 역시 오는 게 아니었어!”

에단은 눈앞의 몬스터에게 검을 휘두르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몇 번이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기사의 검도 아니고 몬스터의 송곳니에 찢겨 사라질 죽음이라니. 최악이었다.

이 순간만은 자신의 초인 능력이 공격형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공격 능력만 있었으면, 이 녀석들을 그냥 한 방에 슉!’

쉐에엑!

퍽!

“……어?”

검을 찌르던 에단은 순간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이미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분명히 망상이었는데, 앞에 있던 몬스터가 이마에 구멍이 나며 넘어가고 있었다. 설마 자신이 또 다른 초인 능력을 각성한 것인가? 에단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순간 쓰러진 몬스터의 얼굴 옆으로 땅에 깊이 꽂혀 있는 화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슈슈슈슈슉!

하늘에서 화살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에단은 순간적으로 자신들이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제기랄, 좀만 더 빨리 오지.”

그저 살려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만, 쓰러진 동료를 생각하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구원이 왔다. 밀어붙여!”

대장의 목소리와 동료들의 검에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살아날 희망을 본 것이다.


“페르디움, 테이예요. 찾았어요.”

활에 화살을 걸던 에나가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페르디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봤다. 에나는 이드와 델프리드에게 알리고, 나머지는 몬스터의 처리를 우선한다. 인간에 대한 처리는 그 뒤다. 절대 테이와

인간들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페르디움은 같이 달리고 있던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는 시위를 놓았다. 그의 말에 따라 다른 엘프들 역시 몬스터를 노리고 화살을 날렸다. 그들의 화살은 어느 하나 헛되이 허공을 가르는 일 없이 정확하게 몬스터의 머리에 꽂혔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들은 몬스터들에게 아주 인상적인 머리핀을 무자비하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엘프들은 원래 타고난 궁사다. 그들의 활 솜씨는 너무나 유명해서 일반적인 인간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엘프와 인간, 다시 말해서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였다. 엘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보다 뛰어난 시력과 균형 감각, 그리고 같은 크기의 인간보다 강한 근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모든 것이 활을 다루는 중요한 핵심 요소들이었다.

사람은 이 조건들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훈련해야 하지만, 엘프들은 훈련 그 이상의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거기다 그들은 그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는 오랜 시간만큼 활을 수련하기 때문에 그들 하나하나가 백발백중의 명궁일 수밖에 없었다. 멀지 않은 거리를 접근하는 동안 정령수의 가지는 그런 뛰어난 실력으로 수십의 몬스터와 맹수를 정리했다.

활을 놓고 전장으로 뛰어든 뒤에도 그들은 각자의 검과 마법, 정령을 이용해서 말 그대로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만약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전투를 피했을 테지만, 현재 이들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그들의 가족, 테이의 안전한 귀환이었다. 테이를 지키려는 정령수의 가지의 손속은 과감하고, 날카로웠다.

그렇게 엘프와 트와이스의 힘이 합쳐지자 이리저리 뒤섞여 있던 난전이 정리되며 테이를 중심으로 빈 공간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흑흑, 에나! 나 여기 있어요.”

테이의 안전을 생각한 엘프들의 의도에 따라 중앙에 서게 된 테이가 뒤늦게 그들 중 가장 친했던 에나의 얼굴을 확인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잘 참고 꿋꿋하게 견뎠지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마을의 어른을 확인하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울음보가 터져 버린 것이다. “녀석, 울기는. 용감한 엘프는 우는 게 아니야. 알지?”

에나는 평소 말썽은 혼자 다 부리고 다니던 녀석이 펑펑 우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별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그녀의 모습에 테이도 곧 안정을 찾고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평소처럼 침착하라는 말의 좋은 예가 되는 모습이었다. 

“…….”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방 구해줄 테니까.”

“응!”

‘정령수의 가지가 하는 말의 힘은 컸다. 푸른 나무 마을에서 모두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테이 같은 아이들에게는 더욱 특별했다. 테이는 에나의 말을 완전하게 믿었다. 하지만 안정을 찾은 테이와는 달리 그녀의 말에 불안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에단이었다. 

“어이, 이쁜 엘프 아가씨. 설마 그 구해 준다는 말이, 날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처음 엘프들의 등장에 기뻐했던 에단은 지금 상황이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에나를 포함한 모든 엘프의 눈이 자신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자신의 등에 있는 테이만을 향한 눈이 아니었다. 흡사 도망치려는 도둑놈을 보는 눈길이었다.

왜 그런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자신이 진짜 도둑놈도 아니고, 꿀릴 이유가 없다. 그래도 막상 저런 실력자들의 주목을 받으니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단은 부디 테이가 자신이 건네줬던 빵과 우유, 그리고 사과를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이들에게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짧은 대화 이후 정령수의 가지는 몬스터의 수를 빠르게 줄이며 장내를 정리해 나갔다.

사실 테이를 업고 있는 인간들을 몬스터와 함께 공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들이 테이를 납치한 이들과 같은 자들인지 아니면 순수한 마음에서 테이를 구한 자들인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몬스터 퇴치와 현장 통제가 우선이라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중간에 전투음과 피 냄새에 자극을 받은 주변의 몬스터들이 몰려올 뻔한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에나가 정령의 힘을 빌려 소리와 냄새를 차단한 덕분에 몬스터 무리는 무난히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꿀꺽.

에단은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하필 자신에게 이 자리를 맡기고 나가떨어진 대장이 슬쩍 원망스러웠다. 팀에서 대장을 제외하고 자신이 가장 고참인 만큼 다른 사람을 시킨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 일이긴 했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랬다.

눈앞에 반짝이는 노란색 신호. 그것은 에단의 ‘간파의 눈’이 주는 경고였다. 그의 눈이 분명 눈앞의 엘프들에 대해서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건 자신들을 포위하듯 넓게 서 있는 엘프들의 위치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탓에 몬스터에게서 살았다고 기뻐하던 다른 대원들의 얼굴 역시 순식간에 굳어졌다.

등 뒤에 업고 있는 테이를 내려서 그들에게 보내주면 바로 해결될 문제지만, 자신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행동할 수도 없었다. 조금 더 테이를 데리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도움에 대한 확답을 받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테이를 돌려받은 엘프들이 바로 마을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내야 했다. 문득 에단은 어쩌면 저들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를 두고 일종의 거래를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핑계에 가까웠다. 이 정도 인연이라면 그들에게 시온 밖으로의 안내 정도는 충분히 요청할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은근슬쩍 욕심이 생겼다. 바로 그들의 임무 목표, 마인드 마스터의 후계자와 만날 수 있는 연줄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욕심 말이다.

‘이거, 이거 납치범하고 다를 게 없네. 만약 정말로 테이가 납치당한 거라면 내 꼴이 정말 우스워지는 건데 말이야.’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질러 버린 일이다. 내려 달라는 테이를 위험하다는 핑계로 참으라며 그대로 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 뒤에서 동료들의 눈이 커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도로 물리기도 애매한 상태다. 임무에 대한 욕심과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이 이 일에 달린 이상, 더럽고 치사해도 일단은 살고 봐야 했다. 에단은 내심 쓴 입맛을 다시며 어떻게 말을 꺼낼까 머리를 굴렸다.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의도한 일은 아니오. 마침 마을에서 사라진 아이를 찾던 중에 당신들이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구했을 뿐이니까.”

테이가 내려 달라는 것을 막는 모습을 확인한 페르디움의 말에서 가시가 느껴졌다.

‘이거, 후계자는 고사하고 살아서 나가는 것도 힘든 거 아냐? 아이 씨, 몰라. 이미 지른 거 무조건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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