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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5화


472화

“슬슬 배도 고픈 게 식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침은 안 주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에단이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마인드 마스터를 만났다는 설렘과 흥분도 하룻밤이 지나자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루함과

배고픔뿐이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라는 말과 함께 마실 물과 과일을 약간 받았다. 하지만 시온에 들어온 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몬스터를 피하기 위해 냄새가 나지 않는 딱딱한 빵과 과일만 먹었던 탓에 과일이라면 지겨운 에단이었다.

“아, 육즙 가득한 고기 한 점이 간절하다, 정말!”

뜨거운 육즙이 품은 깊고 묵직한 맛을 생각하며 군침을 삼키던 에단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을 보고는 날이 완전히 밝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거 계획에도 없는 감옥살이를 얼마나 해야 하려나?”

트와이스에 있을 때 에단은 다양한 임무들을 수행했다. 그중에는 감옥에 숨어드는 임무도 있었고, 임무 중에 감옥에 갇히는 일도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임시 감옥으로 사용하는 창고부터 시작해서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수용소까지 다양하게 경험해 본 것이다.

그런 경험자인 에단이 보기에는 이 집도 감옥과 다르지 않았다.

사방의 문이 닫혀 있고, 그 밖으로는 출입을 제한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더러운 곳이냐, 깨끗한 통나무집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이 감옥은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 탈출해선 안 되는 감옥이었다.

탈출하는 순간 그가 소드 팰러스에서 받은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이드와의 신뢰 관계도 끝장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탈출하다가 잡혀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에단은 자신과 함께 마을로 들어온 마스의 누더기와 나란히 눕혀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대장은 잘 돌아가셨나 모르겠네. 보고도 해야 할 텐데, 상부에서 많이 쪼진 않으려나. 설마, 대장을 앞세우고 트와이스에서 찾아오지는 않겠지? 그럼 곤란한데.”

인간적으로 대장과는 부딪치고 싶지 않은 에단이었다.

그때 그의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곤란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서 그런데, 이야기 좀 할까요.”

“마스터!”

열린 문 너머에 서 있는 이드를 확인한 에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스터는 누가 마스터예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죠!]

제일 먼저 라미아가 날아 들어오며 에단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그러자 에단이 그녀를 바라보며 능글맞게 말했다.

“마스터를 마스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마스터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이드가 싫다고 했잖아요. 그냥……… 그냥 부르지 말아요!]

억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첫인상부터 그녀에게 좋지 않게 찍힌 에단의 탓이었다. 뿐만 아니라 라미아의 신경을 긁는 저 능글맞은 태도도 문제였다.

에단은 라미아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는 이드를 바라보았다.

“일단, 제 집은 아니지만 들어오시죠. 마스터.”

에단은 오두막 중앙에 놓여 있는 작은 탁자를 가리켰다. 빈집이었던 탓에 컵조차 준비되지 않은 썰렁한 탁자에 세 사람과 한 마리가 둘러앉았다. “불편한 건 없습니까?”

“없습니다. 빈집이었다고 들었는데 생각 외로 깨끗하더군요. 지내는 데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뭐가 곤란하다는 겁니까? 밖에서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아, 그건 정말 별거 아닙니다, 마스터. 그냥 제 일로 트와이스가 어떻게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온 말입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하대해 주십시오. 제가 많이 어립니다.”

‘나도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다고.’

이드는 에단의 말에 난감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에단은 줄곧 같은 태도였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에단에게 자신은 구십 년 전의 인물일 테니 말이다. 사라진 날을 출생일로 잡아도 벌써 구십이 넘는 나이를 먹은 게 된다.

한순간에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이드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십 년도 되지 않는 시간을 살고 왔더니 대외적인 나이가 백을 넘어 버렸다.

그렇다고 에단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도 없었다. 에단은 이드에게 아직 그만큼의 믿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꼼짝없이 백 세가 넘은 인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대접받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도 아닌 나이로 인한 대접은 아직 받고 싶지 않은 젊은 이드였다.

“그건 서두를 것 없으니 차차 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백 세가 넘는 인물에게 존대를 받는 에단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드가 싫다는데 별다른 수가 없었다. 에단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말투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기로 생각하고 말했다.

“휴,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마스터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이기에 제 의견이 필요하신 겁니까?”

에단은 이드가 문을 열면서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드는 소드 팰러스로 가겠다는 말은 빼고 우디와 상의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직 에단에 대해서 확실히 파악이 되지도 않았는데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이건 그의 의견을 듣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싸!’

그러나 눈치가 없으면 죽기 십상인 업계에서 칠 년을 구른, 자칭 눈치백단의 에단은 이드의 말에서 소드 팰러스로 움직이기 위한 사전 작업의 냄새를 맡고는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꼭 그게 아니라도 이번 일을 통해서 이드에게 점수를 딸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었다.

‘아니지, 마스터가 시온을 떠나는 쪽으로 방법을 생각해도 되는 거잖아.”

어차피 자신은 의견을 내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에단은 가만히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마스터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각국이 마스터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인 결과 일어난 일입니다. 제 짧은 생각에 마스터의 모습이 다른 곳에서 확인되기 전에는 이곳으로 움직이는 각국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와이스로 있을 때 받은 명령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마스터를 본국으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만약 작전이 가능한 상황 아래에서 마스터가 거절한다면 제압해서 확보하라는 내용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마스터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겁니다. 더구나 국가 간에 경쟁이 붙은 이상 그들 스스로는 포기할 수 없을 겁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요.”

이드는 제압과 확보라는 말을 곱씹었다. 두 단어는 야수, 혹은 물건을 두고나 쓰는 말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아나크렌에서 그런 식의 명령이 내려왔을 줄은 몰랐다. 이드와 아나크렌과의 인연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여타의 것을 떠나서 지금은 실종되었다는 시르피와의 인연만 두고 보더라도 저런 단어를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인연도 수십 년의 세월과 당사자의 실종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나크렌이 그렇게 나왔다면 다른 나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싶었다. 앞서 라일론과의 일을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아직 자신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곳에 있다는 것이 확인만 된다면 시온 숲을 밀어버릴 기세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확보 명령이 어디서 내려왔는지 알고 있습니까?”

“트와이스의 책임자는 아나크렌 기사총국 부국장 사이론 백작입니다.”

기사총국은 급격히 수를 불리고 강력해진 아나크렌의 모든 기사들을 관리하는 기관이었다.

이드는 사이론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르피의 일로 아나크렌으로 향한다면 한 번은 부딪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거 단순한 힘겨루기는 아닌가 본데.’

이드는 자신의 말에 순순히 대답하는 에단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이야기로 아나크렌과 소드 팰러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단은 아나크렌 쪽을 경계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드는 이들의 문제가 단순히 초인과 기사 간의 세력 다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적당하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나크렌으로 향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지금은 당장 눈앞의 문제를 푸는 것이 급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눈을 돌려야겠죠. 마스터께서 시온이 아닌 다른 곳에 모습을 보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쉬운 일이죠. 물론 첨엔 시선을 좀 받겠지만 그것도 마스터께서 제국령으로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 알아서 떨어져 나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왕국의 외지에 위치한 시온과 달리 제국은 그들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에단의 말대로 대부분의 세력은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뿐이라면 우리가 생각한 것과 별 차이가 없는데. 그나저나 채이나의 부탁을 들어준 후유증이 보통이 아니구나.’

솔직히 방법이 없었다. 시온을 몽땅 뒤집어서라도 이드를 확인하겠다는데 돌려보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에단의 말이 추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밖으로 움직이기 전에 현재 시온에 들어와 있는 자들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어째서요?”

“그들이 이 마을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을 안에 들어온 인물도 있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스터께서 외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 그들이 이 마을을 발견해도 문제지만, 마스터께서 외부에서 확인된 후에 발견되어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마스터와 연관된 마을이니만큼 각국에서 그냥 얌전히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마을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미 트와이스가 알고 있긴 하지만 그들도 정확한 마을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드가 제국으로 들어오면 그들로서는 마을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사람이 죽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자신을 잡기 위해 추적해 온 자들과 푸른 나무 마을 중에서 선택하라면 답은 뻔했다.

“적당한 처리 방법은 있나요?”

“그건 이제 생각해 봐야지요.”

‘1점 획득!’

에단의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이드의 모습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쪽 동남쪽 방향입니다.”

“아직 연락 온 건 없지?”

“예. 어제 짧은 연락 이후로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시온에 와 있는 로브스들을 이끌고 있는 버락은 수하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젠장, 도대체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구만.”

내심 짜증도 났다. 시온에 들어오고 되는 일이 없었다. 정찰 보낸 놈들은 실종되고, 몬스터는 미쳐 날뛰었다. 겨우 몬스터를 피해 안전해졌나 싶었더니 죽었다고 생각한 놈이 ‘초인 각성 귀환’이라는 짧은 신호를 날렸다. 바보 같은 놈에게 대박이 터졌구나 싶어 부러워했더니 다시 또 감감무소식이다.

아무래도 초인에 대한 새로운 사건이라 본국과 연락을 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불통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 상황에 버락은 짜증이 났다. 벌써 죽은 놈만 일곱이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버락은 일단 자신이 살기 위한 최선의 움직임을 보이기로 했다. 본래 받은 후계자에 대한 작전은 포기하고 새롭게 각성한 바보 놈만 확보해서 돌아가는 것이다. 본국에서 초인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놈만 찾아서 귀환한다면 별다른 징계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대원들 준비시켜 움직인다. 길 잃은 멍청이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옙.”

‘제발 몬스터의 뱃속에만 들어가 있지 마라. 널 찾아야, 내 목이 무사하다!’

버락은 진심으로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수하의 무사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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