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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86화


823화

세 사람의 눈이 이드의 손을 따라 스틸 하트로 향했다. 그걸 느낀 건지 스틸 하트는 더욱 애절하게 울었지만, 안타깝게도 세 사람은 검의 애원을 들어줄 재주가 없었다.

“서, 설마…… 아니죠?”

스폴이 질린 듯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이드는 제발 아니라고 말해 주길 바라는 그녀를 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아니긴요. 당연히 스틸하트 이야기하는 거죠.”

아공간에 있는 물건까지 통틀어 이드가 가진 물건 중에 단단함으로 인정받아 황실 보고에 있던 녀석은 오로지 스틸 하트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황제 폐하의 하사품이잖아요. 하사품을 강화 재료로 쓰겠다니, 말도 안 돼요!”

스폴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붕붕 손을 저었다. 그 모습이 달라는 마치 앞의 아이를 막아선 듯 간절해 보일 정도였다.

“말이 안 될 건 또 뭡니까? 황제 폐하께서 내리셨지만, 이제 제 물건인데. 이걸 어떻게 사용하든 제 맘이죠. 제국의 귀족들도 하사품을 받고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토벌에 참가한 기사들만 뒤져도 황가와 연관된 사연 깊은 검을 들고 나선 기사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이건 그것과 경우가 다르죠. 전장에서 부러지는 것과 재료로 쓰는 게 같아요?”

스폴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이드는 그런 스폴의 모습이 재미있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드도 황제가 다스리는 중원 출생이다. 황제가 내리는 하사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다. 황제의 하사품을 품에 안고 굶어 죽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이드도 무림에서 살아가는 사람답게 물건에 담긴 의미만 존중할 뿐 보물처럼 아끼다 썩히기 보다는 적재적소에 사용하자는 쪽이었다. 그리고 현재 스틸 하트의 가장 좋은 사용법은 이그렌의 파츠 아머를 강화시키는 것이고 말이다.

‘일라이져라도 없었으면 모르지만……’

굳이 손에 익은 일라이져 대신 스틸 하트를 쥐고 싶은 생각이 없는 이드였다. 이드는 스틸 하트를 풀어 탁자 위에 올렸다.

“스폴 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사실 스틸 하트는 제게 짐에 가까워요. 일라이져가 있어서 사용할 일도 없죠. 이대로 장식품으로 남기 보다는 좋은 기사를 키우는데 일조하는 것이 이 녀석도 원하는 일일 거라고 생각해요.”

우우우웅!

“봤죠. 이 울림. 스틸 하트도 분명 같은 생각인 거라고요.”

“….착각인가요? 제 귀엔 공포에 질린 비명 같은데요?”

설마 그 말을 믿으라고?

“하하하, 착각이에요.”

이드는 가자미눈을 하고 노려보는 스폴에게 손을 휙휙 저어 보였다.

장난스럽긴 하지만, 도저히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은 그 모습에 스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번엔 이그렌이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말했다.

“저기, 단장님, 저는 그냥 파츠 아머를 고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굳이 강화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드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있는 이그렌의 모습에 그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필요 없긴 왜 필요 없어? 설마 누구도 네 몸에 칼질 못 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그렌은 떠오르지 않는 변명에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황제의 하사품으로 강화한 파츠 아머를 입었다가는 칼질에 죽기 전에 심장이 떨려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지만, 스틸 하트를 재료로 파츠 아머를 강화해 주겠다는 이드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럼 그냥 얌전히 있다가 강화시킨 아머를 가져가.”

“일단 단장님의 생각은 알겠어요. 하지만 스틸 하트가 갑자기 사라지면 묻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건 어쩌실 건데요?”

“괜찮아요. 스틸 하트를 다 쓸 건 아니고, 금속의 결합 구조를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할 거니까요. 강화하고 나면 스틸 하트가 좀 더 얇아지고 짧아지긴 하겠지만, 없어지진 않을 거예요.”

본래의 스틸 하트는 전형적인 기사 검인 롱소드의 형태다.

스폴은 더 얇아지고 짧아진 스틸 하트를 상상했다. 그러자 떠오르는 레이피어의 형태에 스폴이 오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더 문제일 것 같은데요? 하룻밤 사이 스틸 하트가 야위기라도 했다고 하실 건가요?”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하사품이라서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었다고 말이라도 하지, 레이피어가 된 스틸 하트를 들켰다가는 빼도 박도 못 한다

“거, 검이 야윈다니. 큭큭.”

일리나가 입을 막고 꺽꺽 웃음을 삼켰다.

조금 난감한 웃음 코드에 살짝 당황하던 이드는 억지로 눈을 돌렸다. 연인 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눈감아야 할 예의가 있는 법이니까.

“크흠,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스폴 경이 굳이 이상하다고 한다면 이러는 건 어때요? 남은 스틸 하트로 스폴 경의 파츠 아머나, 검을 강화시켜 줄게요.”

흠칫.

순간 스폴이 몸을 떨었다. 억지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드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강화 이야기가 나올 때 이그렌보다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이 그녀가 아니던가!

이드가 이해한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스폴은 내심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우물쭈물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한다면 검에…………… 그런데 가능할까요? 강화하면 얼마나 강해질까요? 무게도 늘어나나요?”

그녀는 지금까지의 반대가 자신의 무구를 강화해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아마도 쉴라가 보았다면 ‘네가 그럼 그렇지!’ 하고 한탄했을 것이다.

스틸 하트를 재료로 쓰는 일에 적극 반대하며 옳은 소리를 해서 그렇지, 은색 기사단 최고의 사고뭉치가 바로 그녀가 아니었던가!

이드는 ‘상식 안의 행동은 할 만큼 충분히 했으니 이제 자유다!’라고 말하듯 흥분한 스폴의 질문에 손님을 맞이한 점원처럼 하나하나 답했다. 결과적으로 크기 변화 없이 백 그램 정도가 무거워지는 선에서 두 배 이상의 강도와 예리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답변에 스폴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후환이 두렵지만, 좋은 무구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런 위험은 감수해야겠죠. 자, 이그렌 경도 단장님이 작업하기 좋도록 빨리 파츠 아머를 내려놓으세요.”

참으로 상큼하기까지 한 태도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그렌도 결심을 한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파츠 아머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노르캄.”

슥슥 손을 비빈 이드가 땅의 중급 정령을 부르자 땅에서 노르캄이 솟아올랐다. 이드는 노르캄을 시켜 금속의 정령을 불러오게 했다. 어차피 초인기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굳이 정령 계약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끄덕끄덕.

이드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인 노르캄이 사라졌다가 은으로 만든 버섯 같이 생긴 금속의 정령과 함께 나타났다.

“어머나, 금속의 정령은 처음 봐요.”

“전 정령 자체가 처음입니다. 진짜 정령이 있긴 있네요.”

귀여운 정령의 모습에 긴장과 기대로 이드만 바라보던 스폴과 이그렌의 관심이 옮겨 갔다.

아무래도 정령을 직접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신기한 듯했다. 특히 버섯이긴 하지만 예쁜 장신구 같이 생긴 금속의 정령을 신기해했다. “저 아인 일부러 부른 건가요?”

스폴과 이그렌이 정령 앞에 쪼그리고 앉은 틈에 일리나가 다가와 몰래 물었다.

“아무래도 금속을 다루니까 금속의 정령이 있으면 좀 더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생각지 않게 귀여운 아이가 나와서 좋네요. 시선도 끌어 주고.”

“계약은 안 할 건가요?”

“전 정령에게 좋은 계약자는 아니니까요. 자주 불러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정령의 성정을 위해서는 깊은 교감과 함께 정령에게 많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 줘야 하지만, 대부분의 일을 자신이나 라미아의 선에서 해결하는 이드였기 때문에 정령을 잘 소환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드는 강력한 계약자일망정, 좋은 계약자라고 하긴 힘들다. 드래곤이라면 차라리 속성력이라도 성장할 텐데, 이드에겐 그런 것도 없다.

“좋고 나쁜 건 저 아이들이 결정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볼 땐 이드는 충분히 착한 계약자에요.”

위로인지 진심인지, 일리나의 말이니 진심이지 않을까?

“고마워요.”

준비를 마친 이드는 스틸 하트를 손에 들었다. 이드는 스틸 하트의 마지막 모습에 명복을 빌어 주고는 새로 태어날 스틸 하트의 모습을 그리며 삼매진화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솟아오른 뜨거운 열기가 한계점을 지나자 스틸 하트가 붉게 달아오르며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보통의 강철 검은 이 시점에서 쇳물이 되어 녹아내려야 하지만, 과연 단단함 하나로 인정받은 검답게 아직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막사안이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이드는 이 정도면 충분한 퍼포먼스가 되었다 싶어 금속을 다루는 초인기를 사용했다. 정해진 혈도를 흐르는 내력과 달리 물방울처럼 차가운 기운이 피부 위를 구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힘은 이드의 의지를 따라 움직여 스틸 하트를 움직였다.

꾸물꾸물.

강력한 열기에도 제 모습을 유지하던 스틸 하트였지만, 초인기가 닿자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검 끝의 일부분이 솟아오르더니, 작은 구슬 형태로 이드의 손에 떨어진 것.

이드는 쥐고 있던 스틸 하트를 손에서 놓고 가장 먼저 금이 간 견갑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똑같이 삼매진화의 내공으로 견갑을 달군 후 분리된 스틸 하트를 그 위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작은 구슬이 된 스틸 하트가 물 잔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견갑 속으로 사라졌다.

‘강화 작업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혀를 날름거려 입술을 적신 이드가 눈을 감고 초인기의 조종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드는 금속을 조종하는 초인기를 각성한 후 빠르게 능력을 발전시켰다. 라미아의 말대로 앞서 해 오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외형 변형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지만, 금속의 형질 변화는 아직 쉽지 않았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태와 달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금속 내부의 변화는 오로지 감각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대장장이라면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드는 대장장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이드는 빠르게 발전했다. 아직 금속의 결합 구조에 간섭하지는 못해도 강도의 강화 정도는 가능하게 된 것.

이드는 우선 초인기를 통해 느껴지는 견갑의 형태와 구조를 머릿속에 이미지화했다. 그런 후 견갑의 금속 구조물 안에 벌집 구조의 그물을 만들어 넣었다.

그물의 굵기는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얇았지만, 그것들이 만들어 낸 구조는 단단했다.

벌집 구조의 그물은 안과 밖으로 원래 견갑을 이루는 금속을 품고 견고함과 끈끈함, 그리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었다.

이드는 머릿속에 그린 설계도를 따라 스틸 하트를 움직였다.

슈르르르르.

초인기에 의해 풀어진 스틸 하트가 물그릇에 풀어진 물감처럼 퍼져 나가며 이드의 설계도를 따라 펼쳐졌다.

정교한 자수와 같은 작업은 한참동안 이어졌고, 한참 후 이드가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휴~ 하나 끝났다.”

말을 마친 이드의 손에는 붉게 달아올랐던 견갑이 원래 모습 그대로 변한 것 없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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