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87화
824화
슈우우우.
뜨겁게 달아오른 견갑을 탁자에 올리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검게 그을렸다.
이드는 견갑을 두고 좀 전과 같이 재료로 사용할 스틸 하트를 떼냈다. 이번엔 이후의 작업을 예상하고 미리 재료가 될 구슬을 여럿 만들었다.
그 후 다시 대충 손에 잡히는 파츠 아머를 잡고 강화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이드가 하는 강화는 굳이 따지자면 기존 강철에 스틸 하트를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강철의 구조물 안에 스틸 하트라는 기둥을 세우고 뼈대를 만들어 파츠 아머를 보강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 좋으면 됐지.
퐁당.
재료 구슬을 달아 오른 파츠 아머 위로 떨어트린 이드가 눈을 감고는 다시 설계도를 그리며 끙끙거렸다.
하지만 그런 이드의 입가는 웃고 있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도전 정신과 성취욕을 강력하게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드가 강화에 집중하는 파츠 아머의 주인인 이그렌을 포함한 일리나와 스폴이 탁자 주변으로 모여들어 견갑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내 파츠 아머에 스틸 하트가…………… 나중에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
뭐, 그 중 한 명은 견갑보다는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데 강화된 파츠 아머인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이그렌 경이 보기엔 어때?”
스폴이 주변을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말했다. 이글이글 열기를 뿜는 견갑은 정말 그녀의 말대로 변형된 곳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이그렌을 위한 강화이니 본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변한 곳이 없으니 긴가민가 싶은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헷갈려 하는 모습에 같이 견갑을 살피던 일리나가 견갑에 손을 댔다.
“소검후님, 지금 손을 대시면…….”
그 모습에 스폴이 화들짝 놀랐지만, 놀란 것이 아까울 정도로 일리나의 손을 말짱했다. 그렇다고 이글거리는 열기가 가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참, 내가 누구 걱정을 한 거야.”
스폴이 자신의 이마를 두드렸다.
이드가 당장이라도 쇳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달아오른 스틸 하트와 파츠 아머를 맨손으로 주무르는 것을 보고도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싶었던 것. 다시 본 일리나의 손에는 수기가 둘러져 있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아뇨. 오히려 호들갑만 떨었죠.”
“그런데 뜨겁지 않으십니까? 수기가 열기까지 막아 주진 않는 걸로 아는데요.”
이그렌이 걱정하면서도 신기하게 일리나의 손을 살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지만, 의념으로 검기를 조종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열기도 막을 수 있죠. 그보다 이걸 좀 볼래요?”
견갑을 눈과 수평이 되게 들어 올린 일리나가 막사 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 아래로 견갑을 가져가 그 표면을 가리켰다. “어?”
일리나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던 스폴이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견갑 표면에 미세한 금이・・・・・・ 아니, 문양이 있네요. 삼각형과 오각형이 복잡하게 섞인 모습이에요.”
문양은 복잡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반복되고 있었다.
“그게 이드가 파츠 아머를 강화한 방법일 거예요.”
“얼마나 강해졌을까요?”
스폴이 물었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그건 모르겠네요.”
그에 일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눈으로 보고 물체의 강도를 알아내는 초인기라도 가지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아직 뜨거운 열기를 띄어 휠 수도 있는 견갑을 두드려 볼 수도 없지 않은가. 강도를 알아내는 것이 당장 급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스폴에겐 급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이그렌을 시켜 물이 든 대야를 가져오게 했다. 과연 은색 기사단의 사고뭉치다운 행동력이랄까. 씨이이이-
대야에 견갑을 던져 넣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견갑의 열기에 뜨거워진 물을 두 번 정도 갈고 나자 견갑의 열기가 뜨뜻한 정도까지 떨어졌다. “그럼 어디 얼마나 단단한지 볼까?”
견갑을 건져 손가락을 튕겨 본 스폴이 검기를 만들어 견갑의 표면을 그었다.
기이이익.
거슬리는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튄 후 견갑에는 희미한 흔적만 남았다.
손가락으로 흔적을 만진 스폴이 혀를 내둘렀다. 구식 파츠 아머가 순식간에 최상급 방어력을 가진 파츠 아머로 변신했다.
“전엔 검기로 그으면 깊이 파였는데, 이젠 흔적만 남네요. 하하하.”
스틸 하트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던 이그렌이었지만, 막상 강해진 파츠 아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폴은 이그렌의 말에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강해진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견갑을 벨 때 약하지만 층층이 쌓이는 저항감을 느꼈다. 마치 검을 휘감는 거미줄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저항감은 베는 힘 자체를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스폴의 설명에 이그렌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좋네~”
스폴이 견갑을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그렌은 견갑의 주인이 바뀔 것 같은 위기감에 그녀의 손에서 견갑을 빼내며 말했다.
“그럼 부단장님도 검이 아니라 파츠 아머를 강화하는 걸로 바꾸시죠?”
“그건 아니고.”
스폴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방어보다는 공격! 파츠 아머가 좋아 보이긴 해도, 그녀의 성향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 사이 이드는 차근차근 파츠 아머의 강화를 마치고 있었다. 파츠 아머의 형태는 부위별로 다르지만, 내용은 같기 때문에 점점 요령이 생기고 속도가 붙었다.
고작 파츠 아머 한 벌로 요령이 생기냐 하겠지만, 몸과 기운을 사용하는 일에는 이골이 난 이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드는 잠시 후 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 조각을 끝으로 파츠 아머의 강화를 완료했다.
“끝났다. 최소한 파츠 아머가 약해서 죽는 일은 앞으로 없을 거다.”
“감사합니다. 이 파츠 아머를 믿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너무 믿지는 말고, 파츠 아머의 방어력에 기대는 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순간이니까. 그렇게 되지 않게 실력을 더 키워야지.”
“명심하겠습니다.”
이그렌이 아차 하는 얼굴이 되어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제 제 차례죠?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폴이 더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녀는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자신의 검을 얌전하게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정성이 가득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기대감이 크다는 말인데, 강화에 실패했다가는 후환이 장난이 아닐 것 같다.
“큼, 너무 과한 기대는 말아요. 재료의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당연하죠. 더도 덜도 바라지 않습니다. 딱 파츠 아머가 강해진 수준만 되면 좋겠어요.”
이드는 스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받아 들어 한 번 휘둘러 보았다.
잘 손질된 검이 번뜩이며 공기를 갈랐다.
과연 은색 기사단의 상급 기사가 쓰는 검답게 중심이 잘 잡힌 좋은 검이었다. 보검이나 명검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도 스폴에게 딱 맞는 검이라는 느낌이 왔다.
‘과연 이런 검이라면 강화해서 오래오래 쓰고 싶지.’
좋은 검을 찾기보다 손에 맞는 검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이런 검이라면 강화로 튼튼하게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하고 싶은 스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신경을 써 줄까.’
이드는 기대로 반짝거리는 스폴을 힐끗 바라본 후 원래 정했던 것보다 스틸 하트를 좀 더 떼어 냈다. 스틸 하트를 더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렇다고 남은 스틸 하트를 몽땅 사용했다가는 검의 무게가 갑자기 늘어 스폴의 실력을 죽일 염려가 있으니 적당히 선을 지킨 것이다. 화르르르륵
스폴의 검에서 불꽃이 뿜어지고 스틸 하트가 녹아들었다.
이드는 이번엔 눈을 감지도 않았다. 앞서와 같은 방식의 강화이기도 하지만, 파츠 아머보다 익숙한 검에 여유가 생긴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강화되는 과정을 볼 수 없었던 파츠 아머와 달리, 스폴의 검은 강화되는 과정이 선명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파츠 아머에서 나타났던 문양이 검의 손잡이 부분에부터 생겨나며 차곡차곡 쌓여 검극까지 이어졌다. 당장이라도 검을 뚫고 나올 것처럼 선명하던 문양은 곧 검속으로 스며들며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이드가 검에서 한 손을 떼며 말했다.
“다 됐어요.”
“앗? 벌써요? 파츠 아머 강화하는 시간의 반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드는 불량을 의심하는 스폴의 모습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검이잖아요. 전 검에 관련해서는 뭐든 빠르니까요.”
“……지금 그 표정 조금 재수 없어요.”
“큼, 일단 받아요.”
스폴의 말에 인상을 확 구긴 이드가 스폴에게 검을 던졌다. 충분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은 있지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복수였다.
“꺄악~ 저 뜨거운 걸 던지시면 어떻게 해요!”
“흥, 재수 없는 인간은 원래 그런 겁니다.”
심술 가득한 이드의 말에 진저리를 친 스폴이 손에 쥐고 있던 검집으로 검을 받았다. 곧 검집도 달아오르겠지만, 그녀는 그러기 전에 견갑을 식히려고 준비했던 대야에 검을 집어넣고는 눈을 흘겼다.
“너무해요. 쪼잔하게 달아오른 검을 던지시다니.”
“너무한 건 공짜로 검을 강화시켜 준 사람에게 재수 없다고 한 사람이죠.”
“쳇, 장난이었다고요.”
“나도 장난이에요.”
씨익 웃으며 엄지를 세우는 이드에 스폴이 입을 오물거리다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드의 말처럼 검을 강화시켜 준 은혜가 있으니, 더 물고 늘어지기 미안했던 것이다.
그 사이 이그렌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뜨거워진 물을 갈며 빠르게 검을 식혔다.
그리고 대충 식었다 싶었는지 스폴이 검을 꺼내 들었다.
“살짝 무게가 무거워진 것 같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변한 게 없어요.”
“당연하죠. 검은 방어구와 차원이 다르게 예민한 물건이잖아요. 최대한 변화가 없게 신경을 썼다고요. 일단 다른 부분도 한번 살펴봐요. 이그렌도 어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이드가 말하자 이그렌이 고개를 저었다.
“강화해 주신 건 바로 확인했습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강도도 확실하고요.”
이그렌이 흥분한 목소리로 검기에 흔적이 난 견갑을 들어 보였다.
그 사이 스폴은 이드의 말에 따라 검을 휘둘러 보고, 찔러 보고, 튕겨 보고, 휘어 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검의 성능과 달라진 부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지하고 있던 단검까지 내리쳐 반쯤 부숴 버린 후에야 만족했다.
그 후 그녀가 이드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최고에요. 단장님의 초인기는 혁명적이에요!”
“초인기가 아니라 무공과 정령의 힘이라니까요.’
“뭐든지요. 하하하하.”
좋은 기분을 숨기지 않고 호탕하게 웃는 스폴의 모습에 이드가 입맛을 다셨다.
‘이거 아무래도 초인기라는 걸 안 것 같지?’
사실 단순히 무공이나 정령술이라고 납득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들이 많기는 했다.
이렇게 되면 과연 숨기는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에 와서 ‘사실은 초인기였습니다.’ 하고 밝히는 것도 우스워 그냥 기존의 주장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눈치가 빠른 스폴이라면 이드가 초인기를 밝히고 싶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테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 이그렌만 따로 입단속을 해 두면 되겠지.’
이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스폴은 자신의 검이 얼마나 좋아졌는지에 대해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과연 강화시켜 준 당사자에게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녀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