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95화
832화
그것은 기묘한 모습이었다.
우선 검은색 나무가 있었다. 일반적인 나무와 달리 검은 광택이 나는 표면은 매끄럽고 나뭇가지도 세 개뿐이다. 나뭇잎 한 장 없는 나뭇가지 끝에는 호박이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네모난 철제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나무는 아니고, 장식물 같다.
그리고 사라졌던 여섯 명이 침을 질질 흘리며 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달을 본 늑대의 하울링처럼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우우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하울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조되어 갔다.
“우우우우우~”
흔들흔들.
그리고 조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검은 나무가 나뭇가지를 크게 흔들기 시작했다.
“중요한 모임 중인 거 같은데 실례 좀 합시다. 아, 삼류 오컬트 종교 모임처럼 보이니까 중요한 건 아닌가?”
하울링을 듣고 달려온 이드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우우우우~”
“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하면 좀 외로운데 말이지.”
이드는 자신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조원의 모습에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에 허술하지는 않았다.
천이통의 수준에 이른 귀가 기척을 감지하고, 생명체의 탐색에는 최첨단 탐색기를 능가하는 기감으로 주변에 적이 없음을 확인한 후였다.
“그렇다면 역시 가장 의심스러운 건 저 나무겠지. 아니, 범인인가.”
이드의 시선이 땅에 박혀 있는 줄기 부분을 향했다. 보통은 기름진 흙이 가득해야 할 그곳에는 흙 대신 하얀 백골과 썩어 가는 시체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마치 검은 나무가 흙이 아니라 시체를 녹여 먹고 그 양분으로 자라는 것 같은 끔찍한 모습이다.
“어이, 검은 나무 씨. 언제까지 평범한 나무인 척할 건데?”
푸스스스.
이드는 그 모습을 노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말에 답이라도 하듯 나뭇가지가 더 크게 흔들리며 나무에서 진한 갈색의 연기가 이드에게 뿜어졌다.
주변에 가득한 달콤한 향기의 정체인 듯했다.
“쯧쯧쯧, 어쩌나. 나한테는 그 냄새 안 통하는데. 그보다 달콤한 향에 비해서 색이 더럽네. 하기야, 본래 화려해 보일수록 더러운 것들이 많지.”
푸스스스.
이드는 마치 인간에게 이야기하듯 떠벌이다 주저앉은 조원의 어깨에 손을 올려 내부를 살피고는 혀를 찼다.
‘몸에 강력한 마약 성분이 들었다. 단순한 섭혼술이나 탈혼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단순히 정신을 제압당한 것이라면 천마후로 제압을 부수고 조원들을 내려보낼 수 있었겠지만, 저 연기에 담긴 약이 몸에 남아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둘 수도 없다. 보나 마나 이곳은 곧 싸움터로 변할 테니까.
“그게 아니라도 이렇게 진기를 뿜어내고 있으면, 몸이 상하지.”
단전에서부터 뿜어내는 조원들의 하울링에는 미세한 진기가 담겨 있었다. 다른 말로 생기라고도 할 수 있는 기운이다. 미세하게 뿜어진 진기는 실시간으로 검은 나무에 흡수되고 있었다.
인간의 생기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마계의 마수라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감시조는 한숨 자고 이따가 보자고.”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떼는 이드의 양손에서 열두 줄기의 지력이 뿜어져 조원들의 수혈과 마혈을 동시에 점했다.
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무너지는 조원들의 다리와 어깨를 장난치듯 툭툭 두드렸다.
그때마다 이드의 손과 발에 닿은 조원들이 얼음판 위의 스톤처럼 미끄러져 숲속으로 사라졌다. 최대한 검은 나무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밀어 보낸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여섯 명의 조원이 사라지고 현장에 이드와 검은 나무만 남게 되자 갈색 연기만 뿜어내던 검은 나무에 변화가 생겼다.
그워어어어~
그건 명백히 기분이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소리였다.
“입도 없는데 잘도 소리치네. 먹이를 뺏겨서 화났나 보지?”
쿠르르륵.
이드의 말에 긍정하듯 줄기 주변에 쌓인 시체들을 튕겨 내며 두꺼운 뿌리 한 줄기가 이드의 가슴을 노리고 튀어나왔다.
어지간한 창술가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훌륭한 찌르기를 향해 이드가 손바닥을 들었다.
쿠콰콰콱!
번개 같던 찌르기는 이드의 손바닥 앞에 연한 청색의 강기 막에 막혀 뭉개졌다. 이드는 부서지거나 부러지지 않고 묽은 반죽처럼 강기 막 앞에 뭉개지는 나무줄기를 보고는 손가락을 들었다.
“감정 표현이 격하네. 그런데 먹이를 가지고 싶었으면 대여료를 먼저 냈어야지. 안 그래? 허락 없는 불법 대여라서 대여료가 좀 커.”
퍼펑!
이드의 말과 동시에 손가락 끝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검은 나무줄기 한가운데 허연 연기와 함께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역시 생긴 대로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였나. 열양지인데 불이 안 붙네.”
“끼에에엑!”
“대신 통증은 있는 모양이네.”
검은 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강기 막 앞에 굳어 있던 나무줄기를 회수했다. 그리고 통증 때문인지 이리저리 몸을 뒤틀더니 그 큰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상자를 달고 있는 세 개의 나뭇가지를 제외하고 검은 몸체가 하나로 뭉쳐지더니 네 개의 다리가 생기고 몸이 앞뒤로 길게 늘어졌다. 마지막으로 상어의 톱니 이빨이 가득한 입을 가진 못생긴 머리가 생겨나며 이드를 노려보았다.
“쿠화와와와!”
놈은 분노한 울음과 동시에 이드를 향해 그 큰 몸을 날렸다. 몸길이만 오 미터의 엄청난 놈이었지만, 암살자처럼 은밀하고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특히 티끌 없이 검은 몸은 밤에 활동했다면 사신으로 불려도 절대 모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직 해가 남아 있어 검은 몸이 똑똑히 보이고, 무엇보다 놈이 겁 없이 달려든 상대가 이드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슈! 슈와!
이드를 향해 휘두른 놈의 발톱에 공기가 갈라졌다. 놈이 발톱에 검기를 두른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검기보다 날카롭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상대가 맞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을.
이드가 놈의 발톱을 피하는 데는 단 두 걸음만 필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두 걸음을 옮긴 이드의 눈앞에는 놈의 길쭉한 몸통이 있었다. 이드는 ‘제발 여기를 때려 주세요’ 하고 드러난 놈의 몸통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순간 이드의 주먹에서 검은 기웃이 울컥 치솟아 올랐다. 철황권 최강 포격 철황포!
콰앙!
산을 가득 울리는 폭음과 함께 검은 마수는 날아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원래 있던 자리로 튕겨 나갔다. 그러자 쌓여 있던 백골과 시체들이 부서져 사방을 흩어졌다.
시체들 대신에 그 자리에 드러누운 놈의 몸통에는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지만 과연 마수랄까. 뚫린 몸에서는 피도 내장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대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 이빨, 기억에 있지. 설마 방식이 달라서 다른 놈인 줄 알았는데, 불법 대여뿐 아니라, 치털링 감시조의 거점을 습격한 것도 너였구나.”
아무래도 대여료를 받아도 피해 보상에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이드는 검은 연기와 함께 몸통에 뚫린 구멍이 점점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는 일라이져를 꺼내 들었다.
“크르르륵!”
아직 검기도 품지 않은 일라이져를 본 검은 마수가 몸을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꼴에 마수라고 성검은 알아보냐?”
이드의 손에서 회전하는 일라이져가 화려하게 반짝였다. 제작 목적이 성검에 있지는 않지만, 엄연히 신전에 바쳐져 여신의 축복을 받은 성물.
마계의 생물에게는 여타의 성검과 다를 게 하나 없는 최악의 천적이다. 본능적으로 그걸 느낀 마수의 털이 섰다.
하지만 그 본능. 이드를 알아보지 못하고 덤빈 시점에서 고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
쿵!
진각에 이어진 이드의 접근도 전혀 예감하지 못했지.
순간 이동처럼 마수 앞에 나타난 이드가 일라이져의 성력이 담긴 무형일절의 무극검강을 쏟아 냈다.
순간 검은 마수의 목덜미부터 허리까지 주욱 갈라지며 검은 마수의 몸체가 타들어 갔다. 일라이져의 성력이 마기로 가득한 놈의 몸을 태운 것이다. 치이이이익!
“쿠와와와와!”
검은 마수는 앞선 두 번의 공격에서 느끼지 못한 공포와 고통, 분노에 힘껏 울었다.
그와 함께 놈의 몸에서 갈색의 연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연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거냐. 마수라서 멍청한 걸까. 그럼 그 쓸모없는 머리통을 떼 주지.”
이드가 갈색의 연기를 무시하고 다시 검을 들자 마수의 몸에서 검은 나무의 뿌리 같은 촉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한 번 경험한 공격에 이드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공격. 이드는 전진을 멈추지 않고 촉수를 베어 냈다. 그리고 그대로 마수의 목을 치려는 순간.
검은 마수의 이빨이 부딪히며 불꽃이 번뜩였다.
치직.
그리고 불꽃은 그대로 갈색 연기에 옮겨붙으며 단숨에 폭발했다.
콰과과쾅!
마치 가스 폭발을 연상케 하는 폭음과 폭염이 이드를 삼켰다.
“크르릉.”
검은 마수는 단숨에 불꽃에서 멀어지며 만족감에 그르릉거렸다. 하지만 놈의 만족은 길지 못했다.
푸확!
붉은 화염을 두르고 폭발 속에서 뛰어나온 이드의 검이 전혀 느려지지 않은 속도로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검은 마수가 급히 몸을 틀었지만, 그것을 예상한 듯 일라이져에서 분리된 무형극의 검기는 정확히 놈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했다. 서거걱!
“설마하니 마수의 잔꾀에 당할 줄이야. 쪽팔려서 어디에 말도 못 하겠네.”
이드가 말끔한 모습으로 아직 붙어 있는 화염을 털어 내며 말했다. 설마 섭혼의 효과가 있는 갈색의 연기가 화약처럼 폭발할 줄 짐작도 하지 못했다.
과연 마계의 마수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는 것인가.
라미아가 보지 못해서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녀가 보고 있었다면, 평생의 놀림거리로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증인과 증거는 남지 않았으니까. 이걸로 끝인가………… 했는데, 아닌 모양이네.”
떨어진 검은 마수의 머리를 밟아 터트린 이드는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는 검은 마수의 몸체에 한숨을 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떨어진 자리에서 방금 밟아 터트린 머리가 솟아났다.
“크와와와!”
새로 태어난 머리는 앞서 상대한 놈보다 사나웠다. 놈은 울음을 내뱉음과 동시에 전신에서 창과 같은 촉수를 뽑으며 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전신을 던져 이드를 공격하는 놈의 모습은 야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야수의 위용이 통하는 것은 선량한 마을 사람들.
용사가 나타나면 야수는 퇴치될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이드는 용사를 넘어 전설의 마인드 마스터!
이드는 검은 마수의 공격을 모조리 차단하며 놈의 전신을 베었다.
그러나 놈의 회복속도는 트롤 이상이었다. 놈은 검은색 그림자처럼 아무리 베어도 금방 회복되었다.
일라이져의 성력도 분명 효과는 있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주지 못하고 있었다.
“성가시네, 이대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군.”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단숨에 태워 버리든, 흔적도 없이 부숴 버리든 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의 마수를 상대로 쓰기에는 힘의 낭비다.
금방 상처를 회복하는 마수의 특성은 이트와 상성이 좋지 못했다.
덜그럭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딪히는 상자들이 이트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을 봐 달라는 듯.
“저건.”
지금까지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물건에 이드의 눈이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