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97화
834화
퍼억!
길고 하얀 손가락이 폭발하며 피와 살이 튀었다.
“꺄아아아악!”
피로 물든 손의 주인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미친 듯한 비명이 얼마나 처절한지 어지간한 철석 간담도 화들짝 놀라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비명.
당연히 그 소리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죄, 죄송합니다.”
잘라 낸 두개골을 들어내던 연구 마법사 하나가 비명에 놀라 뇌에 살짝 상처를 내고는 바르르 떨었다.
“괜찮아. 재료는 많으니까. 그래도 조심 좀 하지 그랬니. 겨우 저런 소리에 흔들리면 나하고 같이 연구하기 힘들다?”
붉은 입술이 유독 인상적인 여 마법사가 장난치듯 새치름하게 말하고는 하얀 두개골에 피로 물든 손을 얹고는 옆으로 스윽 밀어 뇌를 으깨버리고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대기하고 있던 여자가 붉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이 재료는 쓸 수 없으니까 다른 거 가져와 이거랑 같이 골라 둔 예비 있지?”
“예! 즉시 가져오겠습니다.”
여 마법사의 친근한 말투에 훈련소 신병처럼 빠릿빠릿한 마법사들, 일견 상냥한 상사와 열심인 부하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마법사들의 움직임에 두려움이 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 마법사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몸을 돌려 비명을 지른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특이하게 그 여자는 몸의 절반이 벽 안에 묻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끔찍한 비명과 달리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련만 여 마법사는 오히려 듣기 좋다는 듯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폭발한 손가락을 확인하며 뒤적거렸다.
“6번이 죽었구나.”
여 마법사는 정신의 관 외부에 배치한 마수의 상태를 여성의 손가락과 연동시켜 마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물론 여성의 손가락이 폭발하는 것은 순수하게 피를 즐기는 여 마법사의 취향이다.
“이번엔 벌레들만 몰려온 게 아닌가 봐. 어쩔까나? 호호호.”
여 마법사가 기대감에 붉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마수가 당했는데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이다. 그녀의 반응은 전력이 깎였다는 것보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부서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에 가깝다. 그것도 많고 많아 신경 쓰지 않는 장난감 말이다.
“마스터, 준비 끝났습니다.”
그때 재료를 가지러 갔던 마법사가 벌거벗은 남자를 작업대 위에 고정시킨 후 말했다.
여 마법사는 그 말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와 입술처럼 붉은 손톱으로 남자의 두피를 그었다.
쩌억!
순간 손톱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잘린 두피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허연 두개골이 나타났다. 그와 함께 그녀의 손에 피가 튀었지만, 여 마법사는
오히려 그걸 즐기는 모습이다.
하기야 그럴 것이 아니라면 칼을 썼을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자. 아, 그전에 넌 저기 가서 인형 손가락부터 처리해 최대한 신경을 잘 살려 둬야 한다.”
즉, 비명소리를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라는 소리다.
“네!”
“그리고 나머지는 저 소리에 익숙해질 것. 나랑 같이 연구하면서 저런 소리에 흔들리면 안 되겠지?”
“절대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이번엔 이 두개골 누가 잘라 볼래?”
인간이 그저 물건이나, 연구물로 취급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현장에 끔찍한 비명이 음악처럼 쏟아졌다.
그중 누구도 마수를 죽인 적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만약 이드가 알았다면 조금 자존심 상했을지도?
약에 취한 감시조가 회복하길 기다린 이드는 그들이 모두 일어나자 알단테와 함께 검은 마수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현장은 파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도 없었다.
“마수가 죽은 걸 모르지는 않을 테고. 이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까요?”
“그래 주면 우리야 편하지. 할 일도 많은데, 우리 할 일만 하면 되니까. 안 그래?”
“즉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알단테와 감시조가 현장의 상태와 시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시체는 모두 전멸당한 감시조의 것이었다. 그중에는 치털링 감시조로 보이는 시체도 끼어 있었다.
사방이 트인 곳이라 시취가 덜하겠지만, 그래도 냄새가 독할 텐데 감시조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체들을 살폈다.
조사를 마친 시체들은 백골과 함께 한쪽에 차곡차곡 모았다.
한 시간가량이 걸려 조사를 마친 알단테가 다가왔다.
“좀 나온 거 있어?”
“없습니다. 모두 조원들처럼 특수한 방법에 당한 모양인지 단서를 남길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아까 봤던 치흔은?”
“뿌득. 큰놈과 작은놈 둘 다 있습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닌 놈들입니다. 제국의 병사들을 마수의 먹이로 던져 주다니요. 모든 토벌대의 기사들이 분노할 일입니다.”
미완의 마탑과 제국.
어차피 제국에서 토벌을 천명한 입장에서 죽고 죽여야 할 적이지만, 그래서 선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알단테와 감시조는 죽어 고깃덩이로 변한 시체를 마수가 뜯어 먹게 했다는 사실에 분함을 감추지 않았다.
죽고 난 시체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교수형에 처한 시신을 동물들에 뜯어 먹히도록 황야에 버리는 것도 형벌 중 하나이겠는가.
하지만 상자에 든 살아 있는 초인의 머리를 보았던 이드에게 마수에게 먹힌 시체는 큰 충격을 주지 못했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죽일 놈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어차피 죽을 놈들이야. 너무 감정 쏟지 말아. 지금은 고생한 병사들을 쉬게 하는 게 먼저야.”
“조원들과 함께 땅을 파겠습니다.”
이드가 알단테의 말에 고개를 젓고는 가지런히 눕혀진 시체들을 향해 다가갔다.
“마수에게 죽은 사람은 언제든 언데드로 일어날 수 있어. 신관의 정화를 받는다면 모르지만, 그냥 묻을 수는 없지.”
“하지만 저희는 신관이 없습니다.”
“대신 정령이 있지. 라스갈.”
이드가 부르자 불의 중급 정령이 소년의 모습을 하고는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라스갈의 모습에 알단테와 조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옛날보다 기사들이나 초인들이 늘어 그 힘을 자주 보게 되었지만, 반대로 옛날보다 더 보기 힘들어진 것이 정령을 소환하는 정령사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정령사를 보기 힘든가 하면 정령사보다 황족을 보는 것이 더 쉽다고 할 정도다.
당장 알단테와 조원들만 해도 정령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드가 정령을 부른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정령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설마 단장님께서 정령까지 부리시는 줄은…….”
“왜, 더 믿음직스러운가?”
“예, 그렇습니다.”
이드는 어째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로 감시조에 소개될 때보다 더 놀라는 모습에 키득거리고는 라스갈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끄덕.
기억 속의 라스갈은 장난기 많은 소년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본 녀석은 조금 더 어려지고 말수도 줄어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불러 놓고 부려먹어서 미안하지만, 저기 안식을 찾지 못한 불쌍한 자들을 네 불길로 정화해 주겠어?”
끄덕.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라스갈이 곧 거대한 오렌지색 불길이 되어 시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드의 마나를 연료로 하지만 삼매진화와는 또 다른 불길이 숲의 나무들보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
“단장님, 불길을 좀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단테가 걱정스럽다는 듯 멀리 정신의 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정신의 관 놈들이 보고 달려올까 봐? 설마 아직 놈들이 우리가 왔다는 걸 모를 것 같아?”
“하지만 저희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닐 겁니다.”
“걱정 말아. 올 놈들이었으면 벌써 왔어. 그리고 난 차라리 알아서 달려들어 주면 좋겠다고. 귀찮게 하나하나 찾으러 다닐 필요도 없고. 만약 달려드는 놈들이 있으면 오는 족족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아.”
“예.”
알단테는 이드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드의 말을 그저 확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이드로서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살아 있는 초인의 머리.
그걸 본 이드는 오랜만에 적에 대한 살의를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제발 그놈들이 숨지 말고 알아서 튀어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이드의 마음은 다음 행동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안식하지 못하던 감시조들의 화장을 마친 이드는 감시조를 이끌고 작업이 중지된 거점 포인트로 이동했다.
우선 작업하다 던져둔 장비를 챙기게 한 이드는 그 자리에 화려한 지구산 텐트를 꺼내 놓은 것이다.
순식간에 조립을 마치고 텐트의 설치를 마친 이드의 모습에 설마 하고 있던 알단테가 곤혹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다가왔다.
“단장님, 설마 이곳에 다시 거점을 마련하실 생각입니까?”
“작전부에서 정해 준 거점 포인트라면서?”
“하지만 이미 적에게 발각당한 거점입니다. 당연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아니, 발각당한 곳이라서 여기에 있는 건데? 내가 말했지? 알아서 찾아와 주면 고맙다고.”
“……”
이드의 말에 알단테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침묵했다.
설마 진심으로 그런 말을 했을 줄이야. 아니, 아무리 그런 의도가 있다고 해도 보통은 이곳에 함정을 파고 다른 곳에 은밀히 잠복하는 것이 정상이지. 이렇게 대놓고 텐트를 치지는 않는다.
“자, 그럼 해도 졌으니까. 저녁 준비해.”
텐트 설치를 마친 이드가 나무 아래 등을 기대고 앉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조용히 듣고 있던 조원 중 하나가 알단테에게 속삭였다.
“조장님,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기는? 저녁 준비해야지.”
알단테가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명예 후작의 명령이다. 나가 죽으라는 부당한 명령도 따라야 할 판에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앞장서서 하고 있다.
이런 짓은 못하겠다고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괜찮을까요?”
“괜찮길 바라야지. 단장님께서는 괜찮지 않길 바라시지만・・・・・・ 후, 아무래도 이번 임무에는 평범하게 감시조 일을 하지는 못하겠다. 네놈들도 각오 단단히 해 둬라.”
“단장님이 한 번 살려 주신 목숨입니다. 각오는 이미 마쳤습니다.”
이미 불을 피우기 시작한 벤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물론 한 번 살려 준 목숨이라고 죽어도 좋다는 건 아니지만, 짧은 시간 이드에 대한 믿음이 생긴 조원들은 빠르게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보통 감시조 일을 하다 보면 따뜻한 물도 없이 딱딱한 육포를 씹기 일쑤지만, 아예 찾아오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 화려한 텐트에 기댄 감시조는 뭔가를 내려놓은 듯 수프를 끓이고 고기를 구워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후후.”
꽤 좋은 조장에 조원이 아닌가.
이드는 제법 맘에 드는 조원들의 모습을 보다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라미아를 불렀다.
‘라미아, 거긴 저녁 메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