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01화
838화
“뭐, 튀어나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
상당히 무책임한 발언과 함께 상자와 함께 화장을 끝마친 이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반복된 작업이 이제는 슬슬 손에 익는 것 같지만, 장의사가 될 것도 아니고 익숙해져서 기쁠 것도 없다. 그래도 앞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라화가 조금 덜 진행됐다는 정도. 갑작스러운 공습에 힘을 써 볼 틈도 없이 당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역시 마수가 갑자기 변한 건 역혈대법의 일종인 것이 확실하네.”
역혈대법은 생명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천진기까지 태워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파의 대표적인 동귀어진 수법이다.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무공이 정파와 마교에도 존재하지만 사파의 것이 가장 발동하기 쉽고, 그만큼 독하기로 유명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머리가 남은 초인에게 어떻게 선천진기를 뽑아내는 것일까? 초인의 초인기는 머리에 남는 것일까?
이드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뒤로 밀어두고 철황강기와 함께 몸을 날렸다.
“다음!”
“냐냐냐냐~ 냐냐~”
프리실라가 신이 난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열 개의 손가락이 모두 사라진 벽 속의 여인이 머리가 박살 난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끊어지지 않는 비명을 즐기던 프리실라가 마지막 손가락이 사라짐과 함께 머리를 부숴 버린 것.
“…..”
“저・・・・・・ 마수의 전멸을 부관주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쪽에 나란히 대기 중이던 마법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머, 왜 그래야 하니?”
“…..토벌대의 감시조니 당연히 감시를 막아야지 않을까요?”
당연한 질문에 대한 의문에 마법사가 진땀을 흘리며 답하자 프리실라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우리 쪽 준비도 끝났는데, 서로 좀 훔쳐보면 어때? 그래야 긴장감도 생기고 더 흥분되잖아. 그리고 지금 우리 고양이들이 전멸한 사실이 소문나면 어떨 것 같니?”
“그거야…….”
“날 질투하는 년들이 약해 빠진 불량품이라고 조롱할 거 아냐!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이게 아닌데 싶지만, 생존 본능에 따라 내심과 다른 답을 한 마법사는 자괴감에 눈물을 흘렸다.
“그럼 이대로 모른 척할까요?”
“그럴 순 없지. 귀여운 우리 고양이의 목을 다 따 버렸잖아. 그거 만든다고 피부 망가지면서 며칠 밤을 샜는데!”
‘그럼 어쩌라고! 이 미친년아!’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반응에 마법사는 차라리 입을 닫아 버렸다.
“뭐야. 대답 안 해?”
“예, 옙!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마수를 모두 죽였으니 가만 둘 수 없다는 말입니다.”
황급히 대답한 마법사는 저 미모에 홀려 프리실라의 연구 마법사를 선택한 과거의 자신이 미치도록 미웠다.
프리실라는 그런 마법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법사를 홀렸던 매혹적인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그래, 그런 거야. 우리 고양이가 당했는데 다른 연놈들에게 그 혈기왕성한 놈을 내주고 망신까지 당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우리 고양이를 죽인 놈의 피는 내 거야.”
겨우 튀어나온 프리실라의 본심에 마법사가 난감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
“마스터께서 직접 싸우시려면 부관주님의 허락이……”
“호호, 직접 싸우기는? 그냥 산책이야. 가벼운 산책에 무슨 부관주님의 허락까지 필요하니? 안 그래? 그리고 본격적인 파티 전에 가벼운 식전주 정도는 기본이라고.”
“알…… 겠습니다.”
마법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연구실에서 프리실라를 보조하는 일을 하는 그로서는 그녀의 결정을 반대할 힘이 없었다.
“좋아. 그럼 가서 내 귀여운 베릴 데려와 산책에 개가 빠질 수 없지.”
그런 마법사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프리실라가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옆에 세워 둔 지팡이를 손에 들었다.
푸르륵.
허공에 타오르던 마지막 불길을 꺼트린 이드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 이드가 서 있는 땅은 검게 타서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뱀과 지네를 거쳐 마지막으로 원숭이의 형태를 하고 있던 놈을 광열파로 구워 버린 흔적이었다.
검은 마수에게 쓰기엔 과잉 전력이라 고민하던 수법답게 원숭이 마수는 물론이고, 초인이 담긴 상자와 그 안의 초인까지 같이 태워 버렸다. 마지막 마수를 상대로 철황기가 아닌, 불을 이용한 공격이 얼마나 통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이드의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광열파는 불 속성 이전에 너무 강력한 무공이었다. 검은 마수는 불에 타기도 전에 광열파의 폭급한 힘에 무너졌다.
“그런데 마지막 놈까지 처리했는데도 작은 이빨을 가진 놈은 안 보이네.”
어쩌면 약발로 형태가 변해 버린 놈 중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드는 어쩐지 그건 아니라는 육감을 느꼈다.
특히나 싸운 상대의 정보를 감지하는 것에서는 세상 무엇보다 예민한 무인의 감각이니 충분히 믿을 만했다.
“뭐, 어차피 토벌대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어디서 튀어나와도 튀어나오겠지. 그나저나 이제 경비견 사냥도 끝났고, 정신의
관에서는 어떻게 나오려나?”
이드는 곧게 뻗은 나무 꼭대기의 가지에 엉덩이를 걸치며 정신의 관을 바라보았다.
숲 중앙에 위치한 정신의 관은 주변의 초록에 둘러싸여 제법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고 있을 연구를 안다면 운치가 귀기로 보이는 것도 한순간이 아닐까.
첫날의 마수를 시작으로 이드가 사냥을 시작한 지 삼 일째.
마수가 쓰던 최음향과 약병도 전날 용기사를 통해 무사히 토벌대에 전해졌으며, 그날 밤 따로 그에 대해 특별히 보고를 더했다.
그 보고에 록마틴 후작은 토벌대가 도착할 때까지 철저히 분석한 후 완벽한 대비책을 만들어 놓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역시 본 게임 전에는 힘을 뺄 생각이 없다는 건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마수와 초인의 수명을 줄이는 대응을 보인 만큼 마수의 수가 줄면 뭔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라고 할까?
본래 이드가 읽었던 흐름이지만 막상 수십 명의 초인들의 머리를 화장하고 보니 참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마법사 한둘 정도는 잡아 주리를 틀어 주고 싶었던 것.
이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정신의 관의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때를 쓸 수도 없는 노릇. 그건 감시조로 파견된 이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토벌대가 도착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도 재미없으니까………… 마수 말고 다른 걸로도 속 좀 뒤집어 줄까?”
이드는 정성들여 쌓아 둔 레고를 앞에 둔 아기처럼 정신의 관과 그 주변을 눈에 담으며 안력을 높였다. 기묘한 흐름을 타고 눈에 모여든 내력이 눈동자에서 투명하게 빛나자, 이드의 눈에 정신의 관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실낱같은 마나의 흐름이 읽혔다.
육신통 중 천안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넘치는 내력을 쏟으면 마나의 흐름 정도는 충분히 볼 수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마나는 마치 인체의 주요 혈도처럼 곳곳에서 강력하게 뭉쳐 있었다. 마치 스위치만 누르면 터질 폭탄처럼.
당연히 폭탄의 목표는 토벌대가 될 것이고 말이다.
마수들의 영역을 기준으로 안쪽은 촘촘한 반면, 바깥쪽은 큰 규모에 비해 안쪽은 허술한 면이 보였다. 마법사의 둥지인 만큼 안쪽의 함정들은 정신의 관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진 것일 테고, 밖의 것은 토벌대를 대비해 최근에 새로 설치된 것 같았다.
정신의 관에서 마법 함정을 설치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열심히 감시조를 보낸 토벌대 입장에서는 허탈한 결과다. 함정에 관한 보고는 한 줄도 받지 못하고 감시조만 잃었으니까.
무엇보다 마법을 이용한 함정인 만큼 현재의 감시조라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토벌대의 마법사들이라면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럴 틈도 없이 전투 중에 유인이라도 당한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다.
또 마법사들이 알아차린다고 해도 문제다. 함정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물론 이건 다 내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후후후.”
몰랐다면 몰라도 확인한 이상 얌전히 둘 생각이 없었다. 감시조의 단장으로 자신과 같은 초과잉 전력이 투입된 것도 바로 이런 때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일단은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려야겠지?”
드러내놓고 있는 마수와 함정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너무 빨리 뒤집었다가는 집이 부서진 개미처럼 대대적으로 기어 나올지 모른다.
대략 토벌대가 도착하기 이틀 전부터가 적당할 것이다.
그래도 며칠은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정신의 관을 바라보던 이드의 눈에 움직이는 인형이 들어왔다.
“역시 옛말은 틀린 게 없다니까. 암, 개를 두드리면 주인이 나오기 마련이지. 결국 개 주인이 나오신 모양이네. 그것도 대장 개까지 끌고.”
이드의 눈이 향한 곳. 거기에는 짙은 붉은색의 드레스인지 로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옷을 입고 개의 목줄을 잡은 여인이 정신의 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결국 나갔군.”
원견의 마법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던 랜달이 프리실라의 모습을 확인하는 눈을 떴다. 그는 프리실라의 돌출 행동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여자였으니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것이겠지. 상대는 괴물이다. 제 발로 사신을 찾아간 꼴이지.”
지금도 생명의 관에서 자신을 몰아치던 이드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입술을 깨물고 마는 랜달이 끅끅거리며 웃었다.
“평소 엉덩이가 가볍다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말입니다. 프리실라 양, 마지막 한 수가 없다면 오늘이 당신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되겠군요.”
참으로 아깝다는 듯 말했지만, 정작 그의 표정은 후련했다.
유혹하듯 자신에게 달라붙는 이유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노리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생명의 관이었다면 벌써 그 가증스러운 얼굴 가죽을 벗겨 버렸을 테지만, 더부살이 중인 입장이라 그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그런데 오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저 가증스러운 년을 치워 버릴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감시조 속 이드의 얼굴을 알아보고도 누구에게도 알라지 않았다. 프리실라가 저럴 줄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록마틴 후작이라고 했나? 설마 저자를 감시조로 보낼 생각을 하다니. 어지간히 사람 쓰는 것이 거친 인간인 모양이군. 덕분에 골칫거리 하나를 치우게 된 건 고맙지만 말이야.”
역사상 공후의 작위를 받은 자가 감시조 따위로 활동한 전례가 없다. 그만큼 이번 일은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랜달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당장 그에겐 그런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이오, 관주.”
관주는 정신의 관 부관주와 몇몇 장로, 그리고 자신을 불러 소드 팰러스와의 밀약을 알리는 한편 그와 동시에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었다. 랜달은 그 사소하다면 사소한 명령에서 관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감지했다. 그건 진리를 깊이 파헤친 고위 마법사의 예지 같은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생존 본능이 반응한 것이었다.
관주는 이미 그가 초인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선택을 하란 건가? 아니면, 그 이상을?”
랜달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졌다. 선택에 따라 목숨은 물론 자신의 연구가 달린 문제였다.
그 때문에 이드의 존재도 알리지 않았다. 단순히 프리실라 때문이 아니었다.
그에겐 변수가 필요했다. 잠깐이라도 관주의 눈을 피할 수 있게 해 줄..
“그러니 잘 좀 날뛰어 달라고.”
랜달이 원견의 마법을 사용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