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08화
845화
그의 말에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역시 프리실라 일에 저치가 빠지면 섭하지. 끌끌.”
그중 몇은 그가 나설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런 소리를 한 귀로 흘린 베일록은 상석에 앉은 해더웨이의 눈만 바라보았다.
“제가 가서 프리실라를 데려오겠습니다. 허락 바랍니다.”
베일록이 다시 힘주어 말했다.
“이미 탑주께서는 대응하지 않겠다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구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으셨지 않습니까? 잡부도 아니고, 정신의 관의 장로입니다. 구출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해더웨이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심부름하는 잡부도 아니고, 마법 지식의 정수를 품은 고위 마법사는 분명 귀하게 다뤄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던 것과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베일록 장로의 말도 옳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프리실라 장로의 독단적인 행동에 따른 일입니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방종한 결과까지 정신의 관에서 책임질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법 학교가 아니에요. 무엇보다 프리실라 장로가 이미 사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요. 저는 알 수 있습니다. 프리실라는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는・・・・・・ 없습니다.”
증거도 없는 막무가내식 주장에 해더웨이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기분이 나쁠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논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그는 근거 없는 주장을 싫어했다.
그 모습에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혀를 차며 베일록을 비웃었다.
“평소 그렇게 집착하더니, 결국 미쳐 버렸나?”
“혹시 모르지. 그 정성으로 프리실라를 훔쳐보는 마법이라도 개발했을지?”
“세상에 훔쳐보기라니. 참으로 끔찍한 마법이로구만~ 푸하하하하.”
마법사 하나가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굴렀다.
‘빌어먹을 놈들.’
베일록이 로브 속에서 주먹을 부들거렸다.
마법이란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 마법사는 치밀할 정도로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논리도 증거도 없는 자신의 발언을 조롱하는 것은 어쩌면 당했다. 충분히 이해는 갔다. 입장이 바뀐다면 자신도 가슴에서 우러난 비웃음을 날렸을 테니까. 하지만 머리로 하는 이해와 가슴에 담기는 분노가 다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신은 분명 프리실라의 생사와 그녀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을 밝히지 않은 지금도 저러는데, 자신이 프리실라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특별히 개조한 트레스 마커를 그녀에게 달아 놓았다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커를 밝힐 바에야 차라리 죽고 말지.’
이전까지의 전적이 아니더라도, 마커에 대해서 말하는 순간 꼼짝없이 스토커 인증이었다. 베일록으로서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해더웨이는 그런 베일록을 바라보다 책상을 두드렸다.
쿵.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으니 조용하시기 바랍니다.”
무속성의 마나가 그의 손에서 시작해 탁한 소리를 타고 퍼졌다.
의지에 따라 당장이라도 공격 마법으로 변할 수 있는 마나의 흐름에 멋대로 떠들어 대던 마법사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해더웨이는 마법사들을 주목시키는 데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며 베일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베일록 장로, 장로는 스스로의 말에 든 오류를 인지하고 있습니까?”
“오류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프리실라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곤란할 뿐입니다.”
“흐음. 혹시 비전입니까?”
고수라면 하나씩 가진 비장의 수들.
“……”
스토커라는 커밍아웃 대신에 나온 변명에 해더웨이가 오해했지만, 베일록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여겨 준다면 고맙다.
그에 비전이라 확신한 해더웨이가 고민했다.
그때 가만히 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던 노파가 끌끌거리며 나섰다.
“나는 그냥 허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오.”
“대장로.”
“사고 친 고년과 달리 신중한 베일록이면 괜찮지 않겠소? 거기다 탑주께선 상관치 말라 하시지만, 고 수다쟁이가 무슨 소리를 늘어놓을지 모르니. 막을 수 있으면 허튼소리를 하기 전에 데려오는 것이 좋지 않겠소.”
“흐음.”
해더웨이는 고민했다. 탑주의 지시 사항을 이행하는 데 있어 벽창호 같은 그도 노파의 말을 무시하긴 힘들었다. 언뜻 봐선 시골 마을의 평범한 노파처럼 보이는 그녀가 정신의 관의 대장로이기 때문이었다.
가진 힘은 그보다 약할지라도 시간이 쌓아 준 지식과 경험은 그를 넘어서는 것이 그녀였다.
“대장로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장로가 프리실라를 꽤 아꼈던 것도 같다. 볼 때마다 곧잘 대드는 프리실라의 태도를 잘 받아 주었으니까.
결국 해더웨이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졌다.
베일록은 해더웨이와 함께 대장로에게 감사를 표했다. 대장로의 켈켈거리는 가래 끓는 웃음소리와 함께 회의가 끝났다.
베일록이 방을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인 랜달에게 다가갔다.
“랜달님.”
“음? 무슨 일인가? 혹시 도와 달라는 것이라면……”
랜달은 자신의 가슴께에 오는 굽은 몸을 한 베일록에 미리 거절의 포스를 뿜어냈다. 밖에 어떤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줄 뻔히 아는데 같이 나갈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생명의 관의 부관주였다는 체면 같은 건 일절 관계없는 생존 본능이랄까?
“당연히 아닙니다. 랜달 님께 도와 달라고 하기엔 너무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럼 무슨 일인가?”
“다름이 아니라 프리실라가 어떤 자들과 싸웠는지 알고 있으신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걸 내게 묻는 이유가?”
“앞서 적의 감시조를 처분하고, 마법 트랩을 설치하셨지 않습니까. 트랩을 작동시키려면 아무래도 감지 마법은 필수가 아니겠습니까?”
베일록의 질문에 랜달이 서늘한 기세를 풍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음, 분명 자네 말대로야. 하지만 토벌대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감지 마법을 발동시킬 이유가 없지 않겠나? 당연히 프리실라가 홀로 나가는 것도 적과 싸운 것도 알 수 없지.”
“역시 그렇지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성급히 말을 꺼낸 것 같습니다.”
베일록이 고개를 숙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랜달의 시선을 달라지지 않았다.
성급했다고? 어림없는 소리다. 조용하고 신중한 베일록의 성격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그의 말은 조금만 달리 들으면 자신에게 프리실라의 사고를 그냥 구경만 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을 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물론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아랫배에 절로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 충분히 성급했어. 지금 질문은 나를 상당히 불쾌하게 만들었어. 쯧쯧.’
혀를 찬 랜달이 차갑게 등을 돌려 방을 나갔다.
날름.
“……모르겠군.”
혀로 입술을 적신 베일록의 눈이 랜달의 등에서 쉽게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프리실라에 관련한 일이라 예민하게 반응해 의심을 하긴 했지만, 지금 그런 의심에 사로잡혀 있기엔 시간도 없고, 또 랜달은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증거도 없고, 당장 해야 할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다른 일은 프리실라를 구해 온 후 해결하자.”
생각을 정리한 베일록은 곧장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마스터.”
베일록의 연구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삼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반겼다.
마법사라기보다는 용병에 가까운 행색을 하고, 몸에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자들. 그들은 모두 베일록의 제자들이었다.
꼽추인 베일록은 일부러 비장애인인 이들을 하나도 제자로 들이지 않았던 것.
특이하게도 그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는 베일록이 회의에 가기 전에 명령한 것으로 그는 이미 허락과 상관없이 프리실라를 구출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습니다.”
“틀렸다. 우리 목표는 구출이지 싸움이 아니다. 명심해라.”
베일록이 의욕이 과한 제자의 말을 수정했다.
의욕이 높은 것은 좋지만, 목표가 확실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법이다.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베일록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마법사 하나와 창을 든 용병 하나가 달려왔다.
해더웨이가 구출 작전을 허락하며 붙인 조건이었다.
“장로님께 인사드립니다.”
“됐다. 가자.”
베일록은 인사도 받지 않고 가장 앞서 달렸다. 느긋하게 인사 따위를 받고 있을 여유가 현재 그에게는 없었다.
잠시 후 밤의 도움을 받아 베일록들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 정신의 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잠시 주춤하던 그들은 곧 방향을 정한 듯 소리 없이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대한 조심히 움직이는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짙은 그림자에 가려진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 한 마리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푸드득.
마치 까마귀처럼 검은 새는 베일록의 일행이 사라지는 모습까지 지켜본 후 푹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라미아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예상대로 움직였어요.”
“어디로?”
라미아가 눈을 감을 때부터 정리하기 시작한 티 테이블을 아공간에 밀어 넣은 이드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마커를 향해 일직선으로 움직여요. 꽤 다급해 보이던걸요? 찾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겠죠.”
이드는 수혈을 점해서 다시 재워 둔 프리실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버리는 카드가 아니라는 걸 좋아해야 할지, 더 의심해야 할지 애매한 여자를 포로로 잡았어.”
이드는 뽑기 운 없는 자신의 불행에 한숨을 쉬며 프리실라를 깨웠다.
“기뻐해라. 정신의 관의 동료애가 당신 생각보다 끈끈한 모양이다.”
“으~ 뭐라고?”
“당신 생각과 다르게 당신을 구출하기 위해서 정신의 관에서 사람들이 나왔단 말이야.”
“그럴 리가…….”
잠에서 덜 깬 중에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 걸 보면 정말 구출은 기대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신에게 마커가 붙어 있었어.”
“마커라니, 무슨 마커 말인가?”
“당신의 생사와 함께 위치를 상대에게 알리는 마법이 걸려 있던데, 몰랐던 모양이네.”
“당연하잖아. 내 위치를 왜 실시간으로 까발리겠어! 도대체 어떤 죽일 놈이 그딴 수작을……………..”
프리실라가 이를 갈았다.
마커라니 정말 몰랐다. 아니, 그런 게 있었으면 빨리 좀 구출해 주든가! 구출하기 전에 발각이나 당하고 말이야!
‘덕분에 내 입장만 더 난처해졌잖아!’
내심 마커의 주인을 욕하는 프리실라 앞에 라미아가 만들어 낸 영상이 하나 나타났다.
“정신의 관에서 나온 놈들인데. 알겠어?”
“……”
프리실라는 몰래 침을 삼켰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 굽은 등은 얼굴이 없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놈들이 지금 날 향해 오고 있다는 건가?”
“정확하게는 마커를 향해 오는 거지.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면 쓸데없이 시끄러울 것 같아서 당신 몸에 붙어 있던 마커를 다른 곳에 옮겨 뒀거든.” 그 말에 프리실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을 향해 곧장 달려와도 모자랄 판에 마커만 다른 곳에 옮겨 뒀단다.
아무렴 어디 쉽게 찾으라고 표지판을 걸고 거기에 매달아 두지는 않았을 테고, 분명 함정을 팠을 것이다.
아니, 함정이 아니라도 베일록과 그 제자들로 이 괴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과 베릴을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 제압해 버린 저 괴물을?
고개가 저절로 가로로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