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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17화


854화

이드는 공간 이동으로 사라지는 베일록들을 기막힌 듯 바라보았다. 이건 예상했던 시나리오 중 가장 아래쪽에 있던 것이다.

“위치 추적까지 하는 진성 스토커라서 독하게 달려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의지박약일세.”

애초에 의지박약이 아니면 스토킹을 하지도 않았겠지. 베일록이 들었다면 아무리 스토커라도 생명이 소중한 것은 안다고, 상황 파악은 할 줄 안다고 할 것이다. 이건 뭐 가능성이 있어야 발버둥이라도 치지.

의지박약이라 스토킹을 하지만, 또 그런 의지박약이기 때문에 죽음이 확실한 상황에 달려드는 짓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애초에 고백을 하지 스토킹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설마 이렇게 공을 들여서 도망갈 줄이야.”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공을 들였기 때문에 자신도 순간 속아 넘어가 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또 지극히 베일록다운 것이었다. 이만큼 공을 들일 줄 알기 때문에 라미아가 살피기 전에는 찾을 수 없는 마커도 붙여 둘 수 있었던 것이니까 묘하게 본편보다는 예고편에 공을 들이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뭐, 이번엔 그 덕에 이드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그래 봤자 놓아줄 생각은 없다고.”

공을 들인 것은 좋지만, 자신을 막기에는 모자랐다. 아주 많이.

스르릉.

계속 손만을 사용하던, 이드가 일라이져를 뽑아 들 때였다.

[이드? 거기 어때요? 지금 막 이드가 있는 쪽에서 8클래스에 해당하는 마나의 유동을 감지했는데.]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드는 듣는 사람도 없어 편하게 육성으로 답했다.

“별거 아냐. 베일록이란 놈이 프로즌 템페스트 비스무리한 걸 쓰고 튀었거든. 그래서 그래.”

[프로즌 템페스트면, 프로즌 템페스트지. 비스무리는 또 뭐에요? 마법은 위조품이 없는데. 그럼 놓친 거예요?] 

무려 8클래스 대마법의 이름이 나왔지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평온했다.

“설마, 내가 놓치겠어? 어림없지.”

말하고 있는 사이 하늘을 가리킨 일라이져에서 황금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높이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보다 그쪽은 어때?”

강력한 회전으로 인공적인 회오리를 만들고 있는 프로즌 페더가 황금빛 아지랑이를 스쳤지만, 신기하게도 두 기운은 충돌하지 않았다. 또 한 점 흩어지지도 않았다.

[이드가 시작했다고 해서 정리 중이에요. 곧 다 끝날 것 같아요.]

라미아의 목소리는 평화로웠지만, 그 주변은 우주 전쟁처럼 화려한 폭발의 현장일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포로는?”

[없어요. 그리고 끝까지 없을 것 같아요.]

“그래? 내가 매달아 놓은 놈은 쉽게 불던데.”

[운이 좋았네요. 여기 있는 기사단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에요. 분명히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 전혀 물러나지 않아요. 괜히 기사단이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요.]

이드는 이 차이가 집단에 있다고 생각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집단의 광기. 본래 심약한 사람도 집단을 이루면 없던 용기가 솟아나 쉽게 주먹질도 하고, 평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행동을 하곤 하니까.

“알았어. 그럼 끝까지 고생하고, 다 처리하면 먼저 돌아가. 나도 여기 일 끝나면 바로 돌아갈 테니까.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이쪽에 마법 통신을 하지 못하게 해 줄 수 있어?”

[바로 조치할게요. 그럼 이따 봐요.]

그리고 라미아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황금빛 아지랑이가 수십 미터의 거대한 검으로 변했다. 마치, 영화에서 장면이 전환되는 것처럼 찰나 간의 변화에 공간이 쩌억 하고 잘려 나가는 듯했다.

천황천신검. 일천검.

이드의 손목이 원을 그리는 순간, 거검이 프로즌 페더가 만든 회오리 안을 가득 메웠다.

파아아앗

마치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서리처럼, 수십 개의 프로즌 페더가 단숨에 잘려 나가고 이드를 옥죄며 회전하던 얼음의 회오리도 반으로 갈라졌다. “거기 있었구나.”

그 순간 얼음 회오리에 막혀 감지 거리가 줄었던 기감이 넓게 뻗어 나가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사람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렇게 공을 들였으면, 더 멀리 갈 것이지. 고작 거기까지냐? 아, 텔레포트는 어려우려나?”

혀를 차던 이드는 곧 차원 진동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음을 떠올렸다. 멀리 도망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다. 그레이드론의 마법적 지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응 마법진이라는 방법으로 차원 진동을 극복한 라미아 덕분에 여기저기 획획 잘만 이동하고 다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과 달리 지금 대륙은 텔레포트가 금지되며 꽤 고생하고 있었다. 동시에 각 마탑에서는 누가 먼저 차원 진동을 극복하고 장거리 이동을 성공시킬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 중에 있다.

거기에 더해 각국의 지원도 대단했다.

타국이 장거리 이동이 가능할 때 자국은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작게는 경제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존립이 걸린 큰 전쟁의 결과까지 텔레포트에 막대한 영향을 받으니 말이다.

미완의 마탑도 초인이 아니라 차원 진동의 극복과 장거리 이동을 주제로 연구를 했다면, 지금쯤 토벌대가 아니라 돈 보따리를 든 투자자를

맞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어찌 되었든 덕분에 이드는 베일록들을 놓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베일록들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인 듯, 다시 공간 이동으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이거 오랜만에 술래잡기하게 생겼네.”

퉁.

일라이져를 역수로 쥔 이드가 서 있던 자세 그대로 허공으로 솟아오른 후 허공을 차고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쿠르르릉!

이드가 사라진 자리에는 눈처럼 내리는 얼음 조각과 함께 뇌전정궁보에 의한 은은한 천둥소리만이 남았다.

“옵니다! 화살같이 빠릅니다.”

비히더 덕분에 편히 이동하는 상황이라 프로즌 템페스트 쪽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티엔이 가장 먼저 이드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다시 갑니다!”

비히더는 그 말이 자신을 재촉하는 소리로 들려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잠시 눈을 깜빡인 것 같은데,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이런, 시펄! 빌어먹게 빠르네. 거리가 그대로입니다.”

또다시 가장 먼저 이드를 찾아낸 티엔이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분명 일 킬로미터 더 멀어졌을 텐데, 눈에 들어오는 이드와의 거리에는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중이다. 즉, 일 킬로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있다는 것.

그에 다시 비히더가 능력을 사용했지만, 거리는 그대로다. 무슨 짓을 해도 떨칠 수 없는 귀신이 등에 붙은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제기랄. 이대로는 끝도 없는데. 리콜을 사용하면 안 됩니까?”

“준비되어 있다면 벌써 사용했겠지.”

베일록이 이제 와서 무슨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냐는 투로 답했다.

아쉽기는 그가 가장 아쉬웠다. 리콜은 사용은 간단하지만, 준비에 많은 시간과 사전 작업이 필요한 마법이었다. 최소 7클래스의 실력은 기본이다. 마법사의 준비란 곧 재료였고, 그것은 돈을 의미한다. 시간은 충분했지만, 자금적인 면에서 서른 명의 제자를 두어 지출이 많은 베일록은 늘 아쉬운 처지였다.

자신의 리콜만 준비하기도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서른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리콜은 그 금액이 어마어마해서 포기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런 데는 서른 명이나 되는 제자를 받아 기사단을 만들고, 스스로의 실력을 자신한 때문이 컸다. 이만한 힘이라면 도망칠 일이 없을 거라고 자신한 것인데,

그 결과가 이런 것일 줄 알았다면,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쓸 것만 따로 준비해 두는 것인데 말이다.

“끄응.”

티엔은 비히더에게는 묻지도 않았다. 가능했다면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지 않고 바로 리콜로 돌아갔을 테니까.

“계속 이렇게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비히더 마법사님도 곧 한계가 올 겁니다.”

“어쩔 수 없군. 관에 연락해서 지원을 요청해야겠다.”

자신만만하게 나온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목숨을 걸고 자존심을 세울 생각도 없다.

“하지만 연락하기 위해서는 잠깐이지만 멈춰야 한다. 비히더, 몇 번이나 더 가능하지?”

“앞으로 열네 번이 한계입니다.”

“열네 번, 십사 킬로미터. 사용 거리를 더 벌릴 수는 없나?”

“없습니다.”

“적의 속도가 너무 빨라. 연락을 취하고, 다시 도망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팔 킬로미터 정도의 여유는 필요하다.

현재 이드와의 거리는 아슬아슬하게 육 킬로미터를 유지하고 있다.

“……무리하면 연속 사용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횟수가 줄어듭니다.”

현재까지 스물한 번 이동했다. 여기에 열네 번을 더하면 총 삼십오 킬로미터.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동 시간과 능력의 발동 시간을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베일록은 복잡한 눈으로 비히더를 보았다. 그가 사용하는 있는 능력은 분명 초인기지만, 그가 알기로 비히더는 초인도 아니고, 최근에 각성한 적도 없다.

애초에 마법사가 초인으로 각성하는 경우는 매우 희귀했다. 결국 그가 따르는 해더웨이가 초인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인데.

‘부관주의 초인기 연구가 이렇게 발전해 있을 줄은 몰랐군・・・・・・’

지금 같은 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딱 봐도 자신의 임플란트 브레인보다 뛰어났다. 초인기 이식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사소한 질투나, 자괴감에 빠지기엔 상황이 급했다.

“연락 직후 오 킬로미터를 더 이동할 수 있으면 된다. 그 시간이면 내가 다시 싸울 준비가 끝난다.”

연락을 취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정신의 관에서 이곳까지 달려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시간을 버는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몫이었다. 당연히 그중 가장 힘을 내야 하는 것은 베일록이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대화를 하는 중에도 사용 횟수는 실시간으로 줄고 있다.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말이 끝나는 즉시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낸 비히더는 순식간에 여섯 번을 연속 이동했다.

“으윽.”

미리 말한 대로 무리를 한 듯 흰자위만 보이는 눈에 붉은 핏줄이 비치며, 피가 눈물처럼 맺혔다.

“잘했다.”

베일록은 이드의 모습이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즉시 주문을 외웠다. 통신구가 있으면 편하겠지만, 없으니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베일록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드였다.

“거리가 더 벌어졌어. 연속 이동인가?”

베일록은 단순히 통신을 위해 시간을 벌 생각이었겠지만, 쫓는 이드로서는 이러다 놓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걱정이 이드에게 살짝 무리를 하게 만들었다.

꽈르르르릉!

아까보다 더 큰 요란하기까지 한 천둥소리와 함께 허공에 화룡이 지나간 듯한 불길이 일어났다.

그 불길과 천둥은 정확히 베일록들의 머리 위까지 이어졌다.

“어우~ 뻐근해, 놓치는 줄 알고 괜히 놀랐네. 그런데 여기가 도망의 끝인가?”

불길과 폭음이 사라진 자리에 이드가 어깨와 머리에 달라붙은 불꽃을 털며 나타났다.

예상보다 너무 빠른 이드의 등장에 세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직 베일록의 주문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당하면 정말 끝장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티엔이 이드를 향해 창을 던졌다. 몇 초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투퉁!

퍽! 

결과는 최악이었다.

“커…… 헉..

이드의 발에 막힌 창이 빙글 회전한 후 사라졌다 싶은 순간, 등 뒤에서부터 질척한 바람 빠지는 기침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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