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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2화


479화

하이탈로 향하는 길은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길이 없다가 그 산들 중 가장 낮고, 작은 산을 깎고 다듬어 만들어 둔 것이다.

작다고는 하지만 산을 깎는 대공사였다. 불러 주는 사람은 없어도 길에는 이름이 붙여졌고, 바닥에는 반듯한 돌이 놓여 깨끗하고 정돈된 길이 만들어졌다.

움막을 나선 세 남자는 오르막길이 끝나는 부분과 이어진 산에 몸을 숨겼다. 일이 년 활동한 것이 아니다 보니 원활한 영업을 위해 만들어 둔 참호가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인원도 아니고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었다. 그것도 하나는 도련님. 그들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드는 산 능선을 타고 달리다 구덩이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세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저놈들인 것 같은데. 그런데 산적 맞아? 하고 있는 꼴이 꼭 기사처럼 너무 깔끔하잖아?”

보통 산적이라고 하면 허름한 옷을 입었거나, 몸을 보호하는 낡은 갑옷 정도만 걸친 지저분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드가 본 세 사람은 깨끗한 옷에 번듯한 가죽 갑옷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산을 달리는 모습도 거칠지 않고 세련된 것이 산적보다는 기사나 레인저를 보는 것 같았다.

“글쎄요. 전 너무 멀어서 안 보이는데요.”

이드의 말에 에단이 눈에 힘을 주고 앞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미 산적들이 참호 속으로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도 모습이 보인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못 봤어? 그렇게 대놓고 움직였는데? 일리나도 못 봤어요?”

이드는 에단의 말에 어떻게 그걸 못 볼 수 있냐는 듯한 어조로 일리나에게 확인했다.

“호호. 전 봤어요.”

[이드, 저도 봤어요!]

야단스럽게 묻는 이드의 말에 일리나와 라미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이드가 못 본 에단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바라보았다. 

“봐라. 두 사람은 봤다잖아. 왜 너만 못 봐?”

“……”

에단은 이드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실례되지만 두 분은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같이 평범한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구요.”

“나는 인간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마스터!’

에단은 이드의 말에 마인드 마스터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서 있는 곳과 이드가 가리키는 곳의 거리가 얼마인가. 일반적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더구나 탁 트인 들판도 아니고, 산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그리고 봤다는 두 사람 중 일리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명사수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엘프고, 라미아는 정체불명의 마법 생명체로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시력은 인간을 초월한 것이었다. 더구나 스스로 인간이라고 말하는 이드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 표준적인 인간에서 동떨어진 능력을 보유한 존재다.

평범한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다.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닌 것이다.

에단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남자가 원한을 품으면 이렇게 치졸해지나.’

이미 이드에 대한 존경과 숭배의 마음은 먼지처럼 흩어진 지 오래였다. 마을을 나서서 지금까지 계속, 중간중간 말도 되지 않는 일로 트집을 잡으며 자신을 갈구고 있는 이드의 행태에 질려 버린 것이다.

처음엔 왜 그러는지 이유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이드의 성격이 원래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알았다.

이드와 일리나가 신혼이란 사실을 말이다. 거기에 자신이 무거운 소식과 함께 대형 사고를 치면서 깨가 쏟아지던 신혼 생활에 소금을 왕창 뿌렸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에단도 일리나 같은 아름다운 엘프와 신혼의 꿀을 빨고 있을 때 방해가 들어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장담하는데 확실히 반쯤 죽여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나이 에단, 그렇게 한 번 화를 푸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마스터처럼 두고두고 갈구지는 않는단 말이야. 젠장, 도대체 어떻게 마스터의 화를 풀어야 하는 거야.’

에단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렇게 다른 생각 중인 에단을 잠시 바라보다 이드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간파의 눈이라는 걸로도 안 보여?”

이미 에단에게 그가 가진 간파의 눈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이드였다.

“네, 제가 가진 간파의 눈은 기운을 구분하고 분석하는 능력이지 멀리 있는 걸 가까이 보는 능력이 아니니까요.”

“그럼 저기 숨어 있는 산적들 기운은 보여?”

“예.”

대답하는 에단의 눈에는 어느새 두 개의 별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위험을 뜻하는 레드로 표시됩니다.”

에단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기준에 의한 것이다. 이드와 라미아, 또는 일리나의 존재만이라도 포함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다른 색이 표시되었을 것이다.

“그게 다야?”

“크흠. 지금은 너무 멀리 있어서 그렇습니다. 더 자세하게 보려면 좀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애매한 능력이네.”

설명으로 들었을 때와 실제 상황에서 접하는 느낌이 상당히 다른 능력이라고 이드는 생각했다. 거리가 멀어서 확인이 되지 않는다니 말이다. 에단은 이드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명색이 간파의 눈이라는 가장 분별력 높은 능력을 가졌는데, 애매하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저들의 힘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매하다는 거야.”

자세한 설명이 없는 이드의 말에 에단은 더 추궁하기를 포기했다. 답답하면 알려 주겠지, 하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코 심각하게 고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에단이었다. 그는 인생을 그렇게 빡빡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드가 말한 말의 의미를 몰라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면 그놈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에단이 말을 돌렸다.

이드는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기 계발이란 것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데, 당장 에단에게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 마스터가 강도를 당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일단 살려 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네. 그렇게만 해 주시면 놈들이 알아서 마스터에 대한 정보를 정보 라인으로 흘릴 겁니다. 지들을 두들긴 상대가 궁금할 테니까요. 그럼 그 소식이 순식간에 퍼져 나갈 겁니다.”

“알았어.”

숲을 나오고 최대한 빠르게 이드에 대한 정보를 알리려 했지만 적당한 정보 조직이 없었다. 하이탈로 향하며 꾸준히 모습을 보였지만 뒤따르는 자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하이탈의 정보 조직에서도 이드들을 감지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래서 에단이 한 가지 꾀를 냈다.

하이탈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유명한 산적 놈들을 통해서 이드에 대한 정보를 퍼트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이탈의 영주가 잡는 것을 포기한 놈들이 이드에게 패해서 도망친다면 자연스럽게 하이탈의 정보 조직이 움직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강자는 어디서나 주목받기 때문이다. 이드는 에단에게 산적들에 대해서 간단히 몇 마디를 전해 듣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프가 있다.”

손님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중에 싸가지가 말했다. 그의 말에 가장 먼저 티티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벤이 반응했다. “누가? 여자야? 여자지?”

헤벌레 풀어진 얼굴로 호들갑을 떠는 티티의 머리를 내리누르며 벤이 싸가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맞아?”

“…………그래. 여성 엘프다. 검을 가지고 있다.”

“엘프가 섞인 일행이란 말이지.”

벤이 아직 옷도 구분하기 어려운 거리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수염이 거칠게 자란 턱을 긁었다.

“야, 고민할 게 뭐 있어. 당연히 영업해야지! 여자 엘프라고! 으흐흐, 드디어 내 소원을 푸는구나.”

벤이 영업을 할지 말지 고민한다는 것을 캐치한 티티가 소리쳤다. 그는 엘프가 여자라는 사실에 한껏 흥분한 모습이었다. 벤은 그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찼다.

“발정난 망아지 새끼. 만만한 상대가 아냐. 엘프라고, 엘프. 이전에 건드렸다가 고생한 건 벌써 까먹었냐?”

그들이 하이탈에 자리 잡고서 엘프를 만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때 그를 상대로 영업했다가 꽤 큰 상처를 입고 고생을 했다. 세상에 나온 엘프는 모두 강자다, 라는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티티의 생각은 달랐다.

“그때는 상대 숫자가 많았잖아. 그 새끼들이 비겁한 거야. 수십 명이 떼로 덤볐잖아. 근데 이번엔 세 명이다. 하나씩 상대하면 순식간이야. 그리고 그때가 언제냐? 우리도 그사이 많이 강해졌어. 이번에 복수를 해야지.”

“음, 틀린 말은 아닌데………….”

벤은 힐끗 티티를 바라봤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엘프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는 모습이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여간 저놈은 여자를 너무 밝혀서 문제다. 하지만 티티의 말도 틀린 건 없다 싶었다. 수십 명은 오버지만 확실히 그때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숫자다.

무엇보다 엘프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엘프가 비싸기 때문이다. 티티의 상태를 봐서는 바로 팔 수는 없겠지만, 언제든지 엘프는 비싸게 팔 수 있다. 엘프 노예는 불법인 데다 대부분이 자기 한 몸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실력이라 쉽게 잡을 수도 없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이 딸리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인간 노예 수백을 살 수 있는 거액에 거래된다. 그 돈이면 자신들의 수련에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티티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싸가지는 자신들의 결정에 그냥 따를 것이다. 자신만 결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벤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좋아, 해 보자. 오늘은 반만 먹는 게 아니라, 모조리 먹는다. 하지만 엘프하고 같이 다니는 놈들이다. 보통 놈들이 아닐지도 몰라. 하나씩 맡아서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다. 먼저 정리하는 사람이 상황을 보고 합류한다. 알겠지?”

“엘프는 내가 맡는다!”

티티가 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치고는 검과 방패를 빼 들었다.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습에 벤이 고개를 저었다.

“안 뺏어, 자식아. 그럼 싸가지가 기사를 맡고, 꼬맹이는 내가 처리하지. 내가 제일 먼저 끝날 것 같으니까 빨리 끝내고 두 사람 중 더 빨리 끝날 쪽을 돕는다. 그렇게 둘이서 하나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제일 강한 놈을 셋이서 친다. 알았지?”

끄덕.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벤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초인이 확실합니다. 마스터.”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 간파의 눈의 범위 안에 산적들이 들어왔는지 에단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 이들이 능력을 각성한 초인일 것이라고 추측을 하기는 했지만 확신은 하지 못했는데, 지금 확인이 된 것이다.

“그럼 이번에 초인하고 제대로 한번 상대해 볼 수 있겠네. 거기다 상대도 확실히 해볼 마음이 생겼나 봐.”

이드는 산적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올라오는 투기를 감지하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새로운 방식의 싸움 방법을 가진 자들을 상대한다는 사실이 기대됐다.

이드는 이제나 저제나 이들이 공격해 들어올까 기다리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리고 에단을 따라 이드와 일리나가 오르막길의 끝에 오르는 순간.

꽈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뿌연 먼지가 이드들을 덮치며 한순간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 먼지 위로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죽어!”

누구의 외침인지 모를 소리에 뒤이어 칼과 칼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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