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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20화


857화

이드는 라미아를 부르고, 혼혈을 찔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베일록의 제자를 깨웠다. 베일록은 그를 페리코라고 불렀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의 통신이라는 상황 설정상 보고 같은 사소한 일을 베일록이 직접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서, 그에게 맡긴 것이다. 처음부터 이드에게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던 페리코는 베일록이 굴복한 것을 보고는 더욱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는 통신 마법을 통해 강적의 기습으로 비히더와 골덴 기사단의 상당수가 죽었으며, 현재는 적을 다급히 추적 중이라는 내용을 짧게 전하고 통신을 마쳤다.

극히 형식적이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리실라와 베일록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마법사가 모여 있어서 그런가. 상당히 특이한 곳이야.’

일리나를 통해 거짓말이 아님을 확인한 이드는 정신의 관의 특이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조직이 가지는 끈끈함이 없다고 할까? 어떻게 보면 기계적으로 대처한다는 느낌이었다.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마법사 자신은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면서, 시스템만 기계적으로 돌린다고 잘 돌아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 덕분에 이드의 의도대로 일이 풀리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비히더가 사망했군요.”

해더웨이는 지급으로 들어온 소식에 적혀 있는 한 줄의 내용에 집중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붙여 둔 마법사의 죽음. 특히 그에게 부여한 초인기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면 쉽게 인정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하지만 틀리지도 않은 사실.

“추가 병력을 보낼까요?”

통신 내용을 받아온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닙니다. 다음 보고를 기다리도록 하죠. 베일록 장로의 요청으로 프리실라 장로의 구출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원래 탑주님의 명령은 토벌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나가 보세요.”

“알겠습니다.”

보고를 위해 달려온 마법사를 내보낸 해더웨이가 수정구를 만졌다. 그러자 투명한 수정구 위로 비히더가 기습받는 순간의 모습이 나타났다. 놀란 비히더의 얼굴과 너무 빨라 유령처럼 뿌연 이드의 모습. 그 영상은 이드가 손을 뻗는 순간 끝나고 있었다.

“쯧, 바로 이런 때를 위해 부여해 준 초인기이거늘.”

해더웨이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는 영상을 지웠다. 그는 영상을 통해 비히더의 어리석음만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비히더를 기습한 이드의 신출귀몰함과 통신구를 손에 넣은 후 통신을 방해한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저 비히더의 무능만을 탓할 수 있었을까?

뭐, 어차피 이제는 알 수 없는 진실이지만 말이다.


밤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생한 라미아와 일리나를 돌려보낸 이드는 협곡 아래로 내려와 알단테를 불렀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제 눈에 이상이 생긴 걸까요? 못 보던 얼굴이 둘이나 보입니다만?”

즉각 달려온 알단테는 프리실라와 나란히 앉아 있는 베일록과 페리코를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벙한 얼굴을 했다.

“자세한 설명은 제외하지. 새로운 포로니까 잘 챙기도록.”

“도대체 언제 잡으신 겁니까?”

“조금 전 폭발음이 있었지?”

“예. 좀 거리가 있었지만…. 혹시 그 폭발이 있었을 때! 아니, 하지만 그때 분명 단장님 목소리를 들었는데 어떻게…………”

같은 장소에 동시에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상황에 알단테가 혼란스러워했다. 아마 그가 들었다는 목소리가 바로 이드를 흉내 낸 일리나의 목소리일 것이다.

“알단테 조장.”

“예, 단장님.”

“그래서 내가 말했지 않나. 자세한 설명은 제외한다고. 자네는 결과만 보게.”

단호한 이드의 말에 알단테가 금방 의문을 떨치고 부동자세로 답했다. 확실히 이 이상의 사실은 그가 알아야 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충.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단장님.”

“그리고 날이 밝아 오는 대로 후방으로 더 물러난다.”

“후퇴입니까?”

“그건 아니고. 이제 감시조 일은 의미가 없어져서 말이지.”

“과연.”

알단테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행 감시조의 전멸과 마수의 등장 등.

상황이 상황이었다고 해도 이드가 도착한 첫날부터 보인 모습은 어떻게 봐도 감시라는 임무와는 대륙의 끝과 끝의 거리만큼 떨어진 것이었으니까. 세상에 적이 방어를 위해 배치한 마수를 모조리 잡아 죽이고, 덤으로 적의 장로까지 생포하는 감시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감시조가 감시를 하지 못하면 차라리 용기사를 불러 후퇴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알단테는 경험 많은 군인답게 의문을 접었다. 짧지만 진한 경험을 함께한 상사는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즉시 임시 거점으로 사용할 포인트의 후보를 뽑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조장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리고 토벌대에 알려야 할 일이 있으니까 연결 준비해 주고. 아무래도 토벌대가 좀 속도를 내야겠어.” 

일단 적당히 속이기는 했지만, 이 상태로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추적이 하염없이 길어지면 정신의 관에서도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 잠시 후.

이드는 준비된 통신구를 통해 추가로 생포와 베일록과 페리코에 대해 보고하며, 토벌대의 빠른 도착을 요청했다.

설마하니, 그사이 또 장로를 생포할 줄은 몰랐던 토벌대는 크게 놀라워했다. 옆에서 새로운 포로들의 정체를 듣고 놀라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 알단테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도대체…… 명예 후작이 그곳에서 어떤 굉장한 활약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벌써 장로를 둘이나 생포하다니. 이거 토벌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명예 후작이 최고 전공을 세우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소.”

“하하하. 그러니 빨리 오셔서 저보다 큰 전공을 세우셔야 합니다. 이러다 제가 정신의 관을 혼자 토벌해 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렇게 되면 명예 후작보다 약한 토벌대라고 망신을 당하지 않겠소.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서둘러 보리다. 하하하.”

록마틴 후작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드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것. 하지만 이드를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정신의 관에서 눈치를 살피며 엎드려 있어서 그렇지, 모두 튀어나와 이드를 잡겠다고 설치면 정말 토벌대가 도착하기 전에 이드의 손에 정신의 관이 토벌당해 버릴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드의 요구는 잘 받아들여진 듯했다.

『토벌대의 느긋하던 분위가 확 바뀌었어요.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속도를 올렸다구요. 도대체 록마틴 후작에게 무슨 소리를 했어요?』

다음 날 임시 거점을 옮긴 후 라미아가 알려온 사실에 의하면 말이다.

특히 기사단이 눈에 불을 켜고 달리고 있다나? 정말 느긋하게 움직였다가는 이드에게 공을 모두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조바심을 느낀 것이다.

아무리 작은 전쟁이라도 적의 장로급 중요 인사를 사로잡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드가 그걸 했다니. 부러웠겠지.

“씁. 빨리 오는 건 좋은데, 여기에 얼치기들만 있다고 만만히 보면 안 될 텐데.”

이드는 기사단이 자신들도 도착만 하면, 정신의 관의 중요 인물을 무 뽑듯 뽑아낼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런 이드의 걱정에 알단테가 고개를 저었다.

“괜한 걱정이십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도착해서 마수를 한번 마주치고 나면 그런 마음은 씻은 듯 사라질 겁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수에 홀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한 알단테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살아 오며 겪은 일 중 가장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던 것.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자면 또 희생자가 나오지 않겠나.”

“단장님께서 기사들을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피와 죽음이 없는 전쟁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피와 죽음 없는 전쟁은 없다. 자네 제법 그럴듯한 말을 하는군.”

“주제넘은 말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좋은 말이야.”

어차피 이드가 감시조에 자원한 것도 방심한 토벌대가 큰 함정에 빠져 한번에 깨지는 일을 피하게 해 주자는 생각에서였지 토벌대에 속한 사람을 모두 살리겠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나의 아군도 죽게 하지 않겠다고 설치는 건 오지랖이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의리도 없고.’

토벌전도 엄연히 전쟁이다. 알단테의 말처럼 사상자가 없는 전쟁은 있을 수 없는 일.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함부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상어에게 팔을 물리는 건 자업자득. 이드는 그런 기사단이 많지 않기를 바라며 일어났다.

“그럼 나는 또 잠깐 나갔다 오지.”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될까요?”

“후후. 불꽃놀이 좀 하려고.”

“예?”


꽈과과광!

번뜩이며 날아든 강기에 산허리가 뭉텅이로 터져 나갔다.

임시 거점을 정한 후.

중간중간 자리를 비운 이드는 거점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짧은 무공 수련을 했다.

주고 땅과 하늘을 상대로 한 무공 수련이었다.

이렇게 마나의 폭발을 풀어놓아야, 정신의 관에서도 치열하게 싸우며 적을 추적 중이라는 말을 믿을 것이 아니겠는가.

적을 속이고자 한다면 이만한 수고는 기본이다.

덕분에 이드도 한동안 손 놓고 있던 무공을 오랜만에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간 심상을 통한 수련에 중점을 두었지만, 가끔 직접 손발을 움직이는 것도 상쾌하니 나쁘지 않았다.

처음 그레센에 왔을 때 현경의 초입에 발을 들이고 있던 이드는 그레이드론에 의해 하트를 전해 받고 몸이 강화된 후 경지가 애매하게 변해 버렸다. 경지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내력이 무한에 가깝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경지라는 것이 단순하게 내력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세상의 진리를 담은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크고 깊은 무학에 대한 연구와 성찰이 있어야 했다. 그런 전제 없이 그저 단전에 내력만 가득 채워서는 단순히 힘 좋은 바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그레이드론의 하트를 받은 이드가 당시 현경의 경지에 발을 들인 무림의 절대 고수였다는 것이다.

중원에서도 현묘하다 말하며 제대로 틀을 잡아 단정하지 못하는 경지인 현경이었기에 이드는 그레이드론의 그 강력한 힘에 휩쓸리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것으로 녹여 낼 수 있었다.

그 후 이드는 혼돈의 파편이라는 강대한 적과 다양한 경험을 쌓아 나가며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드는 자신이 어떠한 경계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분명 현경의 경지를 벗은 것 같은데.

이후 나아가야 할 원경에 발을 들인 것인지, 무림에서도 농담으로나 거론되는 자연경에 이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원경이라 하면 가장 큰 특징인 원영신의 시작인데. 이드에는 지금까지 전혀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드의 힘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이드의 전신에 가득한 무극신기의 내력은 일 수에 태산을 밀어 버리고 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런 힘은 원경에 달한 무인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이드는 이에 대해 고민했고, 두 가지 이유를 추려 낼 수 있었다.

우선은 이드가 익히고 있는 모든 무공의 중심에 있는 무극신기였다.

무극신기는 이드가 최초의 수련자였다. 다양한 무공의 이론과 신공을 모아 집대성한 신공.

이 신공이 진화해 나가는 모든 것이 초행길일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원영신이 생겨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극신기보다는 이 차원의 인이 문제일 것 같단 말이지.’

이드는 손목에 투명하게 녹아든 차원의 인을 노려보았다.

노려본다고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거기 있음이 확실한 차원의 인.

이드의 발목을 잡고서, 이드의 인생을 뒤흔들고 있는 요물.

단한번,

차원의 인과 교감한 적이 있지만, 아직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힘든 신의 물건.

하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준 미워할 수도 없는 웬수.

“에휴~ 모르겠다. 하던 일이나 마저하자.”

쿠르르릉!

입맛을 다신 이드가 괜히 불쌍한 산허리에다 강환을 쏟아부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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