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34화
870화
“끝났네요.”ע
라미아의 말이 끝나는 순간.
슈우우훅!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주변의 마나가 링스피어로 빨려 들어갔다. 그 흡입력이 얼마나 강한지 주변이 일렁일 정도.
“아우~~ 눈부셔!”
“잠꼬대는 이따 밤에 하고. 어서 정신 차리지 못해욧!”
꾸물꾸물 눈을 부비는 케마란의 행태에 발끈한 네리베르가 바락 소리치고는 그녀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제법 매운 소리가 나는 두드림에 케마란이 두 팔을 휘두르며 눈을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왜 때려! 그보다 여긴? 어라? 뭐야, 나 방금 꼬맹이랑…… 어…… 나, 설마 전투 중에 꿈꾼 거야?”
케마란은 자신이 말을 하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싸우다 잠들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에 그녀는 혼란스러워했다.
“아, 그래. 마법. 슬립 마법에 당한 거구나!”
겨우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았지만, 틀린 답이다. 애초에 전투에 돌입해서 정신을 송곳같이 벼리고 있는 기사를 슬립 마법으로 잠재우는 일은
6클래스의 마법사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땡. 틀렸어. 거기다 잠 비슷한 거지 잠들었던 건 아니야. 그보다 몸에는 별 이상 없지?”
“어? 라미아. 거기에 마스터까지? 언제 오셨어요?”
“네가 꿈속에 있을 때, 너, 죽기 직전이었거든.”
케마란을 공격하던 놈이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지만, 그놈 말고도 당장 발아래 널린 것이 몬스터의 시체다.
“그럼 마스터가 절 구해 주신 거군요!”
“구하긴 했지만 나도 네리베르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야. 널 구하기 위해서 위험한 와중에 몸을 던지고 있었거든.”
이드의 말에 놀란 케마라가 네리베르를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받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역시! 믿어야 할 건 친구네 고마워. 사랑해!”
“큼, 벼, 별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같은 은색 기사단의 기사로서 동료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히히. 부끄러워하기는.”
케마란이 낄낄거리며 네리베르를 놀렸다. 하지만 네리베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에는 장난기보다는 믿음과 고마움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보다 몸은 어때? 라미아가 물었잖아.”
그때 이드가 나서서 물었다. 그 말처럼 라미아가 케마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근히 날카로워진 라미아의 눈초리에 화들짝 놀란 케마란이 급히 팔다리를 흔들어 보였다.
“아, 몸은 괜찮은 것 같아요. 딱히 이상하거나 아픈 곳도 없고.”
“내공은?”
“내공의 흐름도 말짱한데. 양은 좀 준 것 같아요. 분명 절반 이상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이만큼 낭비하지는 않았는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케마란이지만 라미아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에고가 완전히 각성하기 위해서는 계약자의 마나가 일정량 필요하니까. 아까 외부 마나와 함께 흡수당한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에고의 각성이면・・・・・・ 설마, 링스피어?”
링스피어의 각성, 지금까지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왔던 일인가.
끄덕끄덕.
주변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케마란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는 링스피어를 들어 올렸다.
“그럼 꿈에 나온 꼬맹이가 꿈이 아니라 진짜였다는 거잖아.”
“꿈이라기보다는 이전처럼 네가 링스피어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거지.”
“그러지 말고 한번 불러 봐. 링스피어의 에고도 깨어났을 테니까.”
이드의 말에 케마란이 잠시 우물거리더니 링스피어를 잡고는 입을 열었다.
“어. 안녕? 링스피어 너 거기 있니?”
너무 어색하다!
처음 학교에 출석한 어린아이의 첫인사만큼이나 어색한 말에 이드들이 터지는 웃음을 틀어막아야 했다.
[너, 말하는 거 바보 같아. 케마란.]
어색한 인사에 대한 반응은 확실했다.
“왁! 대답했어. 지금 대답했다고! 링스피어가 말했어요. 마스터!”
자신을 깔보는 말이었지만, 링스피어가 대답했다는 사실이 그저 좋기만 한 케마란이 폴짝폴짝 뛰었다.
“그만 진정하고, 어쩔래? 링스피어도 깨어났는데. 잠시 뒤로 가서 링스피어의 상태도 살필 겸 쉴래?”
케마란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듯하자 이드가 뒤로 물러날 것을 권했다.
이드의 호신강기가 지켜 주고 있어서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곳은 전장의 한복판이다.
절대 평화롭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덕분에 케마란도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당장 호신강기 밖에는 몬스터들이 바글거리고, 한쪽에서는 은색 기사단의 선배 기사들이 몬스터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은색 기사단의 기사로서 은색 기사단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고집 있게 다문 입술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같던 케마란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굳센 기사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다 생각한 이드였지만, 그걸 결정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라미아였다.
“괜찮을까?”
“괜찮을 것 같지만, 확인해 봐야죠. 케마란, 링스피어 좀 볼까?”
“”꼭 돌려줄 거지?”
“뺏어가 줄까?”
마치 도둑처럼 자신을 경계하는 모습에 라미아가 기막혀하자 케마란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링스피어를 내놓는다.
이대로 들고 사라졌다가는 당장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할 것 같다.
라미아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막 깨어난 링스피어의 에고를 살폈다.
바이트 타블렛을 빼앗아 그 안의 에고를 추출한 것은 라미아지만, 지금 주인은 케마란이기 때문에 함부로 접속도 할 수 없었다.
재주는 라미아가 부리고 알맹이는 케마란이 꿀꺽한 경우다.
그러나 에고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형태의 접속은 할 수 없어도 그것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조는 확인이 가능했다.
기본 구조의 확인은 굳이 접속할 필요 없이 에고와 그 주인의 허락만 있으면 가능했는데, 주인인 케마란은 이미 허락했고, 당사자인 에고 링스피어는.
[얼마든지 들여다보세요.]
라미아의 손에 건네진 순간 드러누워 배를 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라미아의 손에서 고생하며, 그녀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링스피어 나름대로는 트라우마라고 할까?
이렇게 적극적으로 협조가 이루어지면 접속 없이도 핵심 구조까지 조사가 가능할 것 같다.
‘에고도 아픈 건 아는 모양이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이드는 어쩐지 힘없는 학생과 그 학생을 겁박하는 불량 학생을 보는 것 같아 고소를 짓고는 주변을 돌아보며 전황을 살폈다.
몬스터가 갑자기 강력한 능력을 사용하며, 기사들을 밀어붙인 후,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장은 다시 토벌대가 주도권을 잡으며 몬스터를 압박해 나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몬스터가 다양한 능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토벌대를 압도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그저 잠깐 당황하게 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토벌대에 속한 초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몬스터 따위가 초인기를 따라 해!”
“초인기를 사용한다고 무조건 초인이 되는 줄 알아!”
“감히 몬스터 따위가 초인기를 사용하게 하다니. 진정 미친 흑마법사들이 아닌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초인기에 대해서 잘 아는 초인들은 몬스터들의 능력이 초인기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분노했다.
당연했다. 몬스터들의 초인기가 어디서 왔겠는가. 바로 정신의 관에 납치된 초인이 그 출처 아니겠는가. 토벌대에 참가하며 정신의 관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초인들이다.
초인기를 가진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바로 무고한 초인 동포의 목숨과 같은 것.
거기에 더욱 심각한 것은 그렇게 죽은 초인의 초인기를 무려 몬스터가 쓰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같은 사람도 아니고 몬스터 따위에게 초인기를 사용하게 하다니.
초인으로 선택받아 각성했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초인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몬스터가 초인기를 사용하는 그 순간부터.
초인들은 기사들이 흠칫할 만큼 거센 기세로 정말 미친 듯이 몬스터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초인과 대립하고 있는 기사들은 질 수 없다는 듯 검을 휘둘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워 업한 몬스터를 밀어붙이게 된 것.
다른 작전이나 추가 전력을 투입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분노와 질 수 없다는 투쟁심이 만들어 낸 힘이었다.
“쩝. 애도 아니고 말이지.”
천시지청술을 통해 그러한 사정을 단박에 파악한 이드는 토벌대의 두 핵심 전력이 가진 단순함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이유야 어떠한들 무슨 상관인가.
과정보다는 결과! 무슨 수를 쓰든 승리만 획득하면 좋은 것이 전투가 아니던가.
그때 링스피어에 대한 확인을 마친 라미아가 그것을 케마란에게 돌려주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어떤 것 같아?”
“에고의 구조도 튼튼하고, 케마란과의 계약도 올바른 형태로 자리 잡았어요. 당장 들고 나가 싸워도 아무런 문제 없어요.”
라미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케마란이 만세를 부르고는 뛰어나가려 했다.
당장 호신강기 밖에서 은색 기사단의 선배들이 더운 입김을 뿜으며 힘들게 싸우고 있지 않은가.
처음엔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케마란도 이제는 안다. 그녀들이 자신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든든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그녀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라미아가 케마란을 잡아 세웠다.
“잠깐만.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중요한 거 아니면 나중에 들으면 안 될까?”
“정말 그래도 돼? 당장 듣고 싶을 텐데. 링스피어가 가진 여러 가지 마법들 말이야. 아, 링스피어의 경우에는 마법이 아니라 초인기라고 해야 하려나? 좀 재미있게 되었어.”
“초인기는 무슨 말이야?”
링스피어의 에고가 초인기 연구의 핵심인 바이트 타블렛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링스피어에 초인기라니?
이드가 관심을 보이자 라미아가 악당처럼 클클거리며 웃었다.
“방금 확인하고 알았지만, 상황이 꽤 재미있게 되었어요. 요 귀여운 녀석이 태어나면서 한 건 했더라고요.”
라미아는 링스피어를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링스피어의 구조와 기능을 파악하며, 링스피어가 케마란의 바람에 따라 정신의 관에 있는 또 다른 바이트 타블렛에 저장된 초인기를 빼내 온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탑주라는 인간 속 좀 뒤집어지겠네.”
“그럼 링스피어의 초인기는 마법처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거야?”
절묘한 상황에 기막혀하는 이드와 달리 케마란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아니야. 링스피어의 초인기는 마법하고 같아. 주인인 너의 마나가 연료지. 네 마나만 충분하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거기다 기뻐하라고.
네 바람을 듣고 링스피어가 힘을 낸 덕분에 링스피어가 쓸 수 있는 초인기들이 아주아주 많아졌으니까.”
아주 아주를 강조하는 라미아의 말에 케마란을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동시에 자신이 꿈속에서 어떤 것들을 말했는지를 급히 떠올리며 물었다.
“얼마나?”
그에 말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는 라미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