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35화
871화
아티팩트.
보통 사람들은 이 말에 마법이 걸려 있는 무기류를 떠올린다.
마법이 걸려 있는 물품은 무기류 외에도 다종다양한데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공작이 애용하는, 찻물이 식지 않는 찻잔이 전쟁 영웅의 검보다 유명할 수 없기 때문이고, 반짝이는 갑옷보다 그 아래 가려진 목걸이가 눈에 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평민은 아티팩트라고 하면 보석으로 치장된 마법검만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실제 아티팩트로 가장 많이 제작되는 것은 반지와 팔찌, 목걸이 같은 귀금속류로 보통 하나에서 두 개 정도의 마법이 내장되어 있다. 그 이상은 힘들다. 왜? 마법을 새겨 넣을 공간이 적으니까.
그런 면에서 무기류의 표면적은 귀금속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래서 새겨지는 마법의 위력도, 수도 더 대단하다.
무기류가 아티팩트의 대표 격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용하니까.
당연히 무기류에도 한계는 있다. 대략 다섯 개 정도의 마법을 새기면 한계라고 본다.
그리고 에고가 중요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에고가 있다면 이 다섯 개라는 한계를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서 라미아가 있지 않은가. 그녀를 봐라. 마법에 한계가 있나. 이드라는 커다란 연료통이 있기는 하지만 어지간한 드래곤과 붙어도 밀리지 않을 마법 실력을 가졌다.
물론 라미아라는 존재는 예외로 두어야 할 만큼 극단적이긴 하다.
지금은 전설로 남아 기록으로 전해지는 에고 소드들도 사용하는 마법에 한계는 분명했으니까. 다만 에고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링스피어의 에고는 얼마나 대단할까? 얼마나 많은 마법. 아니, 초인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
정확히 서른 셋.
라미아가 펴 보인 손가락의 의미다.
네리베르와 산드라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고, 케마란은 링스피어에 뜨겁게 키스를 퍼부었다.
서른 셋. 단순히 용병의 수로 보아도 적지 않은 저 숫자가 다 링스피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니.
“오! 맙소사. 이건 당장 국보로 지정해야 할 보물이에요.”
“케마란~ 그거 당장 마스터에게 넘기세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내일 당장 시체로 발견될 거예요!”
산드라는 링스피어의 가치에 경악했고, 네리베르는 보물이 가져오는 위험에 기겁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사님의 에고 소드도 사용하는 마법이 열두 개인데, 케마란이 만든 링스피어가 서른세 개라니.
네리베르의 걱정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다섯뿐이라는 것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다섯만 입을 닫으면 케마란이 들고 다니는 링스피어에 대한 진실이 새어 나가지는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비밀을 지킬 다섯 사람은 확실히 믿을 만했으니, 걱정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기쁨으로 찢어지던 케마란의 입은 곧 거짓말처럼 되돌아왔다.
“오랴아압! 그래, 내 인생이 그렇지!”
케마란이 눈 돌아간 황소처럼 몬스터 한 마리를 찍어 넘기고는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소소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으랴앗. 죽엇! 꿈만 커서 감당할 수 없는 것들만 바랐으니. 이 모양 이 꼴이지!”
이후에도 이유 모를 한탄을 쏟아내며 미친년처럼 날뛰는 케마란에 몬스터들이 오히려 슬슬 피할 정도다.
“진정 좀 하지.”
그 모습을 네리베르가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곁에 있던 산드라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진정하기 힘들지. 서른세 가지 마법 중 대부분이 그림 속 꽃이 되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링스피어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주인인 케마란이 마나를 공급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케마란이 가진 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링스피어의 마법 중 가장 약한 다섯 가지뿐.
나머지 스물여덟 개의 마법은 케마란의 내력이 딸려 현재 사용 불가 판정이 내려진 상태가 된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이 너무 대단한 것들만 바라서이니.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저렇게라도 풀어야지.”
손에 국보급의 보물을 들고 있으면 무엇 하나 쓸 수 없는데.
보물을 썩힌다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을 수가 없다. 거기에 산드라의 말처럼 그것이 다른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오로지 본인의 욕심 때문이라면?
정말 저렇게라도 화를 풀지 않으면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이드도 뭐라 위로할 말이 없었다.
“뭐라 위로를 해 줘야 할지.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마법에 대한 교육이라도 해 줬어야 했나?”
“설마 이런 형태로 각성할 줄 알았나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링스피어의 에고가 깨어나길 학수고대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케마란을 직접 가르쳤다고 사제의 정이라도 든 모양이다. 그에 비해서 라미아는 냉정하고 분석적이었다. 그녀는 링스피어가 정신의 관의 바이트 타블렛에 깃든 비의 진언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쉬워요. 저런 접속 방법이 살아 있는 줄 알았다면 정신의 관에 있는 바이트 타블렛의 확보가 훨씬 쉬웠을 텐데.”
이전 탑주가 이드들이 탈취한 바이트 타블렛을 회수하기 위해 접속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한 수법은 라미아도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그때 모든 접속 방법이 끊어지고, 에고가 링스피어에 깃들면서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그보다 링스피어는 정말 괜찮은 거지?”
“그쪽은 확실해요. 몇 번이나 확인했는걸요. 마나에 걸고 완벽한 계약이에요.”
“아니, 그거 말고. 링스피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계약자 말이야.”
아무래도 워낙 귀물로 각성해 버린 덕분에 네리베르의 그것처럼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알아야 빼앗으려 들고. 쓸 수 있어야 훔쳐 갈 의미가 있다.
“걱정은 뚝! 이 세상에 마나가 존재하는 한, 링스피어를 쓸 수 있는 건 케마란뿐이라니까요.”
그리고 혹시라도 케마란이 죽게 되면 링스피어는 라미아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지만, 그건 굳이 언급하지 않는 그녀였다. 라미아가 삼킨 말은 듣지 못했지만. 이드는 일단 안심이 되었다.
마나가 사라지는 날이라니.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문제가 마무리되자 이드의 관심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처음엔 그의 보호 아래 있는 황녀와 아이넬 기사단을 살폈지만, 실로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황녀 전하! 대열을 지켜 주십시오. 제발 좀!”
“어머나. 주의하겠어요. 스폴 경.”
오히려 생각 이상으로 싸움에 익숙해진 황녀가 흥분해서 대열을 벗어나는 것을 제어하는 게 제일 힘들어 보일 정도.
“저긴 여유가 있고.”
은색 기사단이야 조금 전까지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그럼 다음은.
전장을 누비는 이드의 시선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이 향한 곳은 청색 기사단.
현재 토벌대 안에서 가장 확실한 문제아가 있는 곳.
그러나 그런 걱정과 달리 청색 기사단은 토벌대 안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히 몬스터를 갈아 내고 있다고 할까?
몬스터의 초인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아직 별다른 행동은 없는 것 같네.”
“이제 시작이잖아요. 거기에 여긴 보는 눈도 많고, 움직인다면 정신의 관 안에 발을 들인 후겠죠.”
“그럼 오늘 전투는 큰 일 없이 끝이 나겠네.”
쿠르르릉!
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전장 한가운데서 검은 마나가 치솟아 오르며 폭발했다.
말이 화근이라고.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이정도면 가히 진리와 같은 말씀이 아닐까.
“저거・・・・・・ 내 탓은 아니겠지?”
괜히 이드가 입을 가리는 사이, 검은 마나가 길게 목을 빼며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저놈은 프리실라의 마수 같은데.”
이드가 전해 준 정보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다른 몬스터 틈에서 그저 힘 좋은 몬스터 노릇이나 하고 있던 놈.
“왜 저러는지도 알아요?”
“그건 모르지.”
이드가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자.
그 답을 알려 주겠다는 듯 주변으로 퍼진 마나가 끈끈하게 변해 주변의 몬스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허허헝!
우워어어~
그에 조종당하는 중에도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 듯 몬스터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드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대신 저 몬스터들하고 미리 합의된 일은 아닌 건 확실해 보이지?”
“그런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저 마수. 저대로 몸집을 불릴 모양이에요.”
쿠르르릉!
쿠르르릉!
“거기다 하나가 아니네.”
몬스터의 비명으로 시끄러운 중에도 둔중한 두 개의 폭음이 확실하게 들려왔다.
“전 기사는 일시 후퇴하라!”
“검은 마나를 피해라!”
당연하게도 토벌대의 지휘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예민하고 빠르게 대처했다.
때문에 검은 마나에 휩쓸린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전장에 남은 시체와 살아 있는 몬스터들 수백 개체를 흡수한 마수가 서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셋 중 그나마 몸집이 작은 녀석이 프랑 기사단의 와이번만 한 크기를 자랑했다.
지금 같이 전력이 밀집된 전장에서 저 압도적인 몸집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가 된다 생각한 이드는 후방에 위치한 록마틴 후작을 향해 급히 전음을 보냈다.
『록마틴 후작님. 놈들이 날뛰면 위험합니다. 아직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 처리해야 합니다.』
아마 록마틴 후작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방의 마법사들로부터 줄기줄기 마법이 쏟아져 나왔다.
“컨퓨전!”
“슬로우!”
“익스플로젼!”
“파이어 자밸린!”
“썬더 폴!”
우선적으로 적의 움직임을 묶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변화를 막으며, 동시에 파괴한다.
그런 뜻을 담은 마법의 시동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색색의 마나광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하늘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 결과까지 아름답지는 않았다.
“대마법 방어 자세!”
“각자 후폭풍에 대비하라!”
기사들의 외침과 함께 마법들이 마수를 두드리며 폭발했다.
꽈르르릉!
콰르르르륵!
쩌저저적!
순간 강렬한 빛과 흙먼지가 일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자는 적지 않다.
“아직이다. 계속 마법을 쏟아 부어!”
“마법이 다하는 순간 전 기사단은 일제 공격에 들어간다. 우리의 목표는 놈의 목이다!”
여기저기서 외침이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저도 나설까요?”
라미아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려던 이드가 급히 생각을 바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나지 않게 할 수 있지? 토벌대에 큰 피해가 나지 않도록 적당히 부숴 놔. 이대로는 하위 기사단의 피해가 의외로 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활약할 기회가 왔다 생각한 라미아가 가슴을 쳤다.
“귀신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어요. 그럼 이드는 구경만 하고 있어요.”
“아니, 나도 일해야지.”
“일이요?”
“응.”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이드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런 이드의 눈에는 거대한 마수의 그늘에 숨어 움직이는 작은 마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 마수로 눈을 돌리고, 은밀히 등을 찌른다.
“좋은 수지. 들키기 전까지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