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57화
893화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의도로 나온 말이야?’
사용하면 수명이 준다거나. 죽은 후 영혼이 넘어간다는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만 없다면, 돈처럼 무조건 다다익선인 것이 힘이다.
초인 마법을 가지고 싶지 않으냐는 탑주의 말에 대한 답은 들어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온 저 말이 절대 순수할 수 없지 않겠는가.
보물에는 꼭 금과 보석 같은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을 가지게 해 주고, 삶을 살게 해 주는 무형의 지식 역시 위대한 보물이다. 무공과 마법 역시 이 무형의 보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공개된 것이 없는 초인 마법은 희귀도가 높은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래 이런 보물은 나만 가졌을 때 좋은 거다.
그걸 나누는 순간 보물의 가치는 급락한다. 그런데도 그걸 나눈다? 성인이거나, 역사에 남을 정도로 성군이 아닌 이상 어림없는 일이다.
얼마나 힘든 일이냐 하면 저 자비로운 부처님을 모시는 소림사는 물론이고, 신의 사랑과 가르침에 따라 신성력을 행사하는 신전에서조차 자신들의 무공과 기술은 함부로 공개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소림사와 신전은 공개했을 때의 혼란을 염려한 면도 있지만, 공개했을 경우의 좋은 점을 헤아려 보면 아무래도 빈약한 변명으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신전에서도 못 하는 일을, 욕심 때문에 금단의 선을 넘은 마탑에서 하겠단다.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연구를 공개하겠다고?
탕!
“감히 어디 되지도 않는 거짓으로 귀인들을 희롱하려 드느냐!”
“암. 그렇지요. 참으로 요망하게 혓바닥을 굴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성과는 희생당한 초인들의 것. 당연히 내놓아야 할 것이지, 네놈들의 것이 아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귀족들이다. 각자 숨겨 둔 보물 한두 개 없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보물을 나누겠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라면 절대 보물을 공유하지 않을 테니까!
그 와중에 내심의 욕망이 폭주한 발언도 섞였지만, 일부 초인들을 제외하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토벌이 끝나면 자연히 따라올 것들이니까.
“허허허.”
집단적인 반발에 탑주는 허허롭게 웃었다. 마치 어리석은 중생들을 바라보는 현자처럼 지그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남의 시선에 민감한 귀족들이 곧 강한 불쾌감과 함께 입을 닫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탑주가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눈은 록마틴 후작을 비롯한 제국의 귀족들이 아닌, 그 너머를 향해 있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오. 하면 아나크렌은 싫다고 하니, 여러분은 어떻소? 초인 마법을 가지고 싶지 않소?”
“당여…… 크흠흠…….”
“…..”
갑작스러운 질문에 솔직히 답할 뻔한 외교관이 거하게 헛기침을 한다.
그뿐 아니라 다른 외교관들의 표정도 묘했다.
그렇다. 아니다. 당장 답하지도 못하고 탑주와 록마틴 후작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사악한 집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주변에 보는 눈이 있어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면 당장 가지고 싶다고. 내 돈을 받아 가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 외교관들의 마음이었다.
제국의 배려로 참관이 허락되어 따라오긴 했지만,
그들이 이 토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손가락만 빨면서 제국이 보물을 캐 가는 모습을 구경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탑주의 한마디에 바뀌게 생겼다. 잘만 하면 자국에서도 초인 마법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록마틴 후작과 제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 쉽게 답을 못 하는 상황.
“가지고 싶다고 하면 그냥 주는 건가?”
어색한 침묵 속에서 이드가 물었다.
록마틴 후작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에 다른 귀족들과 외교관들이 탑주의 답에 귀를 쫑긋 세운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참에 눈치가 보여 묻지 못했는데, 차라리 이드가 물어 주어 고맙다는 얼굴들이다.
“그럴 수야 있겠소. 인과율 등가교환이야말로 마법의 진리. 그 속에서 난 초인 마법 또한 대가 없이 얻을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이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하는 탑주의 말에 피식 웃었다.
공짜처럼 물건을 내놓고,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 꼭 싸구려 장사치처럼 보여서다. 과연 자칭 진리를 연구하는 마법사라는 저 탑주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알까?
“대가라. 쭛, 난 또 공짜로 주는 줄 알았지. 그런데 그 초인 마법. 어차피 토벌이 끝나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정확히 따지면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토벌이라는 과정 자체가 대가라고 할 수 있다. 토벌하는 중에 나올 사상자들과 소모되는 자원. 그것이 모두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자 대가다.
치열한 전투 후 이웃 영지를 정복하는 것이나, 용사를 모아 드래곤을 죽이고 보물을 얻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과연 생명의 관의 정복자다운 자신감. 하지만 무식한 전투로 진리를 담은 지식을 온전히 얻을 수 있겠소? 내 장담하는데,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얻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며, 그 해석을 위해 희생되는 것이 금번 토벌대의 희생보다 클 것이오.”
이건 뭐 장담을 넘어 세상에 박아 넣는 세뇌, 저주 같다. 마탑의 연구에 대한 자부심이 눈에서 쏟아져 내린다.
이드는 문득 저 얼굴에다 라미아가 알아낸 사실들을 말해 주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물론, 탑주가 자신한 것처럼 라미아도 초인 마법의 해석에 애를 먹고 있다. 현재까지 없던 이론이고, 마법이니까.
하지만 초인 마법의 핵심이 담긴 바이트 타블렛의 연구와 드래곤의 깊은 마법 지식을 통해 해석 중이고, 알아낸 것도 있다.
대체적으로 탑주의 말이 옳지만,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사실을 말해주면 그때도 탑주가 저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어떤 반응이 나와도 재밌을 것 같은데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쉽네.’
이드는 입맛을 다셨다.
“그럼. 그렇다 치고 초인 마법의 대가는?”
“크게 대단치 않은 것들이오. 단 두 가지뿐이니까. 첫째 이후 연구에 대한 해당 국가의 지원. 둘째 본 마탑에 대한 해당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과 동시에 국가 마탑으로의 지정이오.”
탑주의 가벼운 대답이다. 그러나 요구 자체는 절대 가볍지 않다.
“말도 안 되는!”
드레인 왕국 외교관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드는 그 표정이 이해가 갔다. 현재 마탑은 제국의 토벌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 마탑을 인정하고 국가 마탑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제국과 싸우겠다고 선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초인에 대한 인체 실험으로 마탑이 쌓은 업보 또한 대신 짊어져야 한다. 특히, 이 경우 해당 국가에 소속된 초인들의 반대 여론에 내부적인 혼란까지 있을 수 있다.
즉, 초인 마법을 얻기 위해 내우외환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초인 마법 없이도 지금까지 잘만 살았는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라고? 혼란보다는 안정을 중요시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고개를 흔드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가는 그 두 가지뿐이오?”
어디서나 그렇지만, 모두가 노를 외칠 때 혼자 예스를 외치는 또라이는 꼭 있는 법.
마스 왕국의 외교관이 그랬다.
“프, 프리펠 자작! 지금 그런 말을 하시다니, 미치셨소?”
“이래서 마스 왕국의 인간은……”
그의 질문에 오히려 그 주변 외교관들이 더 놀라 표정이다. 그들은 위험 물질을 앞에 둔 것처럼 한 걸음 물러서며 프리펠 자작을 바라보았다. 이드 역시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았다.
마스 왕국이 힘을 숭상하고, 호전적인 나라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나설 정도일 줄이야.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나온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저 짧은 질문에는 초인 마법을 얻기 위해 아나크렌 제국과 싸울 수 있다는 의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질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포함된 만큼 저건 단순히 외교관 개인의 생각이 아닌, 마스 왕국 주류들의 생각이라는 것인데.
한데 그걸 지금 공개적으로 내보인 것이다.
이건 제국 면전에 대놓고 나 너희 싫어! 하고 외친 것과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호들갑들 떨지 마시오. 난 그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니까. 참, 하는 김에 탑주께 더 묻겠습니다. 두 가지 대가를 치를 만큼, 초인 마법은 대단한 것입니까? 그리고 완벽히 연구가 끝난 것입니까?”
하지만 주변의 동요와 상관없이 프리펠 자작은 태연하다. 오히려 질문까지 더하고 있다.
“물론이오. 초인 마법은 기존의 마법을 완벽히 뛰어넘는 새로운 진리의 희망이오. 그리고 그 증거는 저 안에 있으니. 그대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오.”
“단순히 그렇게 넘기기에는 대가가 너무 큽니다만?”
“허허허허.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깝구려. 마침 여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인 이드 명예 후작이 있으니 말하지만, 제국이 무공을 얻고, 소드 팰러스를 세워 무공의 종주국이 된 후 얻은 유무형의 이득이 어떠한지,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하오.”
“으흠.”
“아나크렌 제국은, 소드 팰러스는 대륙의 무인과 기사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기사들의 성지가 되었고, 소드 팰러스를 품은 제국은 그 영향력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았소. 그 모두가 바로 무공 때문이오. 오로지 그때까지 대륙에 없던 새로운 힘! 그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 오로지 그 하나! 그리고 보시오. 무공과 마찬가지로 대륙에 없던 초인이라는 새로운 힘이 세상에 태어나고 변화된 모습을. 초인 마법 또한 이렇소. 초인 마법은 대륙 역사에 이전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힘이며, 진리요. 이 힘이 세상을, 대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 같소이까? 과연 상상이 되시오?”
탑주의 열변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그의 말은 또한 흡인력이 있었다. 설득력이 있었다.
초인이 나타나 무공과 마법과 함께 새로운 힘의 축이 되었다.
소드 팰러스로 인해 아나크렌 제국이 얻은 이익 또한 막대하고, 대륙의 무인과 기사들에게 끼치는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
아나크렌 제국의 힘은 두 제국을 넘어섰다.
이 사실에 누가 반론할 수 있을까. 그저 제국의 귀족들이 불편한 얼굴을 할 뿐이다.
반대로 외교관들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 했다.
제국의 위세를 제대로 꼬집어 준 것도 시원하고 좋았지만, 그보다 초인 마법을 얻었을 때의 이득을 소드 팰러스와 초인의 등장에 비유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있다. 초인 마법을 얻게 된다면 우리 왕국이라고 소드 팰러스 같은 매직 팰러스를 가지지 못하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순간 모든 외교관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