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6화
483화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경도시 하이탈은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위에서 바라보면 연 꼴을 닮은 직사각형의 형태다. 도시를 관통하는 대로는 동서의 출입문과 이어졌고,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바큇살처럼 길이 나 있다.
용병 길드는 광장의 서쪽 끝에서 성벽까지 이어진 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용병 길드를 지나 성벽까지 나 있는 길에는 용병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가게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용병 길드 건물을 기준으로 이 안쪽은 ‘용병거리’라는 느낌이네요.]
용병 길드를 찾아온 라미아의 감상이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하이탈은 설계부터 목적이 확실했던 계획도시이기 때문이었다. 웅성웅성웅성ᅳ
‘하하하.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야. 좋구나.’
이드는 용병 길드 안에 널브러진 거친 모습의 용병들과 그들의 욕설 가득한 수다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만은 이드가 그레센을 떠나기 전과 같았고,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이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이드가 두 사람과 함께 안쪽에 있는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술집만큼이나 시끄럽던 길드 사무실이 점점 조용해지더니, 종국에는 수도원처럼 고요하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떠들던 용병이나, 조용히 술을 마시던 용병 모두의 시선이 일리나를 따라 움직였다.
엘프라는 말을 소곤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마, 모든 인간에게 가장 사랑받고, 언제나 환영받는 존재가 엘프가 아닐까. 이드는 그런 생각에 피식 웃고는 데스크 앞에 섰다. 안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사무소에 귀한 분들이 오셨네요. 뭘 도와 드릴까요?”
그녀는 일리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 사람 중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일행의 대표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과연 괜히 거칠기로 소문난 용병 길드의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정보를 구매하고 싶은데요.”
“어머나. 드문 걸 찾으시는 손님이시네요.”
안내양은 놀란 표정과는 달리 냉정한 눈으로 이드와 일리나, 에단을 바라보았다. 보통 이드 정도 나이의 애송이가 찾아와 정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잘 달래서 돌려보낸다. 정보는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 신원이 정확하거나 그만큼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함께 있는 엘프 때문이었다. 엘프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평범한 사람은 없다.
용병들이 수백 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진실’이었다. 안내양이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판매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희 규칙상 계산하신 한 분만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만 들으면 돼요.”
이드의 대답에 안내양이 데스크에서 나와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쪽의 벽을 두드렸다. 곧 벽의 일부분이 뒤로 밀리며, 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작고 어두운 통로가 모습을 보였다.
이드가 기다리라며 손을 들어 보이고는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한 발짝 움직이는 순간 이드의 모습이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열려 있던 통로가 닫혔다.
“두 분은 이쪽에 앉아서 기다리시면 된답니다.”
안내양은 이드가 들어간 통로 옆의 비어 있는 테이블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정보를 구매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일행들을 위한 자리인 듯, 다른 테이블보다 깨끗해 보였다.
“음료는 뭘로 드릴까요? 귀한 엘프분께서 오셨으니 제가 특별히 서비스해 드릴게요. 맥주? 위스키? 아니면 와인?”
“…..”
과연 용병 길드다운 과격한 음료 메뉴였다.
다행히 일반적인 메뉴도 있어서 두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는 불운은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음료수가 없었더라도 재미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드를 기다리는 사이 두 사람이나 일리나에게 접근하다가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구애하는 것 또한 남성의 정당한 권리.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 역시 여성의 권리다. 당당히 나섰던 두 남자는 일리나의 단호한 거절에 얼굴을 붉히고 물러서며 길드 안에서 떠들고 있던 용병들의 조롱과 웃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부러움을 담은 조롱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감히 일리나의 눈앞에 설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엘프의 눈은 특별하다. 그 앞에 서면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과 오점들이 모두 드러날지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은 없지만,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일을 겪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용병들은 의외로 미신과 전설을 굳게 믿는 사람이 많았다.
이드가 통로 안으로 들어간 지 삼십 분.
일찌감치 책을 펼쳐 읽고 있는 일리나와 라미아와는 달리 멍하니 앉아 있던 에단은 슬슬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리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놈도 없어서 볼거리도 없었다.
‘마스터도 이제 슬슬 나오실 때가 되지 않았으려나.’
에단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문이 있다는 흔적도 없이 굳게 닫혀 있던 벽에 검은 선이 생겨나며 통로가 만들어졌다.
“아, 마스터가 오신 모양입니다.”
지루한 시간이 끝났다. 에단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를 따라 책을 읽던 두 아가씨의 고개도 들려졌다. 하지만 검은 어둠을 헤치고 한 사람이 모습을 보인 순간, 일리나의 고개는 다시 책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 라미아와 에단은 통로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에게 놀라 입을 크게 벌려야 했다.
그리고 그런 에단을 바라보며 검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단? 왜 네가 여기 있냐?”
“그・・・・・・ 그러는 대장은 여기서 뭐하세요?”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질문만 하고는 잠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두 남자의 모습에 흥미를 가지던 용병들은 곧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단한 사랑의 기운을 보고 만 것이다. 두렵고 소름 끼치는 그 상상에 남자 용병들은 모두 기분 나쁜 소름을 겪어야 했다.
두 사람의 모습에 부끄러워진 라미아의 재촉으로 대장은 그들의 자리에 같이하게 되었다.
자리에 앉은 대장은 라미아의 모습에 흠칫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일리나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에단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후계께서 나오셨나?”
“네.”
“그럼 목적지는 그쪽?”
에단은 턱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대장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에게는 딱히 숨겨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에단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대장이 이쪽으로 직장을 옮겼으면 하는 생각도 있는 에단이었다.
“그렇죠, 뭐. 이쪽은 라미아, 그리고 이분은 일리나. 그분의 일행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가 트와이스에 소속되어 있을 때 대장직을 맡고 있던 분입니다.”
두 사람과 한 마리가 에단의 소개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본국으로 가신 거 아니었어요?”
“쯧, 그게 그렇게 됐다.”
대장은 에단의 말에 슬쩍 일리나와 라미아를 돌아보더니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와 지낸 시간이 얼마인가. 에단은 그의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맛있는 케이크와 차를 주문하고 재촉하자 결국 대장의 입이 열렸다.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네 이야기까지 해 가면서 보고를 했는데도 믿을 수 없다고 다시 들어가라고 하시잖냐. 우리야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이니 별수 없지. 그래도 부하 놈들은 복귀시킬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이번 일로 희생도 많고, 정신적인 피로도 깊다고 했더니 대원들을 교체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일단 지친 녀석들은 보내고, 나는 여기 남아서 새로 투입되는 애들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널 봤으니……… 이대로 돌아가겠구나 싶다.”
“어, 우리 사이에 제 일을 보고하시게요?”
애초에 그것을 바라고서 하이탈로 들어온 것이지만 에단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넌 엄연한 배신자고, 스파이야. 그리고 이번 일은 십년지기라도 소용없어, 임마. 난 절대로 시온으로 다시 가고 싶지는 않거든. 거긴 지옥이야. 미친 곳이지. 솔직히 이번에 다시 들어가면 살아나올 자신이 없기도 하고.”
“하기사 그렇기는 하죠. 괴물 히드라까지 있으니까요.”
에단은 트와이스로서 시온을 탐험하며 겪었던 생고생과 결계 안에서 구경할 수 있었던 히드라의 거대한 덩치를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설마 시온에 히드라까지 있는 거야? 그 괴물은 늪에서만 사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요. 삼림욕을 하고 싶었으면 다른 곳에 가서 하지, 하필 거기에 살고 있을 줄 누가 알았어요. 저 처음에 그놈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나마 그분을 만나기 전에 부딪치지 않아서 다행이지, 저희끼리 있을 때 부딪혔으면 모조리 몰살당했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히드라보다 두 배 이상이나 컸다고요. 마을분께 듣기로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거기 살았다고 하시네요.”
그러나 에단은 그 히드라가 이드의 손에 처리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이 말이 그대로 본국에 전해지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시온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를 바랐다. 아마, 듣고 있는 대장 역시 자신의 마음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한데요. 대장은 왜 본국으로 안 가셨어요? 그냥 다 같이 갔다가 다시 나오면 되잖아요.”
평소에 트와이스는 단체로 움직였다.
“너,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나도 당연히 그러고 싶었지. 그런데 텔레포트가 안 된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평소 하던 대로 했을 텐데 텔레포트가 안 되니 별수 있냐. 괜히 왔다 갔다 고생하느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백배 낫지.”
“……”
순간 일리나와 라미아, 그리고 에단의 시선이 대장을 향해 모였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물었다.
“[텔레포트가 안 된다고요? 왜요?]”
“……이런 이유로 현재도 조사 중입니다만, 아직 명확한 이유는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보고를 마친 마법사가 창백한 얼굴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봐도 너무 바보 같은 보고서였다. 최근에 버락의 눈을 터트려 버린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마법사는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너무나 무서웠다. 특히 그의 대답이 점점 늦어질수록 그의 몸도 온통 진담으로 축축하게 젖어 갔다. 그러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찰나.
두려운 상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제 공간계 마법은 모두 사용할 수 없는 건가?”
“옛! 아, 아닙니다. 공간 좌표를 기준으로 한 공간 이동이 불가능할 뿐입니다. 시계(視界) 안에서 이동이 자유로운 블링크와 대응 마법진을 이용한 고정식 공간 이동은 가능합니다.”
톡톡톡.
마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버릇인 듯 탁자를 계속 두드리던 인물이 가볍게 손짓을 하며 마법사를 내보냈다.
톡톡톡.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그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다. 부동자세로 서 있던 사 인의 기사 중 하나가 그렇게 판단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각지에서 보내 온 첩보와 다르지 않은 조사 내용입니다. 백작 각하.”
톡톡톡.
“알아. 그렇지 않았으면 저따위 보고를 하고 저놈이 멀쩡히 걸어 나갈 수는 없었겠지. 나는 나오지 않는 답을 원하는 게 아니야. 최선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지.”
물론 타국에서 뭔가 알아냈다는 정보가 있었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데 대한 징계로 눈깔 하나는 뽑아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보고해.”
“하이탈에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후계자를 하이탈에서 확인했다고 합니다. 일행으로 여성 엘프 하나와 용병으로 보이는 검사가 한 명 있다고 합니다.”
후계자라는 말에 책상을 두드리던 백작의 손가락이 멈췄다.
“사실이야?”
“5등급 정보입니다.”
5등급은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추상적인 형태로 해당 정보를 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브스에서 사용하는 정보 등급은 8등급까지 있었다.
“시온으로 가고 있는 놈들 그쪽으로 보내.”
“옛. 하이탈 도착까지 오 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백작은 기사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책상을 두드렸다.
“오 일이라…………. 애매한 시간이군. 일단 보내. 내가 따로 움직여 볼 테니까.”
백작이 결정하자 보고를 하던 기사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그의 발이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반대로 여전히 방에 남은 세 명의 기사는 다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애를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