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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60화


896화

짧은 반성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모두의 시선이 비올라를 향했다. 반성은 반성이고,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이니까.

과연 이 접시도 초인을, 인간을 재료로 삼아 만든 것인가.

그 시선들 앞에서 비올라는 답지 않게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다.

그에 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해? 이것도 초인을 재료로 만든 거냐니까?”

“그게…….”

재촉에 어렵게 입을 연 비올라가 결국 질끈 눈을 감고는 말을 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서류에 아티팩트의 구성을 위한 기본 골자와 재료에 대한 설명만 있어서 정확한 제조 방법은 작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 결국 뜯어 봐야 하나?”

상자의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초인의 머리가 나왔듯, 이 접시도 분해하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밝혀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그런 쪽으로 누구보다 뛰어난 라미아가 있지 않은가. 뒤를 생각하지 않으면 분해하는 것쯤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황금의 둥지는 끝이다. 아깝다고 생각한 것일까. 비올라가 급히 이드를 말리고 나섰다.

“꼬, 꼭 그럴 필요는 없잖습니까. 잘은 몰라도 이 접시에는 초인의 신체 일부는 들어 있지 않단 말입니다.”

“너도 제조 방법은 모른다면서 그걸 어떻게 장담해?”

“모릅니다. 하지만 이 황금 둥지를 영혼의 관에서 제작했다는 점에서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관.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미완의 마탑의 마지막 조각의 이름이 나왔다.

“영혼의 관에서 만들었다고? 그렇다고 뭔가 다른가?”

“다릅니다. 많이요. 먼저 말씀드린 대로 생명의 관이 육체를 다룬다면, 정신의 관은 말 그대로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유지하는 두뇌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관은 아스트랄계 단계에서 영적인 정신체, 즉 초인기를 받아들인 영혼에 대해 연구합니다. 그러니 그런 영혼의 관에서 만든 황금 둥지에 초인의 신체 일부와 같은 다른 관에서 사용하는 방법이 적용되었을 이유가 없지요. 각 관의 테마는 분명하고, 서로의 연구에 대해서는 존중과 동시에 무시를 하고 있으니까요.”

과연, 그런 이유라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

존중과 동시에 무시라고 했다. 그 말은 곧 스스로의 연구에 대한 믿음과 자존심이 있다는 말. 그 상태에서 타 관의 연구 결과를 이용한다면 영혼의 관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과 같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으윽! 영혼이라니. 미친 거 아냐?”

“다르게 말하면 귀신 붙은 물건이라는 거잖아. 네리베르, 봐 봐. 나 소름 돋았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중심으로 격한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다른 이들의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심지어 어지간한 일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일리나까지 분노하는 한편 안타까운 시선으로 황금 둥지를 본다.

정신체인 정령과 누구보다 가까운 하이 엘프인 그녀는 영혼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영혼을 이용했다니.

일리나가 이드를 바라보았다. 잔잔하지만 단호한 시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한 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에 일리나가 비올라를 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에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건가요?”

순간 비올라의 눈이 방황하다 이드를 향했다. 대답 여부에 따라 이 귀한 황금 둥지가 고철로 변할 것임을 직감한 때문이다.

‘어, 어쩌죠?’

‘뭘 어째? 사실대로 대답해.’

‘그랬다가는 황금 둥지가! 제 설명을 듣고도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모른다는 겁니까?’

‘그래서 아무리 귀해 봤자 일리나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그리고 설마 그 황금 둥지가 내 일라이져보다 귀하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차라라락.

일라이져에 걸려 있던 쇠사슬의 소리, 비올라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래서 부자들이란!

아티팩트 귀한 줄을 모른다. 게다가 이 황금 둥지가 어디 흔하디 흔한 마법으로 만든 것인가. 바로 초인 마법의 증거가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신검과 아티팩트를 비교하다니. 비교할 수 있는 걸 가져와야 뭐라 말을 하지!

신성력과 마력이 깃든 순간. 물건도 단순한 물질의 단계를 넘는다. 즉, 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성력과 마력의 격이 같을 수가 없다.

거기에 도구라는 근본 개념이 바뀌지 않으니, 기능성의 한계에서 오는 차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데 신검과 아티팩트를 어떻게 단순 비교를 한다는 말인가. 비올라에겐 불합리의 극치와 같은 일이다.

“일리나가 묻잖아. 대답.”

“예. 합니다. 해요. 젠장……. 일단 황금 둥지에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제가 가진 정보 중에 영혼의 관에 대한 것이 가장 적고 단편적이기 때문에. 대신 제가 알고 있던 시점에서 영혼을 온전히 다루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스트랄 단계에서 영체 간섭이 최대였다고요.”

“아스트랄바디로군요.”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적 설명을 바로 이해한 일리나에 비올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추가 설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비올라의 눈이 슬쩍 돌아갔다.

무투파들은 한데 모여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스트랄이 뭐야?”

“조용히・・・・・・ 하세요!”

“칫, 자기도 모르면서.”

비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저게 정상이다.

그러나 비올라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일리나의 마법 상식이 어지간한 마법사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간보다 긴 시간을 살아가는 엘프 종족의 기초 상식은 인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비올라의 답이 나왔다.

일리나는 살짝 고민하다 도움을 바란다는 듯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라미아가 좀 알아봐 줄래요?”

“아스트랄바디면 좀 애매하네요. 영혼의 관의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도 잘 모르고. 그나저나 영혼을 만지작거리다니. 그건 흑마법사의 특기인데. 미완의 마탑. 농담이 아니라 진짜 흑마법사들의 소굴이 되었네요. 이제 악마와 계약까지 하면 완벽한데.”

‘사악한 흑마법사를 물리치자!’라는 말이 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농담이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악마와의 계약이라니. 농담이라도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 일단 계약하는 순간 마탑의 전력이 두 배 이상 뻥튀기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뭐, 그만큼 신성력 앞에 약해지겠지만.

“일단 황금 둥지는 제가 알아볼게요. 다행히 영체의 봉인 사실만 확인하는 것이라면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저녁까지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어요.” 

라미아의 방법이란 드래곤에게만 알려진 마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황금 둥지를 분해할 필요도 없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참관하게 해 주십시오!”

“불가!”

뜻밖의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불이 붙은 비올라의 요청을 딱 자르는 라미아다.

하지만 비올라의 고집이 어디 보통 고집인가. 황금 둥지를 들고 나가는 라미아의 뒤를 졸졸 따르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댔다.


두 사람이 사라진 막사 안은 순간 적막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 속에서 이드가 식어 버린 찻잔을 들었다. 화기를 주입하자 금방 찻잔에서 김이 솟았다.

“호로록, 황금의 둥지, 라미아가 이상이 없다고 하면 그 물건은 쉴라 경께 드릴 테니, 사용하도록 하세요.”

“네?”

별거 아닌 듯 툭 던지는 말에 쉴라가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황금의 둥지의 기능을 듣고 가지고 싶었던 참인데, 그 속을 읽은 듯 주겠다니.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방패를 쓰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묵혀 둘 수는 없고, 그렇다면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써야겠죠.”

그게 바로 당신이다, 라며 이드가 쉴라를 보았다. 실제로도 그게 진실이었다.

토벌대를 뒤져 보면 쉴라만큼 방패를 잘 쓰는 기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창고에 처박아 두는 한이 있더라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손에 보물을 쥐여 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쉴라는 케마란과 네리베르 두 제자가 속한 기사단의 단장이 아닌가.

그녀의 전력이 올라야 두 사람이 안전할 확률도 높아진다. 황금의 둥지를 쉴라에게 주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네리베르는 다음에 좋은 물건이 나오면 줄 테니 기다리고.”

“아니에요. 저는 괜찮습니다.”

갑자기 불린 네리베르가 당황한 듯 두 손을 흔든다. 황금의 둥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그것도 감히 스승이라고 부르기도 죄송스러운 이드의 물건을 탐했으니, 죄송스러운 것.

그러나 무인이 좋은 무기를 보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제는 악우를 넘어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이자 절친이 되어 버린 케마란은 에고가 각성하면서 전설에나 나오는 엄청난 무기가 된 링스피어를 가지고 있다.

부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고, 그러던 차에 보게 된 황금의 둥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드의 말에 따라 쉴라의 손에 들어갔다.

이드는 그 순간 네리베르의 아쉬움을 정확히 본 것.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이럴 땐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거라고. 바보야.”

“하하. 그래, 이번엔 케마란의 말이 맞다.”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케마란의 모습에 이드가 껄껄거리며 웃자, 악우를 한 번 쏘아본 네리베르가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말을 하는 네리베르의 얼굴이 붉다.

그 모습에 막사 안에 흐뭇한 눈빛이 교차한다. 물론 장난기도 함께다.

“명예 후작, 저는 없나요?”

“황녀 전하께서는 황궁 비고라도 뒤져 보시지요.”

“쳇.”

황녀가 삐진 듯 혀를 찼다.

이드가 보기엔 부자의 투정일 뿐이었다. 당장 황궁 비고를 뒤지면 황금의 둥지보다 좋은 보물도 적지 않을 텐데 굳이 던전에서 나오는, 안전도 확인되지 않는 보물을 바라다니 말이다.


그때였다.

“충! 중한 회의를 위해 황녀 전하와 명예 후작, 그리고 쉴라 단장님의 방문을 바란다는 록마틴 후작님의 전언입니다.”

막사 밖에서 외치는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체 회의인가?”

“전체 회의는 아니지만, 주요 인원이 모이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기사의 말에 황녀가 일어났다.

“가시죠. 명예 후작님.”

“아니요. 저는 빠지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회의는 토벌에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아직 그런 문제까지 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드의 짐작은 정확했다.

록마틴 후작이 두 사람을 부른 것은 탑주가 던진 말에 따라 외교관의 보고를 받은 왕국과 제국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그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쓸데없는 정치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 명예 후작의 작위를 받은 이드다. 그런데 새삼 이제 와서 정치적인 문제로 회의를 하자고? 절대 사양이다.

“그렇지만…….”

“거기다 토리빈 마법사도 피하고 싶고 말입니다. 절 보면 분명 황금 둥지를 내놓으라고 떼를 쓰실 것 같아서.”

장난 같은 대답.

잠시 이드를 바라보던 황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그럼 명예 후작님은 게으름을 피우시느라 회의에 불참하는 것으로 해두죠.”

황녀가 흥하고 콧김을 뿜으며 막사를 나갔다. 

그 뒤를 쉴라가 따른다.

“그럼 우리는 좀 쉬어 볼까? 아무래도 내일부터 다시 던전 공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이드의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참이 지나 돌아온 황녀와 쉴라가 말했다. 

“내일부터 다시 던전의 공략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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