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65화
901화
빠른 반격에 당황한 듯 공격이 멈췄다.
동시에 선상에 오른 생선처럼 펄떡거리던 주인 잃은 팔들이 얼음이 녹아들 듯 땅으로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나타나더니, 잘린 팔도 유령처럼 사라진다.
“어디서 되도 않는 유령 흉내야? 최우선 명령이다. 마법사와 초인들은 잘라 낸 팔을 소각하라!”
이드는 잘린 팔을 회수하는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마 인육을 먹지는 않을 테니,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잘린 팔을 다시 붙여 쓰는 것이다. 보통은 쉽지 않다. 만능 치료법인 신성력으로 붙여서 바로 쓸려면 최소 추기경급의 신성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가 어딘가. 종류를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초인기와 초인을 연구해서 다양한 인체 실험 데이터와 기술을 축적한 미완의 마탑이 아닌가.
이곳이라면 잘린 팔을 바로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파이어 볼!”
“버닝 핸드!”
“퓨링 파이어!”
그런 자세한 속뜻까지는 몰랐지만, 마법사들과 초인들은 충실하게 이드의 말을 따랐다. 덕분에 잘린 팔의 절반을 까만 숯덩이로 만들 수 있었고, 숯이 된 팔은 사라지지 않았다.
혐오스러운 탄내가 진동했지만, 이드의 짐작이 옳았다고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드 때문에 외팔이가 된 데에 대한 앙갚음인지, 두 번째 공격은 무섭도록 빠르게 돌아왔다.
“공격이다! 막아!”
“반격해!”
콰앙!
차차창!
앞서는 단검을 던지고 암기를 날렸다면, 이번엔 벽을 뚫고 나온 손에 도끼와 철퇴, 창이 들려 있었다. 모두 묵직한 중병기였다.
일반 롱소드와 단검, 암기는 사이사이 양념처럼 섞였다.
“이것들 설마 공격용 초인기는 없는 건가?”
어느새 현장에 도착해 기사들을 지휘하고 고추 수확하듯 벽에서 나온 팔을 잘라 내던 이드의 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리 단순하게 병기만 휘두를 이유가 없다. 당장 어디서 나올지 예측하기 힘든 공격에 검기와 초인기만 실려도 기사들도 방어하기 까다로운 공격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해도 평범한 병사나 용병의 그것 같은 속도와 힘으로 휘둘러지는 공격에 당할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어딜! 이딴 히마리 없는 도끼에 당할 헨슨 님이 아니시다!”
“잡았다! 잘라!”
끄아아악!
“잘린 팔을 태우는 건 우리에게 맡기시오!”
팔을 자르고, 태우고, 거기다 단숨에 적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고, 합까지 맞추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아군에서는 부상자도 나오지 않는다. 통로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적의 피와 살이 타는 냄새뿐.
이드는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굳이 그까지 나서며 칼질을 할 필요도 없이 상황이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이 정도로 조심하라고 한 거라면 실망인데.”
벽을 통과하는 저 초인기가 검기와 무기, 방어구까지 한 번에 투과할 수 있다면 무서웠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이건 그저 깜짝쇼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아니면, 이드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도?
꼬르르륵!
중앙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선두와 후미에서 동시에 사건이 벌어졌다. 멀쩡히 서 있던 바닥이 진흙처럼 변하며 그 위에 서 있던 기사들을 삼켜 버린 것이다.
“적이다!”
“적이 바닥에 있어!”
다행히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공격에 사방을 경계하던 기사들이 바로 발견했지만, 이미 흔들리는 손끝만 남은 기사들을 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 이게 뭐야!”
“누가 내 발을 잡아당긴다!”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당황한 목소리가 났다. 특히 양 벽과 천장에서 튀어나오는 공격만 생각했지 조용하던 바닥이 움직일 줄은 몰라 더욱 당황한 면도 있다.
무엇보다 땅을 디디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일단 임시방편으로 발이 빠지는 기사가 있으면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검기로 바닥을 찔렀다. 그러면 바닥으로 빠지던 것이 멈췄으니까. 하지만,
“끄어억! 쿨・・・ 럭.”
다음 순간 가슴까지 빠진 기사가 고통스러운 비명에 이어 피를 토하고는 죽었다. 땅속에 박힌 몸이 공격당한 것이다.
무엇보다 바닥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기사를 잡아끌던 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도 컸다. 그나마 이렇게 해서 적의 숫자라도 줄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방패다! 모두 방패를 바닥에 깔아!”
순간 누군가 번뜩이는 재치를 발휘했다. 확실히 방패라면 흙이나 돌과 재질이 다르다.
하지만 방패를 든 기사는 많지 않다. 파츠 아머의 등장과 함께 기사들이 가장 많이 버린 것이 방패다.
무엇보다 방패는 큰 소용이 없었다. 땅이 물러지는 사이 자리를 옮겨 볼 수는 있어도, 방패와 함께 통째로 바닥으로 빠져서야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방패 위에서 사방을 경계하던 네 명의 기사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급히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바닥으로 사라진 다리는 끈끈한 아교에 빠진 듯 꼼짝을 하지 않는다.
“저 친구들 잡아!”
그에 급히 주변 기사들이 움직이려 할 때였다.
기우뚱.
모래시계 안에 든 모래처럼 가라앉던 기사들의 몸이 멈칫하더니, 다음 순간 농부가 뽑은 무처럼 땅에서 쑥 뽑혀 나왔다.
“어?”
그와 함께 기사들이 빠지고 뻥 뚫린 자리에는 팔이 아니라 허리까지 땅 위로 솟아 있는 남자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주변 기사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
꽈르릉!
검은 유성이 내리꽂히며 구덩이 안에 있던 남자가 곤죽으로 변했다. 그 직후 검은 유성, 철황유성탄의 주인인 이드가 허공섭물로 잡고 있던 기사들과 함께 바닥에 내려섰다.
“명예 후작님!”
“최소 둘, 셋은 있을 줄 알았더니. 공격하는 쪽과 능력이 다른 건가?”
팔과 무기만 벽을 통과시키는 것과 기사 네 명을 땅속으로 잡아끄는 것. 힘의 차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죽다 살아난 표정의 기사들이 감격한 듯 부르는 것에 손을 들어 간단히 답한 이드가 선두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미아 무슨 방법 없어?”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적당한 방법을 찾았어요. 바로 실행할게요.”
라미아가 기다렸다는 듯 답한 직후였다.
탕!
선두에서 바닥을 차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통로 안을 울리자 통로 바닥의 마나가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반투명한 실드 마법이
카펫처럼 삼조의 발아래 깔렸다.
삼조와 바닥 사이를 아예 나눠 버린 것이다.
이래서야 방패까지 집어삼키는 짓은 하지 못한다. 하려면 수백 미터 길이의 실드를 통째로 삼켜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벌써 했겠지. 잘했어.”
“방패를 쓰자는 말에 영감을 받았죠.”
그 말이 아니었어도 비슷한 수단은 곧 떠올렸겠지만, 항상 그렇듯 한발 빠른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찾아서 포상을 줘야겠네.”
“하지만 임시방편이에요. 근본적인 공략법을 찾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이동해야 할 거예요.”
라미아가 가진 마나도 그렇지만, 끝없다 해도 좋을 거대한 마나를 가진 이드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물론 보통의 마법사라면 어림도 없다. 지금도 거대한 실드에 메이슨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턱이 반쯤 빠져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서 계속 이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이 길은 한번 통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이후 토벌대가 계속 지나다녀야 할 길이다.
“물론 해결해야지. 일단 기존 공격도 줄어드는 듯하고.”
바닥이 안정되자, 벽과 천장을 뚫고 나오던 공격에 흔들리던 기사들도 금세 안정을 찾고 공격에 들어간 상태다.
지금은 오히려 기존 공격이 줄어들고 있다. 바닥을 통한 기습이 실패하고,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라미아의 실드에 영감을 받은 초인과 마법사들이 라미아에게 힘을 보태려는 듯 각자가 가진 수단을 활용하고 있었다.
적절한 대응법을 떠올리지 못해 문제지. 방법만 안다면 현재 토벌대의 수준에서 못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적당하다 싶으면 리마아가 해당 범위만 실드를 부분적으로 열어 준다.
그 능숙하다못해 고이고 고인 듯한 실드의 사용 방법에 마법사들은 또 한 번 조용히 놀라며 선두에 있을 가면의 후작 부인을 향해 존경심을 키우고 있었다.
“일단 내가 직접 나서야지. 놈들이 어디 있는지도 알았고.”
“적들이 숨은 곳을 찾으신 겁니까?”
혼자 중얼거리는 이드의 모습에, 그가 메시지나 오러 텅을 이용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기사들이 반응했다. 보통은 들어도 듣지 못한 척해야겠지만, 상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공격을 당하고만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던 기사들이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해 버린 것이다.
“방금 두드려 보고 알았지.”
방금 기사들을 구하며 두드린 철황유성탄.
고작 적 하나를 잡기 위해 쓰기에는 너무 강력한 일격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걸 단순히 적을 치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다. 강기의 탄환에서 뿜어진 기파를 통해 땅속의 정보를 읽어 낸 것이다.
마치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소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원하던 정보를 이드에게 가져다주었다. 지금 이드들이 디디고 있는 땅 아래.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작지 않은 공간이.
“저희들을 보내 주십시오.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 확인한 후에 길을 열어 주겠다. 무엇보다 자네들이 지금 내려가서는 적들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적들이 흙을 통과해 다니기 때문이군요.”
이해력이 좋은 기사의 대답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삼 조를 공격하는 초인들에게 이 공간은 물속이나 다름이 없었다. 적 초인들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고.
“라미아. 여기 열어 줘.”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푸르게 빛나던 바닥의 실드가 둥글게 열렸다. 바로 철황유성탄이 커다랗게 넓혀 둔 구덩이 위. 이드는 그대로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며 대지의 정령을 소환해 땅에 구멍을 뚫었다.
떨어져 내리는 속도 그대로 빠르게!
“너희들이 물속의 물고기면 이쪽엔 상어도 잡아먹는 범고래가 있단 말이야.”
백 미터의 긴 구멍이 뚫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통로의 끝에 나온 돌로 된 바닥. 누군가에게는 천정일 그것을 이드의 다리가 내려찍었다.
콰르르릉!
돌이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중력에 의해 천장을 지지하고 있던 천장의 일부가 충격에 와장창 무너진 탓이다.
동시에 아래서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
“천장이 무너진다!”
“조심해!”
“왜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
갑작스러운 상황에 커다란 밀실 안에서 공격을 준비하던 자들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적의 공격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드가 뿌연 흙먼지를 뚫고 걸어 나오자 그들의 얼굴이 유난히도 파랗게 질린 이유가.
“여기가 출연진들 대기실인 모양인데. 잠시 실례하지. 아, 허락은 필요 없으려나? 댁들도 허락받고 공격한 건 아닐 테니까.”
물론 따지면 허락받고 토벌에 나선 것도 아니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따지면 끝도 없는 것을.
그리고,
“난화!”
“적이다! 공격해!”
이드가 검기를 뿌리는 것과 적들의 고함이 동시에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