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68화
904화
삼조가 복귀했다. 다음 조의 교대는 없었다. 록마틴 후작이 몸소 반기지도 않았다. 그건 첫 회 한정이었던 모양이다.
대신 회의가 열렸다. 공략 시간에 대한 회의였다.
삼조의 던전 공략에 6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거의 한나절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삼 조가 이 조처럼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황녀가 끼어 있는 조라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할 수 있을 법도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
그에 록마틴 후작은 지휘부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각 조의 공략 시간을 기존 3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렸다.
단번에 두 배로 늘려 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진입 시간과 공략 순서도 변경했다.
“한데 탑주란 자가 말하던 아티팩트는 보지 못하셨습니까?”
어느 노귀족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에 황녀가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검은 상자 두 개를 꺼내 놓았다.
“이 상자입니다. 6층 끝에 놓여 있더군요. 후작 부인이 보시고는 앞서 사조가 가져왔던 상자와 동일한 물건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이 실망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 했다. 앞서 얻은 상자도 초인기를 품고 있다는 것은 알아도 사용법을 알지 못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는 둘째다.
또 사용 방법을 안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상자 안에는 초인의 머리가 들었다. 그런 물건을 일반 아티팩트처럼 쓸 수 있을까? 그것도 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상태에서?
힘에 눈이 멀었다면 모를까. 귀족의 체면에 그랬다가는 조롱과 함께 천박하다는 말을 듣기 딱 좋다.
차라리 저주받은 물건이면 로망이라도 있지, 온전히 죽음의 축복도 받지 못한 사람의 머리라니.
물론 모든 사람의 생각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상자의 색이 다른데, 혹시 그 상자에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가령 사용 방법이라거나 말입니다.”
혹 황녀가 숨기는 것이 있나 살살 눈치를 살피는 쥐 상의 사내다.
하지만 그런 속이 보이는 무례에도 황녀는 인상 하나 구기지 않고 친절히 답했다. 이번 기회에 단단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아쉽게도 그런 건 없었답니다. 그리고 삼 조는 이 상자에 대한 권리를 토벌대에 넘길 생각입니다. 당장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하는 것 자체로 죄가 될지 모를 것을 다루기보다 적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을 테니까요.”
순간 좌중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황녀가 전리품을 내놓는데, 차후 다른 조에서 얻을 전리품의 처리에도 영향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황녀 전하의 깊은 뜻에 참으로 감복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반대할 수도 없다. 모두가 황녀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전리품에 대해 물었던 노귀족이 다시 나섰다. 그는 황녀의 의도대로 전리품을 내놓고 싶지 않았다.
“참, 그러고 보니 명예 후작께서 얻으신 상품은 쉴라 단장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 이 상자의 사용 방법도 밝혀 주실 수 없으신지요?”
그것은 질문임과 동시에 에두른 황녀의 압박에 대한 답이었다. 상자는 몰라도 황금 둥지는 이드가 받아 개인적으로 쉴라에게 주어 사용하고 있으니, 자신들도 그리하겠다는.
‘쯧쯧. 참 복잡하게 한다.’
이드는 양측에 오고 가는 복잡한 정치적 언어가 징그러웠다.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차라리 음흉해 보이지나 않지. 재차 정치에는 끼어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드가 혹시나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좌중을 보며 말했다.
“황금 둥지의 건은 운이 좋았습니다. 생명의 관에서 황금 둥지에 관련한 작은 단서를 얻어 그것을 기초로 한 덕분에 사용 방법을 해석할 수 있었을 뿐, 온전히 저들의 마법을 해석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토벌대의 마법사들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 부인이 시간이 나는 대로 연구 중인 마법사들을 찾아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오오. 그럼 곧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되겠군요. 참으로 뛰어난 부인을 얻으신 명예 후작님이 부럽습니다.”
마치 자신이 가진 아티팩트의 사용법을 알아낸 듯 함박웃음을 짓는 노귀족이다. 아직 아무런 상품도 얻지 못했으면서 김칫국부터 시원하게 드링킹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해가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시간.
회의를 마친 직후 사조가 던전에 진입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드가 막사로 돌아와 쉬고 있는 중에 사무엘 백작이 찾아왔다.
이드와 어떻게든 튼튼한 연줄을 만들고자 이그렌을 핑계로 가끔 방문한 적이 있으나, 그가 혼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혼자 오셨습니까?”
“하하하. 저와 명예 후작님의 사이에 꼭 일이 있어야 찾겠습니까.”
“항상 이그렌과 동행하던 백작께서 홀로 찾아오시니 하는 말입니다. 제 생각엔 특별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역시 명예 후작님의 예리한 눈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이것을.”
사무엘이 품에서 두 장의 봉투를 꺼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드가 봉투를 받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사무엘이 두 장의 봉투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이것은 시온 가문의 복귀와 동시에 승작. 그리고 본래 시온 가문이 가지고 있던 영지의 회복에 대한 왕국의 뜻입니다.”
‘시온 자작이 왕실에 잘 도착한 모양이네.’
이드는 그제야 봉투를 받아 들었다. 먼저 건네준 봉투를 펼치자 과연 안에는 사무엘이 말했던 내용과 함께 왕국의 동량인 이그렌을 잘 부탁한다는 일리나스 국왕의 전언이 담겨 있었다.
편지의 글은 사무엘 백작과 달리 지저분한 내용 없이 실로 담백했다.
“일리나스의 국왕께서 손수 글을 적어 주실 줄이야. 귀한 편지로군요.”
왕이 손수 적은 편지는 절대 하찮지 않다. 하급 귀족들에게는 그 짧은 편지조차 권력이니까.
“허허허. 그만큼 본 국이 명예 후작님을 귀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국의 재무 대신께서 보내 주신 편지입니다.”
슬그머니 밀어 주는 사무엘의 은밀한 눈빛.
어쩐지 보고 싶지 않은 편지지만, 그렇다고 일국의 재무 대신이 보내는 편지를 무시할 수도 없다.
이드가 찝찝한 기분이 되어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몇 장의 서류와 함께 짧은 글이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모두 읽은 이드가 짧은 헛웃음과 함께 편지와 서류를 책상 위에 툭 던져 버렸다.
“사무엘 백작께선 편지 내용을 아십니까?”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던전에서 나오는 전리품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까.”
현재 정식 외교관들과 운 좋게 토벌대에 따라붙은 타국의 귀족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는 누가 뭐래도 미완의 마탑과 초인 마법이다.
그리고 던전에서 나오는 탑주의 상품이 된 아티팩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당연하게도 외교관들은 현재 아티팩트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다. 제국 기사 전력이나 구경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은 벌써 소멸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아티팩트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오늘이 6층 공략 첫날이라는 것도 있지만, 제국 기사들과 외교관과 그들을 보호하는 기사들의 숫자를 비교하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자국 기사들을 더 부를 수도 없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제국 기사들과 귀족들 중 아티팩트를 얻게 되는 자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고 그들에게 구매하려는 자들도 많았다.
바로 지금 이드의 손에 들린 편지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같이 담긴 서류는 거대한 부동산과 각종 이권을 약속하는 것이었고, 그와 함께 백지 수표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이드가 적으면 적는 대로 내어 주겠다는 것.
초인 마법과 아티팩트에 대한 일리나스의 욕심은 과감했고, 노골적이었다.
무공 때와는 달랐다. 이드에게는 무공을 돈으로 사겠다는 이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일리나스 왕국 안에서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말이 나오자마자 발언자가 묵사발이 될 정도로 반박당했을 뿐이다.
어디 무공을 값을 매겨 사사로이 사고파느냐고. 기사의 검을 사고팔 수는 없다고.
가문의 힘에 감히 값을 매기는 것은 치욕이라고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온 가장 큰 이유는 무공이 귀족을 떠받치는 기사들의 자존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뛰어난 무공은 그 가문의 비전이기도 했다.
무공은 90년의 세월 속에서 그레센 귀족들의 삶으로 파고들어 전통이 된 것이다.
이드의 무공을 사 오자 말한 자의 말에, 무공을 익힌 귀족들은 당장 자신의 무공을 돈으로 사겠다는 것 같아 강한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초인 마법은 무공과 상황이 달랐다.
초인 마법으로 만든 아티팩트도 마찬가지. 여기에는 아무런 전통이 없었다. 각국의 지지도 없다.
아직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악한 흑마법이라 말해지며 토벌의 대상이 되었다.
토벌이 끝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전리품이 되어 자랑거리가 될 대상이었다.
즉, 이드에게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무공과 달리 한없이 가벼운, 그저 독특한 기능이 붙은 아티팩트.
이를 대가를 지불하면 충분히 살 수 있다 여긴 것이다.
마침 이그렌이라는 좋은 연줄이 있고, 사무엘 백작이 얼굴을 트지 않았는가.
그에 따라 일리나스는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이고, 지른 것이다.
사실 이드가 가볍게 책상에 던져서 그렇지. 봉투 안에는 가히 백작 영지 하나가 들었다고 봐야 했다.
“아티팩트 하나에 영지 하나라니. 일리나스에서 초인 마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명예 후작님께 거래를 청하는데, 어찌 소홀하겠습니까. 그리고 무공도 그렇고, 초인도 그렇고, 왕국에서 어쩌면 이 초인 마법도 새로운 흐름의 한 줄기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일리나스의 생각입니까?”
“하하. 그저 제 추측일 뿐입니다. 제가 아직 그런 세세한 사정을 전해 들을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에 대해 말하는 사무엘의 표정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수치심도 없다.
당장 그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커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왕국의 뜻을 이드에게 전달하는 것도 이전이었다면 그의 몫이 아니었을 테니까.
사무엘은 이드와 만나고 모든 것이 술술 풀려 나가는 것 같아 그저 기분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시온 자작을 가문에 주저앉히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렇게만 되었으면 시온 가문의 영광이 나의 것이 되었을 것을.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사무엘은 한동안 보지 못한 아들을 생각하면 내심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흐음.”
이드는 편지의 답을 기다리는 사무엘을 앞에 두고 조용히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린 뒤였다.
잠시 후 이드가 봉투를 사무엘 쪽으로 밀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편지는 받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아쉽군요. 하지만 이후라도 저희 일리나스를 생각해 주십시오.”
사무엘은 괜히 매달려 이드의 기분을 헤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바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무엇입니까?”
“마스 왕국 쪽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듯합니다.”
“음?”
이드는 예상치 못한 사무엘의 말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