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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69화


905화

“좀 더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사무엘은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어마어마한 대가를 약속하는 편지에도 시큰둥하던 이드가 드디어 관심을 보이자 사무엘이 반색을 했다.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습니다. 일리나스의 백작된 의무로 여러 나라의 귀족들과 교류하던 중에 마스의 자작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마스는 나라의 크기에 맞지 않게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호전적인 나라지요. 그 단적인 면을 잘 보여 준 것이 전날 탑주가 찾아왔을 때 록마틴 후작님이 있으신 자리에서 나섰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당사자도 아닌데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그래서요?”

“아, 크흠. 괜히 흥분하는 바람에. 그러니까 페롱 자작이 저와 말을 섞던 중에 실수를 했습니다. 마탑과 은밀히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식의. 물론 곧 부정하고, 말이 잘못 나왔다고 수습하긴 했지만, 그 전의 일과 이어 생각하면 어디 그냥 나온 말이겠습니까. 분명 저들은 분수에 맞지 않게 초인 마법을 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마치 대단한 비밀처럼 은밀히 소곤대는 사무엘의 말이었다.

그 이후는 그저 그걸 알아낸 스스로에 대한 자랑이 이어질 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사무엘을 돌려보낸 이드는 마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날 록마틴 후작을 앞에 두고 탑주에게 던진 질문도 그렇고.

이번에 사무엘 앞에서 했다는 실수도 그렇고. 정말 실수일까? 단순한 호기심일 뿐일까?

무엇보다 페롱 자작의 말실수는 도저히 순수한 실수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제국의 땅에서, 후작과 황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제국의 적을 빼돌리고자 하면서, 그걸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로 흘린다고?

“쓰~읍. 외교관 능구렁이들이 어디 동네 꼬마도 하지 않을 실수를 했다는 걸 믿으라고? 이거 너무 노골적이잖아.”

그래서 오히려 목적이 뭔지 헷갈렸다. 귀신도 모르게 해치워야 할 일을 대놓고 알리고 있다.

“일단 알려 둘까.”

이드는 짧은 고민 후에 황녀와 후작에게 고민을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이라면 정말 사무엘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의 대처까지 알아서 하겠지.

미완의 마탑과 연관이 있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제국와 마스 간의 정치적인 문제.

괜히 이드가 나서서 고심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결정을 내린 이드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황녀의 막사로 향했다.

마침 산허리에 걸려 있던 해가 마지막 붉은빛을 비추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드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뭉그적거렸다. 사실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공략 시간이 바뀌면서 하루에 두 조씩. 하루 공략 후 하루 휴식을 하는 것으로 공략 계획이 바뀐 때문도 있지만.

라미아와 일리나가 남겨 두고 떠난 온기가 그의 어깨를 잡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늘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일리나가 들어와 그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일어나요. 아무래도 밖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요? 라미아는요?”

보통 이런 재촉은 라미아의 몫이고 일리나는 포근하게 지켜보는 편이라, 의아하게 생각한 이드가 물었다.

“라미아는 마법사들의 연구실에 갔어요. 상자의 해석을 돕기 위해서 그쪽에서 아침부터 찾아왔더라구요.” “적극적이네요.”

“그리고 어젯밤에 공략에 나갔던 사조가 돌아왔는데. 피해가 적지 않았나 봐요.”

사조가 삼조와 교대로 진입했으니, 밤 10시쯤 복귀했을 것이다.

피해가 있었다면 복귀 때 상당히 시끄러웠겠지만, 이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미 그 시간 이드들은 잠든 후였고, 라미아가 걸어 둔 마법 덕분에 외부의 소음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밤. 급하게 깨우지 않은 것을 보면 심각한 정도는 아니리라.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죽은 한둘의 목숨이 가볍다는 것은 아니지만.


막사 밖으로 나온 이드는 희미한 혈향을 느꼈다.

전날 있었다는 부상자와 사망자의 피 냄새가 아직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분위기로 봐서는 이 조가 냈던 사상자보다는 피해가 적은 모양이네.”

만약 청색 기사단의 누군가가 들었다면 당장 모욕이라면서 결투를 신청했다가 말을 한 당사자가 이드임을 알고 기겁하리라.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기색인 이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황녀의 막사를 찾아 인사를 하는 일이었다.

다른 귀족들은 몰라도, 황녀의 호위가 최우선 임무인 아이넬 기사단의 단장인 이드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황녀 전하.”

“네. 명예 후작님. 오늘 아침은 많이 늦으셨네요.”

“침대 이불이 너무 무거워서 말입니다. 혹,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요. 전 명예 후작님보다 소검후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은걸요. 이참에 소검후를 황궁으로 모셔 갔으면 좋겠어요.”

일리나의 옆으로 딱 붙어 앉는 황녀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일리나에게서 검후의 느낌을 받은 것일지도 몰랐다.

“불가능한 바람을 가지고 있으시군요. 저희 가족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너무 자신만만하시네요. 소검후는 저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지 않으신가요?”

뻔뻔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이드의 태도에 불끈 반항심이 솟은 황녀가 일리나의 손을 잡고는 눈을 반짝였다. 어떤 영화의 장화 신은 고양이의 얼굴과 비슷한 분위기.

그러나 반려를 결정한 엘프를 흔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황녀님. 죄송하지만, 전 저런 장난도 사랑한답니다.”

“우우~”

진실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뒷덜미가 간질간질해지는 대답에 황녀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고위 악마가 직접 나서도 엘프에게 반려를 배신하도록 유혹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 황녀의 최후랄까?


“밤사이 사조에 피해가 있었다고 하던데, 아십니까?”

“저는 밤에 있던 소란을 직접 보았지요. 다행히 사망자는 적고, 부상자가 많아 밤사이 마법사들과 신관들이 고생한 덕분에 수습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황녀의 막사에는 방음 마법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호위 기사가 알렸거나.

“다행이군요. 그럼 7층은?”

“공략은 절반 정도 진행된 것 같다고 해요. 지금은 일 조가 진입해 있어요.”

쉴라 단장과 케마란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나와 볼 걸 그랬다.

“쉴라 단장이라면 믿을 만하지요.”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 조의 보고에 따르면 7층이 만만하지가 않았어요.”

그 말과 함께 황녀는 아침에 호위 기사로부터 전해 받은 사 조의 보고 내용에 대해 전달했다.

6층이 물질 투과라는 한 가지 초인기에 올인한 기습이라면, 7층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고 한다.

걸음걸음 발견되는 함정마다 모두 종류가 달랐고, 공격해 오는 초인들의 초인기도 모두 달랐다고 한다.

때문에 적에 대해서 도저히 파악해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초인기의 특성에 따라 어떤 공격은 상대하기 쉽고, 어떤 공격은 상대하기 어려웠다고. 거기에 초인기에 따라 패턴도 매번 바뀌었기 때문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단다.

“토벌대를 공격한 초인들은?”

“저희처럼 정리할 여유는 없었지만, 시신을 몇 구 확보해 왔다고 해요. 당연히 항복하는 자들은 없었고, 모두…….”

“노예였군요?”

“네.”

“6층에 있던 노예의 수만 해도 만만치 않았는데, 마탑에서는 노예를 애용하는군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체 실험을 통해 초인기를 부여하고, 마음대로 부려 먹기에 노예만큼 편한 상대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평민을 잡아다 쓰면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마법으로 제약한다고 해도 도망갈 구석을 찾을 것이 당연하니까. 그에 비해 노예는 다르다.

노예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노예로서 교육받기 때문이다. 감히 도망이나, 탈출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노예인 것.

그러니 마탑에서는 노예를 사와 원하는 대로 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도망갈 길이 막힌 순간 죽을 각오로 달려들던 노예들이 과연 오로지 교육 때문에 그럴까?

‘아마 노예들도 벌레처럼 힘없이 죽어 가는 신세보다는 마탑의 초인이 되는 쪽을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이드는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마탑이라고 신세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없는 노예보다, 힘 있는 노예가 더 좋은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노예들에게 자신만의 초인기가 생기는 것이다.

거기에 토벌대를 방문한 탑주의 말을 떠올려 보면 적당한 미끼도 있었으리라. 가령 미완의 마탑이 어느 왕국의 국가 마탑이 된다면 노예들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마탑의 초인이 될 것이라는 정도의 달콤한 미끼 말이다.

“그와 관련해서 각국에 노예 거래 정황을 파악해 주기를 요청해 둔 상태에요. 그걸로 마탑을 잡지는 못해도, 마탑과 연관된 자들은 그냥 둘 수는 없지요.”

역시 제국.

허투루 하는 일이 없다. 마탑을 대신해 누군가 노예를 대신 구해 주었다면, 그들도 분명 잡아야 할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쉴라 단장이 들어갔으니. 탑주라는 인간이 꽤 놀라고 있겠군요. 자신이 내놓은 황금 둥지를 벌써 던전을 공격하는 데 쓰고 있는 걸 알면 말입니다.”

이드가 던전이 있는 방향을 보고 악동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드의 생각대로.

탑주는 가장 선두에서 마탑의 초인들을 파괴하고 있는 쉴라의 모습에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다. 공격이 아니고, 파괴다.

이드와 일리나를 통해 난화십이식을 익힌 쉴라의 무력은 짧은 시간에 두 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거기에 때마침 황금 둥지가 주어지며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파츠 아머 이상으로 편하지만, 단단히 그녀를 지키는 갑주에, 적을 불살라 버릴 수 있는 불길.

거기에 더해 진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까지 겨우 마탑에서 부여한 초인기로 인공 초인이 된 노예들이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앞선 사조와 달리 쉴라의 일 조는 7층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조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거침없는 전진이랄까?

“랜달.”

웃음을 거둔 탑주가 그 속을 헤아리기 힘든 눈으로 영상 속의 쉴라를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예, 마스터.”

“비올라라고 했던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에 붙은 배반자.”

“그렇습니다만?”

“혹 저기 있는 황금 둥지는 놈의 솜씨인가?”

갑자기 이름을 불린 랜달은 탑주의 말에 어깨를 움츠렸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자신의 실수가 배가된다.

“비올라의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마스터. 그는 어차피 생명의 관 소속입니다. 한계가 분명한 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관에 황금 둥지에

관한 자료는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어떻게 황금 둥지의 사용법을 알았지?

탑주의 고민은, 황금 둥지를 보고 받은 충격은.

이드의 예상 이상으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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