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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7화


484화

일을 마친 일행들은 수비대장이 추천한 여관을 찾아 방을 잡았다.

에단의 대장과는 길드에서 헤어졌다. 그는 용병거리에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일행도 거기에 숙소를 잡을까 했지만 결국 추천해 준 여관으로 발을 돌렸다.

그곳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지저분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것대로의 맛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깨끗한 여관을 사용하고 싶었다. 에단은 대장과 헤어지기 전 그의 직장을 소드 팰러스로 옮기도록 설득했지만 그는 싫다는 한마디 말로 간단히 에단의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에단이 보기에 대장의 성격상 음험한 트와이스보다는 소드 팰러스가 맞을 것 같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것이 성격만 보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 더 강권하지는 못했다.

대신 그를 통해서 현재 하이탈에 트와이스뿐만 아니라 시온에 진입했다가 히드라와 몬스터에 쫓겨 도망친 사람들도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트와이스와 시간만 다를 뿐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이들이다 보니 행동 패턴이 똑같아졌던 것이다.

아무튼 모르고 있던 정보를 알려준 데에 감사를 표하고 숙소를 찾았다.

케이틀이라는 이름의 여관 주인은 수비대장의 소개로 왔다는 에단의 말에 가장 좋은 방이라면서 방을 내주었고, 이드는 부부 침실 하나와 일인실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서 방으로 올라가려던 이드는 주인에게서 과일 한 상자를 건네받았다. 이드의 이름으로 배달 온 과일이었다. 좀 전 용병 길드를 찾으며 시장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이 여관, 확실히 수비대장이 추천할 만해. 방도 깨끗하고 욕실도 딸렸고 말이야.”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내려온 이드가 자리에 앉아 만족스럽게 말했다.

[으이구, 이드. 2실링이나 하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한 거라구요.]

2실링이면 용병의 거리에 있는 일반 여관 숙박비의 네 배나 된다.

“그런데 이드, 저희 일정은 어떻게 하나요?”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씻어 기분이 좋은 일리나가 식탁 위에 차려진 요리를 먹으며 말했다.

“일정이 어때서요?”

“시온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이드를 찾기 위해 움직이던 사람들이라 신경이 쓰이는 일리나였다. 하지만 이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 내일 하이탈 관광이나 즐겨 보죠. 그들이 날 알아보고 보고를 올리면 우리가 하이탈로 들어온 목표를 120% 달성하는 거니까, 피할 일은

“아니죠.”

“그 말도 맞지만, 전 어쩐지 당신을 노리고 온 사람들에게 모습을 내보인다는 사실이 꺼림칙해요. 하아.”

이런 일은 그들이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 이전의 문제였다. 일리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쪽 볼을 손으로 받치고 고개를 살짝 꺾어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사르르 쏟아지며 보석처럼 반짝였다. 자신에 대해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이드의 입가로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이드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보는 눈은 비슷한지 식당의 여기저기서 앓는 듯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무 노골적인 주변의 반응에 이드는 순간 발끈하고 말았다.

‘이 인간들이 감히 누굴 보고!’

번뜩!

순간, 퍼런 살기로 물든 이드의 눈이 식당 안을 휘저었다. 타인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실례인데, 이드의 살기 어린 눈길까지 받게 되자 식당에 있던 80%에 이르는 남자들의 고개가 식탁 위로 처박혔다.

그리고 무방비로 드러난 그들의 머리 위로 그들의 파트너인 여성들의 차가운 눈길이 쏟아져 내렸다.

이드는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고는 일리나와 라미아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 일리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 주지 않겠다는 그의 행동에 일리나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팔짱을 끼고는 그들의 방으로 사라졌다.

순간 식당 안에서는 아쉬움과 안도, 부끄러움 등의 미묘한 감정을 담은 숨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숨의 크기만큼 그들 파트너의 눈길의 온도도 내려갔다.

에단은 그 모습을 같은 남자로서 안타깝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며칠간 그들은 자신들의 파트너에게 상당한 정신적 데미지를 받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을 감상한 대가는 그렇게 컸다.


이튿날 이드는 전날 저녁 때 이야기한 대로 일리나와 라미아를 데리고 하이탈 관광에 나섰다. 아름다운 한 쌍의 모습에 에단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서 용병거리로 향했다.

장난처럼 이야기한 이드였지만, 하이탈은 정말 마음먹고 관광할 만한 볼거리가 상당히 많은 도시였다. 일반적인 내륙의 도시가 아니라 왕국과 제국의 문물을 한데서 볼 수 있는, 일리나스에서 유일한 곳이었다. 또한 양국의 문화가 뒤섞인 색다른 재미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여관 앞에 있는 광장으로 나온 이드와 두 애인은 그런 볼거리들을 마음껏 즐겼다. 주르륵 늘어선 난전을 따라 움직이며, 재미있고 특이한 물건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개중에서 눈에 띄는 색실로 만든 팔찌를 일리나의 팔목에 걸어 주기도 했고,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작은 방울이 달린 리본을 사서 라미아의 목에 장식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하이탈의 주민과 여행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일반인들은 평생 엘프를 볼 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노점상에서 틈틈이 군것질을 하며 배를 채운 덕분에 따로 점심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대신에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활기찬 거리를 바라보며 잠시 쉬기로 했다.

“참, 라미아 너 어제 텔레포트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본다던 건 어떻게 됐어?”

빈 잔을 들고 안에 남은 찻물을 가지고 놀던 이드가 문득 생각난 일에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이드도 텔레포트가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여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텔레포트는 이 넓은 대륙에서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중요 이동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미묘해요. 여러 방법을 강구해 봤지만, 용병 길드에서 구입한 정보 이상의 것은 알 수가 없었어요.]

당시 대장에게서 텔레포트 실행 불가 소식을 전해 듣고 곧바로 그에 대한 정보를 용병 길드를 통해서 구매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준으로 텔레포트 마법에 대해서 밤새 궁리한 라미아였다.

[보고서대로 좌표에 이상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공간 좌표가 필요한 마법은 실행되지 않고 공간좌표가 필요치 않은 마법은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왜 이런지를 모르겠어요. 대신에 이런 현상과 꼭 닮아 있는 상황은 기억났어요.]

“뭔데?”

[차원 진동이요. 저희가 마을에 있을 때 차원 진동이 있었잖아요. 보고서에 기록된 텔레포트가 정지된 날과 같은 날이었거든요.]

“그럼, 그 차원 진동이 시온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란 말이네요.”

[맞아요, 일리나, 전 대륙에 걸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아요.]

“이거 어쩐지 느낌이 싸한걸?”

전 대륙적인 스케일의 사건에 이드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이드와 푸른 나무 마을은 악마의 부활이라는 직접적인 피해도 입은 바 있었다. 어쩌면 혼돈의 파편급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이드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바라며 천천히 말했다.

“그러면 우리 앞으로 장거리 이동할 때 어떡하지?”

보통 일반 상인이나 귀족들도 말과 마차를 타거나 배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에 반해서 이드와 라미아는 정말 열심히 텔레포트를 사용했더랬다. 당장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없으면 가장 불편해 할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런 이드의 모습에 라미아와 일리나가 시선을 마주하더니 이드를 향해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드,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이제, 장거리 이동은 이드가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야, 그건 아니지!”

어쩐지 고가의 물건을 강매당한 사기의 현장에 서 있는 느낌에 이드가 발끈해서는 외쳤다.


그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과연 자신들의 모습을 각국의 특수 기사단이 확인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숙소에는 에단 말고도 이드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성에서 나온 병사였다. 그는 벤에 대한 현상금이 준비되었다면서 성으로 받으러 오라는 소식을 전하고 돌아갔다.

“그럼 내일 현상금을 받고 바로 출발하자. 텔레포트가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에단이 목적지까지 타고 갈 만한 적당한 교통편을 한번 알아보고.” 

“맡겨 주십시오, 마스터. 확실히 준비해 놓겠습니다.”

“…..괜히 오버하지는 말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에단의 말이 불안해 재차 당부하고 마는 이드의 행동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행은 내일부터 시작될 장거리 여행에 대비해서 일찍 쉬기 위해서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날 늦은 밤.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 사실이 무색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벌떡.

따뜻한 침대 안에서 잘 자고 있던 이드는 어느 순간 기감을 격렬하게 흔드는 마나의 움직임에 눈도 뜨기 전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같이 누워 있던 일리나가 일어나고 라미아가 다가왔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묻기 위해서 그녀들이 입을 여는 순간.

“이드, 왜…….”

구구구구쾅! 쿠궁! 쿵!

분명히 멀리서 들려온 것 같은데도 피부를 때리는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결코 작은 무언가가 부서지는 수준의 소리가 아니었다.

세 사람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광장 너머로 보이는 성주성의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검은 먼지를 뭉클뭉클 뿜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의 폭음은 영주성이 폭발하며 생겨난 소음인 것 같았다.

곧 여관과 주변의 모든 건물에서 불이 켜지고, 자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에단이 이드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아. 괜히 나올 필요 없어. 그냥 방에서 쉬어. 아무래도 내일 출발하기는 틀린 것 같으니까.”

이드는 에단의 목소리에 대답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지금 당장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가벼운 잠옷 차림의 일리나를 보여 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작게 수긍하는 라미아의 말에 일리나가 답했다.

“아마, 당장 지금부터 도시의 출입문이 잠기고 출입이 통제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겠죠. 저 폭발이 내부의 사고냐, 아니면 외부의 공격이냐에 따라서 내일 도시의 분위기가 결정되겠죠.”

세 사람은 잠시 더 성을 바라보다 성에 불이 밝혀지는 것을 보고는 창문을 닫고 자리에 누웠다.

[아, 그런데 내일 현상금을 받으러 가면 줄까요?]

“…..그러게?”

과연 그 혼란한 와중에 돈을 챙겨 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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