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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70화


906화

사조는 삼조와 함께 배정받은 시간에 맛보기 층을 온전히 클리어한 유이한 조였다.

때문에 제법 어깨에 힘이 들어갔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절반의 성과에 사상자도 적지 않았다. 사조의 뻣뻣하던 목이 힘없이 늘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사조의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6층부터는 5층까지의 맛보기 층과 확실히 다르다는 인식의 전환이 토벌대 전체에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에 대한 경고는 있었지만, 크게 피부로 느끼지 못하던 것을. 기어이 피를 보고서야 확실히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까지가 너무 싱거웠지. 이제야 던전 탐험하는 맛 나네.”

“마법사, 초인, 몬스터, 다 나오라고 해.”

토벌대는 어렵다는 말에 오히려 열의에 타올랐다. 물론, 그중에는 그런 동료들을 보고 근육 뇌라고 혀를 내두르는 냉철한 기사들도 적지는 않았다.


“그래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좋네.”

이드는 기사들의 열의가 마음에 들었다. 크든 작든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 동료의 죽음에 분위기가 어두워질까 걱정했지만, 제국 기사들의 멘탈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고, 마초스러웠다.

심지어 은색 기사단을 중심으로 한 여기사들도 마찬가지.

“일조가 큰 피해 없이 복귀해 줘서 더 그렇죠. 그런데 전 좀 더 진지했으면 좋겠어요.”

“저 정도면 충분히 진지하잖아.”

“저게요?”

이드는 바위를 탁자 삼아 팔씨름이 한창인 기사들을 가리키는 라미아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넘기고는 막사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명예 후작님.”

막사의 주인은 황녀였다. 그녀는 심플한 드레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드는 그녀가 권하는 대로 맞은편에 앉았다.

“찾으셨다고 듣고 왔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어제 전해 주셨던 마스에 대한 일입니다.”

“벌써 알아보신 겁니까?”

이드는 살짝 놀라며 물었다. 황녀와 후작이라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을 꺼낸 지 만 하루 만에 자신을 부를 줄은 몰랐다.

“네. 몇 가지 특이 사항이 있어 준 덕분에 크게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이드의 생각일 뿐인 것 같다. 황녀는 여상스러운 일이란 듯 말했다.

이드가 복잡하다 생각한 일은 정치와 생활이 하나인 황족과 고위 귀족에게 결코 복잡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짐작하신 대로 페롱 자작의 단순한 실수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사무엘 백작이 들었다는 말은.”

“고의죠. 사무엘 백작을 제외하고도, 말실수, 취중 농담, 은밀한 정보 교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한 말을 여러 왕국에 흘리고 있는 정황이 있어요.”

“그럼 그 이유도?”

“짐작만 있어요. 저희 측 분석으로는 아무래도 물을 끓이기 전 불을 피우는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미리 침발라 두겠다는 거군요. 미완의 마탑은 자신들이 가져갔다고. 이후에 딴말하지 말라고 말이죠.”

“침 발라 둔다.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크게 틀리지 않아요. 미리 언질을 주고, 미완의 마탑을 가지고 싶다면 차후가 아닌 지금 나서라는 말과 같죠.”

“대담하네요. 아나크렌 안에서, 제국 눈치는 보지 않는 답니까?”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지만, 제국 땅에서 제국의 뒤통수를 때리려 하다니. 보통 대담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자칫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문제였다.

설마 절대 자신들의 말이 새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닐 테고.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일단 손을 뻗고 보는 나라. 힘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나라. 마스는 원래 그런 나라죠.”

그런 밑바탕에는 마스의 척박한 환경도 한몫하고 있다. 메마르고, 수확량도 좋지 않다 보니, 굳이 전쟁을 치러 가며 마스를 정복하려 하는 나라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가 생겨 주판을 튕겨 보는 족족 커다란 적자가 예상되니. 어지간한 문제는 그냥 덮어놓고 넘기게 되었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스의 간을 키운 것이리라.

함께 자리하고 있던 스폴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이드는 특이한 나라라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그런 나라는 도움을 바라며 외국의 눈치를 살피는 약소국이 되기 마련인데, 정반대로 국제적 양아치의 길을 가다니.

‘머리가 좋은 건지, 나라 자체가 전투 민족인 건지.’

괴롭힘당하는 약소국보다 길들지 않은 양아치가 낫긴 하다. 그게 정말 노린 거라면 대단하다 할밖에.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양아치가 제국의 땅에서 제국의 적을 빼돌리려 하고 있으니까.

“그럼 이번 일도 원래 그런 나라라고 넘기는 겁니까?”

“설마요. 이 문제는 단순히 국경선의 노략질 정도가 아닌걸요. 제국의 자존심과 체면이 달린 일이에요. 결코 그냥 넘길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문제도 있어요. 아직 소문으로 퍼지는 일일 뿐이란 거죠.”

“실행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벌할 수는 없다는 거로군요.”

개인 간의 사사로운 관계에도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죄를 물을 수 없다.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에는 말이다. 개인의 일이 이러니 국가 간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그저 소문만 있을 뿐이다.

“소문에 실체가 생길 때를 잡아야겠군요. 그런데 이 문제. 성공한다고 해도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란 걸 알 텐데. 마스에서는 어쩔 생각이었을까요?”

정말 멍청한 전투 민족이 모인 나라도 아닐 테고.

이 문제를 제국이 지금까지처럼 쉽게 넘기지 않을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드의 의문과 달리 황녀의 답은 쉬웠다.

“기다리는 거죠. 지금까지처럼. 싸우는 것보다 제국의 손해가 커지는 때를 미완의 마탑을 통해 마스가 강해질 때를.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면 미완의 마탑에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고, 자국 마법사들이 초인 마법을 연구한 것처럼 꺼내는 거죠.”

과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흐름이다.

이드는 멍청한 양아치 같다 말했던 마스의 인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호전적이고 교활하다.

양아치보다는 자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덕분에 지휘부에서는 지금 머리가 터지게 감시망을 짜고 있습니다.”

내부에 배신자 후보생이 있으니까요. 라고 한탄하는 스폴이다.

아무래도 그 감시망은 소수 정예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그 대상이 주로 오색 기사단이나, 프랑 기사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스폴도 그에 포함되기 때문이리라.

이드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다 생각난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스에서는 마탑과 연락할 방법은 찾아 놓고 저러는 거랍니까? 저렇게 밑밥을 깔아도 어차피 마탑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잖습니까.”

탑주가 딜을 걸기는 했지만, 연락 방법을 따로 제시한 적은 없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탑주가 다시 방문할 생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미 당당히 두 발로 걸어와 멀쩡히 돌아간 전적이 있으니 보이는 자신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더구나 황녀의 시나리오는 탑주의 조건과 여러 가지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은밀하면서도 치열한 조건 조정이 필수다.

“휴~ 저희들도 그게 고민이랍니다.”

그에 포옥 하고 지친 한숨을 내쉬는 황녀다. 이드가 떠올린 것과 같은 의문으로 꽤나 고심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의문은 생각지 않게 풀렸다.

옛말에 답은 항상 가까이 있다 했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라미아 옆에 붙어 그녀를 수행하는 마법사인 척 토벌대 마법사들의 연구를 돕던 비올라가 돌아와 이드의 이야기를 듣더니 말을 꺼낸 것이다. 

“어쩌면 마스와 마탑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무슨 연결 고리? 네가 마탑이 다른 왕국에서 지원받는 건 없다며?”

이드가 저녁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뿐 아니었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비올라의 정체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쥐고 있는 마탑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중요한 것들이었다. 뭐, 이따금 쓸모없는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비올라는 그중 몇 가지는 끝까지 풀지 않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목숨 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데 말을 꺼내는 모양새가 그중 하나를 풀 것 같지 않은가. 그것도 마스 왕국과 마탑의 연결 고리라는 엄청난 건을.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탑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특히 마법도 아니고, 그런 행정적인 부분은 크게 관심도 없고.”

“아~ 됐고, 그래서 연결 고리는 어디서 나온 말인데?”

“미완의 마탑. 마지막 영혼의 관이 어딨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혼의 관. 정신의 관에 대한 토벌이 끝나면 찾아야 할 곳이지만, 비올라가 끝까지 함구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 그 말을 한다는 건. 설마, 마스에 있는 거냐?”

“일단 제 분석으로는 그렇습니다. 사실 영혼의 관에 대해서 확답을 드리지 못한 것도, 정확한 위치 자료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제 분석으로는 100% 마스지만, 증거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마스의 움직임을 보면 마탑과 확실한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고. 그럴 만한 연결 고리라면.”

“영혼의 관이라는 거지?”

끄덕.

“그리고 생명의 관이나 정신의 관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만한 시설을 꾸미자면 돈이 무지하게 듭니다. 귀족의 은밀한 지원 없이는 힘들죠. 영혼의 관도 마찬가질 겁니다. 특히 영혼의 관은 특성상 세관의 정수가 모이는 곳. 정신의 관보다 대단하면 대단하지 못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곳이 그 작은 나라에서 소문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정말 커다란 권력자가 뒤를 봐주지 않으면 불가능하겠죠.”

“누굴 것 같아요?”

일리나의 말에 이드가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일리나가 들고 있던 스푼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마스 국왕이요. 그렇지 않고서야 마스의 모든 귀족들이 저렇게 행동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무리 망나니 마스라지만, 설마 왕국 차원에서 저런 일을 지원한다는 것은…….”

스폴이 힘껏 미간을 모은 상태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녀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미완의 마탑에 대한 왕국 차원의 지원은 공개될 경우, 국제적인 지탄과 함께 왕국과 왕실의 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미완의 마탑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을까?

지금도 아니고, 마탑이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할 시점에?

하지만 그런 스폴과 달리 이드는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오히려 이제야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뭐가요?”

“지금 마스 외교관들이 하고 있는 짓 말이야. 은근히 소문을 퍼트리고 분위기를 잡는 것. 그런데 마스에서 마탑과 어떻게 연락을 할지, 어떻게 빼돌릴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지. 그런데 정말 마스에 영혼의 관이 있다면, 애초에 빼돌릴 이유가 없던 거지. 자국에 이미 미완의 마탑이 있으니까.”

그렇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감시를 하고 눈을 부릅떠도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제국의 헛수고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는 일이니까.

“그럼 굳이 그런 소문을 낼 필요도 없지 않나요? 조용히 처리하・・・・・・”

이드는 그 반문에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다.

미완의 마탑과 초인 마법이 아예 발각되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미 세상의 적으로 알려진 상황.

그렇기 때문에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마스가 이 기회를 잡았다고.

치명적인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뻔뻔한 가면을 쓰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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