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79화
915화
“기사들 중에 수상한 자라도 있나요?”
한곳에 머무르는 이드의 시선을 쫓던 쉴라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동시에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기사가, 그것도 그냥 기사도 아니고 자신과 같은 오색 기사단의 기사가 아군의 등을 노린다? 암살자도 아니고? 냉철한 이성과 달리 내심 아니기를 바랐는데, 이드의 반응을 보니 그런 기대가 부질없어진 것 같아서다.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이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저자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이드가 청색 기사들 중 하나를 콕 찍었다.
딱히 다른 기사들과 다른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모습에 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행동이 수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행동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 인간이 저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거니까요. 존 워스, 철벽의 검왕이 토벌에 참가했다는 말은 없었지 않습니까. 그것도 변장한 채로.”
“무슨!”
순간 쉴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곧 파르르 전신을 떨더니 이드가 가리킨 존 워스와 그를 번갈아 본 후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정말 철벽의 검왕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언제?”
그래도 믿기지 않는지 재차 확인하는 쉴라에게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모이엔의 막사에도 다녀갔었는데. 말하지 않았던가요?”
“지금 처음 듣습니다!”
이런 실수. 깜빡했던 모양이다.
“큼, 언제 다시 오겠다 싶었는데, 저런 모습으로 올 줄은 몰랐네요.”
말을 하는 이드도 놀라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 명성 높은 검왕이 젊은 기사로 변장까지 하면서 암살자처럼 숨어들 줄이야. 거기에 목적도 암살자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짐작되었으니.
쉴라도 같은 생각인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검후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이젠 아군의 등에 칼을 꽂는 암살자 짓이라니. 분노를 넘어 실망과 허탈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홀랑 타 폭삭 주저앉은 집을 본 집주인의 마음이 이럴까.
“어떻게 철벽의 검왕이라고 단정하시죠? 물론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 직접 보는 게 빠르겠죠?”
이드는 그 말과 함께 쉴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내공을 유도했다.
쏴아아~ 쏴아아~
청명한 산들바람처럼 스며든 이드의 내공에 놀란 마음을 따라 경동하던 그녀의 내공이 구름 걷힌 하늘처럼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제 내공에 대한 통제권을 순식간에 탈취당했어요.”
목소리 가득 놀란 마음을 담아 쉴라가 돌아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존 워스에 대한 분노도 잠시 잊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에 발출된 공력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몸 안에 있는 내공을 조종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 막 내공을 익힌 수련생의 것도 아닌, 쉴라와 같은 소드 마스터 이상의 실력자의 내력을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드는 그것을 숨 쉬는 것처럼 쉽게 해 버렸다. 아무리 쉴라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는 분명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과연 마인드 마스터!’라며 속으로 놀랄 때,
이드는 자신의 통제 아래에 놓은 내력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유도했다. 그 최종 목적지는 쉴라의 중단전과 인당.
“혈에 내공이 충만해지면 두 혈을 열어 기감을 넓게 퍼트리고, 동시에 머리 꼭대기 백회로 감강을 뿜어 저 앞의 기사들에 뿌린다는 의념으로 잘 따라 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강하게!”
그렇게 더, 더, 더를 강조하던 어느 순간이다.
“색이 선명해졌어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는 쉴라의 반응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법은 태극만상공에서 신안을 여는 방법을 일부 응용한 것으로, 짧은 순간이지만 안개가 걷힌 듯 시야가 넓어지고 밝아졌을 테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나저나 유도했다고 해도, 금방 따라 하다니. 재능만 보면 검후보다 뛰어난 것 같은데.’
보통은 내공의 흐름을 유도해도 의념을 유도하지 못하고 몇 번을 실패하는 게 정상이다. 아무튼 이제 볼 준비는 끝났다.
“그 상태로 기사들을 봐요. 특히 존 워스를 모든 잡념은 털어 내고, 투명한 정신으로 봐야 합니다.”
“……아!”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쉴라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이드의 말에 따라 잡념이 사라지는 순간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선명한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뿌연 회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이란 말할 것도 없이 존 워스, 동시에 그만 회색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기운을 너무 완벽하게 감췄어요. 그것이 너무 과해서 본래 생명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기운도 흐르지 않아 그만 회색인 거에요.”
“넘침이 모자람만 못한 경우죠.”
이드는 말과 함께 쉴라의 내공에 대한 통제를 풀었다.
“자, 잠깐만 더 부탁드려요.”
“이 이상은 혈에 무리가 갑니다.”
아쉬워하는 쉴라였지만 이드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정말 그녀의 혈에 슬슬 무리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쉴라는 흐려지는 시야를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 애를 썼지만 곧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내력을 풀었다.
다만 방법은 알았으니, 나중에 연구해서 시도해 보겠다 다짐할 뿐.
이드도 거기까지 못 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신안을 얻지는 못해도, 분명 그 과정에서 그녀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테니까.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존 워스를 특정한 것도 이런 특별한 방법인가요?”
수상한 것은 확실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존 워스라고 단정할 단서는 없다.
“아뇨. 그건 단순한 기감이에요. 수상한 점을 처음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발견한 뒤 살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다만 그 기감의 능력과 범위가 쉴라와 등급 자체가 다를 뿐.
쉴라도 그 부분까지 느끼게 해 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다음의 일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후작님께 밝히실 건가요?”
“글쎄요.”
토벌대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록마틴 후작이다. 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토벌대에 끼어들 수 없다.
굳이 존 워스라고 밝힐 필요도 없이 수상한 자를 발견했다고 알리기만 해도, 병 주고 약준 모이엔 단장의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이 아주 재미있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이번 기회가 너무 좋았다.
‘저번에는 기회를 놓쳤지만, 이번엔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침, 변장까지 한 상태로 던전에 스스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또 실종 사실을 알아도 그에 대해 따질 수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무려 철벽의 검왕이 청색 기사단의 기사인 척 변장하고 오 조를 따라 던전에 들어갔는데 실종되었다고?
‘어림없지. 오히려 그런 말이 나오지 못하게 막지는 못할망정 대놓고 찾아다닐 놈은 아무도 없지. 의심을 해도 초인파 또는 마탑을 의심할 것이고.’
씨익.
이드의 입가에 서서히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속에 든 생각이 흉흉해서 일까.
미소를 본 쉴라가 움찔 한 발 물러선다.
“쉴라 경.”
“네, 네?”
“뭘 그렇게 놀랍니까? 아무래도 지금 존 워스에 대해 알리는 것보다는 무엇이 목적인지 살피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라미아는 던전 공략의 피로로 오늘 하루 모든 손님을 거절하고 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설마 잠입해서 미행하실 건가요?”
“목적을 알려면 그 방법뿐이니까요. 적색 기사단으로 존 워스를 살피는 건 불가능할 테니.”
적색 기사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삼검왕의 실력 또한 가짜는 아니다. 거기에 나머지 청색 기사들이 눈을 가리면, 적색 기사단은 눈뜬장님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던전에서 미행은 쉽지 않을 텐데요.”
단순히 함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추적당하는 인물이 정도 이상으로 주변을 경계할 것이기에 발각될 위험이 높다.
거기에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마탑의 마법사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거야 저 혼자 갈 때 이야기죠.”
이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어깨 너머로 하얀 팔이 튀어나와 이드의 목을 감았다.
“짜짠! 이드 옆에 제가 있으면 문제없죠.”
그 뒤를 따라 나타난 라미아의 가면. 마치 스토커 배후령 같다.
미행을 결심함과 동시에 이드가 부른 결과 공간을 넘어 이동해 온 것이다.
“휴우~ 두 분이 함께라면 문제없겠지요.”
라미아를 알고 있음에도 살짝 놀라 버린 쉴라가 자신의 담력에 실망하며 한숨을 쉰다.
“그럼 뒷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일리나 님과 황녀 전하께도 제가 따로 말씀드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해요.”
그리고 타이밍 좋게 들려오는 발터의 목소리.
“우리 앞을 막아설 자는 없다! 오조 출발하라!”
“무적 오조! 출발!”
복창과 함께 천천히 던전으로 진입을 시작하는 오 조.
하지만 쉴라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들의 뒤를 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이드와 라미아가 따라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던전에 진입한 오 조는 거침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 오조의 진형은 조금 기형적이었다.
질서 정연히 전진하는 수백 초인들의 뒤로 누가 봐도 일행이 아닌 듯, 뚝 떨어진 마법사들이 있고, 그 바로 뒤를 적색 기사단과 청색 기사단이 순서대로 따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하지 않는 동행이었다고 해도, 저러면 동행하는 의미가 있나?』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이드로서는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기 싸움처럼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어 조금 한심해 보였다.
『없지는 않겠죠. 그리고 저런 형태도 꼭 나쁜 건 아니고.
『편들어 주니?』
편들 사람이나 있나요? 그보다 오랜만에 이드 어깨에 앉으니 이것도 좋네요.」
조금 나른한 목소리로 이드의 볼에 부리를 비비는 라미아.
던전에 진입과 동시에 골렘의 몸을 아공간에 던져 버리고, 새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아무래도 은밀히 움직이자면, 두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렇게 싫어라 하더니..
뭐,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거 아니겠어요.」
그에 내심 새일 때 그런 마음 좀 먹어 주지, 하고 투덜대는 이드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한 마디도 꺼내지 않게 조심했다.
그러는 사이 오 조가 10층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땅속에 있으면서도 신선한 공기가 가득했던 다른 층과 달리, 진한 흙냄새가 풍기는 10층.
그 입구를 막아선 거대한 흙더미 앞에서 발터는 오히려 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우선 안에 든 샌드웜부터 처리한다.”
푹!
말과 함께 입구로 다가간 발터가 흙 속 깊이 팔뚝을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