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85화
921화
그저 기사 몇을 지원해 주는 수준이 아니다.
적색 기사단이 오 조에 합류했다. 이 소식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심상찮은 보충 전력에 적색 기사단까지. 대단하다. 대단해.”
“발터 단장님이 직접 가셔서 부탁했다고 하더군. 자존심보다 아군을 먼저 생각하신 거지.”
“이렇게 되면 오 조가 토벌대 최강 전력이겠는데?”
“응~ 아냐. 마스터가 계시는 한 삼 조가 최강이야!”
곳곳에서 언급되는 오조 최강설에 케마란이 삐죽거렸다. 이드가 곧 전설임을 아는 그녀에게 주변의 소리는 전부 헛소리일 뿐이었다. “정말 바보들 아냐? 마스터의 정체를 몰라도 정도가 있지. 블러디 혼을 이겼다고. 검왕을 이긴 실력자가 있는데 오 조가 최강이란 게 말이 돼? 그뿐이야? 사망자 최저, 함정 발견 해체율 최고, 삼조에 이어 공략 성공률 2위의 우리 일 조도 있다고!”
“바보야. 목소리가 높아!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은색 기사단의 세트 메뉴. 단짝 네리베르가 케마란의 머리를 내리누른다.
“으갹~ 그만해! 머리 망가진다고. 그리고 들으면 어때서?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급히 망가진 머리를 매만지는 케마란의 모습에 네리베르가 어린아이와 외출한 엄마처럼 한숨을 쉰다. 전투에 대해선 야생 동물처럼 눈치가 빠르면서 정치적인 감각은 왜 이렇게 없는지.
아니, 어쩌면 용병들 사이엔 이런 정치적인 감각이 필요 없을지 모르겠다.
오로지 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용병 세계에 정치 감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앞으로 용병을 할 것도 아니고, 기사가 된 거라면 정치 감각을 기르란 거죠.”
아무리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 해도 기사들이란 자신이, 자신이 속한 단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그렇게 훈련받는다. 그런 마음가짐이 단체에 대한 충성심과 신념을 기르기 때문이다. 일종의 정신 교육으로, 나쁘게 말하면 세뇌에 가깝다.
괜히 기사들 간에 자존심 싸움이 많은 것이 아니다.
물론 강자를 존경할 줄 알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 그런 마음으로 오색 기사단이 최고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언젠가 우리 기사단도 오색 기사단처럼, 그리고 그 이상으로 위대해지리라, 그렇게 꿈꾸는 것이 기사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선배 기사도 아니고, 애송이 기사가 누가 최강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 과연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
“어렵다. 어려워.”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네리베르다. 케마란에 대한 쉴라의 기대를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모르는 케마란은 어느새 한눈을 팔고 있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저기 봐. 이 조가 나왔어. 과연 보충 전력과 적색 기사단의 합류 소식을 들으면, 음흉하게 초인들을 까던 모이엔이 무슨 얼굴을 할까? 흐흐흐.”
“모이엔 단장님이라고 해야지!”
“괜찮아. 주변에 듣는 사람도 없잖아. 검후님을 배신한 저런 싸가지는 개자식이라고 불러도 모자란다고.”
북북 이를 가는 케마란. 물론 네리베르 역시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긴 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만약 우리가 아는 것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마스터와 검후님께 피해가 간다고.”
재차 당부하는 네리베르의 말에 케마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후와 이드를 언급하면 케마란도 조용히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그보다~ 모이엔…… 단장님이 당황해하겠지? 그치?”
“글쎄.”
슬쩍 고개를 돌리는 네리베르다. 아직 존 워스나 모이엔이 무엇을 노리는지 듣지 못했지만 제법 눈치가 빠른 그녀는 모이엔의 행동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케마란의 말과 달리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웃고 있을지도 모르지.”
“……엥?”
“자, 멍청한 얼굴 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 아직 돌아야 할 기사단이 많으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케마란을 질질 잡아끄는 네리베르다. 영입전에 바쁜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일 조 역시 뜨거운 영입전에 참가한 상태다.
추가로 말하자면 영입전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다. 은색 기사단의 존재. 기사들의 아이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홍보거리가 된 것.
그 시각.
케마란이나 네리베르의 생각과 달리, 모이엔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건 12층의 공략을 무난하게 마치고 돌아온 이 조 조장이 하고 있을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인물의 정체를 안다면 곧 이해하게 된다.
바로 철벽의 검왕이자 귀신처럼 초인 기사단장 30명을 암살해 버린 암살왕인 존 워스가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막 적색 기사단이 오 조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전한 참이었다.
“세릴에 펜은 예상했지만, 부리뉴까지 올 줄이야, 좋군.”
존 워스의 입가에 흐릿하게 번지는 미소. 그것을 본 모이엔은 내심 한숨을 쉬며 따라 웃었다.
“하하하. 완벽히 존 워스 님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거기다 생각지 않았던 부리뉴까지 이번 기회에 처리한다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어. 좋은 일이야. 하지만 말이야.”
뚝,
단서를 다는 존 워스의 말에 모이엔의 웃음이 뚝 끊어졌다. 급히 살핀 존 워스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하다.
“적색 기사단이 오조에 합류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제국의 전력을 보호하기 위한 합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만.”
“그래. 말은 맞아. 하지만 라발 단장이 꼭 오 조에 합류해서 초인을 도왔어야 했나? 거기에 소드 팰러스의 오색 기사단이 초인의 지휘를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
합당한 이유가 있기보다는 소드 팰러스의 기사단이 그가 혐오하는 초인과 한 조에 속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 것이다. 그 말엔 모이엔조차 순간 바로 답하지 못했다.
항상 정도만을 고집하고 무뚝뚝한 라발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하는 말 중 틀린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존 워스는 그 말이 틀렸단다. 이유는 그저 초인이 싫기 때문에.
“・・・・・・ 실례가 아니라면 존 워스 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때였다. 묵묵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게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녀에게 또 한 번 거절당한 후 우울함과 패배감을 안고 있던 그는 존 워스를 만난 후부터 점점 자신감을 찾아 가고 있었다. 마치 부모님을 뒤에 둔 아이같이.
“뭐, 괜찮겠지.”
사실 초인과 관련되어 격한 모습을 많이 보인 것이지, 존 워스 하면 삼검왕 중 가장 성품이 좋으며, 후배에게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일이 모이엔의 허락도 없이 갑자기 말을 꺼낼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존 워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게일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존 워스 님께서 초인을 그렇게 싫……….. 혐오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게일도 듣기는 했지만, 이번 계획과 존 워스의 암살행을 알기 전에는 초인에 대한 그의 혐오가 이렇게 깊은 줄은 몰랐다.
당연히 그 이유가 점점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결국 기회다 싶어 질문을 던진 것이다.
“게일 경, 지금 그게 무슨……………!”
모이엔의 성난 눈빛이 게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의문이 생겨 묻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니까.”
움찔 놀란 게일이 고개를 숙이자 존 워스가 말했다. 그리고는 의자 옆에 세워 둔 검의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움찔 움찔,
그 모습에 게일은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말과 달리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걱정과 달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행동은 존 워스가 그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유라.”
존 워스가 혼잣말을 했다.
자신이 어째서 초인을 이렇게 싫어하게 되었나. 존 워스도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보는 순간 싫었다. 평생의 적을 만난 것 같았고, 역겹게 생긴 기생충을 본 듯 혐오스러웠다. 그때부터 최대한 초인을 만나는 것을 피했다. 이유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싫어하는데, 꼭 깊은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적당히 ‘싫어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싫어한다고 그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 버리려 하지는 않으니까. 이 감정은 게일이 말한 것처럼 혐오고 미움이고, 증오였다.
‘어째서 초인을 증오하는 것인가.’
게일이야 그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지만, 존 워스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인이라고 해도 쉽게 단정하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존 워스 정도 되는 인물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면 단순히 육체의 단련만이 아닌, 정신의 단련도 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의 정신이 어질러진 창고와 같다면, 존 워스의 정신은 종류별로 잘 정돈된 대형 쇼핑몰의 창고다.
존 워스는 그 창고의 일부. 조금 정리가 부실한 곳을 뒤적였다. 어쩐지 당장 그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초인에 대한 이 부분만은 이대로 두는 것이 옳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게일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존 워스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혐오. 어쩌면 증오일지도 모르지. 좋은 기회였어. 자네가 질문하기 전까지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틱.
존 워스가 톡톡 두드리던 검을 손가락으로 툭 치자 검이 빙글 한 바퀴 돌아 무릎 위에 고양이처럼 얌전히 자리 잡는다.
존 워스는 그런 검을 푸근한 얼굴로 쓰다듬다 말을 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인의 존재가 날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 존 워스의 눈에 황금빛이 아른거리다 사라진 것은 착각일까.
“부정…… 말입니까?”
“그래. 정확히는 나와 이 검. 우리를 부정하고 있지. 우리의 노력과 땀과 피. 그 모든 지난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초인이지. 그 이유로 난 그들을 혐오하네.”
“…….”
모이엔과 게일은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존 워스가 말한 이유가 의외인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사가 초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해서 기사보다 강해지는 초인의 존재는 노력이라는 것을 비웃는 것과 같았다. 한 달 만에 십 년의 노력을 뛰어넘는 세기의 천재들과도 달랐다.
그런 재능의 차이야 질투가 나더라도 부모와 하늘을 원망하고 진탕 술을 퍼마시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초인은 다르다. 이건 재능도 아니다. 세기의 천재도 노력은 하니까. 검을 좋아하고, 기사도를 알며, 높은 경지를 추구하니까. 그에 비해 초인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길 가다 보물을 주운 졸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거기다 그런 행운을 마치 자신이 특별해서 거머쥔 것처럼 선민의식에 절어 기사들의 땀과 노력을 무시하는 초인들도 적지 않다.
가만히 두어도 잘 꺼지지 않는 불화에 기름을 부어 대는 놈들까지……………
모이엔도 게일도 충분히 마음으로 이해하는 이유다.
다만 의외인 것은 삼검왕의 일인인 존 워스가 일반 기사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것과 그 혐오가 유독 깊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