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98화
934화
회의가 끝나고 이드는 막사로 돌아갔다. 황녀들이 그 뒤를 졸졸 따랐지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이제 와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평소 좋지 않게 생각했어도 지금은 바뀐 공략에 대해 연구하느라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 때문일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쉴라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말이다.
그녀의 기분은 막사에 도착하고도 풀리지 않았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꾹꾹 누르는 등 평소 보기 힘든 모습에 황녀까지 말을 조심하며 눈치를 볼 정도다.
그 속에서 맘 편히 움직이는 것은 이드 일가뿐이다. 황녀들이 눈총을 주지만 이드는 무시했다.
‘내 집에서 손님 눈치를 보는 웃긴 짓을 왜 해야 하는데?’
이드는 당당했다.
타앙!
끙끙거리던 쉴라가 갑자기 탁자를 내리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랐던 이드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애써 놀라지 않은 척을 했다.
라미아는 황녀에게 물 잔을 쥐여 주었다. 놀란 황녀가 딸꾹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드는 거친 숨을 푹푹 내쉬는 쉴라를 보았다. 내심 속으로 삭이던 화가 결국 터진 모양이다.
“평소 쉴라 경답지 않은 모습이군요. 회의가 끝난 후 쭉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던데. 무슨 일입니까?”
“이, 이런 황녀 전하와 명예 후작님 앞에서 무례했습니다.”
자신에게 모여든 시선을 인식한 쉴라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제국과 정의를 위해 모여든 기사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절차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했습니다. 원래 이런 갑작스러운 변수가 발생하면 우선 신중에 신중을 더해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원칙인데, 지금 토벌대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쓸 뿐입니다. 이건 잘못된 일입니다.”
쉴라가 화를 다스리려는 듯 팔걸이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그녀가 누구인가. 검후가 사라진 후, 다른 사람은 모두 포기했음에도 한 점 흔들림 없이 검후를 찾기 위해 전 대륙을 떠돌던 충성심 높은 기사가 아니던가. 또 그런 힘든 여정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기사도를 실천한 기사이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검후 실종에 대한 진실을 알고서도 때를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강한 기사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이번 회의에서 나온 모습에는 실망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다. 첫째는 그녀가 이끄는 일 조가 세 문 중 하나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믿고 있던 록마틴 후작이 회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록마틴 후작님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로군요.”
이드는 그 마음을 제대로 짚어 냈다. 그러자 쉴라가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건 평소 그분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뭔가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 싶지만…… 휴,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사상자가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로 사태를 보고 있는 쉴라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싸움에 있어서는 그러한 태도가 좋다고 생각하는 이드다. 물론 사태를 긍정적으로 보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움, 특히 이처럼 큰 전장에서는 이기는 방법보다 위험을 얼마나 잘 회피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전장만큼 그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곳도 없다. 아무리 전선이 밀려도 결국엔 마지막에 서 있는 군이 승리하는 법이니까.
이드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크흠. 오해 말고 들어 주면 좋겠는데, 솔직히 나도 록마틴 후작님 의견에 찬성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반대를 하셨겠죠.”
보통은 회의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이드다. 적극적으로 관여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발언권이 약하냐. 그건 또 아니다. 이드가 묵묵히 맡은 일에만 집중해서 그렇지, 어떤 일에 반대하고 나서면 그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인드 마스터의 위엄을 빌린 신임 명예 후작의 영향력은 그만큼 막강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회의 때마다 이드의 옆을 지키는 황녀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드는 이번 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찬성한 것도 아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쉴라는 머리에 번뜩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혹시 록마틴 후작님의 결정에 명예 후작님이 관여하신 부분이 있으신 겁니까?”
그 말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녀를 보았다.
“음…… 혹시 저도 관계가 있나요?”
“황녀 전하께 우선 사과드립니다. 13층에 대한 보고 중 누락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단과 함께 드러난 세 개의 문.
아티팩트와 함께 그 문의 존재만 보고한 이드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보고에 생략된 부분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 앞까지 도달하고,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마법사까지 옆에 있는데, 과연 그 문을 열어 보지 않았을까?
두려운 것이 없으니 열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이드다.
당연히 문을 연 이드는 그 안을 대략이나마 살필 수 있었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을 때와 같은 구조였다. 대신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로이콘을 통해 대충 살펴본 내부 구조가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벽으로 막아 오른쪽 왼쪽을 구분한 정도가 아니었다. 당장 입구부터 한참 동안 내리막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또 오르막이 있다. 그 이상 알아내진 못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로이콘을 감지하고 마탑에서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굳이 무리할 생각이 없었던 이드는 바로 로이콘을 돌려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문 안을 살핀 것에 대해서는 감추고 보고했다.
이드가 보기에 세 문은 분명 다음 층으로 이어진 문이 분명했다. 하지만 각각 내리막의 깊이가 다르고, 오르막의 높이도 달랐다. 서로 이리저리 꼬여 있는 것이 단순히 다음 한 층으로 이어진 문이 아닌 듯했다.
최소 두 개 층 이상으로 연결된 문이 분명했다. 거기에 13층의 작은 크기도 무시할 수 없다.
5층까지가 맛보기 코스고, 12층까지가 일반 코스라면, 13부터는 스페셜 심화 코스 같다고 할까?
거기에 떡하니, 들어오면 더 좋은 상품을 주겠다는 듯 아티팩트까지 미끼로 내놓았다. 여기에 세 문이 아래층으로 향한 것 같다고 말하면?
“더 거리낌 없이 내려가려 하겠군요.”
그렇다. 당장 그런 사실을 모르는 지금도 거침없이 서로 내려가기 위해 각 문에 한 조씩 배당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록마틴 후작님께만 몰래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네요. 조사도, 경계도 없이 세 문을 동시에 공략하기로 했으니까요.”
이드는 황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토벌대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와 록마틴 후작님의 목적은 정보를 차단해서 최소한의 조심과 의심을 가지고 공략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그건 성공했으니까요.”
그랬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록마틴 후작도 회의 결과를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록마틴 후작님의 행동에 이해가 됩니까?”
“네. 두 후작님들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셨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퍽 놓이는군요. 안심하고 공략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묵은 변비를 해결한 듯 가벼운 표정으로 변해 있는 쉴라다.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엔 그녀의 일 조가 세 문 안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점도 있었던 듯하다.
“저도 명예 후작님의 보고 누락에 대해 용서하겠어요.”
“황녀 전하의 넓은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일이라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다음엔 제게도 말해 주세요. 저도 그 정도 연기는 능숙하게 할 줄 안답니다. 보세요.”
그 말과 함께 불쑥 얼굴을 내민 황녀가 슬픈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쪽 눈에서 또르륵 눈물을 짜냈다.
황녀라는 이미지에 눈물까지 흘리니 번쩍이는 파츠 아머와 검을 차고 있음에도 약하고 청초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도 잠깐.
“어때요. 괜찮죠?”
씨익 웃으며 연기 실력을 자랑하는 황녀를 이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금 연기를 하신 겁니까? 가짜 눈물?”
“가짜 눈물이라뇨. 엄연히 여자의 무기라고요. 거기에 정치를 하려면 이만한 연기력은 기본 아니겠어요?”
“……대단한 무기를 가지셔서 좋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황녀보다 연기력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드는 이후 이런 일이 또 있다면 그녀를 주연으로 세워 주기로 굳게 약속했다.
세 조가 동시에 던전을 공략하기로 하면서 토벌대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토벌대 인원의 절반 이상이 동시에 공략을 진행하게 되었으니 활기와 함께 서로에 대한 노골적인 경쟁심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처럼 릴레이가 아니다.
동시에 출발선에 선 것이다. 동시에 출발한 이상 누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가느냐에 따라 확실하게 실력의 고하가 나뉘게 될 것이니까.
“이번 공략은 우리 사조가 가장 먼저 끝낸다!”
“우오!! 사조 만세!”
“속도는 둘째다. 마지막 하나 남은 적까지 섬멸하고, 모든 전리품을 황제 폐하께 바치자!”
“섬멸, 오조! 황제 폐하께 영광을!”
“처음 던전에 발을 들인 것처럼, 던전의 마지막은 우리 일 조가 마무리한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사조의 함성에 경쟁하듯 오조와 일 조가 구호와 함께 함성을 질렀다. 구호에서부터 각 조의 성격에 선명하게 갈리는 모습이다.
그중 우연인지 귀에 익은 구호도 들었다.
“흠. 그러고 보니 일 조가 소방관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세 개의 조 뒤에 이 조가 섰다.
변화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특별히 배치된 것이다. 혹시라도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면 지상에서 13층까지 달려가는 사이 상황이 끝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록마틴 후작의 고심이 이드의 눈에는 고양이에게 맡겨진 생선 가게로 보일 뿐이었다.
“이번에도 따라갈 건가요?”
막사 앞에 이드와 함께 나란히 서 있던 일리나가 물었다.
이 조를 살피던 이드가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래도 이번엔 따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 조 조원들 사이에서 존 워스를 찾지 못한 이드가 말했다. 그가 없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단은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따라가 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