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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02화


938화

힘든 전투를 벌이고 올라온 기사들의 휴식을 위해 다음 날로 미뤘던 회의가 아침 일찍부터 열렸다.

사실 회의라기보다는 세 개 문에 대한 탐사 보고에 가까웠다. 세조의 공략 상황에 대한 설명이 주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밝혀진 세 개 문 안에는 각각 몬스터, 마법사, 초인들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몬스터와 마법사, 초인들이 아니다. 수많은 몬스터 중에는 초인기가 부여된 몬스터가 있고, 초인기를 추출해서 사용하는 마법사들의 마법은 정령이라고 착각할 만큼 자유도가 높았다.

마지막으로 초인들은 기존 초인기에 추가로 초인기를 부여받아 두 가지 이상의 초인기를 사용했다.

“조작, 이식, 부여, 미완의 마탑이 주장하는 초인 마법의 핵심을 보여 주는군요.”

보고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는 토리빈 마법사의 말이었다.

모두 공감하는 말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웅성거리며 의견을 나눴다. 점차 말소리가 커져 갔다.

‘사실 해결 방법이랄게 딱히 없지.’

의미 없는 말싸움에 눈을 감았다. 이드가 보기에 세 개 문의 공략에 대한 답은 없었다. 초인 마법의 핵심은 토리빈 마법사의 말대로 순수한 힘이라고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 몬스터가 있는 문이다. 그 문을 공략하려면 몬스터를 모두 죽여야지 무슨 핵을 깬다고 몬스터가 물러가거나, 마수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즉, 순수한 힘. 그것이 이드가 보는 이번 공략에 대한 본질이었다.


목소리들이 점점 격해졌다. 당연하다. 없는 답을 찾으려고 하니 답답함과 짜증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록마틴 후작이 공략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뤘다. 대신 오늘 탐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말이 나왔다.

공략할 문은 셋인데 진입할 수 있는 조는 두 개뿐이다.

물론 하나의 문을 그냥 둘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공략되지 않은 문 안의 전력이 다른 문을 공략하는 조를 공격할 수도 있고, 역류해 던전 밖으로 나와 토벌대를 공격해 올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변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제발 나오라고 하십시오. 넓은 곳으로 나오기만 하면 몬스터 따위, 이 창으로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오로지 몬스터에 밀렸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힌 단순 무식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단순 무식보다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

그때 발터가 천천히 일어나 짧고 굵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허락하신다면 오 조가 다시 공략에 나서겠습니다.”

그 모습에 이드는 내심 웃고 말았다.

말로는 허락을 구하고 있는데, 이글거리는 눈빛은 무조건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록마틴 후작은 당장 허락하지 않고,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회의를 끝냈다.


“이렇게 되면 오늘은 공략을 쉬는 건가.”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닌 이상 그렇게 될 겁니다. 억지로 진행하기엔 어제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드의 말에 쉴라가 대답했다.

차분한 목소리에 이드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언제나처럼 단정한 차림에 매끈한 얼굴이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어젯밤 피로 물들어 있던 모습을 생각할까. 거기에 자정이 넘어서까지 바쁘게 사방으로 뛰어다녔었다.

그리곤 아침 일찍 회의에 참석했는데도 얼굴에 일말의 피로도 보이지 않는 모습은 상당히 멋있었다. 괜히 여기사들의 우상이 아닌 것이다. 한데 너무 멀뚱히 보고 있었나 보다.

“혹시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대단하다 싶어서요.”

그 말을 듣기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명예 후작님이셨다면 피해는커녕 어제 공략이 끝났겠지요.”

“전력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한다면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변수는 있으니. 장담할 수 없죠. 그리고 이번엔 저도 단번에 공략이 끝나지 않을 예정이랍니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이드의 모습에 쉴라가 고소를 지었다.

변수에 장담할 수 없다니. 그 말이 거짓임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이드를 만난 후 그가 보여 준 힘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디 이번 층이 문제일까.

거기에 이드의 전력이라 하면 라미아와 일리나도 포함된다. 그 두 사람도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쉴라가 잘 알고 있다. 아직도 생명의 관에서 세 사람이 보여 준 활약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삼 조가 떠올랐다.

다음으로 공략에 나설 기사들. 이드가 조금만 힘을 쓰면 그들은 희생 없이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쉴라는 굳이 그에 대해 언급하는 눈치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이드가 신경 쓰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잘 조절하고 있다. 그 증거로 삼조의 사상자가 가장 적다. 다른 조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다.

누구는 그것이 황녀로 인해 전력이 나뉘지 않은 탓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이드와 라미아 그리고 일리나가 힘쓴 때문임을 그녀는 안다. 쉴라는 그런 배려가 고마웠다. 검후를 찾기 위해 노력해 주는 것도, 소드 팰러스와 제국을 위해 힘써 주는 것도.

“여러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인사는 받겠지만. 뭐에 관한 감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드는 뜬금없는 인사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때 문을 열고 일리나와 함께 황녀가 들어섰다. 록마틴 후작과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뒤에 남았던 그녀였다.

이드와 눈이 마주친 황녀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실패했어요.”

밑도 끝도 없는 짧은 말에 이드는 혀를 찼다.

“쉴라 경도 그렇고, 황녀 전하까지 모를 말씀만 하시는군요. 뭐가 실패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삼조의 인원을 나눠 여섯 번째 조를 만들자고 건의를 했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조에 비해서 삼조의 인원이 많으니까요.”

“세 개의 문 때문이군요. 하지만 삼조의 인원을 유지한 것은 황녀 전하의 안전 때문입니다. 록마틴 후작님이 들어줄 리가 없지요.”

“압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 근처까지도 위험이 다가온 적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과보호에요. 차라리 전력을 나눠서 기사들의 피해를 줄이는 쪽이 낫지 않나요?”

황녀의 말에 쉴라가 안타까워했다. 황녀의 마음 씀씀이가 안타까웠고, 자신은 알고 있는 이드들의 노력을 황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실이 아쉬웠던 것이다.

“전 알고 있으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이드는 자신과 일리나를 번갈아 보고 말하는 쉴라의 말에 대답하기를 포기했다.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이유 모를 소리만 계속하고 있으니. 지금은 그보다 황녀와의 이야기가 먼저다.

“황녀 전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위험은 분명 그렇게 방심하는 순간 닥치는 것입니다.”

조금 잔소리를 담은 그 말에 황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보아하니 록마틴 후작에게도 똑같은 잔소리를 듣고 온 것 같았다. 제법 늦게 돌아왔으니, 아마 귀가 아플 정도로 잔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이드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았다. 과한 잔소리는 소음일 뿐이다. 거기에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그래서 당근을 하나 던졌다.

“그래도 기사들을 염려하시는 황녀 전하의 뜻은 좋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황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았다. 역시 채찍과 당근은 같이 써야 제 몫을 한다.

“아, 그리고 말이죠. 제가 나올 때 발터 단장이 록마틴 후작님을 찾아왔어요. 문이 닫히기 전에 얼핏 듣기로 오 조가 공략에 나가는 문제 때문인 것 같았어요.”

순간 이드는 이글거리던 발터의 눈빛이 떠올랐다. 역시나 단순히 허락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던 거다. 허락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허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 조의 피해가 크지는 않지만, 발터 단장은 무슨 생각일까요?”

“복수겠죠.” 

존 워스에 대한.

이드는 존 워스를 놓치고 분노하던 발터의 모습을 떠올렸다. 또 토벌 때 적극적으로 공략에 나서지 않았던 오 조의 태도도 짐작이 갔다.

그들은 존 워스가 다시 공격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드의 생각은 전날 모이엔과 존 워스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목표를 쫓는 인간은 맹목적이죠.”

조용하던 일리나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터 정도의 인물이라면 쉽게 함정에 빠지지 않겠지만, 적진 한가운데서 배신자까지 오길 기다리고 있다면 아무리 초인 기사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슬슬 모이엔이 움직일 때가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반대로 말하면 이드가 바빠질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런데 라미아는 어디 갔어요?”

“끌려갔습니다. 마법사들 연구실로.”

“또요?”

“연구할 것들이 쌓였으니까요.”

몬스터와 초인의 사체에, 아티팩트와 함정에 쓰인 장비까지. 연구실에 쌓여 분석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과장 없이 산더미다.

그 대부분이 라미아의 도움이 없으면 쉽게 분석하기 힘든 것들뿐이다.

그런데 라미아의 도움을 얻을 기회는 지금뿐이다. 마법사들은 마음 같아서야 황제에게 떼를 써서라도 라미아를 붙잡아 두고 싶겠지만, 명예 후작의 부인은 황제라고 해서 마음대로 붙잡아 둘 수는 없다.

무엇보다 명예 후작이다. 온전히 제국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 힘들다. 그렇게 강제했다가는 오히려 반감만 살 일이다.

당연히 황제가 들어주지 않을 일이다. 똑똑한 마법사들은 그 사실을 잘 알았고, 그 때문에 죽자고 라미아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라미아 역시 입으로는 투덜거리지만, 마법사들과 연구하는 일이 딱히 싫지는 않은 듯했다.

“대신 저보고 오늘도 마중 나와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탈출하기 힘들다고.”

결국 그 날 던전 공략은 없었다.

아무래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를 넣을 수 없다는 지휘부의 최종 결정이었다. 대신 다음 있을 공략에 오 조가 진입하기로 발표가 났다.

발터가 얼마나 록마틴 후작을 쏘았는지, 오 조의 던전 공략을 발표하는 록마틴 후작의 얼굴이 반쪽이었다.

오조의 던전 공략은 존 워스에 대한 복수가 핵심이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은 다른 조와 비교되는 공략 진행에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사실 오 조에 속한 초인 기사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꼭 틀린 것이 아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발표가 난 날 저녁.

이드는 록마틴 후작의 부름을 받았다. 이드가 도착하자 록마틴 후작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다름 아닌 베일록을 만나는 자리에 동석하게 된 것이다.

록마틴 후작은 그 자리에서 13층에 나타난 세 개의 문에 대해서 추궁했고, 베일록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아마 탑주가 새로 만들었겠지. 그분께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으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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