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14화
950화
당연하지만 토벌대는 둘로 나뉘었다.
“이 큰 던전을 하나씩 공략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그게 이유였고, 결론이었다.
이 조와 사 조가 우측 숲으로, 일, 삼, 오조가 좌측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나뉘는데, 모이엔이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네요.”
“안에서 다시 볼 거라는 거지.”
“그럼 처음부터 같이 움직이면 처리하기 더 편하지 않나요?”
“그건 또 의혹을 만들기 싫은 것이고.”
숲은 밖에서 보던 만큼 어두웠다. 13층에 있던 어둠을 집어 삼켜 숲에 뱉어두었나 싶을 정도로 어두웠다. 대신 시야를 완전히 빼앗는 어둠은 아니었다. 안개가 지독한 밤 희미한 별빛 아래를 걷는 정도랄까? 쿵.
“끄읍!”
“……풉~ 븅신.”
하지만 정리된 대로라면 모를까. 숲에서 그런 어둠은 위험하다. 일반인에게는 거의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급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머리를 박아 나무의 강도를 시험하는 소리가 났다. 어디에 적이 있을지 몰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미친 듯 이마를 문지르는 기사들이 수두룩하고, 그 모습에 웃음을 참으려 온몸을 떠는 악인들은 그 세배로 넘쳐난다.
“이해가 안 됩니다.”
한참 숲을 헤치고 나가던 중이었다.
숲에 들어선 순간부터 선두에서 길을 잡아 주는 일리나 덕분에 비교적 편하게 나아가고 있던 스폴이 저 혼자 끙끙거리다 항복한다는 듯 툭 뱉어 낸 말이다.
“뭐가?”
“왜 공격이 없는 걸까요? 숨어서 공격하기엔 완벽한 환경인데 말입니다.”
아군의 시야는 좁고, 빽빽한 나무 탓에 움직임도 부자연스럽다. 그에 반해 적은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은신할 장소도 많다. 한데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온 시점에도 아직 숲은 조용하다.
“왜, 공격을 당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야?”
“에이, 그런 말이 아닌 거 아시면서요.”
피식 웃는 이드의 말에 스폴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입조심하지?”
“넵~ 그런데 정말 왜 공격이 없을까요?”
궁금하긴 황녀도 마찬가지인 듯 라미아의 옆에 딱 붙어 있던 그녀의 시선이 이드를 향했다.
“가능성은 세 가지 정도가 되겠네요. 첫째, 아직 공격할 시점이 아니다. 둘째, 이 숲 자체가 적들이 준비한 공격이다. 셋째, 전투보다 우선할 목표가 있다.”
“아무 짓도 안 할 가능성은 없네요.”
그걸 말이라고, 이렇게 공을 들여 지하에 숲을 만들었는데, 써먹지 않을 거면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을 터. 놀릴 이유가 없다.
그때 앞서 걷고 있던 일리나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드의 말 중 두 번째는 삭제해 주세요. 여기 있는 나무들은 평범한 나무들이니까요.”
“일리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네요. 하지만 초인기나 마법이 사용되면 언제들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안심하기도 이르죠.”
“그 말도 맞아요.”
일리나의 말에 다른 이들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고춧가루를 투척하는 이드다.
“하지만 마법은 제가, 초인기는 오 조가 먼저 알아차릴 테니, 너무 굳어 있을 필요도 없죠.”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라미아의 말.
그에 귀를 기울이던 기사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서 안심을 하란 말인가? 긴장을 하란 말인가?
그런 마음이 닿은 것인가. 순간 답을 내주는 이드의 목소리.
“온다. 전투 준비.”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내공이 스며든 목소리가 삼 조는 물론 날개 형태로 뒤따르는 일 조와 사 조에까지 선명히 닿았다.
처처처척!
일사불란. 이미 긴장하고 준비하고 있던 모든 기사들의 내력이 출렁이고, 초인기가 발동 직전까지 달아오른다.
한데 순식간에 끝난 준비와 달리 주변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조장님, 이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혹시 이드가 잘못 안 것이 아닐까. 순식간에 황녀를 둘러싼 기사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다 부릅뜬 스폴의 눈동자에 있는 힘을 다해 턱을 닫았다.
그 순간에도 이드의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큰 해일이 일어나기 전 밀려가는 파도처럼 은밀히 스쳐 가는 검은 안개의 흐름이. 그리고 모은 힘을 쏟아내기 위해 웅크리는 대지의 흐름이 향하는 방향은.
“뒤에서 온다.”
콰릉!
이드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숲이 흔들렸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그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드의 말처럼 기사들이 이미 지나온 등 뒤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뜻 보면 그건 거대한 파도 같았다. 하지만 세상 어떤 파도가 돌돌 말려 굴러다닌다던가. 숲의 입구에서 통째로 일어선 땅이 눈 오는 날 구르는 눈덩이처럼 구르기 시작했다. 즉, 점점 커진다는 말이다. 거기에 줄기줄기 엮인 나무가 빨려들어 채찍처럼 사방을 할퀴며 토벌대를 향해 굴러온다.
기사들은 팔두 마차 앞에 선 어린아이 같은 압박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몇 바퀴 구른 것도 아닌데, 벌써 집채만큼 커진 흙덩이다. 여기까지 굴러오면 얼마나 커질까?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건 잠깐이었다.
“안으로 피합니까?”
“안에 뭐가 기다릴 줄 알고?”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발터가 있는 오 조였다.
“대지 계열 초인들은 나를 따르고, 칸은 나머지 초인들을 배치해서 저 흙덩이를 부숴라.”
명령을 마침과 동시에 발터는 다른 초인들과 함께 땅에 초인기를 쏟아 냈다. 땅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흙덩이를 밀어 넣음과 동시에 흙덩이를 조종하는 초인력을 끊어 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뒤에서 칸이 초인들을 이끌고 흙덩이를 향해 초인기를 쏘아 내기 시작했다.
“목표가 큰 만큼 화력을 집중합니다. 제가 지목하는 목표를 최우선으로 공격하십시오.”
급한 중에도 침착한 목소리. 그 후 신호에 맞추어 색색의 다종다양한 초인기가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한발 늦게 뒤를 따르는 초인기와 마법들.
“초인들과 마법사들은 오 조 공격에 힘을 더하고, 기사들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초인과 마법사들을 보호하라!”
“일 조도 삼 조와 움직임을 같이한다.”
이드의 명령에 움직인 삼조와 일 조의 전력이었다.
콰콰콰쾅!
멀리 날아간 초인기들이 흙덩이를 때리며 폭발했다. 귀가 먹먹하고 부서진 흙덩이가 튀었다.
수백 초인과 마법사들이 힘을 더한 공격은 굉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가장 앞서 구르는 흙덩이의 반이 날아가고 남은 절반이 쩌억 갈라지며 그 자리에 멈췄다.
하지만 아직 남은 흙덩이는 많았다. 바로 뒤에서 굴러오던 흙덩이가 멈춘 흙덩이를 잡아먹으며 몸체를 불리고 굴러 나온다. 순식간에 불어난 크기가 창고만 하다.
“다음 목표, 준비, 조준. 쏘세요!”
그에 칸의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 다시 공격이 이어지고, 그 행동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칸의 목소리에도 다급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멈춘 흙덩이를 잡아먹으며 커지는 다른 덩어리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한 번의 공격으로는 부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
그리고 그때 발터들이 나섰다.
꽈르르릉!
또 하나의 흙덩이가 무너지는 순간. 대기하던 초인들에게 발터의 명령이 떨어졌다.
“끊어!”
동시에 발터 본인도 초인기 엑스카베이터의 힘을 전방으로 뻗어 냈다.
덜덜덜.
순간 숲을 뒤덮고 있던 초인기의 흐름에 간섭한 발터들의 힘에 뒤따르던 흙덩이는 부서진 흙덩이를 흡수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공회전을 하며 덜덜 떨었다.
이대로 공격이 들어가면 흙덩이를 부수는 건 일도 아니다 싶은 순간.
쿠쿵.
“적의 초인력이 늘었다. 더 집중해!”
발터들의 힘을 밀어내는 초인력이 강해졌다. 그에 더불어 공회전하는 흙덩이 뒤로 다른 흙덩이가 달려들어 금방 크기를 늘렸다.
흙덩이의 크기는 곧 힘이며, 그 속에 더해지는 초인력의 크기를 말한다.
세 개의 흙덩이가 더해지자 발터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흙덩이가 구르기 시작했다. 앞에 놓여 있는 부서진 흙덩이를 흡수하고서. 이젠 그 크기가 대저택만큼 커졌다.
“쯧, 저항은 포기하고 막는 데 주력한다!”
그에 빠르게 방법을 바꾸는 발터다. 순간의 대처에 그의 상황 판단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동시에 흙덩이의 진로가 거칠어지고, 땅에 구덩이가 생겨났다. 하지만 흙덩이의 크기를 생각하면 소소할 뿐인 저항.
그러나 적당히 시간을 끌어 주면 초인과 마법사들의 공격으로 흙덩이를 부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적들이 먼저 알고 있는 듯했다.
촤르르륵.
갑자기 땅을 뚫고 튀어나온 나무뿌리들이 밀집해 있던 초인들과 마법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
“우와! 뭐, 뭐야, 이건!”
“크악!”
그리 강력한 공격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기습이란 것이 주효했다. 순간 초인들의 일각이 무너졌다.
기사들이 급히 나무뿌리를 잘랐지만, 숲에 가득한 것이 나무가 아니던가. 잘라도, 잘라도 끝없이 튀어나오는 뿌리 공격.
거기에 멀쩡히 서 있던 나무들까지 덩달아 공격에 나섰다.
“잘라! 밑동부터 뿌리까지 모조리 잘라 버려!”
“잘라도 소용없어. 태워야 해!”
“마법사들과 초인들의 보호가 우선이다! 그쪽부터 정리해! 흙덩이에 비하면 나무는 별거 아니다!”
기사들이 메뚜기처럼 바쁘게 뛰었다. 수백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초인과 마법사들을 지켰다.
하지만 적들의 의도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발밑이 불안해져 집중력이 떨어진 초인과 마법사들의 공격력이 약해지자 흙덩이를 부수기가
힘들어졌다.
“조장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드 옆으로 스폴이 다가왔다.
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이드다.
“알아. 아무래도 안으로 들어가야겠지. 삼조는 언제든 앞으로 전진할 준비를 해 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가로막는 나무는 모두 베어 안전 확보를 우선으로,”
“충,”
스폴이 통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물러나자 이드는 쉴라를 데리고 발터에게 다가갔다.
“후퇴입니까?”
“전진이죠. 원래 우리가 갈 방향이었잖습니까.”
“후후후. 후퇴보다는 듣기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들이 빠지면 흙덩이에 따라잡힐 겁니다.”
“걱정 마세요. 오 조가 고생했으니, 후퇴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세상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와 흙덩이는 상성이 나쁘다. 세상 베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검강이 있어도 저택만 한 흙덩이를 깎아 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이드가 그걸 모를까.
잠깐 말이 없던 발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명예 후작님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저보다는 이 녀석의 활약이죠.”
빙긋 웃는 이드의 발아래로 범고래가 삐죽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 나 범고래.’
귀여운 인사지만 다른 반응 없이 오 조를 수습하는 발터다. 그 모습에 범고래가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콰콰콰콱!
초인들이 빠지자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가는 흙덩이에 시선이 돌아갔다.
세조의 기사들은 이미 나무를 베어 내며 빠르게 전진 중이다.
속도차는 분명하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응!’
발랄한 범고래의 대답을 들으며 이드가 전진하는 토벌대와 반대로 흙덩이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흙덩이와의 거리가 백미터로 좁혀지는 순간.
스륵.
자연체로 서 있던 이드의 신형이 사라지고.
퍼석-
주먹을 때려 박으며 흙덩이 위에 나타났다.
흙덩이에 비하면 티끌만 한 크기의 주먹. 그게 박혔다고 무슨 소용인가 싶은 순간. 우뚝.
힘차게 구르던 흙덩이가 그대로 멈춰서 버렸다. 쩡!
동시에 흙덩이 안에서부터 터지는 째지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