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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17화


953화

오조에 대한 공격은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언제 시작할지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드는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이 조와 마탑, 그리고 오 조가 적당히 치고받은 시점에 개입할 것이다.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오 조가 공격받을 때까지 멀리서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스토커가 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스토킹이란 것이 알고 보면 힘든 일이다. 오랫동안 숨어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긴 시간 기다리며 감시도 해야 한다.

언제 공격이 있을지 모르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드가 긴 시간 자리를 비우게 된다.

쉴라가 신경 쓰는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드의 힘이 큰 만큼 그 빈자리도 실로 크다.

그 빈자리가 티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큰일이긴 하지만 쉴라는 바로 은색 기사단의 단장이 아닌가. 그녀에겐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옆에서 스폴과 황녀도 도울 것이고, 일리나 또한 힘을 더하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자리를 비우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것.

“당장 따라갈 건 아니지만, 왜요?”

이드가 물었다. 이미 정해진 일에 새삼 쉴라가 말을 꺼냈다면 이유가 있을 테니까.

“제 생각엔 당장 자리를 비우시는 것보다, 작은 이유라도 만들어 놓은 후에 움직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섭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라도?”

“명예 후작님이 삼조 조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조를 두고 오 조를 챙기는 것처럼 보일 모습에 불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이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놓고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특히 짧은 기간이나마 함께하며 이드를 따른 삼조의 조원들 입장에선 충분히 서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스폴의 생각은 쉴라와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모이엔 단장이 먼저 움직이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지 않을까요?”

당장 움직이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세상일에 ‘절대’는 있을 수 없기에 쉴라도 그 말에 쉽게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그에 라미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섰다.

“쯧쯧쯧. 하여튼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죠?”

“오오! 미리 준비해 둔 거라도 있는 거야?”

이드가 반색하며 반응했다.

“당연하죠. 마법사가 하는 일이 만약을 대비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미리 손을 좀 써 놨죠.”

“오오오~!”

우쭐한 라미아에 스폴과 이드가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박수가 이어질수록 라미아의 턱이 더 높이 올라갔고, 그 모습이 재밌어서 박수가 더 커지자. 적당히 하죠?”

라미아가 째려봤다.

“미안, 재미있어서 그만. 그런데 언제 그런 걸 준비해 둔 거야? 혹시 오조에 한 것처럼 이 조에도?”

“우후후후.”

그 짐작이 맞았나 보다.

라미아가 득의만만한 미소와 함께 이미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의 거울을 하나 더 꺼내 들었으니까. 그 거울에도 똑같이 중앙에 화살표가 있고, 빨갛고 노란 두 개의 점이 찍혀 있었다.

먼저 꺼낸 거울의 푸른 점이 오 조를 표시한 것이었으니, 이쪽은 이 조와 사조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두 점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오 조와 달리 아직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라미아는 양손에 든 거울을 나란히 붙였다.

휘릭.

그러자 중앙에 있던 화살표가 하나로 합쳐지며 두 거울의 중앙에 자리하고, 세 점도 화살표를 중심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확인하자 오 조와 이 조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확연히 드러났다.

“아무리 봐도 한두 시간 안에 충돌할 일은 없겠네. 그나저나 거울을 하나로 쓰지 않고 굳이 둘로 나눈 이유라도 있어?”

“오 조 때문이에요. 초인기 종류가 너무 다양하니까 혹시라도 발각되지 않도록 전용기를 만든 거죠.”

마법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라미아지만, 같은 종류의 초인기도 사람에 따라 위력과 형태가 변할 수 있는 만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초인들 중 마커를 찾아낼 능력을 가진 자가 있을 수 있으니,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그리고 이런 은밀한 작업에는 조심에 조심을 더해도 부족하지 않으니. 라미아의 세심함이 결코 지나치다 할 수도 없다.

“그런 이유라면 잘했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럼 마커는 안전한 데 달아 놓은 거지?”

“당연히 신경 썼죠. 라발 단장님께 맡겨 놓은 것도 있지만, 혹시나 싶어서 저기에도 달아 뒀어요.”

오 조와 함께하고 있는 라발은 이쪽 사람이다. 그러니 마커를 달아 놓는 것은 당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 조가 라발을 떼어 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라미아는 추가로 마커를 달았다. 지금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깃발에다? 오호~ 그러고 보니 절묘한데?”

깃발에 말이다.

각 조를 상징하는 깃발. 부상자는 낙오할 수 있어도 깃발은 핵심 전력과 함께 한다. 기수가 쓰러져도 다른 기사가 깃발을 든다.

깃발은 자존심이며 명예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각 조가 가진 깃발의 테두리에는 동전 크기로 그 조에 소속된 기사단의 상징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그건 기사단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렇죠? 그것뿐이 아니라고요! 기사단 문장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그 속에 마커를 슬쩍 박아 놔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 핵심인 거죠.”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누가 깃발에 새겨진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겠는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최곤데요?”

“음, 이 문제는 우리 은색 기사단에도 조치가 필요하겠는데.”

라미아의 말에 감탄하는 스폴과 은색 기사단 깃발에도 마커가 붙기 쉽다는 것에 대비책을 생각하는 쉴라.

이드는 그 모습에서 책임자와 부하의 입장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천천히 전진하던 두 조가 갑자기 멈춰 섰다.

가장 앞서가던 선두가 정지 신호를 보낸 것.

그 앞에는 기기묘묘한 형태로 금이 간 천정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곧 불그스름한 빛이 비치더니, 그 틈 사이로 펄펄 끓는 용암이 비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게 표시된 이 조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다행이네. 이번 함정은 해결하고 갈 시간이 있어서.”

앞으로 나서는 이드의 뒤를 따라 라미아들이 같이 걸어 나갔다.

오 조의 일도 중요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삼조 조장으로서 활동할 때였다.


그렇게 이드들이 용암의 비를 앞에 두고 해결하는 사이.

모이엔의 이 조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사 조와 떨어지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조장님!”

“위험하다. 오지 말아. 조원을 부탁합니다. 록마틴 후작님!”

그것도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조에 남아 있으면서 아직 완전히 존 워스와 청색 기사단의 이름에 회유되지 않은 기사들만 뚝 떼어 남겨 두었다.

꽈르릉!

모이엔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천장이 무너지며 마수들을 깔아뭉갰고, 길이 막혔다. 아니, 천장이 무너졌다기보다는 거대한 벽처럼 내려앉았다고 봐야 했다.

두께만 30미터짜리 벽 말이다.

툭툭.

“이 정도면 괜찮았나?”

“기사가 아니라 배우를 하셔도 크게 이름을 날리셨을 것 같습니다.”

돌가루를 풀풀 날리며 돌아서는 모이엔을 보며 게일이 회의 어린 눈으로 답했다. 절망 속에서 내민 그의 손을 잡은 후 보게 된 모이엔의 모습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싶어서다.

혹시 자신은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은 것이 아닐까. 물론, 이제는 놓고 싶다고 놓을 수도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거기에.

“후~ 이젠 좀 편하게 행동할 수 있겠군.”

“짧은 시간이지만 무례했습니다.”

깊이 눌러쓴 투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 존 워스. 그가 이곳에 있다.

‘철벽의 검왕님이 계시는 곳이다. 이 선택은 절대 잘못되지 않았어.’

그런 다짐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게일의 뒤로 이 조의 기사들이 가슴을 두드렸다.

“철벽의 검왕께 인사드립니다.”

끄덕.

그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존 워스, 말 한마디 없지만, 그 간단한 동작에도 감동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다.

“그보다 오 조의 위치는 확인했나?”

천장이 괜히 내려앉은 것이 아니다. 오 조를 성공적으로 떨어트려 놓았다는 연락에 적절한 마탑의 서포트를 받아 움직인 것이다.

“마탑에서 오조가 위치한 곳까지 유도해 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무슨 문제가 있나?”

“문제라기보다는 가는 길에 배치된 함정과 몬스터를 치울 수 없다고 합니다. 뚫고 가라더군요.”

“흥! 마법사가 자신의 던전에서 함정 하나 조종하지 못한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던전은 마법사의 뱃속이나 다름없다.

사람이야 뱃속 내장 기관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마법사는 던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물론 가진 능력이 될 때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정신의 관이, 미완의 마탑이 능력이 없을까? 마법사의 던전이 고장이라도 났단 말인가?

존 워스가 어처구니없다며 비웃음을 흘리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모이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반응도 똑같았으니까.

“마탑 놈들의 주장에 따르면 토벌이 진행되면서 던전에 많은 손상을 입은 탓이라고 합니다만.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씨익.

“그렇지. 상관없는 일이지. 그 무엇도 우리 소드 팰러스 기사들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모이엔의 말에 차가운 미소로 답한 존 워스가 마음에 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있는 기사들을 보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쓰레기를 정리하기 위해 나간다. 준비는 되었는가!”

“충! 저희의 검은 소드 팰러스를 위해 있습니다.”

“기분 좋은 말이다. 그 말이 끝까지 지켜지기를 원한다. 그 말이 지켜지는 한 소드 팰러스와 나는 너희들의 그늘이 될 것이다. 기사를 위해!” 

“기사를 위해!”

“와아아!!”

이 자리에 남은 기사들 중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기사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열렬히 존 워스의 이름을 외쳤다. 이 자리에 있는 기사들. 그들은 모두 크든 작든 존 워스와 같이 초인을 혐오하는 마음을 가진 기사들이었으니까.


용암 길을 지났다.

그 뒤에 나온 것은 바람길이었다. 바람이 칼날처럼 휘몰아치며 공격했다. 하지만 앞선 용암 길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용암 길에서는 이드와 범고래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바람길에서는 마법사들의 마법과 진형을 형성하고 뿜어내는 기사들의 검기 덕에 쉽게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라미아가 알려 왔다.

“이 조가 움직였어요. 이제 우리도 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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