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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26화


962화

이드와 라미아가 떠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일 조와 삼 조는 다시 던전 공략에 나섰다. 이드가 없었지만, 두 조가 연합하고 있어 공략에는 거침이 없었다.

쉬어 갈 만한 구간도 있었고, 어려운 구간도 있었다. 뿔뿔이 나뉜 다른 조와 달리 단단히 연합하고 있는 두 조의 전력은 던전 한정이지만 최강이었다.

무엇보다 은색 기사단을 중심으로 한 기사 전력 위주의 일 조와 기사, 초인, 마법사의 비율이 좋은 삼조의 조합이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가 컸다. 특히 위험한 순간이 발생하면 적극 개입하는 쉴라와 일리나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라, 감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으허허허. 최고야, 최고, 공략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이게 다 쉴라 조장님과 소검후님 덕분이지 않나. 특히 아까 새를 타고 돌진하던 조장님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니까!”

“소검후님은 또 어떠신가! 난 작은 검기 조각이 그렇게 위험한지 처음 알았다고. 크게 배웠네. 크게 배웠어!”

“이 답답한 놈들아! 네놈들은 어떻게 여신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앞에 두고, 그딴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자빠졌냐? 눈이 삔 거 아냐?”

“그런 넌 머리가 삐뚤어진 거고? 두 분을 두고 예쁘다 어떻다는 평가질이 가당키나 한…….”

술술 풀리는 공략에 여유를 넘어 재미를 느낄 정도가 된 조원들은 입도 같이 풀린 듯 곳곳에서 낄낄댔다.

이드의 빈자리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드가 알면 섭섭해할 정도로.


이 평화로운 공략에 위기가 찾아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위기의 정체는 부관주가 이끌고 있는 마법사들. 라미아를 목표로 은밀히 접근해 온 것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접근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신같이 감시 마법을 찾아내 파괴하는 라미아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연 일리나와 조원들의 시선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조심스레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 들던 부관주는 이때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군요. 너무 반응이 없어요.”

“……우리 접근을 적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라면 반길 일이지만. 빈 둥지를 공략하는 것이라면 곤란해집니다.”

“설마 후작 부인이 저 중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이미 전적이 있는 부부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확인하도록 하지요.”

납득하기 어렵다는 장로를 무시하고 해더웨이가 확인 작업에 나섰다. 확인에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치 않았다.

해더웨이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라미아에게 발각된 감시 마법을 사용했다. 라미아가 있어 발각당하더라도 또냐, 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발각 즉시 파괴시켜 버리면 역추적당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될 위험도 없다.

그런데, 만약 발각되지 않는다면?

‘목표가 행방불명된 상태면 이번 작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마법사들이 난감하게 서로를 돌아보는 중에 해더웨이가 삼 조를 향해 감시 마법을 움직였다.

은밀성을 높인 대신 조금 흐릿한 시야가 해더웨이의 심상에 떠올랐다.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서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는 던전의 내부를 달려 점점 밝아지는 공간에 보이기 시작하는 수백의 기사들.

감시 마법은 그들을 지나 삼 조를 향했다. 기사와 초인이 섞인 진형의 안쪽에 있는 마법사들과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황녀. 그 옆의 일리나. 그러나 목표로 하고 있는 라미아와 이드는 보이지 않는다. 예상대로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럼 두 사람은 지금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큰일입니다. 두 사람만으로도 어떤 엄청난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확인과 함께 두 장로가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드와 라미아가 던전에 와서 활약한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

해더웨이는 우선 두 사람의 위치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물러서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위치 파악은 다른 장로에게 맡겨 두고, 계획대로 삼 조를 공격하겠다고 한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이번 공략은 마탑의 위명을 떨치는 용도로 쓸 계획이다. 그러니, 힘들게 괴롭히고, 적당한 피해를 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탑주가 처리를 명령한 목표도 자리를 비운 시점에 굳이 힘들게 목숨을 걸고 적과 죽고 죽일 이유가 없었다.

“있습니다. 저곳에는 소검후가 있습니다. 그녀를 확보한다면 굳이 사라진 후작 부부를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요. 또한 소검후를 확보하고 있으면, 목표의 처리에도 도움이 됩니다.”

“인질이군요. 확실히 소검후를 확보한다면 여러 가지로 이득이 많을 것 같습니다.”

“찬성입니다.”

“다만 조심할 것은 작전 중에 황녀에게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녀가 다칠 경우, 앞으로 마탑이 자리 잡는 데 있어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할 테니까요.”

해더웨이가 주의를 당부했다.

황녀에게 일어날 사고는, 기사들의 사망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가 된다.

마법사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바로 수긍하며 대답했다.

그때 장로 하나가 해더웨이에게 의견을 내놓았다.

“하는 김에 쉴라 단장도 확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은색 기사단장을 말입니까?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마탑에선 크게 필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초인파. 아니, 바벨이라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바벨?”

“그렇습니다. 지금 이 사건을 넘기면 놈들과 다시 거래를 시작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때 쉴라 단장을 거래용으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연. 검후를 길들이는 용도입니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의 대화라서 그런지 짧은 설명에 바로바로 핵심이 튀어 나왔다. 고위 마법사의 체면을 불고한, 소검후를 인질로 쓰겠다는 거침없는 발언에 쉴라 단장도 인질 겸 거래용으로 쓰자는 말이 뒤따른 것이다.

사탄도 한 수 배워 갈 것 같은 후안무치한 발언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과연 그 부관주에 그 장로들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이들은 던전 안에 들어온 오 조의 초인들을 모조리 연구용으로 사냥할 계획을 세워서 실행해 놓고는, 그 초인들이 소속된 조직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거래할 생각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대담하기보다는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해야 할 것만 같은 발언.

그러나 누구도 그에 반대하거나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이미 초인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 목표는 소검후와 쉴라 단장입니다. 부상 정도는 관계없지만 생포해야 한다는 것은 명심하십시오.”

목표가 정해지자 해더웨이가 주머니 속에 든 동전을 꺼내면 된다는 듯 쉽게 말을 했다.

그 발언에는 자만심 한 점 없이 순수한 자신감만이 가득했다. 두 사람의 생포는 아주 쉬운 일이라는 듯.

사실 그런 자신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두 사람이 얼마나 강력한 강자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두 사람은 물론이고, 이드와 라미아가 있는 상태에서 작전을 계획하지 않았던가. 현재는 이드와 라미아라는 가장 골치 아픈 전력이 빠진 만큼 일리나와 쉴라의 생포를 자신하는 것도 큰 오류는 아니었던 것이다.

“요르문간드를 열겠습니다. 준비하십시오.”


그때 마법사들의 목표가 된 쉴라와 일리나는 새로운 공간에 멈춰서 있었다.

그건 정말 이상하게 생긴 공간이었다. 일반적인 공터도 아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도 아니었다.

고양이 눈동자를 닮은 날카로운 타원형의 공간이었다. 바닥과 천장 사이의 거리만 100미터가 넘을 것 같았고, 중앙의 가장 큰 지름은 50미터는 될 것 같았다.

그런 공간에 움푹 파인 길이 구불구불 원형을 이루며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형태로군요.”

“기묘하게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목적은 우리겠죠.”

당연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와 비슷한 공간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이유 없이 만들어진 공간이 없었다. 실로 낭비 없는 꼼꼼함이랄까.

누가 설계했는지, 마법사가 아니라 건설업을 해도 충분히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일단 가볍게 탐색을 해 보도록 하죠.”

쉴라의 말이 끝나고 불려온 마법사들이 텅 빈 공간에 마법을 난사했다.

느린 탐색보다 일단 두드리고 본 것이다.

누가 숨어 있다면 튀어나올 것이고, 숨겨진 것이 있다면 반응이 있을 것이다. 이 던전에서 몇 번이나 확인한 패턴이다.

“반응이 없네요?”

한참 마법을 난사한 마법사들이 뒤로 물러나고 황녀가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녀의 말처럼 최고 5클래스의 광역 마법까지 터졌지만, 이상하게 생긴 공간은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그러자 황녀를 따라 고개를 들이민 스폴이 동글동글 눈을 굴리더니 말했다.

“대신에 더 수상해졌습니다. 그렇게 마법을 터트렸는데도 너무 멀쩡합니다. 부서진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어머, 정말이에요!”

호들갑을 떠는 황녀.

하지만 세 사람 모두 그녀에게 일절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에 황녀가 살짝 우울해하는 사이 쉴라가 결정을 내린 듯 조원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어떤 함정이 있는지 모르는 곳에 일부러 돌진할 이유는 없습니다.”

짧게 이유를 밝히는 쉴라다.

하지만 스폴과 은색 기사단은 내심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녀들이 알고 있는 쉴라는 섬세하지만, 위험을 두려워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이와 같은 함정에는 오히려 앞장서서 돌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녀들은 이번 쉴라의 결정이 황녀와 자리를 비운 이드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드가 없는 사이 황녀의 안전은 오롯이 쉴라의 책임이었으니까. 그리고 잘못된 결정도 아니었다.

조원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음? 길이 이렇게 굽었던가?”

처음 이상을 알아차린 사람은 선두에 선 기사였다. 선두에 섰다는 것은 실력과 함께 눈이 밝고, 방향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

과연 그 이상의 정체는 바로 나타났다.

“여긴 아까 그 공간이잖아.”

어리둥절해하는 기사들을 지나 앞으로 나선 쉴라들이 방금 전 길을 틀었던 타원형의 공간에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일루젼 계열의 마법인 것은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지금 보니 여기저기 통로가 보여요. 그리고…….”

상황 자체를 의심하는 쉴라에 공간을 살피던 일리나가 구불구불 길이 난 한쪽 공간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출구가 방금 저희가 서 있던 곳이에요. 아무래도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 변해서 모두 이 공간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어딜 봐도 똑같은 숲 속에서 정확한 위치를 잡아내는 엘프의 방향감각에서 나온 확신.

그런 일리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쉴라였기에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과연,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를 이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 놈들의 목적이라는 것이군요. 그렇게 원한다면 물러설 수 없지요.”

마치 도전을 받은 듯 사납게 웃는 쉴라.

그녀가 휙 하고 뒤를 돌아보자 그에 답하듯 은색 기사단을 비롯한 기사들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적의 도전을 두려워하는 기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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