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30화
966화
샤아아!
쩍 벌어진 요르문간드의 입에서 질질 침이 흘러내렸다. 날름거리는 혀가 일리나를 향해 늘어났다.
그 모습을 봤을 때 이놈은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 그리고 허락 없이 남의 와이프를 바라보지 않는 등의 애완동물이 배워야 할 기본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주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해더웨이의 잘못.
하지만 이드는 굳이 해더웨이에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넓은 그는 게으른 주인을 대신해 자신이 이 희귀애완동물을 교육해 주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삐억!
우선 그 교육의 첫 단계로서 정신이 산만한 이놈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이드는 그 방법으로써 주먹을 썼다. 얼추 머리 어림이라 짐작되는 곳에 주먹을 박아 넣은 것.
대충 뒤통수로 추정되는 부위를 두드려 맞은 요르문간드가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동시에 고통 어린 비명이 튀어나왔다.
사실 이 놈의 가장 큰 죄는 허락 없이 일리나를 본 것이 아니라, 이드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인 것이다. 친구도 아닌 적을 앞에 두고 한눈이라니. 죽여 달라는 의미에서 이보다 확실한 게 또 있을까.
끼에에엑!
휘청거리던 요르문간드는 금방 중심을 잡고 머리를 들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굵은 밧줄 같은 혓바닥과, 하나하나가 맹독을 품은 독니.
촤촤촤촥!
그 빽빽하게 솟아 있는 독니가 튀어나왔다. 이드의 주먹에 이빨이 뽑힌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화살처럼 쏘아졌다. 속도만 빠른 것도 아니었다. 뿌리에 길게 늘어진 살점을 이용해 끊임없이 궤도와 속도를 변화시키기까지 했다.
“독아유성추라고 하면 딱이겠네.”
무공 초식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에 짧은 감상을 표한 이드가 이빨을 향해 몸을 던지며 수라만마무를 펼쳤다.
슈르르륵. 슈르르륵.
하늘하늘 풀려난 붉은 검기가 이빨 사이를 날았다. 말벌을 희롱하는 나비처럼 붉은 검기가 날갯짓할 때마다 독니가 부서지고, 뿌리에 달린 살점이 가닥가닥 잘려 나가 힘을 잃고 떨어졌다.
그리고 독니가 모두 떨어졌을 때, 이드는 요르문간드의 턱에 일라이져를 깊이 박아 넣고 있었다. 그래봤자 요르문간드의 덩치를 생각하면 이쑤시개를 박아 넣은 거나 다름없다.
쌰아아아~
오히려 요르문간드의 독만 올랐다. 빠진 이빨이 순식간에 솟아났다.
그 모습에 이드가 상큼하게 윙크를 날렸다.
“미안. 좀 약했지?”
멈칫!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르문간드의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일라이져의 검기가 요르문간드의 몸을 관통해 삐죽 솟아나며, 이쑤시개는 철근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게다가 이드는 업그레이드를 거기에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드는 요르문간드를 관통한 검기를 그대로 위로 베어 올렸다.
워낙 몸이 커서 그런지 제법 손맛이 있다. 이드는 베어 올린 속도 그대로 녀석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쩌어어억!
잘 익은 수박이 갈라지는 것처럼 입꼬리를 따라 요르문간드의 몸이 쩍 벌어지며 그 속이 드러났다. 보통은 내장과 피가 쏟아져야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어둠이 가득했다. 생물보다는 나무를 가른 것 같다.
“이거 죽은 거 맞아?”
이드가 밖에서 죽였던 마수들의 뱃속이 어땠는지 떠올리려 애쓸 때, 요르문간드가 먼저 답을 내놓았다.
쌰아아악!
꽝! 꽝!
둘로 갈라지던 몸이 길쭉하게 늘어지며 파리채처럼 이드를 덮으려 했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하고 있던 이드는 두 개의 거대 파리채를 피하며 혀를 찼다.
“쯧,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그런 이드의 불만을 들었음인가.
이드를 더 귀찮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둘로 나뉜 요르문간드의 몸이 입꼬리를 따라 다시 갈라지며 넷으로 나뉘었다. 몸에 가득하던 날카로운 다리는 끝으로 몰렸고, 안쪽에 있던 이빨은 걸리기만 하면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갈고리처럼 변했다.
촤르르륵. 촤르르륵.
“이거 더 귀찮아졌네.”
한데 모인 다리가 전기톱의 톱날처럼 교차하며 이드를 향해 덮쳐 왔다. 일라이져와 날카로운 다리가 부딪히며 격렬한 불꽃이 튀었다.
이드가 그 흐름을 타고 넘자 그 뒤로 나뉘어 있는 요르문간드의 또 다른 몸체가 덮쳐 왔다.
원래 한 몸뚱이라서 그런가. 그 큰 몸으로 사방을 휘젓는데도 서로 꼬이거나 부딪히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짜증 나는 것은 녀석의 상처가 금방 재생한다는 사실이다. 요르문간드 역시 다른 마수들과 같은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이놈도 핵을 노려야겠지.’
다른 마수들은 핵이 파괴되는 순간 힘을 잃고 사라졌다. 그리고 요르문간드의 핵이라면 노골적으로 의심 가는 것이 있다.
이드의 눈이 요르문간드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검은 구멍을 향했다.
나무의 근간은 뿌리이고, 요르문간드가 나온 곳은 바로 저 구멍이었다. 지금도 그 구멍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그보다 더 확실하게 놈을 없애는 방법은 요르문간드를 부리는 해더웨이를 처리하는 것이지만, 그건 일리나의 몫.
푸스스스~
네 개의 몸체에서 안개처럼 뿜어내는 독을 무형기류로 밀어낸 이드가 그대로 검은 구멍을 향해 전진했다.
목표를 정했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힘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 이드의 목적을 눈치챈 요르문간드가 막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쿠르르릉!
불도저처럼 움직인 요르문간드가 이드의 앞을 막으며 몸을 둘둘 말아 그를 조이려 했다.
이드는 그 반응이 오히려 반가웠다.
나뉜 몸이 공격받을 때도 상관하지 않던 놈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 구멍 앞을 막았다. 그건 즉 구멍이 약점이란 걸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확신을 하던 시점에 확인까지 마쳤다.
좋은 기분에 발에 힘이 실리고, 마각철황격이 터지며 앞을 가로막은 요르문간드를 쳐 냈다. 그러자 이번엔 몸 끝에 몰렸던 수백의 다리가 길게 늘어서며 사방에서 찔러 왔다.
차차차착! 차차차착!
수백 다리가 교차하는 소리가 기계 같았다. 번뜩이는 예기는 대형 기사단의 검진을 보는 것 같다. 제법 볼 만한 검진이다.
그래, 어디까지나 제법 볼 만한 검진 말이다.
“내 앞에서 칼질하고 싶으면 소드 팰러스에서 100년은 수련하고 왔어야지!”
이드의 검에서 수라섬광단의 강기가 길게 늘어지며 뻗어 나갔다.
중원도 아니고, 그레센 땅, 그것도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드 앞에서 칼질이라니. 심지어 검술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몬스터가 말이다. 서거거거걱!
순식간이었다. 붉은 검강이 천지사방을 빽빽이 메우고 지나간 자리로 잘린 다리가 떨어져 내렸다.
요르문간드의 다리가 칼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기는 하지만, 그 자체의 강도가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같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일반 강철 검보다 단단한 정도,
당연히 강철을 두부처럼 베는 검강을 막을 순 없었다. 검강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같은 검강이나, 그만큼 압축된 마법뿐이다.
이드는 가지치기를 끝내 흩어지려는 검강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기운에 대한 공간 장악력이 강력할 경우 이미 발출한 후에 남은 기운도 충분히 조종이 가능하다.
이드는 끌어모은 기운을 한데 뭉쳐 꾹꾹 눌렀다.
흩어지는 기운이라 해도 절단의 의념이 담긴 검강의 태생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한데 뭉친 기운은 마치 밤송이같이 빽빽한 검강을 만들어 냈다. 이드는 재생을 마친 밤송이를 앞을 막은 요르문간드를 향해 던져 냈다.
요르문간드가 공격을 요격하기 위해 움직이고, 뭉친 기운이 폭발한 것도 순식간.
이드는 그 순간의 충격을 타고 요르문간드의 몸을 넘어 검은 구멍 앞에 닿았다.
“체크 메이트?”
쌰아아아~
역시 그럴 리가 없다. 구멍을 향해 검을 뻗는 순간 요르문간드의 몸체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일라이져를 물며 구멍에서 새로운 요르문간드의 커다란 대가리가 솟아 나왔다.
역시 이 구멍이 본체가 확실하다.
이드는 일라이져를 이빨로 막아선 요르문간드를 바라보다 천천히 그 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구 허락받고 나오는 건데?”
샤, 샤아아아?
요르문간드의 머리가 천천히 구멍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이드와 요르문간드의 체격 차이를 생각하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힘이 이드에게 있지 않은가. 바로 내공.
이드에겐 체격 차이를 월등히 뛰어넘는 강력한 내공이 있었다. 거기에 완벽에 가까운 공간 장악력도 있다. 이 공간 안에서 이드는 신에 가까운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드의 힘에 대항할 능력이 없다면 이드의 의지에 대항할 수 없는 공간.
이드는 이 공간 지배력을 이용해서 인력과 척력을 조절했다. 자신의 등을 밀고, 요르문간드를 구멍 안으로 당겼다.
그 힘을 무게로 환산하면 가뿐히 300톤이 넘는다.
아무리 거대한 몸에서 뿜어지는 힘이 강한 요르문간드라도 버거운 무게.
꾸루루룩.
요르문간드가 구멍 안으로 잠겨 들어갔다. 힘을 쓰지 못하는 요르문간드를 대신해 다른 뱀들이 튀어나오려 불쑥거렸지만, 이드의 공간 장악력은 요르문간드뿐 아니라 구멍 전체에 퍼져 있는 것.
요르문간드도 이기지 못한 무게를 그보다 작은 뱀들이 이기고 고개를 내밀 수는 없다. 잠시 후 요르문간드가 온전히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냥 봐서는 검게 색칠된 벽에 일라이져가 박혀 있는 듯 한 모습이다. 일라이져를 물고 있는 감각도 사라졌다.
대신 구멍 전체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늦었지만.
이드는 그 상태로 힐끗 일리나를 돌아보았다. 요르문간드와의 드잡이는 길지 않았다.
그사이 보호 마법은 마지막 하나를 남겨 두고 있었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일리나와 해더웨이가 대치 중이다.
마지막 보호 마법이 녹아내리는 순간.
총소리를 들은 선수처럼 일리나와 마법사들의 싸움이 시작되리라.
“아무래도 네 주인이 널 구해 줄 시간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준비하고 있어야지. 와이프 혼자 싸우게 할 수는 없으니까.”
물론 일리나의 몫을 빼앗을 생각은 없지만, 필요한 순간 바로 도울 수 있도록 미리 준비는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괜히 뱀 대가리 따위에 발목이 잡혀서야 말이 되지 않지.
그리고 말을 끝낸 순간 이드의 눈이 반짝였다.
“찾았다.”
일라이져가 구멍을 꿰뚫는 순간부터 이드는 검경을 뿌려 구멍 안에 있을 핵을 탐색했고, 지금 그 핵의 위치를 찾아냈다. 핵의 위치는 꽤 깊었다. 벽에 색칠한 것 같은 구멍에 이런 깊이가 있을 줄은. 마법의 대단함일까.
그렇다고 무공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그런 마법을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이 무공이니까.
“백화난무.”
보이지 않지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멍 안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백화난무의 검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사방에 날리던 검기가 구멍 안 핵에 닿는 순간. 후우웅~
구멍을 통해 약한 바람이 뿜어지며 이드의 머리카락과 옷을 날렸다. 그게 끝이었다.
쭈르르르륵!
검은 구멍은 초콜릿처럼 녹아내려 바닥으로 흘러내리더니, 오물처럼 중앙에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