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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화


443화

지옥으로 라미아의 등을 떠미는 말을 남긴 우디가 숲 속으로 사라졌다. 빠르게 모습을 감추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과 일행의 시선이 다시 서로를 향해 돌아섰다. 다음 순간 아이들이 먹이를 구하는 아기 새처럼 입을 열어 지저귀기 시작했다.

“이드, 그 라미아라는 새는 친구예요? 제가 한번 만져 봐도 돼요?”

“저도 만져 보고 싶어요.”

“알은 없나요? 저는 라미아의 알을 가지고 싶어요.”

질문과 요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두서없이 날아오는 말에 정신이 다 멍멍했다. 그래도 가까이서 외치는 아이들의 말은 들렸다. 특히 마지막에 들린 말을 하는 녀석은 있지도 않은 라미아의 알을 요구한다. 치밀한 계획성이 엿보이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라미아는 질색팔색하며 날개를 파닥였다.

[꺅꺅. 이런 변태 꼬맹이들. 이드,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요. 여긴 위험해요!]

“위험할 것까지야………………”

이드는 흥분해서 날개로 자신의 머리를 찰싹찰싹 때리고 있는 라미아를 진성시키며 난감한 듯 말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일리나가 아이들을 꾸짖어 달래며, 예의 없이 행동하지 못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라미아를 목표로 이드를 타고 오르는 녀석까지 나오지 않았을까.

“여기 꼬맹이들 정말 재미있는데, 그렇지 않냐?”

“아니, 전혀요. 한 명은 몰라도 이렇게 많으면 버거워요.”

어느새 아이들을 휘어잡아 그중 두 명의 손을 잡고 옆에 다가선 채이나의 말이었다.

“채이나는 능숙하네요.”

“마오가 내 손에 컸잖아.”

“정작 그 아들은 버려두고 오셨네요.”

한쪽에 아이들에게 붙잡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오가 있었다.

“호호호. 다 마오를 위한 거야. 장래의 며느릿감이다.”

…누가요?”

채이나 뒤로 마오에게 붙어 있는 아이는 세 명. 여자아이 둘과 남자아이 하나였다. 설마 남자아이는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단발머리. 마오에게 여기에 살 거냐고 묻더라고. 얼굴이 붉어져서는 말이야.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호호호.”

“많이 어려 보이는데요?”

“괜찮아. 엘프잖아. 100년쯤 후에는 상관없어. 그것보다 너는 일리나하고 먼저 가 봐.”

“네|?”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하고 있을 테니까. 일리나하고 조용한 곳에서 분위기라도 좀 잡아 보란 말이야. 얼마만의 재회인데 아까 포옹 한 번 한 걸로 끝이야?”

“아니, 그건…..

“내 말 들어. 일리나! 이리와요.”

이드는 채이나의 박력에 밀려 말을 잊지 못했다. 사실 두 사람의 재회의 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재회의 순간을 맛보던 연인을 질투로 떼어 놓은 장본인이 할 소린가? 채이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일리나를 불렀다.

“우리가 쉴 집은 아이들에게 물어볼 테니까, 두 사람은 조용히 시간을 보내 봐. 이런 때는 남자답게 네가 분위기 잘 잡아야 하는 거라구.”

채이나는 이드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고는 두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이드는 살짝 미소로 채이나에게 고마움을 표하고는 일리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채이나가 이드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넌 어디 가니? 너도 이쪽이야. 같이 아이들 봐야지?”

차라락차라락!

“아아. 미리 말해 주지 그랬어요.”

노골적으로 아쉬워하는 이드의 모습에 일리나가 웃었다.

“푸풋. 왜요?”

“당연히 좀 더 조심하고, 잘 보여야죠. 일리나의 아버님인데.”

“고마운 말이지만 지금 아버지는 마을의 장로로서 더 중요한 분이세요. 당연히 장로님으로 소개해야 맞죠.”

이드는 일리나의 말에 이런 부분들이 인간과 엘프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드가 잘해야 할 분은 제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세요.”

이드는 이어지는 엘프 사회에 대한 일리나의 설명을 듣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시간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지는걸요.”

설마 우디가 아니고, 저녁에 보기로 한 그녀의 어머니가 핵심일 줄이야. 그나마 엘프가 성인으로 인정받고 나면 사생활에 대해서는 노터치라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최소한 아침 TV 연속극처럼 ‘내 딸과 헤어지게’라는 식의 대사를 듣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과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 가던 이드는 일리나의 안내를 받아 아담한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에 있는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의 집이었다. 하지만 이드의 눈에는 다른 집들과 좀 다르게 보였다. 아마도 일리나의 집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가 일리나의 집인가 보죠?”

“네. 제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만든 집이에요.”

엘프는 성인이 되면 스스로 자신의 집을 짓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능숙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에는 가족,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함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것도 엘프가 정령술에 능숙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령술 없이 힘으로 해야 했다면 아버지가 함께했을 일이다. “일전에는 세레니아 님이 머무시면서 몇 가지 편의를 위한 마법도 베풀어 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운치가 있는 엘프의 집에 편의 시설까지 업그레이드됐단다. 조용히 열린 문 안에서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함께 걷고 있던 사람에게서 나던 향기다.

“어서 와요.”

한발 앞서서 문을 열고 선 일리나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이드가 일리나에게 마주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쿵.

단단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며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따라잡지 못한 라미아의 목소리가 문을 넘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만 좀 잡아당겨, 이 꼬맹이들아! 이드 미워~!]


“우우우…….”

삐죽이 열린 창문 사이로 이제는 제법 차가워진 가을바람과 함께 햇살이 비쳐들었다. 이드는 눈꺼풀을 두드리는 눈부신 햇살에 몸을 뒤척였다. 살짝 뜬 실눈으로 보이는 해의 위치를 가늠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좀 더 게으름을 부려도 될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품에 안고 있는 따뜻함을 떼어 놓고 일어나기 싫기 때문이었다. 이 온기는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만이 전해 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살랑이는 가을바람이 전혀 차갑지 않았다.

“으음………… 이불….. 이불…….”

부스럭부스럭.

이드는 눈을 감은 채 이불을 찾았다. 덮고 있던 이불이 손끝에 잡히자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고는 침대 깊이 꾸물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불을 덮는 잠깐의 사이 이불 속을 비추는 햇빛에 이드의 가슴에 안겨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부드러운 연녹색의 긴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솟은 뾰족한 귀, 거기에 이어지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일리나였다. 그레센 대륙으로 돌아온 이드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연인. 그녀가 이드의 품에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다시 덮기 전 살짝 눈을 뜬 이드는 자신에게 안겨 잠들어 있는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일리나를 보게 된 지 이틀. 첫날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햇빛에 일리나의 뾰족한 귀가 움찔거렸다. 이드는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더하고는 햇살을 피해 이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런 이드의 입가로 아침 햇살을 닮은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어쩐지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늦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러움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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